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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5권, 순조 22년 5월 25일 무술 1번째기사 1822년 청 도광(道光) 2년

영의정 김재찬이 지난해에 관서 위유사 정원용이 상소한 여러 조목에 관해 아뢰다

차대하였다. 영의정 김재찬(金載瓚)이 지난해에 관서 위유사(關西慰諭使) 정원용(鄭元容)이 상소로 개진한 여러 조목에 관해 아뢰기를,

"국가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전부(田賦)이므로 분등(分等)을 제도화한 뒤로는 나라에서도 하나도 증감(增減)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시로 더 거두는 것을 재물을 만드는 방편으로 간주하고 공사(公事)를 빙자하려고 꾀한 자가 있는데, 이는 나라에 법이 있는 바, 그 죄가 장오죄(贓汚罪)보다도 더 심합니다. 지나간 일은 소급하여 다스릴 수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단연코 법을 써야 합니다. 만일 전처럼 범한 자가 있을 경우 먼저 덮어둔 도백부터 특별히 무겁게 감죄(勘罪)하고, 범한 자에게는 바로 전정(田政)을 농락한 율을 시행하되, 이것을 한 권의 법으로 간행하여 영읍(營邑)으로 하여금 항상 볼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민고(民庫)가 지탱하기 어려운 폐단은 다른 도도 일반이지만, 관서(關西)가 특히 심합니다. 명목을 비록 순영(巡營)에서 검열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권한이 본읍에 있어, 혹은 공적인 용도를 빙자하여 사적인 용도로 돌리기도 하고, 또는 사례를 인용한 것이 모두가 그릇된 규례인가 하면, 심지어는 수령의 외공방(外工房)이라는 칭호까지 있습니다. 그리하여 매 분기마다 회계부를 올려 보낼 때에 반드시 많은 것을 깎아 적게 만들고 없는 것을 불려서 있는 것으로 만들며, 아리송하게 항목을 꾸며 규명할 수 없게 합니다. 이른바 순영의 문서 검열이라는 것도 다만 허공에 띄워 놓고 멀리서 헤아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영읍에는 또 두 가지의 하기(下記)036) 가 있습니다. 순영에는 가짜 문서로 검열을 받고 진짜 문서는 본읍에 두고 있는데, 이제는 이미 구제할 수 없는 폐막이 되어 바야흐로 보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모두 수령이 농간을 부리는 죄이고 도백이 그전대로 넘기기 때문입니다.

상소의 요청에 따라 본도로 하여금 추가 지출이 가장 많은 고을을 추출한 다음 뿌리까지 파헤쳐 반드시 단서를 찾아내되, 해당 수령은 해유(解由)037) 의 예에 의하여 영구히 서용(敍用)하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삼고(三庫)038) 의 정례(定例)를 만들어 비변사에 올려 보내고 비변사에서는 반첩(反貼)039) 하여 내려 보내어 영구히 불변의 법령으로 삼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향임(鄕任)의 차출도 자체 내의 관작에 관계가 있고 더군다나 청북(淸北)의 여러 고을은 선묘조(宣廟朝)임진년040) 의 수교(受敎)가 있으니, 어떻게 한결같이 난잡하게 방치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내용으로 그 도에 공문을 반송하여 절대로 규정을 범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각전(各殿)의 참봉 승진도 관제(官制)와 관련이 있으니, 다시 더 널리 상의한 뒤에 품처하여야 합니다. 승문원의 권점(圈點)과 선전관의 추천에 있어서는 이미 지난날의 명이 있었고 중간에 연석(筵席)에서의 주청으로 인하여 여러 차례 신칙하였으나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으니, 매우 개탄스럽습니다. 이제는 전처럼 어겨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거듭 분명하게 분부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형조 참판 이지연(李止淵)이 아뢰기를,

"전패(殿牌)041) 의 사체는 더없이 엄하고 중하여 만약 흉패한 무리들이 감히 이를 범하였을 경우 대역률(大逆律)로 적용하였습니다. 이는 그 의의가 있는 만큼, 그 속셈이 오로지 관장(官長)을 축출하기 위해서나 동료를 해치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하여 털끝만큼도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시골의 어리석고 천한 무리들이 저지른 변괴는 그 형적이 비록 부도와 같다 하더라도 그 실정은 무지(無知)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유추하여 법을 적용해 처자(妻子)까지 죽인다는 것은 형정(刑政)으로 보아 도리어 가혹한 듯하니, 본인에 한하여 죽이는 것이 천지의 생성(生成)하는 덕에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대신에게 하문하여 처리하소서."

하였다. 영의정 김재찬은 말하기를,

"전패로 변을 일으킨 일에 대해서는 애당초 정해진 법이 없고 다만 비슷한 사례를 참조하여 적용해 왔는데, 그 형적이 대역(大逆)과 같다고 해서 아울러 처자까지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처자까지 죽인다는 것은 지나치니, 법관(法官)이 아뢴 바가 매우 의의가 있습니다. 만일 윤허하시는 비답을 받들게 된다면, 수교(受敎) 중에 기재하여 영구히 의금부의 법령으로 삼겠습니다."

하고, 우의정 임한호는 말하기를,

"아뢴 바가 과연 의견이 있으니, 신은 이의가 없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20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財政) / 농업-전제(田制)

  • [註 036]
    하기(下記) : 지출부(支出簿).
  • [註 037]
    해유(解由) : 관원들이 전직(轉職)할 때 재직중(在職中)의 회계 물품 출납에 대한 책임을 해제받던 일. 인수인계가 끝나고 호조나 병조에 보고하여 이상이 없으면 이조에 통지하여 해유 문자(解由文字)를 발급하였음.
  • [註 038]
    삼고(三庫) : 사창(社倉)·의창(義倉)·상평창(常平倉)을 말함.
  • [註 039]
    반첩(反貼) : 공문서에 의견을 붙여서 회송함.
  • [註 040]
    임진년 : 1592 선조 25년.
  • [註 041]
    전패(殿牌) :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 패. ‘전(殿)’ 자를 새겨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두는데, 나라에 의식이 있을 때 지방에 나간 대소 신료(大小臣僚)와 수령(守令)들이 이에 배례하여 임금에게 정성을 표시하는데, 만일 훼손·모독하면 본인은 물론 그 수령까지도 처벌되었음.

○戊戌/次對。 領議政金載瓚, 以昨年關西慰諭使鄭元容疏陳諸條, 啓言, "有國所重, 最在田賦, 而分等定制之後, 自朝家, 亦不得一有增減。 今乃隨時加(歛)〔斂〕 , 看作生財之方, 仍爲憑公之計者, 國有常憲, 罪浮贓汚。 旣往雖不追理, 來後斷當用法。 更或如前有犯, 則先自掩置之道臣, 另加重勘, 犯者直施田政偸幻之律, 以此刊成一部成憲, 俾爲營邑常目之地。 民庫難支之弊, 他道同然, 而關西尤甚。 名雖勘自巡營, 而實則權在本邑, 或托公下而仍歸私用, 或援事例而都屬謬規, 至有守令外工房之號。 若當每等會上時, 則必鏟多爲少, 張虛幻實, 疑眩爲目, 莫可査究。 所謂巡營勘簿, 只是懸空遙度。 而況又有營邑兩件下記, 虛勘於巡營, 實下於本邑, 今則已爲莫救之瘼, 方到難保之境, 此皆守令舞弄之罪, 道臣因循之故也。 依疏請, 令本道, 推出其加下最多之邑, 到底査刷, 必得端緖, 當該守令, 依解由例, 永不收敍。 仍成三庫定例, 上送籌司, 反貼下送, 以爲永久不易之典。 鄕任差除, 亦關自中之名器, 況如淸北諸邑, 則旣有宣廟朝壬辰受敎, 尤豈容一任淆亂乎? 以此行關該道, 切勿犯科。 殿郞遷轉, 有關官制, 更加博議, 從後稟處。 至於槐圈宣薦, 已有昔年成命, 間因筵奏屢飭, 而尙不對揚, 極爲慨歎。 今則無得如前違拒之意, 申明分付。" 從之。 刑曹參判李止淵啓言: "殿牌事體, 莫嚴莫重, 苟或凶悖之類, 敢有干犯於此, 則照用大逆之律, 義固有在, 不可以其計之專由於圖逐官長, 謀害儕流, 有所一毫容議於其間。 而第鄕曲愚賤之徒, 其所作變, 跡雖同於不軌, 情則出於無知。 充類用律, 至於孥戮, 其在刑政, 反涉屑越, 誅止其身, 不害爲天地生成之德。 請下詢大臣處之。" 領議政金載瓚曰: "殿牌作變, 初無本定之律, 只用旁照之例, 而以其跡同大逆, 幷施孥戮。 然孥戮則過矣, 法官所奏, 極有意義。 若承允許之批, 當載之受敎, 永爲王府關石之典矣。" 右議政林漢浩曰: "所奏果有意見, 臣無容他議矣。" 從之。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20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財政) / 농업-전제(田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