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에서 유생들의 일을 아뢰다
성균관에서 아뢰기를,
"거재 유생(居齋儒生)들이 권당(捲堂)한 소견에 대해 말하기를, ‘신 등이 서로 이끌고 나와 두 번이나 호소한 것은 마음에 품은 대의(大義)를 밝히고 금령(禁令)을 환수할 것을 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아 보니,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훈계와 질책만 호되게 하였으므로, 놀라고 당혹하다가 이어서 극도로 근심하고 개탄하며 억울해 하였습니다. 신 등이 의뢰하여 임금을 섬기는 것은 ‘의리(義理)’ 두 글자뿐인데, 의리는 사문(斯文)을 호위하고 세상의 교화를 붙들어 세우는 데에 있습니다. 진실로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선비의 관을 쓰고 선비의 복장을 입고 성균관의 문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선현(先賢)을 업신여기고 선정(先正)을 미워하며 사문(斯文)을 배척하고 세상의 교화를 무너뜨리는 자가 있을 경우, 배척하고 성토하되 또한 의리만 보아 할 뿐입니다. 선비의 무리가 사방에 분포되어 서울에서는 성균관에 있고 지방에는 향교와 서원에 있는데, 사문의 의리에 관계되는 일이 있을 경우, 서로 알리고 깨우쳐야 하니, 알리고 깨우치는 것을 유생의 통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일체 금단하며 통문을 내지 못하게 할 경우, 이는 사방(四方)의 입을 막고 성균관의 귀를 막는 것입니다. 사방은 성균관과 둘로 분리할 수 없으니, 일신(一身)에 비유하자면 성균관은 심복(心腹)이고 향교와 서원은 사지(四肢)이며 선비의 의논은 혈맥(血脈)입니다. 성균관에 향교와 서원의 선비들의 의논을 고하지 않게 한다면, 어떻게 성균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조정에서 설치한 금령(禁令)을 목격하고도 바로잡아 구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사문을 호위하지 않을 수 없고 세도를 붙들어 세우지 않을 수 없으며, 의리를 밝히지 않을 수 없는데 어찌한단 말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타일러 깨우쳤으나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끝내 이해가 안 간다. 원래 간여되지 않은 하교였는데, 이것이 어찌 놀라고 두려우며 근심하고 개탄하며 억울한 말이기에 권당까지 한단 말인가? 곧 효유(曉諭)하여 도로 들어오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165면
- 【분류】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甲辰/成均館啓言: "居齋儒生等, 捲堂所懷以爲, ‘臣等相率呼籲, 至於再遭者, 欲明所抱之大義, 仰請禁令之還收。 而伏承聖批, 天聽邈然, 誨責備至, 驚惑震恐, 繼以憂慨抑鬱之極也。 臣等之所藉手事君者, ‘義理’ 二字而已, 義理在於衛斯文扶世敎。 而苟非然者, 尙何以冠儒服儒入於太學之門也? 今有侮賢醜正關斯文而壞世敎者, 則斥之討之, 亦惟義理是視。 夫縫掖之倫, 布于四方, 內而在於國學, 外而在於校院, 其有關於斯文義理, 則相告而相諭, 諭告之發, 是之謂儒通也。 今若一切禁斷, 使不得爲此, 則是乃杜四方之口, 塞太學之耳也。 四方之於太學, 不可以二之譬之一身, 太學者, 心腹也, 挍院者, 四體也, 儒論者, 血脈也。 使太學而不有校院之儒論相告, 則何以爲太學也? 目見朝家之設禁, 不思匡救, 則其如斯文之不可不衛, 世道之不可不扶, 義理之不可不明, 何哉? 云。 多般開諭, 終不回聽。 何以爲之。" 敎曰: "終不曉然。 元自不干之敎, 豈是驚惑震恐, 憂慨抑鬱之語, 而至於捲堂乎? 卽爲曉諭還入。"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165면
- 【분류】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