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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3권, 순조 20년 7월 27일 신사 1번째기사 1820년 청 가경(嘉慶) 25년

지평 최명현이 공윤항을 논박하다

지평 최명현(崔命顯)이 상소하여 전 정언 공윤항(孔胤恒)을 논박하면서 그의 이름을 사적에서 삭제하는 법을 시행할 것을 청하였다. 이보다 먼저 공윤항이 상소하여 논하기를,

"의주 이교(義州吏校)의 무리가 군공(軍功)을 빙자하여 의회당(義會堂)을 창건하고 나서 전 병사 김견신(金見臣)에게 내린 교서(敎書)를 가져다 의회당 안에 두고 시정(市井)의 불량배와 여러 고을의 부상(富商)을 모아서 예전(禮錢)을 받아들인 다음 이름을 기록하여 문안을 작성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 사람들에게 고을 사람은 구안(舊案)이 있는데 우리도 신안(新案)이 있다고 자랑하였으며, 또 고을 사람은 난을 일으키고 이교는 충성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옛날 벼슬아치 가문과 향반(鄕班)의 자손이 모두 떠나려고 마음먹어 자리잡고 사는 낙이 없습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본도에 공문을 보내 빨리 해체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최명현이 상소하기를,

"저 의회당을 창설한 것은, 전 병사 김견신(金見臣)이 입시할 때에 의당(義黨)을 처음 주창한 것을 포상하고 무공(武功)을 이룬 것을 가상히 여겨 어필(御筆)로 ‘그대들이 세상에 드문 공을 세웠다.[爾等樹不世之勳]’라는 말을 써서 김견신이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교서를 사사로이 가지지 않고 정벌에 나갔던 장사(壯士)들과 같이 당(堂) 하나를 지어서 어필을 모셔 놓고 적을 격파한 날을 맞이할 때마다 서로 모여서 임금의 덕을 노래하고 읊으면서 한 고을의 영광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 저 공윤항은 감히 사실과 틀린 말로 지레 먼저 아뢰었으니, 너무나도 해괴하고 망령되었으므로, 측근의 반열에 둘 수 없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본도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의 말이 사실과 틀릴 경우 어찌 처벌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64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辛巳/持平崔命顯, 疏駁前正言孔胤恒, 請施刊削之典。 先是, 胤恒疏論:

義州吏校輩, 藉軍功, 創義會堂, 取前兵使金見臣敎書, 置之堂中, 募得市井無賴及列邑富商, 徵捧禮錢, 列名作案, 自詡於人曰; ‘鄕人有舊案, 吾亦有新案’, 又曰, ‘鄕人造亂, 吏校效忠。’ 所以簪纓故族, 鄕班遺裔, 擧切渙散之意, 莫有奠居之樂。 請令廟堂, 行會本道, 亟令撤罷。

至是, 命顯疏言:

惟彼義會堂之所以創設者, 前兵使金見臣入侍時, 褒義黨之始倡, 嘉武功之克成, 御筆書下 ‘爾等樹不世之勳七字’ 見臣由是感激, 不敢私有, 乃與從征壯士, 爰構一堂, 奉安寶墨, 若値破贓之日, 每年相聚, 歌詠聖德, 以作一鄕之光耀。 而噫! 彼胤恒, 乃敢以爽實之語, 徑先仰瀆, 駭妄之極, 不可置之侍從之列。

批曰: "已令本道査實, 言若爽實。 則豈無其罰乎?"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64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