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 판서 이상황을 인책하다
이보다 먼저 이조 판서 이상황(李相璜)이 조석륜(曹錫倫)을 다시 발탁하는 데 추천하였는데, 조석륜은 일찍이 영양 서원(英陽書院)을 철거한 일 때문에 선비들에게 배척을 당하여 죄를 얻은 자였다. 지방의 유생들이 통문(通文)을 발송하여 이조 판서가 추천한 잘못을 논하였는데, 침해하고 핍박한 말이 많았으므로 이상황이 이로써 인책하였다. 이때 구전 정명(口傳政命)이 있어서 연일 엄중하게 독촉하여 문계(問啓)까지 하였으나 즉시 거행하지 않자, 하교하기를,
"이조 판서의 일은 어찌 개탄스럽지 않는가?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하는 것은, 기강이 있기 때문이며 체모가 있기 때문이다. 통문에 설령 침해하고 핍박한 말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성균관 유생이 권당(捲堂)한 것이며 상소한 것인가? 이는 가탁하여 협잡부리는 한두 무리들이 사사로이 서로 날뛰는 일에 불과한데 이것이 무슨 큰 일이기에 무릅쓰기 어려운 의리로 보아 구전(口傳)의 정명(政命)을 밤이 지나도록 이행하지 않는단 말인가? 차라리 임금의 명을 어길지라도 협잡을 부린 말에 감히 항거하지 못하고 갑자기 조금도 어렵거나 망설임이 없이 위로 미루었으니, 어찌 이러한 기강과 체모가 있겠는가? 이런 풍습을 고치지 아니하면 후일의 폐단을 이루 다 말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미 거행했다는 이유로 용서할 수 없다. 이조 판서 이상황에게 서용(敍用)하지 않는 법을 속히 시행하라."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당파의 습관을 억제하고 선비의 추향을 바르게 하는 것은 바로 열성조에서 서로 전하신 심법(心法)이었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 선비의 버릇을 잠자코 살펴보니, 점점 예전과 같지 않아 탄식이 나오는데, 이른바 통문이라는 것은 더욱더 부끄럽고 한심스러웠다. 국가에 관계가 있으면 서로 이끌고 나와 대궐 문을 두드려도 되지만, 조정 관원의 잘잘못에 있어서는 조정에서 경고할 일이지 유생이 간여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더구나 당파의 습관을 끼고서 유생의 논의에 가탁한단 말인가? 연전에 이같은 통문으로 인하여 대신이 자리에 있기를 불안해 하고 전형의 신하가 낭패를 당하여 떠났는데, 이제 또 이조 판서를 쫓아내려고 꾀함으로써 이조 판서가 명령을 하룻밤 동안이나 이행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무슨 모양이며 무슨 풍습인가? 이와 같이 하여 마지않는다면, 몰래 다른 마음을 품은 자가 조정을 비워서 몰래 나라의 대통을 옮기려고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몇 명의 불량배들을 모집하여 유생의 이름을 가탁하여 통문을 발송해도 욕망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오늘날 기강이 비록 땅을 쓸 듯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태아(太阿)를 아직 거꾸로 잡는 데 이르지는 않았으니, 어찌 그럭저럭 넘기면서 바로잡아 고치지 않겠는가? 이번에 통문은 성균관으로 하여금 그 즉시 불 태우게 하였는데, 그들의 성명을 조사해내어 먼 변방으로 귀양보내도록 하라. 이 뒤로는 어떤 통문이든 막론하고 조정 신하의 시비를 간여하였을 경우에는 모두 법을 어긴 율로 시행할 것이다. 이것도 예전에 신문(神門)011) 을 금단(禁斷)하고 벌을 주는 유의(遺意)이니, 성균관으로 하여금 판(板)에 써서 걸고 항상 보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162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011]신문(神門) : 대궐문.
○丁丑/先是, 吏曹判書李相璜, 檢擬曺錫倫於甄復, 錫倫嘗以英陽書院毁撤事, 被斥於多士而得罪者也。 有方外儒生, 發通論吏判檢擬之失, 語多侵逼, 相璜以比引義。 時有口傳政命, 而連日嚴督, 至於問啓而不卽擧行, 敎曰: "吏判事, 豈不慨然乎? 國之爲國, 紀綱也, 體貌也, 所謂通文, 設有侵逼, 此是泮儒之捲堂乎, 上疏乎? 不過一二假托挾雜之流, 私相跳踉, 此何大事, 看作難冒之處義, 至使口傳之政命, 經宿委棄? 寧違君上之命, 不敢抗挾雜之言, 遽然推上, 無少疑難, 豈有如許紀綱, 如許體貌乎? 此風不改, 後弊難言, 不可以已爲擧行, 有所曲恕。 吏曹判書李相璜, 亟施不敍之典。" 又敎曰: "抑黨習端士趨, 卽列聖朝相傳之心法也。 近年以來, 默察士習, 漸有不古之歎, 而所謂通文一事, 尤爲貽羞而寒心。 國家有關係, 則相率叩閽可也, 至於朝官之得失, 此自朝廷之官箴, 非儒生之所可干與。 而況挾黨習而假儒論乎? 年前因似此通文, 大臣不安於位, 銓臣狼狽而去, 今又謀逐吏判, 使吏判, 委命經宿, 此何光景, 此何風習? 若此不已, 則陰懷異圖者, 欲空朝廷而潛移國命。 則募得數箇無賴, 托儒名而投通文, 亦將濟其欲。 思之及此, 寧不懍然? 今日紀綱, 雖曰掃地, 太阿猶不至於倒持, 豈可伈泄而不思矯革乎? 今番所謂通文, 令成均館, 卽爲燒火, 其姓名査出, 邊遠定配。 此後無論某樣通文, 復有干與朝臣是非者, 幷施以違制之律。 此亦古昔禁斷神門付罰之遺意也, 令成均館, 揭板常目。"
- 【태백산사고본】 23책 23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162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