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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1권, 순조 18년 2월 24일 임진 1번째기사 1818년 청 가경(嘉慶) 23년

한성부에서 냉정동의 능묘를 살피도록 아뢰다

한성부에서 아뢰기를,

"서부(西部)의 유학(幼學) 왕지민(王之民) 등이 상언하기를, ‘저희들 선조인 여러 임금의 능침(陵寢)에서 1백 보 이내에 투장(偸葬)한 무덤이 1백여 개가 넘었고, 심지어 김이탄(金履坦)이란 자가 있어 감히 냉정동(冷井洞)에 몰래 들어와서 제4릉에 압장(壓葬)하였는데, 반은 잘려 나가고 반은 까뭉개졌으며, 석물(石物)도 따라서 파묻혀 버렸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속히 해조(該曹)로 하여금 열성조(列聖朝)에서 판하(判下)한 절목에 따라 여러 능의 1백보 이내의 투장한 무덤을 낱낱이 조사하여 파내고, 냉정동의 제4릉은 속히 봉분을 개축하는 조치를 내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고려 왕조의 각 왕릉의 몇 보(步) 내에 투장한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며, 김이탄이란 자가 거리낌없이 범장(犯葬)하여 봉역(封域)을 까뭉개고 상설(象設)036) 을 파묻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더없이 패악(悖惡)한 행위입니다. 예조의 낭관(郞官)을 보내어 해도(該都)의 수신(守臣)과 함께 곧 바로 적간(摘奸)하게 해서 정말로 상언한 내용의 사연과 같다면 범장(犯葬)한 무덤은 즉시 파내고 제4릉의 까뭉개진 봉분은 다시 길일(吉日)을 택하여 봉축(封築)하여야 할 것입니다. 김이탄을 법에 따라 문초하여 속히 해당한 율을 시행하고 그 외의 여러 능의 1백 보 안에 범장한 자도 낱낱이 사실대로 조사하여 그 중에서 가장 심하게 압핍(壓逼)되어 잠시라도 그냥 둘 수 없는 무덤은 모두 즉시 파내고 범장한 자는 해당 형률에 따라 엄중히 다스리라는 뜻으로 청컨대 해도의 수신에게 일체로 분부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전조(前朝)의 능침에 대하여 열성조에서 내린 숭봉(崇奉)하라는 조처는 우선 논하지 않더라도 제왕의 능묘 안에 범장한 것은 이미 윤리상으로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물며 감히 능을 침범한 것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를 범할 때에 살피지 못한 해당 유수(留守)와 경력(經歷)은 현고(現告)를 받아 파직하고, 해당 수신(守臣)과 내려간 예관이 함께 봉심(奉審)한 뒤에 개축하는 일이나 파서 옮기는 일 등은 회계(回啓)한 대로 거행하되, 봉축을 고칠 때 위안제(慰安祭)의 유무에 대해서는 예관으로 하여금 널리 상고하여 초기(草記)해 거행하도록 하라. 그리고 지금부터는 예관이 3년 마다 한 차례씩 봉심하도록 되어 있는 구례(舊例)를 다시 시행하고, 매년 가을 말경에는 경력이 탈이 있나 없나를 두루 살펴서 수신이 장문(狀聞)토록 하는 일을 정식(定式)으로 하라. 이와 관련하여 생각하건대, 왕씨의 자손이 조정에서 벼슬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해조로 하여금 특별히 물어 찾아서 적합한 자는 속히 초사(初仕)에 조용(調用)하여 나라에서 왕씨를 잊지 않았다는 뜻을 보여 주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29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풍속-예속(禮俗)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壬辰/漢城府啓言: "西部幼學王之民等上言, 以爲 ‘渠等先祖諸王陵寢百步之內, 偸塜百數有餘。 至有金履坦者, 乃敢覘入於冷井洞, 壓葬於第四陵。 而半則因割之, 半則因夷之, 而石物又從以見埋矣。 伏乞亟令該曹, 依列聖朝判下節目, 諸陵百步內偸塚, 一一査掘, 冷井洞第四陵, 亟施改封築之典’ 云。 朝諸陵步數內偸葬, 萬萬驚駭, 所謂金履坦之無難犯葬, 封域則夷之, 象設則埋之云者, 果是實狀, 則節節悖惡。 發遣禮郞, 與該都守臣, 卽爲摘奸, 果如上言內辭緣, 則犯葬之塚, 劃卽掘去, 第四陵平夷處, 更爲涓吉封築。 金履坦如法取招, 亟施當律, 其餘諸陵百步內犯葬者, 一一査實, 其中最壓逼不容暫留之塚, 竝卽掘去, 而犯葬者, 以其律嚴勘之意, 請一體分付於該都守臣。" 敎曰: "前朝陵寢, 列聖朝所以崇奉之典, 姑勿論, 犯葬於帝王陵墓之內者, 已非彝性之所敢爲, 況敢犯及於一抔乎? 萬萬驚駭。 犯及時不察之該留守及經歷, 捧現告罷職, 該守臣, 與下去禮官, 同爲奉審後, 改築及掘移等事, 依回啓擧行。 改封築時慰安祭有無, 令禮官, 博考草記擧行。 自今禮官三年一次奉審, 復舊例爲之, 每年秋末, 經歷遍審有無頉, 守臣狀聞事, 定式。 因此思之, 王氏子孫之無立朝者久矣。 今該曹, 另加採訪, 其可合者, 初仕從速調用, 以示朝家不忘王氏之意。"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29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풍속-예속(禮俗)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