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시책문
혜경궁(惠慶宮) 시책문(諡冊文)에 이르기를,
"육인(六引)026) 에는 기일(期日)이 있으니 이미 귀서(龜筮)027) 의 좋은 날을 얻었고, 일혜(壹惠)로 시호를 삼아서 큰 휘호를 올려 아름다움을 드날립니다. 어슴프레 음성과 용모를 모시는 것 같으므로 사모한 마음만 더합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효강 자희 정선 휘목 혜빈 저하(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邸下)께서는 타고난 성품이 맑고 착하며, 지니신 덕이 유순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화락함으로 높으신 왕세자와 짝하시니 아름다움을 이어서 착한 이름이 일찍 드러나셨고, 단아한 의상(衣裳)으로 삼전(三殿)에 문안을 드리니 띠[紳]에 쓴 내칙(內則)의 법에 어김이 없었습니다. 닭이 울면 잠(箴)을 올려서028) 14년의 대리 청정을 도우셨고, 상서로움이 흐르고 경사를 길러서 억만 년의 큰 기업(基業)을 영구히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평상시에 예법에 따라 행하시니 《소학(小學)》이 성인의 도(道)가 되고, 원량(元良)029) 의 덕성(德性)을 성취하시니 영조께서 현모(賢母)의 표창을 내렸습니다. 아! 우리 선조(先朝)030) 께서 하늘에 타고난 정성으로, 나이를 알고 날짜를 아끼는 날짜를 아끼는 031) 효도가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인정(人情)에 합하는 것이 예(禮)가 되니, 절문(節文)과 의칙(儀則)을 적절하게 덜거나 보태었고, 융성하게 받들어 기뻐하셨으니, 잠자리와 음식, 따뜻함과 서늘함을 알맞게 하여 봉양하셨습니다. 옥책문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냈음은 즉위한 초년(初年)에 있었고, 난필(鑾蹕)의 관화(觀華)는 아직도 축수하였던 성대한 일로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직 부족한 내가 어릴 적부터 보호하고 사랑하시는 은혜를 유독 더 받았습니다. 같은 날 탄신(誕辰)032) 이라 옥음(玉音)을 오히려 기억함은 우연함이 아니었고, 태세(太歲)가 사년(巳年)에 있으니 큰 복이 더욱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만년토록 오늘날처럼 지극하신 가르침을 길이 받들기를 원하였으며, 일국(一國)으로 봉양해도 부족하므로 일찍이 어버이의 마음을 체득하였습니다. 어려움을 당하여 굳은 마음을 지니시니 아름다운 행실이 오늘까지도 전하고, 밝은 빛을 간직하여 위(位)를 바르게 하시니 숨은 덕이 밖에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수명과 복록과 명망을 얻으니 하늘이 도운 것을 징험하겠으며, 산처럼 언덕처럼 장수하시기를 온 나라 사람들이 간절히 축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후가 오래 끌다가 갑자기 승하하실 줄을 어찌 예상이나 하였겠습니까?
묘소는 합봉(合封)의 제도를 행하니 선왕(先王)의 장례를 신중히 하는 뜻을 이어받았고, 내탕고(內帑庫)에 간직된 은폐(銀幣)를 내렸으니 국비(國費)를 아끼시는 자전(慈殿)의 덕을 체득하였습니다. 사실을 기록하여 영구히 전하려고 하면, 시호를 올려서 그윽한 덕을 천유(闡幽)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헌(獻)은 밝고 슬기로움을 일컫는 것이니 모든 선의 근본이며, 경(敬)은 경계하는 뜻이니 한결같은 덕이 하자가 없는 것입니다. 대략 유양(揄揚)하는 작은 정성을 폈는데 어찌 감히 성대한 덕을 표현하였다고 하겠습니까? 삼가 존호를 헌경(獻敬)으로 올리니, 영령께서 보장(寶章)을 받으시기를 우러러 바랍니다. 동관(彤管)033) 이 빛을 더하니 꽃다운 이름이 길이 있을 것이며, 구슬 그림[瑤圖]이 경사로움을 더하니 큰 복이 끝없이 내릴 것입니다. 아! 슬픕니다. 삼가 아룁니다."
하였다. 【내각 제학 남공철(南公轍)이 지었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91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26]육인(六引) : 상여(喪輿)를 끄는 여섯 가닥 줄의 발인(發靷)을 말함.
- [註 027]
귀서(龜筮) : 좋은 날을 점 치는 것.- [註 028]
닭이 울면 잠(箴)을 올려서 : 왕비가 임금이 정사(政事)에 부지런히 힘쓰도록 내조(內助)하는 것을 말함. 제(齊)나라 애공(哀公)이 황음(荒淫)하자, 현비(賢妃)가 새벽에 닭이 울고 동녘이 밝았으니 정청(政廳)에 나아가라고 권고한 데에서 나온 말임. 잠(箴)을 경계하는 글.- [註 029]
원량(元良) : 세자인데, 정조를 가리킴.- [註 030]
선조(先朝) : 정조를 가리킴.- [註 031]
날짜를 아끼는 : 세월이 가는 것을 애석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효자(孝子)가 부모(父母)를 장구히 모시고자 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 [註 032]
탄신(誕辰) : 혜경궁 홍씨와 순조의 탄신은 모두 6월 18일임.- [註 033]
동관(彤管) : 붉은 빛의 대붓. 옛날 여사(女史)가 궁중의 정령(政令)과 후비(后妃)의 일을 기록할 때 쓰던 붓.○己亥/惠慶宮諡冊文:
竊以六引有期, 旣龜筮之(協)〔協〕 吉, 壹惠爲諡, 薦鴻號而揚休。 怳陪聲容, 祗增攀慕。 恭惟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邸下, 稟性淑哲, 秉德柔嘉。 琴鐘媲貳極之尊, 嗣徽之令聞夙著, 珩珮行三殿之謁, 書紳之內則無違。 雞鳴進箴, 陰贊十四年代政, 虹流毓慶, 永鞏億萬世洪基。 平居禮法之率行《小學》, 爲聖人之道, 元良德性之成就, 英考垂賢母之褒。 猗! 我先朝出天之誠, 深切知年愛日之孝。 合於情者爲禮, 節文儀則之損益隨宜, 致其隆而承歡, 寢膳溫凊之左右就養。 瑤冊闡美, 粤自卽阼之初年, 鑾蹕觀華, 尙傳奉壽之盛事。 惟寡昧自在沖藐, 伊保護偏荷慈恩。 同日誕辰, 玉音尙記於非偶, 太歲在已, 寶籙益緜於無疆。 願萬年之如今。 長奉至訓, 養一國而不足, 嘗體親心。 履艱居貞, 懿行猶傳於今日, 含光正位, 潛德不形於外人。 得壽得祿得名, 皇天之眷佑斯驗, 如岡如陵如阜, 薄海之祈祝方深。 豈意玉候之彌留, 奄驚仙馭之上陟。 珠邱行合塋之制, 述先志於愼終, 銀幣下內帑之藏, 體慈德於恤費。 苟欲紀實而垂永, 亶在揭號而闡幽。 獻爲明睿之稱, 萬善攸本, 敬是儆戒之義, 一德無瑕。 粗伸揄揚之微忱, 敢曰摹繪於盛德? 謹上尊號曰, 獻敬, 仰冀靈鑑, 誕受寶章。 彤管增輝, 庶芳烈之長在, 瑤圖衍慶, 介景祉於無窮。 嗚呼! 哀哉! 謹言。
【內閣提學南公轍製。】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91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