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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18권, 순조 15년 1월 15일 신축 1번째기사 1815년 청 가경(嘉慶) 20년

차대에서 김재찬이 도성 안의 거지들에 대하여 아뢰다

차대하였다. 영의정 김재찬(金載瓚)이 아뢰기를,

"도성 안의 거지들 중 각 고을에서 흘러 들어온 자는 차원(差員)을 정하여 원래의 호적이 있는 고을에 영부(領付)토록 하고, 원래 서울에 살던 자는 진휼청(賑恤廳)에서 날짜를 계산하여 양식을 주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좌도(左道)027) 를 물리쳐서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케 하는 것은 곧 치교(治敎)에 있어서 우선해야 할 일이며, 아조(我朝)의 가법(家法)입니다. 반유(泮儒)028) 들이 성균관에서 무녀(巫女)들을 내쫓자 세종(世宗)께서는 내 병이 나으려 한다는 하교(下敎)까지 하였고, 송도(松都)의 선비들이 송악산(松嶽山)의 음사(淫祠)를 헐어버리자 명묘(明廟)029) 께서는 우악(優渥)한 비답을 내려 매우 칭찬했으며, 우리 선조(先朝) 때에는 무격(巫覡)과 승니(僧尼)들이 성 안을 드나들지 못하도록 금하고 이어서 법부(法府)의 금령을 삼았던 것입니다. 요즈음 들으니 무녀와 비구니의 무리들이 종적을 숨기어 출몰하면서 대체로 꺼리는 바가 없어, 현혹시킴이 도성 안에 점점 불어나고 기도와 굿이 거의 사찰(寺刹)에 두루 퍼지므로 들리는 바로는 소란스러움이 옮겨가며 넓어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찌 열성조(列聖朝)에서 좌도를 물리쳐 민심을 안정시키려던 성덕(盛德)의 지극한 가르침이라 하겠습니까? 경조(京兆)030)추조(秋曹)031) 로 하여금 삼가 선조의 수교(受敎)를 따라 철저히 찾아내어 즉시 모조리 성밖으로 내쫓아서 서울 부근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고, 만일 금령(禁令)을 무시하고 숨기는 자가 있으면 청컨대 신속히 형배(刑配)의 법을 시행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도승지 이호민(李好敏)과 함경 감사 이희갑(李羲甲)과 행 호군(行護軍) 정상우(鄭尙愚)를 모두 정경(正卿)에 승탁(陞擢)하고, 이조 참의 서유문(徐有聞)과 전 보덕(輔德) 김회연(金會淵)과 부호군(副護軍) 신현(申絢)·남이익(南履翼)과 우승지 김희주(金熙周)를 모두 아경(亞卿)에 승탁하소서. 산림(山林)의 기덕(耆德)032) 들이 이미 모두 죽고 현재 정초(旌招)033) 의 반열에 남아 있는 자는 단지 찬선(贊善) 송치규(宋稚圭)와 전 집의(執義) 송계간(宋啓榦) 두 사람뿐입니다. 각각 한 자급을 가자하여 예우하는 뜻을 보이시고, 이어 별도로 하유(下諭)를 내리시어 더욱더 돈독히 불러 서연(書筵)에 출입케 하여 예학(睿學)034) 을 돕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호조 판서 이상황(李相璜)이 아뢰기를,

"각 궁방(宮房)의 면세전(免稅田)으로 본조(本曹)에서 수송하는 일에 대해서는 기본 수량이 고정되어 있어서 당초부터 풍흉의 구별이 없었으니, 신은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이것은 혹 궁중과 부중(府中)이 한결같아야 하는 도리에 결함이 있다고 여깁니다. 위로 전세(田稅)의 정공(正供)035)급재(給災)036) 하는 규례가 있고, 아래로 각 관사(官司)의 공물과 외방으로 영읍(營邑)의 수미(需米)도 모두 감분(減分)하는 법규가 있는데, 유독 궁방의 세(稅)만은 재해를 당해도 감해 주지 않는 것은 일의 체면상으로 보더라도 결코 윤당(允當)하지 못합니다. 또한 이것은 원결(元結) 중에서 나누어 준 것인데, 원결을 이미 감급(減給)했으면 나누어 준 부분에 대해서도 감해 주어야 함이 이치상 당연한 것입니다. 이미 해마다 재실(災實)이 있으니, 일체로 원결의 급재한 수에 따라 각 궁방의 세납(稅納)에도 분배하여 급재 감량하여야만 비로소 공평한 정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매년 이렇게 한다면 궁방의 사세(事勢)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니, 우선 가장 가벼운 예를 따라서 다만 우재 감분(遇災減分)의 연분율(年分率)로 재감해 준다면 영읍(營邑)의 수미(需米)나 각사의 공물의 예에 비교하여 사의(事宜)에 합당할 듯합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대신에게 물어서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75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호구-이동(移動) / 구휼(救恤)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농업-전제(田制)

  • [註 027]
    좌도(左道) : 유교(儒敎)의 종지(宗旨)에 어긋나는 다른 종교.
  • [註 028]
    반유(泮儒) : 성균관(成均館)의 유생(儒生).
  • [註 029]
    명묘(明廟) : 명종(明宗).
  • [註 030]
    경조(京兆) : 한성부(漢城府).
  • [註 031]
    추조(秋曹) : 형조(刑曹).
  • [註 032]
    기덕(耆德) : 나이 많고 덕이 높은 사람.
  • [註 033]
    정초(旌招) : 옛날에 대부(大夫)를 정(旌)으로 초빙한다고 하였으니, 즉 폐백(幣帛)을 가지고 선비를 초빙한다는 말임.
  • [註 034]
    예학(睿學) : 왕세자의 학문.
  • [註 035]
    정공(正供) : 정당한 부담이라는 뜻으로, 부세(賦稅)·방물(方物)의 일컬음.
  • [註 036]
    급재(給災) : 재해(災害)를 입은 전지에 대하여 전세(田稅)를 면제하여 주던 일. 그 재상(災傷)의 정도에 따라 차등이 있었음.

○辛丑/次對。 領議政金載瓚啓言: "都下流丐中, 各邑流入者, 定差員領付原籍官, 京中原居者, 自賑廳計日給糧", 從之。 又啓言: "斥左道定民志, 卽治敎之先務, 我朝之家法也。 泮儒毆逐巫女於泮宮, 世宗至下〔予〕 疾欲愈之敎, 松都儒士毁松嶽淫祠, 明廟優批亟嘉之, 逮我先朝, 禁巫覡僧尼, 無得出入城內, 仍爲法府禁令。 近聞巫女比丘尼輩, 藏蹤出沒, 略無顧忌, 幻惑漸滋於城〔闉〕 , 祈賽殆遍於寺刹, 聽聞所及, 騷訛轉廣云, 此豈列聖朝斥左道定民志之盛德至敎哉? 令京兆秋曹, 謹遵先朝受敎, 窮加搜索, 竝卽逐送于城外, 俾無〔敢〕 接跡於近京之地。 如有冒禁藏匿之類, 請亟施刑配之典", 從之。 又啓言: "都承旨李好敏, 咸鏡監司李羲甲, 行護軍鄭尙愚竝正卿陞擢, 吏曹參議徐有聞, 前輔德金會淵, 副護軍申絢南履翼, 右承旨金熙周, 竝亞卿陞擢。 山林耆德, 已盡凋零, 方在旌招之列者, 惟贊善宋穉圭, 前執義宋啓榦二人。 各加一資, 以示禮遇之意, 仍降別諭, 益加敦召, 以爲出入書筵, 裨輔睿學。" 從之。 戶曹判書李相璜啓言: "各宮房免稅之自本曹輸送者, 硬定元數。 初無豐歉之別, 臣竊以爲此或有欠於宮府一體之義矣。 上而田稅正供, 有給災之規, 下而各司貢物, 外而營邑需米, 皆有減分之法, 而獨宮稅之遇災無減, 揆以事面, 終未允當。 且此乃元結中劃給者, 元結旣減, 則劃給者之隨以減省, 理勢卽然。 旣有每年災實, 一從元結給災之數, 分排災省於各宮稅納, 然後始可爲均齊之政。 而若逐年如是, 則宮房事勢, 亦不可不念, 姑從最輕之例, 只於遇災減分之年分數災減, 視營邑需米, 或各司貢物之例, 恐合事宜。" 上, 詢大臣從之。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75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호구-이동(移動) / 구휼(救恤)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농업-전제(田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