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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17권, 순조 13년 12월 3일 병신 1번째기사 1813년 청 가경(嘉慶) 18년

제주 목사 김수기가 중면 풍헌 양제해의 거병 모의에 대해 급히 장계하다

제주 목사 김수기(金守基)가 급히 계문하기를,

"양인(良人) 윤광종(尹光宗)의 진고(進告)한 내용에, ‘중면(中面)의 풍헌(風憲) 양제해(梁濟海)는 원래 간힐(奸詰)하고 음특(陰慝)한 자로 항상 분수를 넘어 흉악한 짓을 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다가, 서적(西賊)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무리를 모아 모반을 도모할 생각을 한 지가 오래였습니다. 마침내 앞장서서 떠들기를, 「근래에 와서 섬 백성들의 부역이 너무 무거워 편히 살 수가 없다. 그러니 무리를 모아 힘을 합쳐서 제주 영읍의 네 관원을 죽이고, 섬 전체를 내가 주장(主張)하여 섬의 배는 육지로 못나가게 하고 육지의 배가 오면 재물은 빼앗고 배는 엎어버려서 북쪽으로 통하는 길을 일체 막아버린다면 마땅히 후환이 없을 것이고, 영구히 안락을 보장할 수 있다.」 하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을 감언 이설로 어르고 위협하여 선동해서 김익강(金益剛)·고덕호(高德好)·강필방(姜必方) 등과 함께 속여서 불러 모아들이니 무리가 차츰 늘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빈틈없이 배포(排布)하고 역사(力士)를 모집하고 병기를 만들어서, 이달 16일 밤에 주성(州城)에 돌입하여 변란을 일으키되, 정의(旌義)대정(大靜)에서도 같은 날 거병(擧兵)하기로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으니, 너무도 듣기에 놀랍고 분하여 양제해와 그 무리들은 추적 체포하여 엄중히 문초한 결과 일일이 자백하였으므로 모조리 굳게 가두었으며, 양제해가 오라를 풀고 도망하므로 즉시 잡아서 다시 가두었습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그 장계를 비변사에 내려 품처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53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변란-민란(民亂)

○丙申/濟州牧使金守基馳啓: "言良人尹光宗進告內, ‘中面風憲梁濟海, 自來奸黠陰慝, 常懷犯分肆匈, 聞西賊猖獗, 思欲投入爲黨不軌之圖, 其來已久, 乃倡言曰, 「挽近以來, 島民賊役苦重, 無由奠安。 將欲聚徒, 合謀戕殺, 濟州營邑四官一島之內, 渠自主張, 使島船無得出陸, 陸船來則攫其財, 而覆其船, 一切與北路不通, 則當無後患, 永保安樂。」 以此誘說恐脅, 煽動愚氓, 與金益剛高德好姜必方等, 譸張嘯聚, 寔繁其徒。 密勿排布, 募力士而鑄兵器, 欲以今月十六日夜, 突入州城作變, 旌義大靜, 亦於伊日擧兵。’ 云, 聞極驚憤, 濟海及其徒黨, 跟捕嚴覈, 箇箇輸款, 一幷牢囚矣, 濟海脫繫逃躱, 旋卽捕捉還囚。" 云。 上, 下其狀于備局, 令稟處。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53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변란-민란(民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