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채·정우문·한광우 등을 국문하다
추국(推鞫)하여, 【좌의정 김재찬(金載瓚), 우의정 김사목(金思穆), 판의금 이집두(李集斗), 지의금 박종경(朴宗慶), 동의금 이당(李溏)·김상휴(金相休)이다.】 이진채(李振采)·정우문(鄭友文)·한광우(韓光友) 등을 국문하였다. 이때 서사(西師)는 아직 미처 개선하지 않았고, 임금의 환후는 바야흐로 정섭(靜攝) 중이었는데, 이달 13일 저녁 갑자기 감히 말할 수도 없고 차마 들을 수도 없는 말이 길거리에 전파되어 온 성안이 떨고 두려워하였으므로, 포도청에서 그 말의 근원을 정탐하여 이진채 등 세 사람을 잡았다. 대신(大臣)이 국청(鞫廳)을 설치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처음에는 윤허를 아꼈으나 마침내 허락하고, 좌의정 김재찬을 위관(委官)으로 삼아 다스렸는데, 4월 초에 이르러 국문을 마쳤다. 이진채는 사옹 봉사(司饔奉事) 박종일(朴鍾一)을, 박종일은 김연수(金延壽)와 이원박(李元樸) 및 매부인 전 정언(正言) 이영순(李永純)을, 이원박은 그의 생질인 전 교리(校理) 윤치후(尹致後)를, 윤치후는 박종일의 조카 박영철(朴永喆)을 끌어들었는데, 모두 핵실(覈實)하여, 박종일과 이진채는 대역 부도(大逆不道)로, 정우문과 한광우는 모역(謀逆)에 동참한 것으로, 윤치후와 김연수는 정상을 알고도 고하지 않은 것으로, 모두 주살(誅殺)하였다. 이원박은 윤치후에게 고변(告變)할 것을 권하였으니, 그 자취가 정실을 안 것과 다름이 있었으나, 예언설[讖緯說]을 문답하여 흉도들이 더 소란을 떠는 근본을 이루었으며, 이영순은 국정(鞫庭)에서 자세히 캐물어 조사한 데에 비록 진장(眞贓)은 없었으나 자신이 시종신(侍從臣)이 되어 무단히 시골로 내려갔고 길에서 윤치후를 만나 떠들썩하게 수작하였다 하여 모두 죽을 죄를 감하여 이원박은 거제부(巨濟府)에, 이영순은 진도군(珍島郡)의 절도(絶島)에 안치(安置)하게 하였다. 박영철은 박종일의 연좌로 시행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2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推鞫。 【左議政金載瓚, 右議政金思穆, 判義禁李集斗, 知義禁朴宗慶, 同義禁李溏ㆍ金相休。】 鞫李振采、鄭友文、韓光友等也。 時, 西師未及凱還, 上候方在靜攝, 而正月十三日夕, 忽有不敢道不忍聞之說, 傳播道路, 滿城震惶, 捕廳詷言根, 捉振采等三人。 大臣請設鞫, 上始靳終許, 以左議政金載瓚爲委官, 治之至四月初, 撤鞫。 振采引司饔奉事朴鍾一, 鍾一引金延壽ㆍ李元樸及其妹夫前正言李永純, 元樸引其甥姪前校理尹致後, 致後引鍾一之侄永喆, 幷覈之, 鍾一、振采, 以大逆不道, 友文、光友, 以謀逆同參, 致後ㆍ延壽以知情不告, 幷誅。 元樸勸致後告變, 跡異知情, 而讖緯問答, 轉成凶徒添騷之本, 永純鞫庭盤覈, 雖無眞〔贓〕 , 而身爲侍〔從〕 , 無端下鄕, 路逢致後, 酬酢騷屑, 幷減死, 元樸 巨濟府, 永純 珍島郡絶島安置。 永喆以鍾一收司施行。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2면
- 【분류】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