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지어 포교집에서 난동을 부린 무예 별감 안처의 등을 처벌하다
이보다 먼저 무예 통장(武藝統長)의 수본(手本)에 이르기를,
"별감 안처의(安處誼) 등이 며칠 전에 술에 만취하여 포교에게 체포당하였던 일을 가지고 무리를 거느리고 여러 포교(捕校)들의 집에 달려가 돌입하여 난동을 부렸습니다."
하였는데, 하교에,
"내가 왕위에 오른 이래로 항상 근습(近習)138) 을 부지런히 억눌러 왔는데, 저들 무리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하고, 형조에 영을 내려 수본 중의 무예 별감을 모두 잡아다 절도(絶島)에 형배(刑配)하도록 하였다. 또 조욱방(曺郁邦)·정덕순(鄭德淳) 등 10여 명의 상한(常漢)이 포장(捕將)을 꾸짖고 욕을 보였는데, 수범(手犯)인 종사관(從事官)에 대해서 대신(臺臣)이 일률(一律)139) 을 시행하도록 청하였으며, 형조의 구핵(究覈) 초기(草記)로 인하여 역시 섬에 귀양 보내도록 명하였다. 좌의정 김재찬(金載瓚)이 차자를 올렸는데, 대략 이르기를,
"곡산(谷山)의 옥사에 대하여 감률(勘律)하여 아뢰기를 겨우 마쳤습니다. 곡산과 동시에 발생했으나, 곡산 사건보다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무예 별감(武藝別監)의 변고입니다. 대궐에서 숙위(宿衛)하는 하례(下隷)로 붉은 옷을 입고 누른 두건을 쓰고서 합문(閤門)에서 방자하게 떠들어대며 감히 공소(控訴)한다고 일컬었고, 90명의 무리가 삼삼 오오 분대(分隊)하여 장신(將臣)을 면전에서 욕하며 위언(危言)하니 듣기에 또한 마음을 놀라게 합니다. 여사(閭舍)를 직접 철거하면서 독봉(毒鋒)을 휘둘러 혼[魄]을 빼앗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이미 심한 처분과 엄중한 감률(勘律)이 이른 뒤에 미쳐서도, 묵은 원한이 더욱 격발되고 남은 감정이 다시 불타올라 형법을 집행하는 관청에서 소란을 피우고 감금(監禁)하는 관아에서 치고 받고 싸웠습니다. 이는 서울의 대궐이 지척인 곳에서 눈앞에 국가의 위엄이 보이지 않아 엄명(嚴命)에 힘껏 대항한 것입니다. 당(唐)나라의 신책군(神策軍)140) 은 천하의 사나운 군졸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지난날의 역사를 공정히 상고하건대, 이와 같이 극도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임금의 수레를 끌면서 가까이서 호위하는 군졸에게는 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먼 곳에 있는 백성에게는 죄가 있을 경우 반드시 처벌한다면, 곡산에서 머리를 나란히 하는 주민들이 그 죄를 기꺼이 승복하면서 처벌을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당일(當日) 처분한 뒤에, 나쁜 일을 쌓으면서 계획을 꾸며 사주한 자에 대해서는 다시 더 엄중히 형신(刑訊)하여 끝까지 사실을 조사해 알아내어 기어이 수범(手犯)인 종사관에게 사형을 감하여 섬으로 귀양 보낸 자들을 아울러 일률(一律)로 시행하는 일을 결단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전일 무예 별감의 일은 참으로 한 세대에서 가장 큰 변괴였으나, 형신하는 즈음에 곤장을 쳐서 조사하는 것은 너무 무거운 것이다. 만약 형평에 맞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공정히 하겠는가? 1백 명에 가까운 친졸(親卒)들을 묶어서 형조에 구속하고 1천여 리나 먼 섬으로 이미 편배(編配)된 부류를 다시 문초한다면, 원근에서 소요(騷擾)하여 경색(景色)이 황당할 것이니, 더욱 여러 사람이 보는 입장이 어떠하겠는가? 때문에 참작해서 감률(勘律)하도록 명하였다. 지금부터 뒤로는 내가 경솔하고 갑작스럽게 처분한 것을 알았으니,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690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註 138]
○先是, 武藝統長手本以爲:
別監安處誼等, 以日前酗酒, 被捉於捕校事, 率黨奔往諸捕校家, 突入作挐。
敎以: "予自御極以來, 常勉抑近習, 渠輩焉敢生意?" 令刑曹, 幷捉手本中武藝別監, 刑配絶島。 又有曺郁邦、鄭德淳等十餘漢, 詬辱捕將, 手犯從事官, 臺臣請施一律, 因秋曹究覈草記, 亦命島配。 左議政金載瓚箚, 略曰:
谷山之獄, 纔已勘奏矣。 與谷山同時幷發, 而不啻更浮於谷山者, 卽武藝別監之變也。 以禁掖宿衛之隷, 衣紫戴黃, 閤門肆喧, 敢稱控訴, 九十其衆, 三五分隊, 面辱將臣而危言, 聞亦驚心。 手撤閭舍, 而毒鋒莫不褫魄。 及至己處分嚴勘之後, 宿怨益激, 餘焰更熾, 惹鬧於刑法之官, 敺格於監押之衙。 是京闕咫尺之地, 眼無國威, 力抗嚴命者也。 唐家之神策, 天下之悍卒, 而夷攷前史, 未或若是之極也。 輦轂之卒, 無法可施, 逖遠之氓, 有罪必勘, 則谷山駢首之民, 其肯服罪而就誅乎? 當日處分後, 更加稔惡之造謀指使者, 嚴訊窮覈, 期於斯得, 與手犯從事官之減死島配者, 幷施一律, 斷不可已。
批曰: "向日武藝事, 誠一世之變怪, 刑訊之際, 杖覈太重。 若不稱平, 將何公正? 近百數親卒, 縲之絏之, 繫於秋曹, 復招千餘里絶島己編配之類, 遠近騷擾, 景色荒唐者, 尤有觀瞻之如何? 故有命酌勘也。 而今而後, 予知處分之輕遽, 依施。"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690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