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순조실록 13권, 순조 10년 3월 7일 신유 1번째기사 1810년 청 가경(嘉慶) 15년

대사헌 김이도가 상소하여 새로 무예청에 군병 뽑는 일의 정지를 청하다

대사헌 김이도(金履度)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근래 여항(閭巷)에 전파된 말을 듣건대, 비록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새로 무예청(武藝廳)의 군병(軍兵)을 뽑아들이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비록 어떤 곳에다 소속시키고 명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이런 일이 있다면, 혹 숙위(宿衛)가 소홀한 것을 염려해서입니까, 아니면 미관상 좋게 꾸미기 위해서입니까? 삼가 북원(北苑)의 보좌(寶座)에 계실 때나 능원(陵園)에서 전배례(展拜禮)를 행할 때에 보니, 성대한 의위(儀衛)가 국전(國典)을 상고해 보아도 더하면 더했지 손색이 없었으니, 오늘 이런 일이 아마도 전하께서 먼저 할 일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흉년의 춘궁기를 당해 민생(民生)이 거꾸로 매달린 듯하고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깔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깊숙한 하전(廈氈)070) 에서는 먼 곳의 황급한 상황을 모조리 살피기가 쉽지 않으니, 바로 사방으로 들을 수 있는 길을 널리 열어야 하며 백성들의 근심을 깊이 염려하여야 합니다. 군신 상하가 날로 안정시킬 계책을 강구하되, 마치 젖은 손으로 불에서 구해 주면서 다른 일에 겨를이 없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또 병(兵)은 한갓 설치만 해 놓아서는 안되고 반드시 재화(財貨)에 의지해야 하는데, 재화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백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비록 부고(府庫)의 축적이 넘쳐서 여유가 있더라도 군사의 정원이 늘어나는 것을 옛사람이 근심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공사(公私)간에 바닥이 나 나라의 예산이 애처로운데 말할 게 있겠습니까? 한 톨의 미미한 쌀과 한 치의 짧은 베도 정말 보옥(寶玉)처럼 귀하게 여겨 망령되이 소비해서는 안됩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절약해서 쓰는 전하의 덕으로 혹 쓸데없는 비용을 제거하여 간약(簡約)하게 하지는 못하시더라도 또 어찌 무사(無事)한데도 비용을 늘리고 급하지 않은 일에 정신을 써 쓸데없는 곳에다 내탕고의 재물을 소모해야 되겠습니까? 누됨이 이미 크고 손해됨이 적지 않습니다. 이는 오히려 지엽적인 일이고, 신이 크게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임금의 일동 일정(一動一靜)과 일정 일령(一政一令)은 득실과 흠이나 아름다움을 막론하고, 그 광명(光明)이 일월(日月)처럼 밝은 것을 귀히 여겨 한 나라의 사람이 모두 우러러 보게 해야 하는데, 이 일은 그렇지 못합니다. 장상(將相)에게 자문하지 않았고, 연석(筵席)에서 편리의 여부를 강구하지 않았으며, 명령이 승정원을 거치지 않았고, 사교(辭敎)가 문자(文字)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여항에서는 알고 있으나 조정에서는 모르고, 하천(下賤)은 알고 있으나 사대부들은 모르며 매위(韎韋)071) 는 알고 있으나 진신(搢紳)072) 은 모르고 있으니,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일체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위아래가 서로 필요로 하는 데 있어서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조정 신하들을 이처럼 심하게 싫어하고 박하게 대할 줄은 뜻하지 못하였습니다. 전하의 마음은 반드시 ‘임금의 존엄으로는 때로 독단(獨斷)도 해야 하고, 구중의 깊은 곳이므로 말이 새어나갈 염려가 없다.’고 여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가 있다고 은고(殷誥)073) 에 귀감(龜鑑)으로 남아 있으며 옥루(屋漏)074) 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함은 주아(周雅)075) 에서 경계한 바인데, 이 일이 좋고 아름다운 일이라면 어찌 조정 신하들과 함께 하는 것을 아끼셨습니까? 이 일이 잘못되고 또 흠이 있다면 여염의 하천(下賤)과 매위들도 먼저 전하의 천심(淺深)을 엿볼 것이니, 더군다나 어느 겨를에 조정 신하들의 근심과 탄식을 염려하겠습니까? 군신(君臣)은 부자(夫子)와 같은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찌 숨길 만한 일이 있겠으며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일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비록 전하께서 전하의 하시는 일을 조정 신하들이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하시더라도 조정 신하가 된 의리로 어찌 감히 전하께서 소외시킨다 해서 전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스스로 숨김이 없어야 하는 정성을 가로막겠습니까? 신의 집안은 대대로 후한 국은(國恩)을 입어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정성이 다른 사람보다 뒤지지 않았으니, 늙은 백수(白首)로 죽는 일이 있더라도 참으로 소회(所懷)가 있으면 마땅히 다하지 않음이 없어야 합니다. 이제 풍문(風聞)으로 전해지고 길에서 들은 말을 주워 말씀드리면서 나무꾼의 하찮은 말이라도 반드시 택하는 아름다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신이 들은 바가 과연 모두 허망한 것이라면 망령된 말을 한 죄는 부월(鈇鉞)이라도 사양하지 않겠으나, 만에 하나라도 이에 비슷하다면 어찌 전하께서 척연(愓然)히 고쳐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聖明)께서는 빨리 군병(軍兵)의 정원을 늘리는 일을 중지하고 지금부터는 동정(動靜)과 정령(政令) 사이에 반드시 신중히 하고 엄하게 함으로써 뚜렷하고 명백하게 보이도록 하소서. 스스로 넓다 여기어 남을 좁게 여기지 마시며, 번거로움을 꺼려 일에 싫증을 내지 마시며, 자주 법연(法筵)에 나아가 경(經)의 뜻을 토론하시며, 항상 신하를 접견하시고 정사를 강구하시어 바라는 대로 다스리면, 사방이 바람에 쏠리듯 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이에 마음을 쓰시면 태평·만세의 즐거움이 어찌 금고(金鼓)·기휘(旗麾)를 꾸미어 이목(耳目)을 즐겁게 하는 데 그칠 뿐이겠습니까?"

하니, 비답하기를,

"액례를 뽑는 것은 지금 처음으로 한 일이 아니다. 옛날 선조(先朝)에서도 별기군(別技軍)에 무예 출신(武藝出身)이란 명목이 있었으나, 장영(壯營)의 혁파로 인하여 도태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를 따라서 행한 것은 이목을 빛내고 군위(軍威)를 장엄하게 하려는 뜻이 아니고 구제(舊制)를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경이 숨기지 않고 다 말하여 나로 하여금 허물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 또한 경의 충성이니, 참으로 조정에 바른 말로 극구 간하는 신하가 있어서 기쁘다. 어찌 한 부대의 군사를 아끼겠는가? 이정(釐正)하느라 자연 후원(後苑)의 감림(監臨)이 많게 되었으니, 경의 말 또한 합당한 것을 알겠다. 방금 무예 별기군을 더 선발하여, 모두 훈국(訓局)에 도로 넘기게 하였다. 비록 옥당(玉堂)과 양사(兩司)로 말하더라도 한 사람도 나를 위해 이처럼 과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모두 모름지기 알아두라. 경은 사직하지 말고 더욱 간쟁(諫爭)하는 책임을 다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53면
  • 【분류】
    정론(政論) / 신분(身分) / 군사-군정(軍政)

  • [註 070]
    하전(廈氈) : 궁궐.
  • [註 071]
    매위(韎韋) : 무관.
  • [註 072]
    진신(搢紳) : 문관.
  • [註 073]
    은고(殷誥) :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를 가리킴.
  • [註 074]
    옥루(屋漏) : 방(房)의 서북쪽 구석. 어두운 방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뜻.
  • [註 075]
    주아(周雅) :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을 가리킴.

○辛酉/大司憲金履度上疏, 略曰:

近聞閭巷播傳之說, 雖未必的確, 新有武藝廳軍兵抄入之擧云。 雖不知隷付之何所, 名色之何稱, 果有是乎, 則或慮宿衛之踈虞歟? 抑爲觀瞻之賁飾歟, 伏見北苑寶座之際、陵園禮展之時, 儀衛之盛, 考之國典, 有加無損, 則今日此擧, 恐非殿下之所先務也。 當此歲歉春窮, 民生倒懸, 僵殍載路。 廈氈深邃, 遐外遑急之狀, 未易盡燭, 正宜開廣四達之聽, 深軫兆庶之憂。 君臣上下, 日講奠安之策, 如濡手救焚, 莫遑他及也。 且兵不可以徒設, 必藉於財, 財不能以徒生, 必出於民。 雖使府庫之積, 充溢有餘, 兵額之增, 古人所憂。 況今公私匱竭, 國計哀痛? 一粒米之微、一寸布之短, 固將貴之如寶玉, 不可以妄捐。 以殿下愛民節用之德, 縱不能汰冗而就簡, 又豈可無事而廣費, 留精神於不急之務, 耗帑藏於無用之地? 爲累旣大, 所損不細。 此猶末耳, 臣之所大憂者。 人主之一動一靜、一政一令, 無論得失疪美, 貴其光明如日月, 使一國之人, 咸得以仰見, 而此擧則不然。 詢諮不及於將相, 便否不講於筵席, 命令不由於政院, 辭敎不出於文字。 閭巷知之而朝廷不知, 下賤知之而士夫不知, 韎韋知之而搢紳不知, 宮府一體, 尙矣無論, 上下相須, 寧容有是? 不意殿下之厭薄廷臣, 若是之甚也。 殿下之心, 必以爲 ‘人主之尊, 有時乎獨斷, 九重之深, 無慮乎宣泄。’ 然好問則裕, 殷誥著鑑, 不愧屋漏, 周雅垂戒, 此擧而得且美也, 何惜乎與廷臣共之也? 此擧而失且疪也, 閭巷下賤韎韋之屬, 亦足以先窺殿下之淺深, 況暇慮廷臣之隱憂竊歎也哉? 君臣猶父子, 父之於子, 豈有可諱之事, 子之於父, 豈有不知之理? 雖殿下不欲以殿下之所作, 不干於廷臣, 爲廷臣之義, 豈敢以殿下之踈外, 恝然於殿下, 而自阻其無諱之忱也? 臣家世厚蒙國恩, 愛君憂國之誠, 不後於人, 而老白首且死, 苟有所懷, 宜無不盡。 今掇拾風傳塗聽之說, 竊冀芻蕘必擇之休。 果使臣之所聞, 都是虛妄, 則妄言之罪, 鈇鉞不辭, 萬有一近似於此, 豈非殿下之惕然改圖者乎? 伏願聖明亟寢軍兵增額之擧, 繼自今動靜政令之間, 必愼必嚴, 磊落明白。 勿自廣以狹人, 勿憚煩以厭事, 頻御法筵, 討論經旨, 常接臣隣, 講究政事, 從欲之治, 四方風動。 殿下若留神於此, 太平萬世之樂, 豈止於金鼓、旗麾之賁飾, 耳目之娛而已哉。

批曰: "掖隷抄選, 非創始之事。 昔在先朝, 有別技軍武藝出身之名色, 而因壯營革罷而汰之。 故予遵此而行之者, 非耀耳目、壯軍威之義, 是復舊制也。 然卿能盡言無諱, 使予欲無過者, 亦卿之忠也, 誠喜朝廷有直言極諫之臣也, 有何惜一隊兵哉? 自然釐正, 多致後苑之監臨, 卿言亦知當也。 方令加選武藝別技軍, 幷還付訓局。 雖以玉堂兩司言之, 無一人爲予以此敢言者, 誠爲慨然。 幷須知之。 卿其勿辭, 益盡諫諍之責。"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53면
  • 【분류】
    정론(政論) / 신분(身分)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