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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13권, 순조 10년 1월 14일 기사 1번째기사 1810년 청 가경(嘉慶) 15년

대왜 회답 서계를 마련키로 하고 양서의 쌀을 양호 지방에 옮겨 환자에 보태게 하다

차대(次對)하였다. 우의정 김사목(金思穆)이 아뢰기를,

"호환 재판 차왜(護還裁判差倭)와 도해 역관(渡海譯官)이 동시에 나왔는데 체류의 기일이 곧 차게 되었으니, 회답의 서계(書契)를 마땅히 기한 전에 만들어 보내야 하겠습니다. 대개 통신사를 교환하자고 청한 지 이미 10년의 긴 세월이 경과하였는데 조정에서 지금까지 허락하지 않은 것은, 약조(約條)를 경솔히 고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강호(江戶)의 뜻이다.’라고 한 것을 확실히 믿을 만한 단서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갈수록 간절하고 거조(擧措)가 더욱 급해지자 한결같이 책망만 할 수 없기 때문에 도해(度海)할 사람을 차출해 정하여 그 허실을 살피고 그 정형(情形)을 살펴 오게 하였습니다. 과연 집정(執政) 및 도주(島主)와 자세하게 면담하고, 또 집정의 서신을 얻어가지고 돌아왔는데, 이는 강호에서 지휘한 것이지 반드시 대마 도주가 주장한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더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이런데도 굳게 거절하는 것도 성신(誠信)으로 어루만지는 도리가 아닙니다. 저들이 이미 폐단을 줄이자고 간청하고, 우리 역시 구애될 예수(禮數)013) 가 없으며, 이미 정실(情實)에 별다른 염려가 없음을 알았으니, 이제 또다시 한층 더 일을 만들어 인색하게 버틸 필요가 없습니다. 사리와 사세로 헤아려 보아도 통신사를 교환하자는 청이 마땅할 듯하기 때문에 문임(文任)으로 하여금 이런 내용으로 회답의 서계를 짓게 하여 즉시 재판 왜(裁判倭)가 떠날 기일 전에 전해 주게 해야겠습니다. 그 조약(條約)의 개정과 의절(儀節)의 강정(講定)에 대해서는 서계를 들여보낸 후에 역시 편리에 따라 품처해야 하는데, 좌상과 신 및 제재(諸宰)가 익숙히 상의하여 결론을 냈으나 병으로 연석에는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재판 왜가 돌아갈 기한이 점차 가까워졌으므로 지금 빨리 품정(稟定)해야지 지체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임금이 제재에게 물었다. 모두 다른 의론이 없자 그대로 따라 문임으로 하여금 회답 서계를 지어 대마도로 들여보내게 하였다. 김사목이 또 청하기를,

"관서(關西)의 쌀과 각종 곡식 6만 석을 호남(湖南)으로 이전(移轉)하고 해서(海西)의 쌀과 각종 곡식 4만 석을 호서(湖西)로 이전하여 환자(還子)에 보태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4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 [註 013]
    예수(禮數) : 명예와 지위에 상당한 예의. 격식.

○己巳/次對。 右議政金思穆啓言: "護還裁判差與渡海譯官, 同時出來, 許接將滿日限, 答書契, 當於限前修送矣。 蓋其信使易地之請, 已過十年之久, 而朝廷之至今不許, 非但約條之不可輕改, 其所謂 ‘江戶之意’ 云者, 終未有的確可信之端故也。 及其辭語, 轉益懇迫, 擧措轉益着急, 有不可一向責諭而已, 故乃有定送渡海之擧, 使之審其虛實, 察其情形而來矣。 果與執政及島主, 丁寧面譚, 又得執政信蹟而還, 此是江戶之指揮, 必非馬島之主張, 更無可疑。 如是而猶復牢拒, 亦非誠信撫綏之道。 彼旣以省弊爲懇, 我亦無禮數之或礙, 旣知情實之別無他慮, 今不必又作層節, 更事靳持。 揆以事理與事勢, 許其易地之請, 恐爲合宜, 故以此意, 令文任, 撰出答書契, 使卽傳給於裁判日限之前。 若其約條之改定、儀節之講定, 書契入送後, 亦爲隨便稟處, 而左相與臣及諸宰, 爛商停當, 病未登筵。 裁判日限漸近, 趁今稟定, 不容遲待, 故敢達矣。" 上詢諸宰, 俱無異議, 從之, 令文任, 撰出答書契, 入送馬島思穆又啓請: "關西米各穀六萬石, 移轉湖南, 海西米、各穀四萬石, 移轉湖西, 以爲添還。" 從之。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4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