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실록12권, 순조 9년 12월 15일 경자 4번째기사
1809년 청 가경(嘉慶) 14년
진하사 서장관 민치재가 올린 별단의 내용
진하사(進賀使) 서장관(書狀官) 민치재(閔致載)가 별단(別單)에 이르기를,
"양비(洋匪) 채견(蔡牽)이 금년 7월 사이에 대포(大砲)를 맞고 물에 떨어져 죽었는데, 그 여당(餘黨)들이 해양(海洋)에 출몰(出沒)하여 관군(官軍)이 추격하여 체포하다가 혹은 패몰(敗沒)된 자도 있습니다. 숙장(宿將) 덕능태(德楞泰)가 병사하자 황제가 특별히 은졸의 전례[隱卒之典]184) 를 내렸습니다. 광동 유격(廣東游擊) 손전모(孫全謀)는 누차 기이한 공을 세웠으므로 잇따라 장유(奬諭)를 받았습니다. 형비(邢匪)는 곧 백련교(白蓮敎)185) 의 여당(餘黨)인데 지금까지 강절(江浙) 사이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으므로 관병(官兵)이 추격하여 토벌하고 있는데 승패(勝敗)가 무상(無常)하다고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양상(洋商)들이 다투어 은자를 희사하여 군수(軍需)를 돕는데 그때마다 부(部)를 보내어 의논해서 서용(敍用)하기 때문에 이를 매관(賣官)이라고 일컫는다 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59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46면
- 【분류】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