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 대장 이요헌이 군제의 정비에 대해 아뢰다
어영 대장 이요헌(李堯憲)이 아뢰기를,
"일찍이 선조(先朝) 갑인년074) 에 화성(華城)의 성역(城役)에 대한 물력(物力)을 각처에 대하(貸下)하고 도로 보고하게 하였을 때 본청에서는 상번(上番)하는 5초(哨)의 향군(鄕軍) 가운데 초마다 각각 27명을 제외한 도합 1백 35명은 상번을 줄이고 그 신포(身布) 및 자장(資裝)·보전(保錢)을 거둠으로써 한 해에 얼마씩 나누어 헤아려 견감하는 것으로 삼았는데, 이제 이미 보고를 마쳤습니다. 이제 11월부터 시작해서 번을 회복하여 징립(徵立)해야 마땅하겠지만, 향군의 번상(番上)이 가장 백성과 고을의 고질적인 폐막(弊瘼)이 되고 있으니, 비록 약간 명은 번을 줄인다 하더라도 폐단을 더는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만약 옛날에 징상(徵上)하던 것을 회복시킨다면 15년 동안이나 제번(除番)에 편안하게 여겼던 나머지 그 폐단이 되는 바가 새로 시작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또 군액(軍額)으로 말하건대, 제번한 후 그 사이에 올라왔던 자들은 명색이 비록 5초이지만 4초의 군사에 지나지 않았고, 그 가운데 만약 병고(病故) 등의 잡탈(雜頉)이 있었으면, 각처의 입직(入直)과 행진(行陣)은 매번 대오(隊伍)가 갖추어지지 못한 폐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의 뜻은, 지금 제번한 자들은 전에 했던 그대로 제번하고, 지금의 향군 5초의 액수(額數)를 합쳐서 4초를 만들고, 서울에서 용감하고 건장한 사람을 모집하여 따로 1초를 만들어 5초의 제도를 갖추게 한다면, 백성과 고을에 있어서는 번을 회복하여 폐단이 늘어나는 탄식이 없을 것이고, 군제(軍制)에 있어서는 대오가 갖추어지지 못하는 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며, 혹 전체의 액수가 정번(停番)할 때를 당할 경우 1초의 군사를 항상 도성에 있게 한다면, 여러 가지 배번(排番)하는 도리가 거의 소홀하지 않아서 절제하고 단속하는 방도가 향군보다 나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또 서울의 표하(標下)의 제색군(諸色軍)은 옛날부터 액수가 적어서 매번 부족함을 근심하였는데, 50명을 한정해서 더 뽑고, 그 제번하고 거둔 포(布)로 새로 모집한 1초와 표하 50명의 요포(料布)를 견주어 헤아린다면, 접제(接濟)할 수용(需用)을 넉넉하게 분배(分排)할 수 있고, 또한 잉여도 있을 것이며, 5초의 제도에 손상됨이 없고 표하는 액수를 늘일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니, 양쪽을 다 편하게 하는 방도에 적합할 듯합니다. 청컨대 대신과 장신들에게 순문하여 조처하소서."
하였는데, 임금이 두루 순문하자 모두 매우 편리하다고 말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608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정(軍政)
- [註 074]선조(先朝) 갑인년 : 1794 정조 18년.
○御營大將李堯憲啓言: "曾於先朝甲寅, 以華城城役物力之各處貸下還報次, 本廳五哨鄕軍上番中, 每哨各除二十七名, 合一百三十五名減番, 收其身布及資裝保錢, 以爲排年計減者, 今己畢報。 自今十一月爲始, 當爲復番徵立, 而鄕軍番上, 最是民邑之痼瘼, 雖若干名之減番, 除弊不些。 今若復舊徵上, 則十五年安於除番之餘, 其所爲弊, 無異新創。 又以軍額言之, 除番後, 其間上來者, 名雖五哨, 以實數論之, 不過四哨之軍, 其中如有病故等雜頉, 則各處入直及行陣, 每有隊伍不備之弊。 臣意, 則今此除番者, 仍令依前除番, 以今鄕軍五哨之額, 合作四哨, 自京新募勇健, 別作中一哨, 以備五哨之制, 則在民邑, 無復番增弊之歎, 在軍制, 可免隊伍之不備, 而或値全數停番之時, 一哨之軍, 恒在都下, 諸般排番之道, 庶不踈虞, 節制團束之方, 有勝鄕軍。 且京標下諸色軍, 自來數少, 每患不足, 限五十名加出, 而以其除番收布, 較量其新募一哨及標下五十名料布, 則接濟之需, 優可分排, 亦有剩餘矣, 於五哨之制無損, 而標下有增額之效, 恐合兩便之道。 請詢大臣及諸將臣處之。" 上歷詢之, 皆言甚便, 從之。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608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