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도·심상규 등이 불교의 배척을 청하다
차대하였다. 우의정 김재찬(金載瓚)이 말하기를,
"이번에 차왜(差倭)가 나왔는데, 듣건대, 강호(江戶)에서 우리 나라가 허락하지 않는 것을 그르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니, 회유(回諭)하여 들여보낼 때에는 명분(名分)이 올바르고 말이 유순하게 문자(文字)를 만들어 내어서 동래 부사에게 내려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김재찬이 말하기를,
"신이 지난번에 탐욕을 징계하는 일로 우러러 진달(陳達)한 바가 있었는데, 어사를 가려서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사를 초계(抄啓)하는 일은 비국에서 별단(別單)으로 초계하여 들이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예조 판서 김이도(金履度)가 말하기를,
"좌도(左道)038) 가 사람을 극도로 괴란(壞亂)시켜 민심을 고혹(蠱惑)한 것은 예로부터 이미 그러하여 그 폐단이 마침내 사람과 국가에 화를 미치기에 이르므로, 그 방비는 반드시 맹수(猛獸)나 홍수(洪水)보다 엄중했었습니다. 대개 정학(正學)을 밝히면 좌도는 기필코 배척하지 않아도 저절로 물러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의 소장(消長)으로 세도(世道)의 쇠퇴와 융성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조정의 가법(家法)은 온전하게 유술(儒術)을 숭상하여 학문을 존중한 정치가 옛 성인의 것을 계승하였으므로 천고에 뛰어났었는데, 대저 우리 선대왕에 이르러서는 25년 동안 더욱 현저하게 밝혀서 승도(僧徒)가 도성에 출입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키고, 도성에 사는 무격(巫覡)을 아울러 내쫓게 하셨으므로, 비록 권선(勸善)039) 하는 첩장(牒狀)에 이르러서도 향촌(鄕村)의 사이에 드물게 행해졌으니, 대성인(大聖人)의 먼 훗날을 염려하고 작은 조짐이 있을 때 방지한 우모(訏謨)는 어찌 만세(萬世)에 마땅히 본받을 바가 아니며, 오늘날 마땅히 계술(繼述)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이번에 수개(修改)하는 일로 행차하였을 때 고을에서 전해지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신륵사(神勒寺) 안에 바야흐로 크게 불사(佛事)를 벌리고자 하여 수백 명의 중들이 먼 곳으로부터 와서 보시(普施)하는 일을 날짜를 지정하여 장차 행하려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상을 위해 복을 기원한다고 일컫는 까닭에, 모든 재력(財力)을 모두 궐내(闕內)에서 내려 주고 막중함을 빙자하고 있으므로, 폐단이 없지 않다고 합니다. 본디부터 전해지는 말이 실상에 지나치고 진실로 이것은 애초에 근저(根柢)가 없음을 알고 있는데, 이러한 말이 어디로부터 생겼겠습니까? 신은 결코 성상께서 반드시 이럴 리가 없음을 알고 있지만, 와전(訛傳)되기 쉬운 것은 길에서 얻어들은 이야기이고, 깨우치기 어려운 것은 민정(民情)이어서, 만일 팔방의 사람들이 진실로 모두 이것은 성상께서 석도(釋道)를 숭상하여 믿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여긴다면, 성덕(聖德)에 허물이 되는 것이 마땅히 다시 어떠하겠습니까? 감히 고칠 것이 있어도 권면함이 없다는 뜻으로써 우러러 진달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진실로 그 일을 알지 못하고 있다. 궐내에서 만약 혹시라도 이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듣는다면, 마땅히 금지하겠다."
하였다. 부제학 심상규(沈象奎)가 말하기를,
"신이 삼가 예조 판서가 아뢴 바를 듣건대, 말이 매우 절실하고 합당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유술(儒術)을 돈독하게 숭상하고 좌도(左道)를 엄중히 배척하는 것이 진실로 조종(祖宗)의 가법(家法)이었는데, 일찍이 선조조에서는 더욱 천명(闡明)하는 방도를 다하였으니, 우리 전하께서 계술(繼述)하시는 성대함에 있어 더욱 이단(異端)을 물리치는 데 엄중하게 하여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셔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판이 아뢰면서 또한 이 일은 우리 성상께서 아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지만, 무릇 기도(祈禱)에 관계된 법은 사람을 현혹시키기가 매우 쉬워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성명(聖明)의 세상에는 원래 이러한 상도(常道)에 어긋난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점차 빠져 들어 현혹된 마음을 깨우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혹 지식이 있는 선비라 하더라도 만약 유전되는 말을 듣는다면, 오히려 성조(聖朝)를 위해 탄식하여 애석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뜻은 예판이 아뢴 것을 조목을 들어 계하(啓下)하시되, 예판이 이미 종백(宗伯)의 직임에 있으니, 이 정도를 호위하고 사교(邪敎)를 배척하는 의리를 가지고 먼저 일의 조짐이 커지기 전에 미리 막는다는 뜻으로 팔방에 관문을 보내어 신칙(申飭)함으로써 우리 성상께서 정학(正學)을 숭상하여 이단을 물리치는 성덕을 보이심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옳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00면
- 【분류】왕실(王室)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외교-왜(倭) / 사법(司法)
○辛卯/次對。 右議政金載瓚曰: "今番差倭之出來, 聞江戶以我國之不許, 不以爲非云, 回諭入送, 名正言順, 構出文字, 下送萊府似好。" 上可之。 載瓚言: "臣向以懲貪事, 有所仰達, 擇送繡衣似好矣。" 上曰: "御史抄啓, 自備局別單抄啓以入, 可也。" 禮曹判書金履度言: "左道之壞亂人極, 蠱惑民心, 從古已然, 其弊終至於禍人家國, 故其防必嚴於猛獸、洪水。 蓋正學明, 則左道不期斥而自退, 以此消長, 可知世道汚隆。 而我朝家法, 全尙儒術, 右文之治, 聖繼神承, 逈越千古。 逮夫先大王二十五年之間, 尤益章明, 僧徒之出入城闉, 一切禁止, 巫覡之居在都下, 竝使屛出, 雖至勸善之牒, 稀行鄕村之間, 大聖人慮遠防微之謨, 豈非萬世之所當法、今日之所當繼述者乎? 臣於今番修改之行, 得聞邑中所傳, 則神勒寺中, 方欲大張佛事, 屢百群僧, 自遠而至, 普施之擧, 指日將行。 稱以爲聖上祈福, 凡百財力, 皆是內下, 憑藉莫重, 不無弊端云。 固知傳說之過實, 苟是初無根柢, 此言何從生也? 臣決知聖上之必無此理, 但易訛者塗說, 難曉者民情, 萬一八方之人, 眞皆以此, 爲出於聖上崇信釋道之心, 則其爲累於聖德, 當復如何哉? 敢以有改無勉之意, 仰達矣。" 上曰: "予則實未知其事。 自內如或聞有此事, 則當爲禁止矣。" 副提學沈象奎曰: "臣伏聞禮判所奏, 言甚切當矣。 我國之敦尙儒術, 嚴斥左道, 實是祖宗家法, 而曾在先朝, 益盡闡明之方, 以我殿下繼述之盛, 尤宜嚴於闢異, 而不可少忽者也。 禮判之奏, 亦以爲此事非我聖上之所知。 而凡係祈禱之法, 惑人甚易, 愚夫愚婦, 不識聖明之世, 元無此等不經之事, 而駸駸然不可曉惑。 雖或有知識之士, 若聞流傳之說, 則尙不無爲聖朝慨惜之心矣。 臣意則禮判所奏, 以擧條啓下, 而禮判旣在宗伯之任, 將此衛正斥邪之義, 先以防微杜漸之意, 關飭於八方, 以示我聖上崇正學、闢異端之德宜矣。" 可之。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00면
- 【분류】왕실(王室)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외교-왜(倭)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