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주 태수 습유 평의공의 서계
동래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치계(馳啓)하기를,
"왜인의 대선(大船)이 나왔기로 실정을 물어 보았더니, ‘지난번에 회답한 서계(書契)034) 를 강호(江戶)에 받들어 바쳤더니, 말하기를, 「과연 글 뜻과 같다면 조선에서 허락하지 않는 것은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근래에 일본에서 한재(旱災)와 황해(蝗害)가 잇달아 닥치고 또 화재(火災)가 있었는데, 만약 상례로 통빙(通聘)하려 한다면, 절대 그 길이 없을 것이다. 전자에는 연빙사(延聘使)·의빙사(議聘使)를 출송(出送)한다는 뜻으로 처지를 바꾸어 통신(通信)하는 뜻을 삼고자 하였었으니, 피차 폐단을 줄이는 계책을 지금 중간에서 속임을 당하였다 하여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이러한 뜻으로 한번 다시 청하여 기필코 허락받을 수 있도록 하라.」 하였으므로, 이에 감히 나왔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서계는 물리쳐 받지 않고 등서(謄書)하여 올려 보냅니다."
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일본국 대마주 태수(對馬州太守) 습유(拾遺) 평의공(平義功)은 조선국 예조 참판 대인(大人) 합하(閤下)께 글을 받들어 올립니다. 중춘(仲春)이 점차 따뜻해지고 있는데, 삼가 생각건대, 문후(文候)가 다복(多福)하십니까? 우러러보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뢸 것은 빙례(聘禮)의 처지를 바꾸는 한 가지 조항에 관한 일로서, 지난해 이래로 여러 번 상의(商議)했던 것은 진실로 동무(東武)의 뜻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요컨대 교린(交隣)을 통한 지 오래 될수록 교린의 정의(情誼)가 더욱 돈독해지기를 바라는 본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귀국(貴國)에서도 또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빙례(聘禮)를 닦는 사자(使者)가 바다를 건넌 이후 계절이 여러 번 바뀌도록 지체하여 이에 이르렀을 것인데, 바야흐로 지금의 시상(時狀)을 살펴보건대, 변변치 못한 제가 진실로 조정에 있어서 어떤 명을 받아야 할는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 때문에 침식(寢食)이 불안하고 황송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날마다 윤락(允諾)의 통보를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대개 폐주(弊州)에서는 귀국으로부터 수백 년 동안 정성스러운 정의와 양찰(亮察)을 받았었는데, 지금 이처럼 위급하고도 어려운 정세를 당하여, 더욱이 기사년035) 봄에 폐주의 양례(襄禮)036) 를 마친 일에 대해 회답하셨던 것처럼 속히 전해서 알려 주실 것을 기대하였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양국의 통교(通交)는 더욱 오래 갈 것이고 변변치 못한 저 또한 다름없이 봉직(奉職)할 수 있었을 것이니, 마음속에 간직한 은혜를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인하여 정관(正官) 평공승(平功勝)을 차견(差遣)하여 오로지 이러한 뜻을 알리오니, 살펴보시고 받아들이시기를 매우 바랍니다. 변변치 못한 토의(土宜)037) 를 작은 정성으로 부치오니, 웃으며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공경히 예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문화(文化) 5년 무진(戊辰) 2월 일."
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600면
- 【분류】외교-왜(倭)
- [註 034]서계(書契) : 주로 일본과의 교린 관계(交隣關係)에 대한 문서를 말하는데, 일본 사행(使行)의 임무 내용, 사절(使節)과 상왜(商倭)의 구별, 왜구(倭寇) 여부의 식별 등 다양한 역할을 했음. 이의 발신인은 우리 나라의 경우 국왕을 비롯하여 예조 판서·참판·참의 와 동래 부사 등이 막부 장군(幕府將軍)·대마 도주·거추(巨酋) 등에게 보내는 것으로 대별되고, 일본의 경우는 막부 장군 등 국가에서 보내 오는 공신(公信)으로서의 서계와 거추 등이 보내 오는 사신(私信)으로서의 서계로 대별됨.
- [註 035]
○東萊府使吳翰源馳啓以爲:
倭大船出來問情, 則〔曰〕 , ‘向者回答書契, 奉納江戶, 則以爲, 「果若書意, 朝鮮之靳許宜然。 而近來日本, 旱蝗荐臻, 又有火災, 如例通聘, 萬無其路。 前者延聘、議聘使出送之意, 欲爲易地通信, 彼此省弊之計, 則今不可以中間見欺置之。 必以此意, 一番更請, 期得蒙許。」 玆敢出來" 云。 故書契退却不捧, 謄書上送云。
日本國 對馬州太守拾遺平義功, 奉書朝鮮國禮曹參判大人閤下, 仲春漸暄, 伏惟文候多福? 瞻系殊切。 陳者騁禮易地一款, 往歲以來, 屢及商議, 固出東武之旨, 要之, 欲通文彌久, 隣誼彌敦之本意也。 然乃貴國, 亦有事情, 不獲已修騁使者, 超海已後, 炎涼數遷, 延滯至此, 就惟方今時狀, 不侫實在朝廷, 殆不知蒙何等命也, 是以寢食不安, 惶悚罔措。 惟日俟允諾之報是切矣。 蓋弊州, 於貴國也, 承數百年懇誼亮察, 今此急難情, 況庶幾己巳之春, 就于弊州竣襄禮事之回簡, 速見投示。 然則兩國之通交彌久, 不佞亦奉職無他矣, 其含覆之恩, 何以云諭? 因差正官平功勝, 耑布此意, 萬望鑑納。 不腆土宜, 微忱聊寓, 辴存是祈。 肅此不備。 文化五年戊辰二月日。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600면
- 【분류】외교-왜(倭)
- [註 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