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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10권, 순조 7년 8월 22일 신묘 2번째기사 1807년 청 가경(嘉慶) 12년

좌의정 이시수가 왕장을 시원스럽게 거행할 것을 청하는 차자의 내용

좌의정 이시수(李時秀)가 차자를 올려 말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건도(乾道)가 더욱 밝아지고 천토(天討)가 엄숙히 행해져 흉적의 소굴을 시원히 쓸어버리고 사방에 널리 고하게 되었으니, 여분(輿憤)을 지식시킬 수 있고 민지(民志)를 하나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신의 구구한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능히 국세(國勢)를 위하고 세도(世道)를 위해 아직도 남은 근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아! 저 여러 역적들은 모두 잠영 세족(簪纓世族)으로서 벼슬과 지위가 융성하고 혁혁한 데 많이 이르렀으며, 도당(徒黨)들은 불어나 포열(布列)하고 있어, 위세와 권세가 내리누르는 바와 기염(氣焰)이 몰아대는 바에 사람을 그르치고 사람을 함닉(陷溺)시킨 것이 수십 년이란 오랜 세월이었습니다. 인정(人情)은 오래되면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편안히 여기는 것인데, 이제 다행하게도 원악(元惡)이 환히 드러나매 성토(聲討)가 크게 행해져 옛날 오랫동안 오류에 빠져 있던 자들과 함닉에 익숙했던 자들이 깨닫고 뉘우쳐, 한적(漢賊)의 구분을 환히 알아 함께 대동(大同)의 영역에 이르는 것을 바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 원위(源委)를 거슬러 올라가 논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근인(根因)을 벽파(劈破)하여 온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여러 역적들이 역적이 된 까닭을 알게 한 뒤에야 국세가 실로 공고해질 수 있을 것이며, 세도가 실로 안정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청컨대 성명(聖明)을 위해 통렬하게 진달하고자 합니다. 대개 이 여러 역적들이 소굴로 삼고 부리로 삼은 것은 김귀주·김한록 바로 그들입니다. 그리고 김귀주·김한록김귀주·김한록이 된 바는 곧 그들 무리가 가장 존신(尊信)하여 귀숙처(歸宿處)로 삼은 자가 한 꿰미로 내통하고 치밀하게 꾸며 창론(倡論)하고 영호(營護)한 데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그 무리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따르며 죽기를 작정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호법(護法)·전신(傳神)하면서 가면 갈수록 더욱더 흉악해졌던 것입니다. 그 가장 존신하여 귀숙처로 삼은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김종수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김귀주·김한록에게 빌붙는 자를 김종수는 극력 취허(吹噓)했고, 김귀주·김한록을 공토(攻討)하는 자를 김종수는 제마음대로 제함(擠陷)했으니, 그의 평생 정적(情迹)은 사람들의 이목을 더럽혔을 뿐만이 아닙니다. 생각하건대, 그의 흉악 교활하고 궤휼(詭譎)함은 세상을 속이는 데 공교하고 하늘을 기만하는 데 과감하여, 들어가 고하고 나와 양언(揚言)함에 있어 번번이 양면의 설화를 만들었으며, 기틀을 감추고 복선을 깔아 암암리에 삼환(三煥)103) 의 뱃속과 연결되었습니다. 거짓 사류(士流)를 일컬어 왕망(王莽)의 교식(矯飾)104) 하던 행실을 본받았으나, 절로 공론(公論)이 있어 곡영(谷永)의 당부(黨附)105) 한 자취를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가 이번에 역변(逆變)이 드러나기에 미쳐 맥락과 계제(階梯)가 직접 김종수에게 닿았습니다. 저 역적 이경신(李敬臣) 부자는 먼 시골 구석의 미천한 무리이니, 김귀주이니 김한록이니 하는 것을 그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전적으로 김종수가 끌어들이고 추켜 세우며 거두어 들여 문도(門徒)를 삼고서 교유(敎誘)하자, 전습(傳襲)하여 눈으로 보고 귀에 젖은 데서 말미암은 것이니, 이른바 선입견이요, 익히 들은 것인 것입니다. 이 공초(供招)가 한번 나오자 진짜 속셈이 죄다 드러나게 되었으니, 김종수가 어떻게 《춘추(春秋)》의 수악(首惡)의 주벌(誅罰)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김종수가 선조(先朝)의 장용(奬用)을 특별히 입은 것은 처음의 추향(趨向)이 홍인한(洪麟漢)·정후겸(鄭厚謙) 등 여러 역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련시키고 불식(拂拭)하여 지위가 삼사(三事)에 이르렀으며, 여러 차례 죽을 죄를 범하였어도 시종 일관 너그러이 용납했던 것이니, 은혜는 지극히 우악했고 덕은 지극히 두터웠습니다. 그런데 김종수의 평생을 자세히 관찰하건대, 어찌 일찍이 반푼이나마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역적 김귀주를 성명(性命)처럼 비호하고 역적 김귀주와 더불어 서로 화응(和應)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병신년106) 이후 일동 일정은 오로지 홍국영이 턱으로 지시하는 것을 따랐는데, 역적 홍국영이 쫓겨남에 미쳐서는 이에 이름이 정초(旌招)107) 에 있는 그의 형에게 부탁해 글을 올려 머물러 있도록 청하게 하였습니다. 역적 홍국영의 하늘까지 뒤덮은 죄는 온 세상이 이를 갈고 있었으니, 그 또한 사람인데 비록 능히 먼저 칼끝에 바싹 다가드는 것을 일삼지는 않을지라도 이미 쫓겨난 뒤에 머물러 있도록 하려 했으니,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을 참지 못하겠습니까? 더욱 마음을 썩히고 뼛속까지 아프게 하는 것은 김종수가 평생 동안 핑계삼은 것이 곧 ‘의리(義理)’라는 두 글자란 것입니다. 우리 선조(先朝)의 24년 동안 수십 가지의 대의(大義) 중에 그 첫째가 되는 것은 곧 병신년 즉위하시던 날의 윤음(綸音)입니다. 성학(聖學)이 탁월하시어 정미(精微)한 것을 통찰하시고 우러러 황조(皇祖)의 유의(遺意)를 준수하시어, 이에 초원(初元)의 탄유(誕諭)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대성인(大聖人)의 근본을 둘로 할 수 없는 대경 대법(大經大法)으로, 천고의 명군(明君)·철벽(哲辟)에게 있지 않던 바였으니, 무릇 그 옛날 신하이며 백성들이 누군들 감격하고 흠앙(欽仰)하며 금석(金石)처럼 받들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괴귀(怪鬼)한 의논이 있으면, 선조의 명성(明聖)으로써 절로 엄하게 물리치고 통렬하게 처분하였던 것이 윤음(綸音) 가운데의 사교(辭敎)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김종수의 무리처럼 일종의 흉추(凶醜)한 자들이 공공연히 형체도 그림자도 없는 일을 가지고 은연중에 지극히 음험하고 비밀스런 계책을 꾸며 창언(倡言)하고 터무니없이 공갈하여 마치 그들만이 홀로 이 의리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했던 것인지요? 문자와 언어를 늘어놓고 문호(門戶)와 도당(徒黨)을 배포하며 작위(爵位)와 세리(勢利)를 농락하되, 모두 이것을 가지고 하늘을 기만하고 하늘을 탐하는 기량과 사람을 무함(誣陷)하고 사람을 함닉(陷溺)하는 자루로 삼았습니다만, 어찌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전례(典禮)’ 두 글자를 마음에 싹틔우고 입에 올렸겠습니까? 필경에 성의(聖意)로 전례를 행하고자 하시자 신 등은 마땅히 봉승(奉承)하고자 했습니다만, 패설(悖說)이 심법(心法)을 적통으로 전해 받은 심환지(沈煥之)의 연주(筵奏)에서 나와 감히 그 무리들의 뱃속으로 성인의 뜻을 탐지하려고 하였으니, 그 마음이 나온 바는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논하건대, 이 무리들이 과연 의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알았겠습니까? 그 죄는 진실로 이미 주벌(誅罰)에도 용납될 수가 없습니다. 또 우리 선조(先朝)의 애통(哀痛) 측달(惻怛)하신 성의(聖意)야말로 어찌 윤성(倫性)을 다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욱 성인(聖人)에게 물어보아도 의심이 없고 백대(百代)를 기다려도 의혹이 없는 것은, 곧 저궁(儲宮)에 계실 때 세초(洗草)108) 했던 일기(日記)에 대한 상소와 임자년109) 재거(齋居)하셨을 때의 연교(筵敎)와 갑인년110) 재거하셨을 때의 윤음입니다. 성의는 대개 일이 아무 해에 속하는 것에 있어서 차마 말하지도 못하셨고 감히 말하지도 못하셨으며, 문녀(文女)111)김상로(金尙魯)를 처분하는 전교에 이르러서도 금등(金縢)112) 의 연교(筵敎)를 내 보이셨으니, 또한 양조(兩朝)의 자효(慈孝)를 천명(闡明)하시려는 성의였던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그 시종 일관 공손하고 간절한 하교는 한마디로 말해 ‘차마 하지도 못하고 감히 하지도 못하는 것’이었으니, 이것은 실로 어진 사람과 효자가 책을 덮고 눈물을 부릴 곳입니다. 진실로 사람의 마음이 있는 자라면 단지 마땅히 성의를 깊이 유념하고 성교를 삼가 준수하여, 차마 말하지도 못하고 감히 말하지도 못할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무리들은 도대체 무슨 심장으로 이에 도리어 예덕(睿德)을 무함하고 성효(聖孝)를 손상시키는 흉악한 말을 하고 흉악한 계책을 꾸몄던 것입니까? 심지어 김달순(金達淳)은 연전에 패리한 아룀으로 전석(前席)에서 극력 항거하면서 스스로 근거 없는 사설(邪說)을 지어내어, 겉으로는 근심하고 한탄하는 궤이(詭異)한 태도를 지으면서 반드시 세초 가운데의 말이 널리 전파한 뒤에야 그만두려 하였으니, 그 속에 감춘 흉려(凶戾)함과 경영한 음비(陰秘)함은 완연히 김종수의 남은 투식이자 김한록(金漢祿)의 환신(幻身)이었습니다. 만약 이 일이 선조의 때에 있었더라면 반드시 마땅히 소스라치게 놀라고 통탄하시어 ‘차마 말하지도 못하는 것이고 감히 하지도 못하는 것이라’ 하여, 혹시라도 천양(闡揚)하는 방도와 엄토(嚴討)하는 도리에 소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개 김귀주·김한록 두 역적의 헤아릴 수 없이 부도(不道)한 흉언의 지류이자 여예(餘裔)인 것인데, 앞에서는 홍양해(洪量海)·심혁(沈𨩌)이, 뒤에서는 권유(權裕)·한해옥(韓海玉)이 비록 머리를 바꾸고 낯을 갈았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한 꿰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시험삼아 생각해 보소서. 김귀주·김한록 두 역적의 흉언은, 그 마음의 소재처가 과연 선왕의 전정(殿庭)에 북면(北面)하려 한 것이었겠습니까? 국가가 오늘이 있게 된 것을 과연 이 무리들이 즐거워한 바이겠습니까? 정순 성모(貞純聖母)의 두 성인(聖人)을 도와 보호하신 큰 공과 거룩한 덕이 과연 이 무리들이 기뻐하는 것이었겠습니까? 그렇다면 두 역적은 단지 세 조정의 극적(極賊)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불궤(不軌)의 계획과 지극히 흉악한 뜻은 실로 조선(朝鮮)의 종사(宗社)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뒤 여러 역적들이 또 따라서 차례로 이어받아 역적 이경신(李敬臣)의 흉언에 이르러서는 천리(天理)가 소멸되고 민이(民彛)가 무너졌습니다. 이 무리들은 진실로 이른바 옛날에 없던 역적이며, 우리 동방의 신자(臣子)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어 백세가 지나도 반드시 보복하고자 하는 원수인 것입니다. 일찍 미혹되어 그르쳐진 무리로 하여금 김귀주·김한록이 이처럼 김귀주·김한록이 된 까닭과 김종수가 이처럼 김종수가 되었던 까닭을 알게 하였더라면, 그 끼친 독과 남은 화(禍)가 반드시 이런 극도의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비록 왕장(王章)을 시원하게 거행하여 뭇 흉적(凶賊)들이 모두 복주(伏誅)되었다 할지라도 예전에 물들었던 버릇을 만약 크게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어찌 다른 날의 화가 또 오늘날 여러 흉적들의 김귀주·김한록에 대한 관계와 같음이 없을지 알겠습니까? 성왕(聖王)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공평 무사하여 서리와 눈이 숙살(肅殺)113) 하고 봄볕이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듯이, 미혹한 자는 깨우치고 완고한 자는 선도하여 모두 조화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이제야말로 바로 국세(國勢)를 공고히 하고 세도(世道)를 안정시키는 일대 기회입니다. 지금의 급선무는 또한 이것에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더할 수 없이 엄한 것이 의리이다. 한번이라도 혹시 의리를 간범(干犯)하는 자도 오히려 ‘극역(極逆)’이라 하거늘, 하물며 천지 만고에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극역대대(極逆大憝)이겠는가? 아! 오늘날 여러 역적들의 죄를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처지는 말하자면 척완(戚畹)이었으나, 그 속에 감춘 것은 흉심(凶心)이었다. 국본(國本)을 위태롭게 하려는 계책을 생각하자니 뼛속까지 놀랄 지경이고, 막중한 곳을 욕하고 속인 정상을 말하자니 머리털이 쭈뼛 선다. 그 근본은 전적으로 국가를 원수처럼 보고 의리를 의란(疑亂)시키는 데 있어, 소굴도 김귀주·김한록이요 부리도 김귀주·김한록이었으니, 세 가지 대죄(大罪)의 단안(斷案)이 이미 이루어졌고, 여덟 글자를 말한 흉심(凶心)이 더욱 환히 드러났다. 역적 김한록이 아니었더라면 역적 김귀주의 흉악한 계책을 도울 수가 없었을 것이고, 김귀주가 아니었다면 김한록의 역장(逆腸)을 창도(倡導)할 수 없었을 것이니, 참으로 이른바 하나이자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김종수이경신에 이르러서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연결되고 혈맥이 유통되어, 선조(先朝)의 망극한 은혜를 받은 김종수가 도리어 마음 달갑게 비호하고서 교무(矯誣)한 정상이 저와 같았고, 먼 땅에 있는 천한 역적 이경신 또한 몸을 앞장서 전습(傳襲)하면서 흉악 패리한 말이 이와 같았으니, 김귀주·김한록은 속이고 김종수는 겉이며, 김종수는 부리이고 역적 이경신은 가지였다.

통탄스럽다. 한번 바뀌고 재차 바뀌었으되 모두 전신이자 후신이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오랜 햇수 동안 은밀하게 잠복해 있던 원악(元惡)이 환히 드러나고 추악한 부류와 난역(亂逆)의 정상이 가릴 수 없게 되어, 위로는 공경 대부(公卿大夫)에서부터 아래로는 여대(輿儓)·복례(僕隷)에 이르기까지 분노해 하지 아니함이 없어 말하기를, ‘죽여야 한다.’라고 하니, 이것으로 보건대, 온 나라의 공공(公共)의 의론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니다. 실로 우리 선왕의 의리를 천명하고 우리 선왕의 의리를 환히 보인 것이니, 이에 김귀주·김한록의 무리가 삼조(三朝)를 범한 극역(極逆)이자 만세의 죄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어찌 단지 세도를 안정시킨다고만 말할 것인가? 그렇다면 역적의 변고가 극도에 이르렀고 민이(民彛)가 무너졌으니, 아무리 소굴이 소탕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미혹한 자를 이해시키기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아무리 중외(中外)에 포고(布告)했다 할지라도 환히 깨우쳐 벽파(劈破)시키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또 전후로 여러 신하들이 글로 상소로 목소리를 같이하여 성토한 것이 어찌 한두 번에 그쳤겠는가마는, 나는 충분히 통쾌한 구체적인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제 경의 차자가 이른 것을 보고서는 나도 몰래 벌떡 일어났다. 무엇 때문인가? 흉적(凶賊)이 유래한 바를 진달하되 그 시종에 대해 점차 밝게 풀이했고, 뭇 추악한 무리들이 악의 근본이 되었음을 말하되 수미(首尾)에 대해 더 엄하였다. 핵심을 벽파해 내어 갈수록 더욱 상세하고 더욱 깊은지라, 정태(情態)가 완전히 노출되어 달아나기 어렵고 벗어나기 어려웠으니, 비록 여러 역적들로 하여금 오늘 물어보게 해도 아무말도 못하고 취복(取服)할 것이다.

천고의 흉적(凶賊)을 판연히 분변하고 한세상의 시비를 크게 정하였으니, 아름답도다! 경의 차자여. 절실하도다! 경의 말이여. 자자 구구마다 나라를 향한 간절한 충성이 더욱 절실하고, 구구 절절마다 때를 근심하는 성실한 뜻이 더욱 드러났다. 나 소자(小子)가 경의 충성을 알았는데 전부터 어찌 잊었으리오마는, 이번의 토역(討逆)에 이르고 또 국가가 어려움을 당하여 선조(先朝)께서 병집(秉執)하셨던 의리를 지키고 선조의 정미(精微)했던 의리를 밝혀, 목욕한 뒤 토죄하고 혈성(血誠)을 토로해 청하여, 청한 것을 허락받고야 말려 했으니, 전후로 찾아보아도 경처럼 나라에 충성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은 실로 드물게 있는 바이다. 나는 또 경에게 말할 것이 있다. 저 미혹한 자들은 실로 모두 우리 열성(列聖)이 화육(化育)하신 은택을 입고, 우리 선왕의 도주(陶鑄)하신 교화에 견발(甄拔)되어 또한 모두 오늘 북면(北面)하고 있으니, 비록 지극히 미혹되고 지극히 어리석다 하나 어찌 당연한 도리를 알지 못하겠으며, 또한 더할 수 없이 엄한 의리를 깨닫지 못하겠는가?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군자는 마음을 고치고 소인은 얼굴을 고친다.’ 하였다. 만약 전에 미혹한 자로 하여금 뒤에 듣는 자들을 깨닫게 하여 모두 함께 동인 협공(同寅協恭)해 능히 정백(精白)한 한마음을 갖게 하고, 대도(大道)에 함께 이르러 능히 천년을 함께 누리게 된다면, 더욱 생도 살인(生道殺人)114) 의 본뜻이 될 것이니, 미혹됨을 깨우치고 어둠을 밝히는 것이 오늘날의 당무(當務)가 될 것이며, 환하도록 크게 변화시키는 것 또한 안정시키는 한 가지 도리에 관계될 것이다. 그런즉 경의 차자는 오로지 대의(大義)를 밝히고 세도를 안정시키는 일대 기회가 되는 것을 나는 헛되지 않다고 말하노라. 내가 경의 차자의 말을 본 이후로 감탄을 견딜 수 없어 비지(批旨)가 장황해짐을 꺼리지 않고, 경을 위해 두루 말하고 조목조목 늘어놓는 것이니, 경은 여러 벼슬아치들과 함께 더 대양(對揚)의 아름다움을 다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586면
  • 【분류】
    정론(政論) / 변란(變亂) / 사법(司法) / 왕실(王室)

  • [註 103]
    삼환(三煥) : 심환지(沈煥之)·정일환(鄭日煥)·송환억(宋煥億).
  • [註 104]
    왕망(王莽)의 교식(矯飾) :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 왕씨(王氏)들이 권세를 차지해 교만하게 굴었으나, 왕망(王莽)만은 절조를 지키고 공손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학문에 부지런하고 뛰어난 인재들과 교유한 것을 말함. 즉 뒷날 권세를 장악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행동을 말하는 것임.
  • [註 105]
    곡영(谷永)의 당부(黨附) : 곡영은 한나라 성제 때 사람. 왕씨(王氏)의 당(黨)으로서 왕씨들에게 빌붙어 벼슬을 하였음.
  • [註 106]
    병신년 : 1776 정조 즉위년.
  • [註 107]
    정초(旌招) : 대부(大夫)를 정당한 예(禮)로 초빙하는 것. 《맹자(孟子)》 만장장구(萬章章句)에 "대부는 새 깃을 깃대 끝에 단 기[旌]로 부른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유명(儒名)을 띠고 있음을 뜻함.
  • [註 108]
    세초(洗草) : 존치(存置)할 가치가 없는 문서를 없애버림. 실록 따위의 편찬을 마치고 그 원고의 폐기, 또는 정세 변동이나 기휘(忌諱)·저촉(抵觸)에 의하여 보관할 필요가 없는 문서의 폐기 등을 이르는 말.
  • [註 109]
    임자년 : 1792 정조 16년.
  • [註 110]
    갑인년 : 1794 정조 18년.
  • [註 111]
    문녀(文女) : 숙의(淑儀)문씨(文氏).
  • [註 112]
    금등(金縢) :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토평하고 이태 만에 편찮았는데, 주공(周公)이 제단을 만들고 그 조상인 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에게 고하여 자신이 무왕의 목숨을 대신하기를 빌고 돌아와 그 축책(祝冊)을 금등의 궤 안에 담아 두었는데, 삼숙(三叔:管叔·蔡叔·霍叔)의 유언(流言)이 있자, 동도(東都) 낙음(洛邑)에 2년 동안 있다가 유언한 죄인을 알아내고서 시(詩)를 지어 성왕(成王)에게 보내니, 성왕이 대부(大夫)들과 함께 금등의 글을 내어 보고 주공의 마음을 알고는 주공을 돌아오게 하고, 몸소 교외에 나가 맞이하였음.
  • [註 113]
    숙살(肅殺) : 가을 기운이 초목을 말라 죽게 함.
  • [註 114]
    생도 살인(生道殺人) : 《맹자(孟子)》 진심장구(盡心章句)의 "살리는 방도로써 백성을 죽이면, 비록 죽더라도 그 죽이는 자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 데에서 인용한 말.

○左議政李時秀箚曰:

伏以乾道孔昭, 天討肅將, 夬掃凶窩, 誕告多方, 輿憤可以洩矣, 民志可以壹矣。 顧臣區區之愚, 不能不爲國勢爲世道, 尙有餘憂。 噫! 彼諸逆, 俱以簪纓世族, 官位多至隆赫, 徒黨寔繁布列, 威權所壓, 氣焰所驅, 詿誤人陷溺人者, 數十年之久。 人情久則狃, 狃則安, 今幸元惡昭著, 聲討大行, 昔之久於詿誤, 狃於陷溺者, 庶望其開悟懲艾, 怳然於賊之分, 偕底於大同之域。 然亦不可不溯論源委, 劈破根因, 使一世之人, 益知諸賊之所以爲逆, 然後國勢實可鞏矣, 世道實可靖矣。 臣請爲聖明痛陳之。 蓋此諸賊之爲窩爲根, 祿是已。 祿之所以爲祿, 卽因渠輩之最尊信, 爲歸宿者, 貫通綢繆, 倡論營護。 故渠輩翕然從之, 抵死不變, 護法傳神, 愈出愈凶。 問其最尊信爲歸宿者, 則鍾秀是已。 附麗祿者, 鍾秀極力吹噓之, 攻討祿者, 鍾秀惟意擠陷之, 卽其平生情迹, 不啻塗人耳目。 而惟其凶狡譎詭, 工於欺世, 敢於瞞天, 入告出揚, 輒作兩面之說話, 藏機伏線, 暗連三之腸肚。 假稱土流, 縱效王莽矯飾之行, 自有公論, 莫掩谷永黨附之跡, 及至今番逆變出, 而脈絡階梯, 直接於鍾秀。 彼賊父子, 遐陬鄙微之類耳, 曰祿, 渠何以知之? 專由於鍾秀之引納奬詡, 收爲門徒, 敎誘而傳襲, 目見而耳染者, 卽其所謂先入而慣聞也。 此供一出, 眞贓畢露, 鍾秀安得免《春秋》首惡之誅乎? 鍾秀之特被先朝所奬用者, 以其初頭趨向之異於諸賊也。 陶鎔拂拭, 位至三事, 屢犯死罪, 終始涵容, 恩至渥也, 德至厚也。 細觀鍾秀平生, 何嘗有一半分圖報之心之事乎? 不過護賊如性命, 與賊相和應而已。 丙申以後, 一動一靜, 惟國榮頤指, 及夫賊斥黜, 則乃囑名在旌招之其兄, 上章請留。 賊滔天之罪, 與世切齒, 渠亦人耳, 雖不能先事攖鋒, 欲留於旣黜之後,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尤有所腐心而痛骨者, 鍾秀一生所藉弄, 卽義理二字。 而我先朝二十四年, 數十大義, 其一卽丙申卽阼日綸音也。 聖學卓越, 洞見精微, 仰遵皇祖遺意, 爰有初元誕諭。 此誠大聖人不貳本之大經大法, 千古明君哲辟之所未有。 凡逮事昔年之若臣若民, 孰不感激欽仰, 奉如金石? 萬一有怪鬼之論, 則以先朝之明聖, 自當嚴斥痛處, 如綸音中辭敎矣。 夫何一種凶醜如鍾秀輩, 公然以無形影之事, 隱然爲至陰秘之計, 倡言虛喝, 有若渠獨知此箇義理者然? 文字言語之鋪張門戶, 徒黨之排布爵位, 勢利之籠絡, 皆以此爲欺天貪天之伎倆, 誣人陷人之欛柄, 而何嘗有一人以典禮二字, 萌諸心發諸口者乎? 畢竟聖意, 欲行典禮, 則臣等當奉承之, 悖說出於其嫡傳心法之煥之之筵奏, 敢以渠輩之腹, 探伺聖人之旨, 其心所出, 不忍正視。 執此論之, 此輩果知義理之爲何事耶? 其罪固已不容誅矣。 又若我先朝哀痛惻怛之聖意, 何莫非盡倫盡性? 而尤其質聖人而無疑, 俟百世而不惑者, 卽在儲時洗草日記之疏、壬子齋居筵敎、甲寅齋居綸音也。 聖意蓋在事屬某年, 不忍言不敢道, 而至於文女尙魯處分傳敎, 出示《金縢》筵敎, 亦所以闡明兩朝慈孝之聖意也。 惟其終始勤懃懇懇之敎, 一言以蔽之曰, ‘不忍不敢’, 此實仁人孝子廢卷流涕處。 苟有人心者, 只當深體聖意, 恪遵聖敎, 不忍言不敢道而已。 此輩抑何心腸, 乃反爲誣睿德傷聖孝之凶言凶圖? 甚至達淳, 年前悖奏, 前席力抗, 自做無根之邪說, 陽作憂歎之詭態, 必欲宣播洗草中語而後已, 其包藏之凶戾, 經營之陰秘, 宛然鍾秀之餘套, 漢祿之幻身。 若使此事在於先朝之時, 必當震惕驚痛, 不以 ‘不忍不敢’, 而或忽於闡揚之方, 嚴討之道也。 此蓋祿兩賊罔測不道凶言之支流餘裔, 而前而𨩌, 後而, 雖其改頭換面, 實則一串貫來。 殿下試思之。 祿兩賊之凶言, 其心所在, 果欲北面於先王之庭乎? 國家得有今日, 果此輩之所樂乎? 貞純聖母翊護兩聖之大功盛德, 果此輩之所悅乎? 然則兩賊不但爲三朝之劇逆, 其不軌之圖, 窮凶之意, 實不在於朝鮮宗社也。 其後諸賊, 又從而次第紹述之, 至於賊之凶言, 而天理滅矣, 民彝斁矣。 此輩眞所謂振古所無之逆, 而我東臣子不共戴天百世必報之讎也。 早使迷誤之徒, 洞知祿之所以爲祿者如此, 鍾秀之所以爲鍾秀者如此, 則其流毒餘禍, 必不至於此極也。 今雖王章夬擧, 群凶畢誅, 而舊染之俗, 若未丕變, 則安知無異日之禍, 又如今日諸凶之於祿乎? 聖王御世, 法天無私, 霜雪以肅殺之, 春陽以煦噓之, 牖迷導頑, 咸歸造化, 此正鞏國勢、靖世道之一大機會。 而今之急先務, 亦莫過於此也。

批曰: "莫嚴者, 義理也。 一或干犯於義理者, 猶曰 ‘極逆’, 況窮天地亘萬古所未聞所未覩之極逆大憝哉? 嗚呼! 今日諸賊之罪, 尙忍言哉? 其地處則戚畹也, 其包藏則凶心也。 圖危國本之計, 思之骨驚, 詬誣莫重之狀, 言之髮竪。 其本專在於讎視國家, 亂我義理, 窩窟則祿也, 根柢則祿也, 三大罪之斷案已成, 八字言之凶心益彰。 非祿賊, 則無以助賊之凶圖, 非龜柱, 則無以倡漢祿之逆腸, 眞所謂一而二, 二而一也。 至於鍾秀敬臣, 首尾相連, 血脈流通, 以受先朝罔極之恩之鍾秀, 反甘心營護, 而矯誣之狀如彼, 以在遐土蟣蝨之賤之賊, 亦挺身傳襲, 而凶悖之言如此, 祿裏也, 鍾秀表也, 鍾秀根也, 賊枝也。 痛矣! 一轉而再轉, 皆是前身而後身, 何幸積年隱伏之元惡昭著, 醜類亂逆之情狀莫掩, 上自公、卿、大夫, 下至輿儓、僕隷, 莫不憤惋曰 ‘可殺’, 由此觀之, 可知擧國公共之論。 此無他, 實闡明我先王之義理, 昭示我先王之義理, 則於是乎祿輩, 犯三朝之劇逆也, 爲萬世之罪人也, 是豈可曰只靖世道而已哉? 然則賊變之極, 民彝之斁, 雖曰巢穴之掃蕩, 猶有迷者之難曉, 雖曰布告於中外, 難得洞然而劈破。 且前後諸臣之以章以疏, 齊聲致討, 豈止一、二, 而予未聞十分洞快實際語也。 今見卿箚之至, 不覺蹶然而起, 何也? 陳凶賊所由來者, 漸明釋於始終, 言群醜爲惡之本, 益嚴於首尾。 肯綮劈來, 愈詳而愈深, 情態盡出, 難逃而難脫, 雖使諸賊輩, 質於今日, 無辭取服。 判分千古之凶賊, 大定一世之是非, 旨哉卿箚! 切哉卿言! 字字句句, 向國眷眷之忠益切, 言言節節, 憂時懇懇之辭益顯。 予小子知卿之忠, 從前豈忘, 而至於今番之討逆, 且遭國家之艱難, 守先朝秉執之義, 明先朝精微之義, 沐浴而討, 沫血而請, 得請而後已, 求之前後, 卿之忠國愛君之誠, 實所罕有。 予又有所言於卿者。 彼迷者, 實咸被我列聖化育之澤, 甄拔於我先王陶鑄之化, 亦皆北面於今日, 則雖至迷至愚, 豈不知當然底道理乎, 亦不覺莫嚴之義理乎? 《易》曰, ‘君子革心, 小人革面’。 若使前之迷者, 覺悟後之聞者, 咸悉同寅協恭, 能精白而一心, 大道偕至, 能同享其千秋, 尤爲生道殺人之本意, 則牖迷燭昏, 正爲今日之當務, 丕變於熙, 亦係底安之一道理。 則卿箚之專爲明大義而靖世道之大機會者, 予言不虛也。 予自見箚語之後, 不勝感歎, 不憚批旨之張大, 爲卿歷言而條陳, 卿其同厥庶位, 益殫對揚之休。"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586면
  • 【분류】
    정론(政論) / 변란(變亂) / 사법(司法)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