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가 합사로 김달순의 처단·심환지의 관작 추탈·김관주의 삭직을 청하다
삼사(三司) 【대사헌 조윤대(曹允大), 사간 민기현(閔耆顯), 집의 이기경(李基慶), 장령 이경삼(李敬參)·임업(任㸁), 헌납 윤치정(尹致鼎), 교리 윤노동(尹魯東)·조진화(趙晉和), 정언 박종신(朴宗臣), 수찬 이유명(李惟命), 부수찬 안정선(安廷善)이다.】 에서 합사(合辭)하기를,
"아! 통분스럽습니다. 김달순의 죄는 가히 이루 다 주벌(誅罰)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우리 선대왕(先大王)께서는 상성(上聖)의 자품을 타고나시어 효도가 신명(神明)에 달통되었으므로 그 25년 동안 지켜온 의리가 매우 엄정하였고 매우 정미(精微)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년(某年)의 일에 관계된 문자(文字)를 영묘(英廟)께 앙청(仰請)하여 일체 모두 세초(洗草)하여 세간(世間)에 남겨두지 않는 것으로 권도(權道)를 통하여 경도(經道)에 합치시키는 방도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차마 제기하지 못하고 감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을 한마디로 포괄(包括)하는 대지(大旨)로 삼았으며, 이를 일세(一世)에 환히 게시(揭示)하였고 뒷세상에 전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 김달순은 감히 두 사람을 포증(褒贈)하자는 일을 방자하게 전석(前席)에서 앙청하였고 나중에는 천양(闡揚)시킨다는 말을 핑계하여 오직 멋대로 능멸하고 핍박하였습니다. 아! 선왕의 앞에서 차마 못하던 것을 전하 앞에서는 차마 하였으니, 신총(宸聰)109) 을 속일 수 있고 일세(一世)를 통제하여 말을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미 세초한 원본(原本)을 어디서 찾아다가 방자하게 올릴 수 있단 말입니까? 무릇 성정(聖情)이 놀라 두려워하고 옥음(玉音)이 슬픈 오열에 젖어 누차 신자(臣子)로서 감히 받들어 들을 수 없다는 하유를 내리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방자하게도 흉악하고 사나운 행동을 하여 기필코 각승(角勝)하려 했으니, 군강(君綱)과 신분(臣分)이 여기에 이르러 멸절(滅絶)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감히 또 흉소(凶疏)를 갑자기 올려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과 간언(諫言)을 숨긴 근저(根柢)라는 등의 말을 마음대로 붓에 적셔 억제하는 계교를 부리고 기꺼이 무핍(誣逼)하려는 획책을 세웠으니, 이는 또 전에 듣지 못하던 대부도(大不道)요 대변괴(大變怪)입니다. 이는 전하의 역신(逆臣)일 뿐만이 아니라 곧 선조(先朝)의 역신인 것이며 선조의 역신일 뿐만이 아니라 곧 우리 영묘(英廟)와 선세자(先世子)110) 의 역신인 것입니다. 이런데도 즉시 전형(典刑)을 밝히지 않는다면 삼강(三綱)이 민멸되고 구법(九法)111) 이 무너지게 될 것이니, 사람이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겠으며 나라가 어떻게 나라답게 되겠습니까?
대저 김달순이 지금의 김달순으로 된 것은 또한 하루 아침 하루 저녁에 발생한 일이 아닌 것으로 그 와굴(窩窟)과 근저(根柢)는 대개 또한 근본이 있는 것입니다. 아! 저 심환지(沈煥之)는 타고난 성품이 사특하여 행사(行事)가 음험하고 패려스러웠는데, 척완(戚畹)의 성세(聲勢)를 빙자하여 위복(威福)을 멋대로 자행하였고 막중한 의리를 핑계하여 집안을 위한 계책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선조(先朝)의 망극한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차마 선왕께서 선향(仙鄕)으로 멀리 떠나가시던 날에 우리 선왕의 은혜를 저버리고 우리 선왕의 의리와 배치(背馳)한 채 국세가 철류(綴旒)112) 처럼 위태로운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자신의 사욕(私慾)만을 은밀히 이룰 계교만 품고 있을 뿐입니다. 역적 권유(權裕)의 상소에 이르러서는 실로 천지 사이에 전에 없었던 변괴인 것인데도 이에 도리어 노신(老臣)이요 충애(忠愛)라느니 나라를 위한 깊은 우려라느니 하는 등의 말로 앞장서서 나아와 앙주(仰奏)하면서 온갖 말을 다하여 칭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감죄(勘罪)를 청한 것이 문비(問備)에 그쳤으며 드디어 극악한 역적으로 하여금 기세를 돋구게 하였고 흉도(凶徒)들로 하여금 멋대로 떠들게 만들어 한 구(句)의 음참(陰慘)스런 시(詩)와 삼간(三揀)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조금도 돌보아 꺼리는 것이 없이 다반사(茶飯事)로 창화(唱和)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전하의 조정에서’라는 무엄하고도 망측한 말을 아뢴 데 이르러서는 이것이 얼마나 흉악한 이야기입니까? 선왕(先王)의 조정에서는 감히 할 수 없고 차마 못하던 것을 이에 감히 전하의 앞에서는 차마 하고 감히 할 수 있다고 여겼으니, 천하에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김달순이 오늘날 아뢰게 된 것은 곧 심환지가 뒤에서 막아 주었기 때문인 것이요, 심환지가 지난날 한 말은 곧 김달순이 곧 앞에서 제보해 준 것입니다. 따라서 김달순이 받은 죄율(罪律)을 심환지에게 시행하지 않고 장차 어디에다 시행하겠습니까?
김관주(金觀柱)에 이르러서는 용렬하고 어리석어 인류(人類)에도 끼일 수가 없는 사람인데, 척리(戚里)의 기세를 빙자하여 스스로 추류(醜類)들이 연수(淵藪)를 만들었습니다. 흉악하고 패리(悖理)한 계모(計謀)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없고 간역(奸逆)들과 속마음이 서로 화응(和應)되어 심지어는 강연(講筵)에서 아뢰게 되었는데, 그의 역절(逆節)이 남김없이 환히 드러났습니다. 아! 우리 선대왕의 성대한 덕과 지극한 교화는 하늘이 덮어 감싸 주는 것과 같아서 온 동토(東土)의 생명을 지닌 무리들은 도(道)와 의(義)를 준행하여 황극(皇極)으로 모이는[會極] 교화속에 들어서 다함께 탕평(蕩平)한 지경에 이르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감히 수십년 동안 군흉(群凶)들이 조정을 탁란시켜 온 이야기를 멋대로 발론하여 우리 선조(先朝)의 청명(淸明)한 정치를 무함하였으니, 이 한 가지 조항만으로도 만 번 죽여도 오히려 가벼운 형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게 한 것은 이미 바로 실형(失刑)인 것입니다.
홍이유(洪履猷)의 패통(悖通)의 주장한 것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그에게 하찮은 작은 일에 속하는 것인데, 우리 성상(聖上)께서 친정(親政)하시는 처음에 갑자기 물러가기를 청한 것은 그것이 무슨 의도입니까? 한해옥(韓海玉)의 흉서(凶書)에서는 서로 결탁한 진장(眞贓)을 숨길 수 없게 되었고 역적 권유(權裕)의 옥정(獄情)에서는 불분명하게 회석시킨 증거가 상세히 구비되어 있으니, 이런 죄범을 지고 어떻게 삼척률(三尺律)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서형수(徐瀅修)·이노춘(李魯春)에 이르러서는 곧 김달순의 창귀(倀鬼)113) 입니다. 그들이 진 죄범을 논하면 김달순에 못지 않으니, 양관(兩觀)의 주참(誅斬)114) 을 어떻게 조금인들 늦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와굴(窩窟)이 삼흉(三凶)에게 있기 때문에 먼저 삼흉의 죄를 성토하여 한번의 유음(兪音)이 내리기를 바라고 있으니, 바라건대 속히 분명한 명을 내리소서.
신지도(薪智島)에 있는 가극(加棘) 죄인 김달순은 형률(刑律)에 의거하여 처단하고, 고(故) 영의정 심환지(沈煥之)는 관작을 추탈(追奪)하고, 판부사 김관주(金觀柱)는 관작을 삭탈시킨 다음 문외(門外)로 출송(黜送)시키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세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전계(前啓)가 있어 왔으므로 윤허하려 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번거로운 거조를 한단 말인가? 속히 이런 거조를 중지하고 전계(前啓)에 의거하여 한다면 마땅히 상량(商量)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540면
- 【분류】정론(政論) / 왕실(王室)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註 109]신총(宸聰) : 임금의 총명.
- [註 110]
선세자(先世子) : 장헌 세자(莊獻世子).- [註 111]
구법(九法) : 홍범 구주(供範九疇).- [註 112]
철류(綴旒) : 잡아맨 기(旗)의 술.- [註 113]
창귀(倀鬼) : 범의 앞장을 서서 먹을 것을 찾아 준다는 못된 귀신.- [註 114]
양관(兩觀)의 주참(誅斬) : 다스려지게 하기 위해서는 성인(聖人)도 간인(奸人)은 죽였다는 뜻. 《한서(漢書)》 초원왕전(楚元王傳)에 "공자가 양관에서 베었다." 하였고, 그 주에 "소정묘(小正卯)는 간인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공자가 사구(司寇)의 직을 섭행(攝行)한 지 7일에 그를 양관 아래에서 베었다." 하였으며, 안사고(安師古)는 "양관이란 궁궐을 말한다." 하였다. 여기서는 간신의 주벌을 뜻함.○三司 【大司憲曺允大, 大司諫閔耆顯, 執義李基慶, 掌令李敬參、任㸁, 獻納尹致鼎, 校理尹魯東、趙晋和, 正言朴宗臣, 修撰李惟命, 副修撰安廷善。】 合辭: "噫嘻痛矣! 達淳之罪, 可勝誅哉? 恭惟我先大王姿挺上聖, 孝通神明, 其於二十五年秉執之義理, 極嚴正而盡精微。 凡係某年文字, 仰請于英廟, 一幷洗草, 不留間世以爲達權合經之道。 而乃以不忍提不敢道, 爲蔽一言之大旨, 昭揭一世, 垂示來許。 惟彼達淳敢以兩人褒贈事, 肆然仰請於前席, 末乃假托闡揚, 惟意淩逼。 嗚呼! 不忍於先王之前, 而忍於殿下, 謂宸聰可以欺蔽, 謂一世可以箝制。 已洗草本, 何處覓來, 而肆然投進? 及夫聖情震惕, 玉音悽咽, 屢降臣子不敢承聞之諭, 而益肆凶悍, 必欲角勝, 君綱臣分, 到此滅絶矣。 敢又闖呈凶疏, 至以不得不言諱諫根柢等語, 肆意泚筆, 欲售抑勒之計, 甘作誣逼之圖, 此又前所未聞之大不道、大變怪。 非但殿下之逆臣, 卽先朝之逆臣, 非但先朝之逆臣, 卽我英廟曁先世子之逆臣也。 此而不卽明正典刑, 則三綱淪, 而九法斁, 人何以爲人, 國何以爲國? 夫達淳之所以爲達淳, 亦非一朝一夕之故, 其窩窟根柢, 蓋亦有本。 噫! 彼沈煥之賦性奰慝, 行事陰戾, 憑藉戚畹之聲勢, 恣行威福, 假托莫重之義理, 把作家計。 渠以先朝受恩罔極之人, 忍於仙鄕寖邈之日, 辜負我先王, 背馳我先王, 罔念國勢之綴旒, 惟懷己私之陰濟。 至若裕賊凶疏, 實是天地間無前之變, 而乃反以老臣忠愛, 爲國深慮等語, 挺身仰奏, 極口稱詡。 所謂請勘, 止於問備, 遂使劇賊增氣, 凶徒肆口, 一句陰慘之詩, 三揀不爲之說, 茶飯唱和, 略無顧忌。 至於 ‘降在以下’ 無嚴罔測之奏, 是何等凶說也? 不敢不忍於先王之時, 而乃以爲忍敢於殿下之前者, 天下寧有是耶? 達淳今日之奏, 卽煥之之後殿也, 煥之前日之說, 卽達淳之前芧也。 達淳所被之律, 不施於煥之, 而將焉施之哉? 至於金觀柱, 闒茸癡蠢, 不足齒諸人類, 而藉賣戚里之氣焰, 自作醜類之淵藪。 凶謀悖計, 無不參涉, 奸肚逆腸, 互相和應, 甚至講筵所奏, 而渠之逆節, 彰露無餘矣。 嗚呼! 我先大王盛德至化, 如天覆燾, 環東土含生之倫, 莫不咸囿於會極之化, 偕底於平蕩之域。 而渠敢以數十年群凶濁亂之說, 恣意發口, 誣我先朝淸明之治, 卽此一款, 萬戮猶輕。 至今假息, 已是失刑。 至於履猷悖通之主張, 在渠猶屬薄物細故, 而我聖上親政之初, 忽地請退, 抑何意也? 海玉凶書, 則綢繆之眞贓莫掩, 裕賊獄情, 則漫漶之明證具在, 負此罪犯, 焉逭三尺之律乎? 至若徐瀅修、李魯春, 卽是達淳之倀鬼也。 論其負犯, 不下於達淳, 兩觀之誅, 寧容少緩? 而特以窩窟之在於三凶, 故先討三凶之罪, 仰冀一兪之音, 伏願亟降明命。 薪智島加棘罪人達淳, 依律處斷, 故領議政沈煥之, 追奪官爵, 判府事金觀柱, 削奪官爵, 門外黜送。" 批曰: "三人事, 自有前啓, 欲允從, 則何煩此擧乎? 亟止此擧, 以前啓爲之, 則當有商量矣。"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540면
- 【분류】정론(政論) / 왕실(王室)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註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