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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8권, 순조 6년 3월 6일 갑인 3번째기사 1806년 청 가경(嘉慶) 11년

삼사에서 고 심환지의 관작을 추탈하고 김관주를 삭출시킬 것을 합계하다

삼사(三司) 【대사간 이조원(李肇源), 사간 김효진(金孝眞), 헌납 홍의응(洪義膺), 정언 홍시부(洪時溥)·민치재(閔致載), 장령 박효성(朴孝成)·이해청(李海淸), 지평 심후진(沈厚鎭)·홍면섭(洪冕燮), 부교리 이기경(李基慶), 수찬 이유명(李惟命)이다.】 에서 합계(合啓)하기를,

"아! 통분스럽습니다. 심환지(沈煥之)의 죄는 이루 다 주벌(誅罰)하겠습니까? 타고난 성품이 본래 간특하여 행사(行事)가 음흉하고 패려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척완(戚畹)097) 의 집안에서 발신(發身)하여 외람되게도 경상(卿相)의 반열에 올라 권세(權勢)를 탐하는 것을 가계(家計)로 삼았으며 인물(人物)을 해치는 것을 능사(能事)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성세(聲勢)를 널리 확장하고 위복(威福)을 멋대로 행하였기 때문에 상사(賞賜)나 처형(處刑)이 그의 희노(喜怒)에서 판결이 나고 죽이고 살리는 것이 그의 토흡(吐吸)에서 변하여졌으므로 온 세상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곁눈질하였습니다. 그 중에 노비(奴婢)처럼 굽실거리면서 온갖 교태를 부려가며 아첨하는 자는 자기에게 빌붙는 것을 기쁘게 여겨 감싸서 추천하고 발탁하기를 미처 못할 듯이 서둘렀고, 혹 개연(介然)히 지조가 있어 조금이라도 자기의 신념을 견지하는 자는 자신과 의견을 달리한다고 여겨 물리치고 무함하기에 있는 힘을 다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온 나라 사람들 가운데 이(利)를 즐기고 의(義)를 모르며 염치를 망각하여 변화를 부리는 것이 귀역(鬼蜮)과 같고 비루하고 잗달기는 거간꾼의 부류와 같이 하여 기어들어가 그에게 귀의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므로 어지러이 형불(珩芾)098) 이 달려나와 성대하게 흉도들의 소굴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쌓인 위세(威勢)에 눌려 식견이 있는 이들이 말을 하지 못하였어도 공분(公憤)이 있는 곳에 지사(志士)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분개하였으나 두려움에 기가 죽어 감히 누가 뭐라고 하지 못했으며, 서로 마주 대하여서는 손을 휘두르면서 까딱하다가는 멸족(滅族)의 화를 당한다고 경계하여 온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아! 경신년099) 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변이 있었으니, 이것이 어떠한 때입니까? 그는 망극한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이 원상(院相)이 되었으니, 진실로 조금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어떻게 차마 흉악한 마음을 부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리하여 이에 감히 이런 때를 이용할 수 있다고 여겨 흉장(凶腸)을 더욱 멋대로 부렸고 온 세상을 협박할 수 있다고 여겨 교활한 수단이 갈수록 능숙하여 졌으며, 사당(私黨)을 갑자기 발탁하여 조아(爪牙)의 세력을 심었고 추류(醜類)들을 널리 끌어들여 이목(耳目) 노릇을 하도록 은밀히 배포하여 놓았으므로 하찮은 인아(姻婭)의 무리들도 흉악한 기염(氣焰)을 부렸고 보잘것없는 말단의 무리들도 남은 찌꺼기를 핥아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정(朝廷)이 좀먹어 무너지고 세도(世道)가 혼란스러워져 점점 어떻게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는 모두 한때 보고 들은 사람들의 눈과 귀에 환히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떠들썩함은 멀리 전파되어 있는 것으로 비록 여대(輿儓)·하천(下賤)과 조비(竈婢)·운부(耘夫)들도 모두들 분노를 품고 손을 창처럼 휘두르면서 타매(唾罵)하고 있습니다.

무릇 이런 허다한 죄악은 이미 그의 용서할 수 없는 단안(斷案)인 것으로 그의 아주 흉악하고 패리(悖理)한 정절(情節)이 이미 전후의 연주(筵奏)에서 드러났습니다. 그가 이른바 전하의 조정에 있으면서 선대왕(先大王)께서 차마 들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감히 전하께 아뢸 수 없다면 의리가 회색(晦塞)될 것이라고 운운한 것은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전하께서는 선왕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고 있고 뭇 신하들은 선왕을 섬기던 것으로 전하를 섬기는 것이 곧 천리(天理)인 것으로 신하의 분수에 있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선왕 때에는 비록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일지라도 전하 때에는 차마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천하에 어찌 이런 신하의 절개가 있을 수 있단 말 입니까? 비호하는 법과 전하는 정신을 은밀히 그 도당들에게 전수(傳授)하여 앞에서 공격하고 뒤에서 막아주는 식으로 일관(一貫)되게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번에 역적 김달순(金達淳)이 흉악한 짓을 도모함에 이르러서는 지의(旨意)가 서로 부합되고 맥락(脈絡)이 서로 관통되었는데, 이는 모두 심환지를 뿌리로 하고 심환지를 본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대론(大論)이 바야흐로 일어나서 역적 김달순의 임금을 무시한 죄를 성토함에 있어 만약 근원을 도려내고 소굴을 쳐부수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천토(天討)를 끝마치고 인심을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역적 권유(權裕)에 관한 한 조항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더욱 그의 진장(眞贓)이 되는 것입니다. 무릇 역적 권유의 음모와 흉계는 곧 심환지와 몸은 달라도 마음은 같은 사이로 그의 난만하게 서로 결탁한 정상을 이미 숨길 수가 없는데, 다시 불분명하게 희석시킬 계교를 내어 거짓 논책(論責)하는 모양을 드러내면서 이에 도리어 노신(老臣)이요 충애(忠愛)라고 포장(褒奬)하면서 나라를 위하여 깊이 우려한다고 추허하였는가 하면, 결국 논하여 감죄(勘罪)한 것이 문비(問備)에 그쳤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눈을 지니고 반열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인들 살이 떨리고 간담이 뒤집어져 손으로 사지(四肢)를 찢고 입으로 살점을 씹으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마는, 여항(閭巷)에서 사사로이 논의할 뿐 정당하게 말할 수 없었고 집에서 남모르게 탄식할 뿐 감히 드러내어 논하지 못하였으니, 그의 탐학스런 위세가 아! 또한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정인(正人)들의 기개가 꺾인 것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왕망(王莽)·동탁(董卓)·사마의(司馬懿)환온(桓溫)100) 같은 자들이라도 어떻게 이보다 더할 수 있겠습니까? 자취를 잡아서 그 마음을 주벌(誅罰)하고 물줄기를 따라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권유가 역적 권유로 된 것과 김달순이 역적 김달순이 된 것은 한결같이 심환지가 창도한 것입니다. 따라서 원악 대대(元惡大憝)를 따져본다면 심환지가 그 사람인 것입니다. 그 나머지 선왕(先王)의 성헌(成憲)을 변란(變亂)시킨 것과 선왕의 은총을 저버린 것 등은 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잗단 일에 속하는 것입니다만, 이 두 조항에 관한 아룀만으로도 어떻게 삼척률(三尺律)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직책이 바로 대관(大官)이었으니, 그의 몸이 이미 죽었다는 것으로 버려두고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故) 영의정 심환지에게 우선 관작을 추탈하는 형벌을 시행하소서.

아! 통분스럽습니다. 김관주(金觀柱)의 죄를 이루 다 주벌하겠습니까? 성품이 이미 용렬스러운데다가 식견도 어리석어 본디 진신(縉紳)의 반열에 비원(備員)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척리(戚里)의 기세를 빙자하여 권흉(權凶)에게 밀어주고 이끌어줌을 받아서 수년(數年) 사이에 공경(公卿)의 지위로 뛰어올랐으므로 식자(識者)들이 한심하게 여겨 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정승의 직위에 올라서는 나라에 보답하기를 도모하는 의리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당여만을 비호하는 습관을 일삼았으니, 그 허다한 죄악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만 그 가운데 가장 큰 것만을 가지고 말하여 보겠습니다. 그의 일생을 추적하여 보면 곧 심환지·정일환(鄭日煥)의 권투(圈套) 속에 들어 있는 인물인 것입니다. 정승의 자리에 나가서 숙배(肅拜)하고 나서는 남의 꾐에 빠져 정일환을 사우(死友)로 일컬었으며 상부(相府)에서의 사업은 오직 공의(公義)를 배반하기만을 일삼아 심환지의 비호하는 법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주야로 치밀하게 계획하는 것이 인물(人物)을 해치는 것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시종 영위(營爲)한 것은 모두 사당(私黨)을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통분스럽고 증오스러운 것은 아! 우리 선대왕께서 임어(臨御)하신 지 24년 동안 의리가 정미(精微)하였고 치화가 융성하여 온 동토(東土)의 수천 리 안에 생명을 지닌 무리들은 성덕(聖德)을 흠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감히 수십 년 동안 군흉(群凶)들이 조정을 탁란시켰다는 이야기를 방자하게도 진강(進講)하는 날 우러러 아뢰면서 일필(一筆)의 한 글귀로 단정하면서 불만스러워하는 뜻을 드러내었으니, 인신(人臣)의 분의(分義)가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친정(親政)하시던 처음에 이르러 갑자기 물러가기를 청한 것은 또 무슨 심장(心腸)에서입니까? 이것도 이미 절대로 헤아릴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홍이유(洪履猷)의 패통(悖通)은 그 배포(排布)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런데도 난만히 화응(和應)한 자취를 숨기기 어렵습니다. 한해옥(韓海玉)의 흉서(凶書)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언제인데 연석(筵席)에 나아가 주달한 것은 도리어 도계(道啓)보다 뒤에 있었습니다. 패자(悖子)가 체포되기에 이르러서는 진장(眞贓)이 환히 드러났는데도 요행히 왕장(王章)을 피하여 스스로 아무 일이 없었던 사람처럼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한 가지라도 지니고 있으면 그 죄가 어떤 형벌이 합치되는 것입니까? 역적 권유와 같은 자는 곧 만고에 없는 흉역인데도 완전히 심환지의 충애론(忠愛論)을 답습하였으며, 위관(委官)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장황하고도 불분명한 말이 그의 당여의 입에서 나왔으니, 이 한 가지 조항만으로도 그의 단안(斷案)으로 삼을 만합니다. 이런 죄를 지고도 아직껏 용서하고 있으니 국가에 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는 대신(大臣)이라는 것 때문에 버려두고 논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판부사 김관주(金觀柱)를 우선 관작을 삭탈하고 문외(門外)로 출송(黜送)시키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537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註 097]
    척완(戚畹) : 임금의 외척(外戚).
  • [註 098]
    형불(珩芾) : 사(士) 이상이 형(珩)을 차고 불(芾)을 입는데, 여기서는 하찮은 사람들이 복식(服飾)만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인용하였음. 《시경》 후인장(候人章)에 보임.
  • [註 099]
    경신년 : 1800 순조 즉위년.
  • [註 100]
    왕망(王莽)·동탁(董卓)·사마의(司馬懿)환온(桓溫) : 왕망은 한(漢)나라 효원 황후(孝元皇后)의 조카로서 평제(平帝)를 죽이고 한조(漢朝)를 빼앗아 신(新)나라를 세운 사람, 동탁은 후한(後漢)의 장군으로 정권을 장악한 뒤 헌제(獻帝)를 세워 허수아비로 만들고 전횡을 일삼다가 여포(呂布)·왕충(王充)에게 살해된 사람, 사마의는 삼국 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의 장수로 문제(文帝) 때 승상의 자리에 올라 손자 사마염(司馬炎)의 제위(帝位)를 찬탈한 기초를 닦은 사람, 환온은 동진(東晉)의 장군으로 황제(皇帝) 혁(奕)을 폐위(廢位)하고 간문제(簡文帝)를 옹립한 후 찬탈 음모를 꾸미다가 실패한 사람임.

○三司 【大司諫李肇源, 司諫金孝眞, 獻納洪羲膺, 正言洪時溥、閔致載, 掌令朴孝成, 李海淸, 持平沈厚鎭、洪冕燮, 副校理李基慶, 修撰李惟命。】 合啓: "噫嘻痛矣! 沈煥之之罪, 可勝誅哉? 賦性本自奰慝, 行事無非陰戾, 發身戚畹之家, 濫躋卿孤之列, 以貪權樂勢, 把作家計, 以戕人害物, 視爲能事。 廣張聲勢, 恣行威福, 慶刑判於喜怒, 殺活變於吐吸, 一世屛息, 萬人側目。 其有奴顔婢膝, 脅肩諂媚, 則悅其附己, 而吹噓奬擢, 如恐不及, 或能介然有守, 稍欲自持, 則惡其異己, 而排擯擠陷, 靡有餘力。 於是乎擧一國之嗜利昧義, 忘廉沒恥, 閃倐如鬼蜮, 鄙瑣如 之類, 無不匍匐而歸之, 棼然珩芾之趨, 菀爲淵藪之萃。 積威所壓, 有識箝口, 公憤所在, 志士扼腕, 惴惴慄慄, 莫敢誰何, 相對揮手, 戒以滅族者, 蓋亦積有年數矣。 嗚呼! 庚申崩坼之變, 此何等時也? 渠以受恩罔極之人, 身爲院相, 苟有一分人心, 何忍逞其胸臆? 而乃敢謂此時可乘, 而凶肚愈肆, 謂擧世可脅, 而猾手轉熟, 驟擢私黨, 列樹爪牙之勢, 廣引醜類, 密布耳目之助, 瑣瑣之婭, 賣其凶焰, 齪齪之徒, 舐其殘瀝。 朝政蠱壞, 世道殽亂, 駸駸至於莫可收拾之境。 是皆昭布一時之瞻聆, 脩播萬口之喧騰, 雖至輿儓、下賤、竈婢、耘夫, 擧懷憤惋, 戟手唾罵。 凡此許多罪惡, 已爲渠罔赦之斷案, 而其窮凶絶悖之情節, 已露於前後筵奏。 其所謂 ‘降在殿下之廷, 以不忍聞於先大王者, 不敢言於殿下, 則義理晦塞’ 云云, 此何語也? 殿下以先王之心爲心, 群下以事先王者事殿下, 卽天理臣分之所當然。 若曰, ‘先王之時, 雖不忍言, 而殿下之時, 可以忍言’, 則天下寧有如許臣節乎? 護法傳神, 潛授其徒, 前茅後殿, 一串貫來。 至于今番賊之凶圖, 而旨意相符, 脈絡相通, 無不根柢於煥之, 本原於煥之。 今者大論方張, 聲討賊無君之罪, 而若不劈開源頭, 掀破窟穴, 則將何以訖天討, 而服人心乎? 至於賊一款, 尤爲渠眞贓。 夫賊之陰謀凶圖, 卽煥之之異身同腸, 其爛漫綢繆之狀, 已不可掩, 更生漫漶之計, 佯作論責之樣, 而乃反奬之以老臣忠愛, 詡之以爲國深慮, 畢竟論勘, 止於問備。 當是時也, 凡在橫目之列者, 孰不肉顫膽掉, 思欲手磔口臠? 而巷裏私議, 莫能昌言, 屋下竊歎, 不敢顯論, 其饕威虐勢, 吁亦可怖。 而衆正氣死, 一至於此, 雖, 何以加此? 執跡而許其心, 沿流而溯其源, 則之所以爲, 之所以爲, 一是煥之之所倡。 苟究其元惡大憝, 則煥之是已。 其餘變亂先王之成憲, 辜負先王之恩眷, 在渠猶屬細故, 卽此兩條之奏, 焉逭三尺之律? 不可以職是大官, 身且已斃, 置而不論。 請故領議政沈煥之, 爲先施以追奪官爵之典。 噫嘻痛矣! 金觀柱之罪, 可勝誅哉? 性旣闒茸, 識又蚩蠢, 本不足備數於衿紳之列。 而藉戚里之氣焰, 爲權凶之推輓, 數年之間, 超至公孤, 識者之寒心, 厥惟久矣。 及居相職, 罔念圖報之義, 專事護黨之習, 許多罪惡, 不可殫記, 而以其最大者言之。 跡其平生, 卽兩圈套中物也。 揆地出肅, 爲人所誘, 而稱日煥以死友, 相府事業, 惟事背公, 而爲煥之之護法。 晝宵綢繆, 不出戕人而害物, 終始營爲, 都在植私而樹黨, 尤可痛惡者。 猗! 我先大王, 臨御二紀, 義理精微, 治化郅隆, 環東土數千里含生之倫, 莫不欽仰聖德。 而渠敢以數十年群凶濁亂之說, 肆然仰奏於進講之日, 一筆句斷, 顯有不滿之意, 人臣分義, 乃如是耶? 至若親政之初, 忽然請退, 又何心腸? 此已萬萬叵測。 履猷悖通, 排布何如? 而闌漫和應, 其跡難掩。 海玉凶書, 目擊何時, 而登筵奏達, 反後道啓。 悖子被逮, 眞贓昭著, 而幸逭王章, 自同無故。 有一於此, 合置何辟? 乃若賊, 卽亘萬古所無之凶逆, 而全襲煥之忠愛之餘論, 委官中一人, 周遮漫漶之說, 出於其黨之口, 卽此一款, 爲渠斷案。 以若負犯, 尙今容貸, 其可曰國有法乎? 此不可以大臣之故, 置而不論。 請判府事金觀柱, 爲先削奪官爵, 門外黜送。" 不允。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537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 / 사법(司法)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