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역 이진복이 견문한 사실에 대한 별단을 올리다
수역(首譯) 이진복(李鎭復)이 보고 들은 데 대한 별단(別單)을 올리기를,
"심양(瀋陽)의 행행(行幸)에 관계된 갖가지 거행해야 할 일을 모두 초봄에 주문(奏聞)하여 미리 준비하였습니다. 관내(關內)·관외(關外)의 연로(沿路)에 있는 각참(各站)에 행궁(行宮)이 있는 곳은 수개(修改)하고 행궁이 없는 곳은 길가에 흙을 쌓아 장방(帳房)을 영건(營建)하고서 대영(大營)이라고 호칭하였으며, 시내가 도랑 가운데 석거(石渠)로 되어 있는 곳에는 수축(修築)을 하고 석거가 없는 곳에는 부교(浮橋)를 만들어 걸쳐놓았습니다. 강물이 있는 곳에는 배를 연결하여 다리를 만들어 마치 평지를 다니듯이 하게 만들었고, 큰 길 양쪽에 심은 버드나무가 간간이 끊긴 곳은 또한 모두 배식(培植)하여 줄을 이루게 하였으며, 성첩(城堞)과 사묘(寺廟)에 이르러서도 모두 아주 새롭게 수보(修補)해야 함으로 돌과 나무를 운반하는 것이 장차 도로에 잇따를 것입니다.
이제 막 역사(役事)를 시작하였는데 5월 안에 역사를 완공시킨다고 합니다. 7월 21일에 동가(動駕)하여 8월 초7일에 광녕(廣寧)의 북진묘(北鎭廟)에 도착하며, 여기에서 하루 유숙하고 나서 17일에 하원(夏原)의 흥경(興京)에 도착하여 하루를 묵는데, 흥경은 곧 청조(淸朝)가 왕업(王業)을 일으킨 곳으로 옛 건주위(建州衛)입니다. 추존(追尊)한 사세(四世)의 능(陵)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통틀어 영릉(永陵)이라고 호칭합니다. 24일에 심양에 도착하여 5일을 유숙하면서 복릉(福陵)·소릉(昭陵)을 배알(拜謁)하는데, 이 두 릉은 곧 천명(天命)091) 과 숭덕(崇德)092) 입니다. 29일에 난가(鸞駕)가 돌아가는데 9월 24일에 돌아와 연경(燕京)에 도착합니다. 연경에서 영릉(永陵)까지에는 26개의 참(站)이 있고 영릉에서 심양까지는 6개의 참이 있고 심양에서 연경까지는 24개의 참이 있는데 주필(駐蹕)093) 은 모두 7일이고 왕복하는 날짜를 모두 계산하면 63일입니다.
연로(沿路)에 있는 신묘(神廟)와 불사(佛寺) 가운데 큰 곳에는 모두 역림(歷臨)하며 능에 배알하는 길에 있는 개국 공신(開國功臣)의 묘(墓)에도 또한 모두 역림하여 사제(賜祭)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선황제(先皇帝)가 이미 행한 전례인데 해부(該部)에서 준례에 따라 갖추 주문(奏聞)하여 거행하게 된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503면
- 【분류】외교-야(野)
- [註 091]천명(天命) : 청(淸)나라 태조(太祖)의 연호. 곧 태조를 지칭함.
- [註 092]
숭덕(崇德) : 청(淸)나라 태종(太宗)의 연호. 곧 태종을 지칭함.- [註 093]
주필(駐蹕) : 임금이 나들이하는 도중에 거가(車駕)를 잠시 멈추고 머무르거나 묵는 일.○首譯李鎭復聞見別單曰:
瀋陽行幸, 凡百擧行, 皆於春初, 具奏預備。 關內、關外沿路各站, 有行宮處則修改, 無行宮處則於路傍, 築土營建帳房, 號曰大營, 溪澗溝瀆之有石渠處則修築, 無石渠處則搭造浮橋。 江水則結船作橋, 如行平地, 大路兩邊植柳之間斷處, 亦皆培植成列, 至於城堞、寺廟, 俱爲一新修補, 木石之輸, 將絡屬於道路。 今方始役, 期以五月內完役云。 七月二十一日動駕, 八月初七日到廣寧 北鎭廟, 留一日, 十七日到夏原 興京, 留一日, 興京, 卽淸朝興王之地, 古建州衛。 追尊四世之陵, 俱在此地, 而總號永陵者也。 二十四日到瀋陽, 留五日, 謁福陵、昭陵。 此兩陵, 卽天命、崇德也。 二十九日回鑾, 九月二十四日還到燕京。 自京至永陵, 二十六站; 自永陵至審陽, 六站, 自瀋陽至京, 二十四站, 駐蹕共七日, 往返共計六十三日。 沿路神廟、佛寺之大處, 俱爲歷臨, 謁陵之路, 開國功臣墓, 亦歷臨賜祭。 此是先皇帝已例, 而該部按例具奏擧行。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503면
- 【분류】외교-야(野)
- [註 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