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 대비가 수렴한다고 하자 이에 대한 논의
좌의정 이시수(李時秀)와 우의정 김관주(金觀柱) 및 연명 상소하였으나 채 비답을 받지 못했던 전 양사(兩司)의 여러 대신(臺臣)들을 소견(召見)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자전(慈殿)께서 경 등에게 하교하실 것이 있어 지금 바야흐로 수렴(垂簾)하고 계신다."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수렴이야말로 얼마나 막중·막대한 일입니까? 경신년103) 에 천붕(天崩)한 초기에 신 등이 울며 우러러 청하였더니, 자성(慈聖)께서도 울며 억지로 따르셨습니다. 그리하여 4년 동안 종사(宗社)를 안정시키시고 성궁(聖躬)을 보호하셨으니, 자성의 덕과 공은 천고에 탁월하십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 신 등을 특별히 부르셨을 적에는 환히 유시하시고 철렴(撤簾)하셨으니, 그 광명 정대함은 백세(百世)가 지난 뒤라도 할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너무나도 예사롭지 아니한 일이 있습니다. 신은 하교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오나, 주상께 하교하셨다면 주상께서 스스로 신 등에게 널리 유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일을 간책(簡策)에 쓰고 팔방에 반포한다면 자성의 덕에 장차 어떠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즉시 도달(導達)104) 하시어 빨리 수렴의 명을 정침(停寢)토록 하소서."
하고, 김관주의 아룀도 대략 같았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내가 어찌 수렴의 중대함을 알지 못하랴? 그리고 또한 어찌 철렴한 뒤에 다시 이런 일을 하랴? 옛날 우리 명성 대비(明聖大妃)105) 께서 사친(私親)의 일 때문에 또한 이런 일이 있었으니, 그때는 뭇 소인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사류(士類)를 몰아내고 있었는지라 대비께서 또한 부득이 수렴하셨던 것이다. 국조(國朝)에 이미 이런 전례가 있으니,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 행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내 지식이 없는 일개 부인으로서 겸하여 병까지 많으니, 조정의 일을 어찌 참여해 알 수 있겠는가? 지난번 국가의 위의(危疑)를 당하여서는 국조(國朝)의 옛 전례를 준행하여 힘써 따르도록 노력해 왔다. 주상의 보령(寶齡)이 이제 15세가 되었고 예덕(睿德)이 일찍 성취되어 직접 만기(萬機)를 총괄하고 있다. 이와 같은데, 내 어찌 철렴하지 않으랴? 차후로의 일은 전적으로 뭇 신하들이 잘 보도(輔導)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어찌 나랏일에 대해 대충대충 보고만 있으랴? 조정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나는 진실로 계획을 세워 한 바도 없지만 또한 지나친 잘못도 없는데, 매번 사단이 있을 때마다 곧 나를 들어 말하고 있으니, 지금 조정의 모양은 선왕의 의리와 모두 흐릿해지고 있다. 근자에 듣건대, 양사의 연명 상소에 ‘10월에는 길함이 없어 삼간택(三揀擇)을 하지 않는다.’는 구어(句語)가 있었으나 성명을 노출시키지는 않았다 하고, 이른바 ‘일관(日官)을 끼고 장차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것도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그러나 대간의 상소에서 아무리 노출시키지 않았다 할지라도 외간에서 지목하며 말을 자자하게 전하고 있으며, 나 또한 얻어들은 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니 이미 지적한 사람이 있다면 어찌하여 솔직하게 진달하지 않고 모호하게 덜어 숨겨 그 의혹을 불어나게 하는가? 옛날 명성 대비 때 주상께서 춘추가 한창이셨으나 그래도 품지(稟旨)한 뒤에 행하셨다. 지금 우리 주상도 또한 반드시 일에 따라 나에게 품정(稟定)하고 있으니, 지금 나의 일이 어찌 조정의 정무(政務)에 간예하고 권세를 전행(專行)하고자 하는 계책이겠는가? 또한 어찌 아무 일 없이 수렴하는 것을 쉽사리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겠는가? 대간의 상소가 명백하게 말하지 아니하여 한갓 말만 시끄러운 상황을 불러 일으키기에 한번 불러 묻고 심중에 있는 분을 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대간의 상소에 말한 바는 신이 원본(原本)을 보지 못했기에 쓴 말이 어떠한 것인지 지적한 바가 누구인지를 감히 상세히 알지 못하나, 옛날 명성 대비 때에는 흉도(凶徒)들이 근종(近宗)을 끼고 종사(宗社)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도모하여 그 기미가 심히 급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이런 예사롭지 아니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자전께서 하교하시고자 하는 일을 만약 전하께서 세 번 문안 인사를 드릴 즈음에 조용히 상세하게 알려주셨다면, 전하께서 반드시 마땅히 자교(慈敎)를 선포하여 마땅히 죄주어야 할 사람을 엄하게 처분하셨을 것입니다. 이미 철렴한 뒤 매번 한 가지 일이 있을 적마다 또 다시 수렴한다면, 어찌 자전의 덕에 크게 관계됨이 있지 않겠습니까? 신은 자성의 망극한 은혜를 입어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폐부에 새겨 두고 있으니, 눈으로 자성의 덕에 장애가 있음을 보고도 사실대로 고하지 아니한다면 이는 자성의 덕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바라건대, 앙품(仰稟)하여 속히 도로 정침토록 하소서."
하고, 김관주의 아룀 또한 같았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대저 대간이 이미 말한 바가 있다면 명백하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공덕이 없는 사람이라 크고 작은 일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반드시 나를 들어 말하니, 크게 놀라고 분하게 여길 바로다. 경신년106) 후로 내가 나랏일을 직접 담당하였다. 비록 여항(閭巷) 사이의 일로 말할지라도 집안일에는 반드시 가장이 있어 주장하는 법인데, 지금 주장한 사람은 나이니, 내가 홀로 담당한 일로 이런 해괴한 말을 들으니, 그 분함이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전하께서 무슨 말씀인들 품하지 않겠으며, 자성께서 또한 무슨 말씀인들 다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전하께서 자성의 하교를 신 등에게 선포하신다면 그 말의 허실이야 어찌 조사해 낼 방도가 없겠습니까?"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대간의 상소는 또 조항진(趙恒鎭)의 일을 논하며 조항진을 처분한 전교(傳敎)까지 제기해 언급했는데, 조항진은 존호(尊號)의 일로 선류(善類)를 해치고자 하였으므로 이 처분이 있었던 것이며, 주상 또한 이미 처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도리어 이것을 말하니, 어찌 말이 되겠는가?"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이것은 비답을 받은 상소가 아니기 때문에 단지 대의(大意)만을 들었고 전편(全篇)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대신(臺臣)의 말이 과연 잘못이라면 이것은 바로 인신(人臣)의 극죄(極罪)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 뜻을 도달(導達)하시되 만약 죄줄 만한 것이 있으면 위에서 처분하시기를 천만번 옹축(顒祝)합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옛날 선인 태후(宣仁太后)107) 는 만세(萬歲) 뒤에 군소배(群小輩)가 비로소 허구 날조하고 속이며 핍박하는 계책을 내었다. 지금 나는 한 가닥 숨이 아직도 붙어 있으나 남은 해가 많지 않은데, 쇠모(衰暮)한 노경에 이런 해괴한 말을 들었는지라, 한번 나의 분한 심정을 죄다 유시하고, 또한 주상이 처분하는 일을 참여해 듣고자 하여 이처럼 부득이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어찌 나 자신으로부터 처분하는 바가 있을 수 있겠는가? 경 등은 시험삼아 생각해 보라. 선왕의 큰 의리가 장차 이런 무리들에 의해 허물어지고 말 것이고, 침척(侵斥)과 무핍(誣逼)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군신(君臣) 상하가 마음을 함께 하여 협찬(協贊)하는 도리이겠는가? 주상이 어찌 저쪽이나 이쪽에 대해 애증(愛憎)이 있으랴마는, 인심과 세도가 이런 극도의 지경에 이르렀다. 경 등은 나의 오늘의 거조(擧措)를 실덕(失德)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비록 분통스런 일이 있다 해도 또한 한마디 말도 발설할 수 없다는 것인가? 선조(先朝) 때는 나 또한 일찍이 언교(諺敎)가 있었다. 참으로 경 등의 말과 같다면, 언교 또한 할 수 없다는 것인가?"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그때의 언교는 신 또한 일찍이 삼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처분하실 일이 있다면 비록 언교가 없다 하더라도 성상께서 어찌 처분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하고, 김관주는 말하기를,
"삼가 오늘의 거조를 보건대, 자충(慈衷)이 절실히 분해 하시는 바를 우러러 헤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렴은 어리석은 신이 사죄(死罪)를 범한다 할지라도 적이 성려(聖慮)가 주밀(周密)하게 생각하시는 데 미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선조(先朝)의 근 30년 동안 지성으로 고심한 것이 오로지 의리를 부식(扶植)하는 데 있었으니, 오늘날을 위하는 도리는 진실로 마땅히 조종(祖宗)을 본받고 선왕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 인심이 점차 옛날만 못하여 대신(臺臣)의 토죄(討罪)를 청하는 글에 성명을 노출시키지 않고 가리어 숨기고 말하니, 임금에게 고하는 말이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할 것인가?"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자성께서 이미 이 일이 과중함을 아신다면 즉시 회오(回悟)하심이 마땅하며, 만약 처분하실 것이 있으면 전하께서 품지(稟旨)하여 처분함이 실로 사리에 합당합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내가 철렴할 때 어찌 ‘큰 형정(刑政)은 참여해 듣겠다.’고 하교하지 않았던가? 나의 이 일을 그릇되었다 여기니, 나의 실덕(失德)을 내가 스스로 아노라. 이것은 내가 스스로 감당하겠다."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어찌 다만 큰 형정뿐이겠습니까? 비록 미세한 일이라 할지라도 전하께서 안에서 우러러 자성께 고하시고, 자성께서 전하를 협찬(協贊)하신다면, 무슨 불가할 것이 있길래, 수렴하여 신 등을 대하시어 이런 하교까지 내리시는 것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어떠한 거조이겠습니까? 실덕을 스스로 감당하시겠다는 하교는, 신 등이 우리 자성을 섬긴 지 몇 년인데, 어찌 이와 같은 하교를 받들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즉시 속히 도로 정침(停寢)하심이 자성의 공덕에 빛남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 뜻을 도달(導達)하시어 멀지 아니하여 복구[不遠復]하시는 도리108) 로 삼으소서."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내 무슨 공덕이 있으랴? ‘공덕’ 두 글자는 거짓말로 나를 속이는 것이다."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신 등이 비록 지극히 무상(無狀)하나 대신의 직임을 더럽히고 있으면서 면전에서 ‘거짓말’이란 엄한 하교를 받자오니, 두렵고 떨려 진달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마땅히 나가 부월(鈇鉞)의 주벌(誅罰)을 기다리겠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경은 어찌하여 이와 같이 하는가? 앞으로 나아오면 마땅히 다시 하교함이 있을 것이다."
하니, 이시수가 나아가 엎드렸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내가 지식이 없어서 3, 4년 안에 한 가지도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다. 단지 망극한 가운데 선왕의 성헌(成憲)을 준행하여 끌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애초부터 일컬을 만한 공덕이 없었으므로 말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소신(小臣)은 이제 엎드려 ‘거짓말’이란 하교를 받았습니다. 남의 신하가 되어 이런 죄범(罪犯)이 있고서, 어찌 일각인들 천지 사이에서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나의 실덕은 견식(見識)이 없는 소치가 아님이 없다. 본정(本情)을 죄다 말하느라 언사(言辭)가 이와 같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일로 나를 꺾어 누르려고 그렇게 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수렴한 일을 사책(史策)에 쓴다면 진실로 마땅히 나의 죄과(罪過)가 될 것이다."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신이 또 이런 하교를 받으니, 남의 신하가 되어 즉시 죽어 없어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하고, 김관주가 말하기를,
"신은 진실로 너무나도 황송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교하시는 사이에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찬찬히 살펴보고 조용하게 도리를 말씀하셔도 무슨 불가할 것이 있길래 곧 이처럼 너무나도 과중한 거조를 하시는 것입니까?"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내가 견식이 없어 실언한 것이다. 그러니 경은 이것을 가지고 인죄(引罪)할 것이 없다. 지금 세도(世道)를 돌아보건대 단지 두 대신만이 있을 뿐이니, 어찌하여 이처럼 지나치게 인죄할 수 있겠는가?"
하니, 이시수가 말하기를,
"신이 이미 이런 죄명(罪名)을 졌으니, 어찌 감히 다시 입을 열 수 있겠습니까만, 구구하게 충성을 바치기를 원하는 정성을 끝내 누르기 어렵습니다. 이번의 예사롭지 않은 일을 어찌 오랫동안 다시 정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 등은 비록 심히 무상하나, 혹 털끝만큼이라도 자성의 덕에 비평한 것이 있다면, 눈을 밝게 뜨고 성토함을 어찌 혹 한 시각인들 늦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번의 일은 진실로 너무나도 예사롭지 아니한 것이니, 도로 정침하는 것이 한시가 급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다시 마음을 돌리도록 힘써 하소서."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경 등은 이미 나의 말을 옳지 않다 하고, 또 사단을 만들어 내고자 반드시 인구(引咎)하려고 하니, 진실로 몹시 개탄스럽다. 차후로는 만약 말할 만한 일이 있으면 마땅히 언교(諺敎)를 써서 내릴 것이며 나는 들어가겠다."
하고, 드디어 문을 닫으니, 이시수는 말하기를,
"오래지 아니하여 복구하시는 자성의 덕이야말로 신은 이루 다 흠앙(欽仰)할 수 없습니다. 신이 비록 무사(無似)하오나, 대신의 이름을 띠고 있는데 삼가 두 구절의 엄한 하교를 받았으니, 장차 무슨 얼굴로 스스로 세상에 서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빨리 엄한 주벌(誅罰)을 내리시어 신하의 분수를 바로잡게 하소서."
하고, 김관주는 말하기를,
"자성께서 하교를 내리시매 황공하여 몸이 떨릴 뿐입니다. 신은 좌상과 더불어 실로 다름이 없으니, 신 또한 마땅히 물러나 엄한 주벌을 기다리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전 대간 이기경(李基慶) 등을 앞으로 나오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의 연명 상소는 대단한 실수였다. 차후로는 아무 일을 막론하고 반드시 명백하게 말하여 이런 상소처럼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니, 이기경 등이 말하기를,
"신의 연명 상소 가운데서 윗 조항의 구어(句語)는 길거리의 전문(傳聞)이 아니고, 곧 유생이 현관(賢關)109) 에 써 보낸 글입니다. 그리고 아랫 조항에 운운한 바는 조항진(趙恒鎭)에 대한 처분이 과중하였음을 이른 것이 아닙니다. 대개 장석윤(張錫胤)의 상소에 은연중에 언뜻 비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른바 ‘궐전(闕典)’ 운운한 것으로 보아 조항진이 어찌 전혀 죄가 없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48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註 103]경신년 : 1800 순조 즉위년.
- [註 104]
도달(導達) : 윗사람이 모르는 사정(事情)을 아랫사람이 가끔 넌지시 알려 주는 일.- [註 105]
명성 대비(明聖大妃) : 현종비 김씨.- [註 106]
경신년 : 1800 순조 즉위년.- [註 107]
선인 태후(宣仁太后) : 송(宋)나라 영종(英宗)의 후(后) 고씨(高氏).- [註 108]
멀지 아니하여 복구[不遠復]하시는 도리 : 이는 《주역》 복괘(復卦)에 사람이 하나라도 착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알지 않을 수 없고 알면 빨리 고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후회하는 데에 이르지 않고 곧 멀지 않아 복구된다는 말을 인용한 것임.- [註 109]
현관(賢關) : 성균관.○庚辰/召見左議政李時秀、右議政金觀柱及聯疏, 未承批前兩司諸臺于熙政堂。 上曰: "慈殿有下敎於卿等者, 今方垂簾矣。" 時秀曰: "垂簾, 是何等莫重莫大之擧? 庚申天崩之初, 臣等涕泣而仰請, 慈聖涕泣而勉從。 四載之間, 奠安宗社, 保護聖躬, 慈德慈功, 卓越千古。 及至昨冬, 特召臣等, 洞諭而撤簾, 光明正大, 百世有辭。 而今忽有萬萬非常之擧。 臣未知所欲下敎者何事, 而敎於主上, 則主上自可布諭於臣等。 今日此擧, 書諸簡策, 頒諸八方, 則於慈德, 將如何也? 伏望殿下, 卽爲導達, 亟寢垂簾之命焉。" 觀柱所奏略同。 大王大妃敎曰: "予豈不知垂簾之爲重大? 亦豈以撤簾之後, 更爲此擧也? 昔我明聖大妃, 爲私親事, 亦有此擧, 時則群小滿廷, 驅逐士類, 大妃亦不得已而垂簾。 國朝旣有此例, 予非創行之事也。 予以無知之一婦人, 兼以多病, 朝廷之事, 豈可預知? 而頃當國家之危疑, 式遵國朝之故例, 黽勉從之矣。 主上寶齡, 今至十五歲, 睿德夙就, 親摠萬幾。 如是而予豈不撤簾乎? 此後事, 專在於群下之善爲輔導矣。 予於國事, 豈歇后看也? 未知朝廷以予爲何如, 而予固無所猷爲, 亦無過惡, 則每有事端, 輒爲擧予而言, 目今朝廷貌樣, 竝與先王義理而漫漶矣。 近聞兩司聯疏, 有 ‘十月無吉, 三揀不爲’ 等句語, 而不露姓名, 其所謂 ‘挾日官, 將欲有爲’ 者, 未知誰某。 而臺疏雖不露出, 外間之指目, 傳說藉藉, 予亦得聞者久矣。 旣有指的之人, 則何不直陳, 而糢糊掩匿, 以滋其惑乎? 昔在明聖大妃時, 主上春秋鼎盛, 而猶爲稟旨而後行。 今我主上, 亦必隨事稟定於予, 則今予此擧, 豈欲干預朝政, 專行權勢之計也? 亦豈以無事垂簾, 爲容易可爲之事耶? 臺疏之不爲明言, 徒致囂說之狀, 欲一召問, 說盡心中之憤矣。" 時秀曰: "臺疏所言, 臣未見原本措語之何如, 所指之誰某, 未敢詳知。 而在昔明聖大妃之時, 凶徒挾近宗, 謀危宗社, 其機甚急, 故不得已有此非常之擧。 今此慈殿, 欲爲下敎之事, 若於殿下三朝之際, 從容詳告, 則殿下必當宣布慈敎, 嚴處其當罪之人。 旣已撤簾之後, 每有一事, 又復垂簾, 則豈不大有關於慈德乎? 臣受慈聖罔極之恩, 欲報之心, 銘在肝肺, 目見有礙慈德, 而不以實告, 則是負慈德也。 更乞仰稟, 卽速還寢焉。" 觀柱所奏亦同。 大王大妃敎曰: "大抵臺諫, 旣有所言, 則豈可不明白說去乎? 以予無功德之人, 無論大小事, 人必擧予而爲言, 大可駭憤者矣。 庚申以後, 予於國事, 親自擔當。 雖以閭巷間言之, 家事必有家長而主之, 今之所主張者予。 則以予獨當之事, 聞此駭怪之言, 其爲憤惋, 當如何?" 時秀曰: "殿下何言不稟, 而慈聖亦何言不盡耶? 殿下以慈聖下敎, 宣布臣等, 則其言之虛實, 豈無査出之道?" 大王大妃敎曰: "臺疏又論趙恒鎭事, 提及于處分恒鎭之傳敎者, 恒鎭托以尊號事, 欲害善類, 故有此處分, 主上亦已處分。 今反以是爲言, 豈可成說乎?" 時秀曰: "此非承批之疏, 故只聞大意, 未見全篇。 臺臣所言, 果非矣, 則此是人臣之極罪。 伏願殿下, 導達此意, 如有可罪, 自上處分, 千萬顒祝。" 大王大妃敎曰: "在昔宣仁太后萬歲之後, 群小輩始生構誣捏逼之計。 今予一縷尙存, 餘年無多, 而聞此駭怪之言於衰暮之境, 欲一悉諭予憤惋之情, 亦欲參聽於主上處分之事, 爲此不得已之擧也。 豈可自我而有所處分也? 卿等試思之。 先王之大義理, 將爲此輩所壞了而後已, 侵斥誣逼, 無所不至, 此豈君臣上下, 同心協贊之道乎? 主上豈有愛憎於彼此, 而人心世道, 至於此極。 卿等, 以予今日擧措, 謂之失德。 然則予雖有憤痛之事, 亦不可以發一言乎? 先朝時, 予亦嘗有諺敎。 誠如卿等之言, 諺敎亦不得爲之乎?" 時秀曰: "其時諺敎, 臣亦嘗伏見。 而如有處分之事, 則雖無諺敎, 聖上豈不處分乎?" 觀柱曰: "伏覩今日擧措, 慈衷之有所切憤, 可以仰揣。 而垂簾則臣愚死罪, 竊以爲聖慮, 未及周思矣。" 大王大妃敎曰: "先朝近三十年至誠苦心, 專在於扶植義理, 則爲今之道, 固當法祖宗, 體先王。 而近日人心, 漸不如古, 臺臣請討之章, 不露姓名, 掩匿說去。 告君之辭, 固如是乎?" 時秀曰: "慈聖旣知此擧之爲過中, 則卽當回悟, 而如有處分, 則殿下稟旨處分, 實合事理矣。" 大王大妃敎曰: "予於撤簾之時, 豈不以大刑政, 則參聞爲敎乎? 以予此擧爲非, 予之失德, 予自知之。 此則吾自當之矣。" 時秀曰: "豈但大刑政乎? 雖微細事, 殿下自內仰告于慈聖, 慈聖協贊於殿下, 何所不可, 而至於垂簾對臣等, 有此下敎? 此何等擧措也? 失德自當之敎, 臣等事我慈聖幾年, 豈意承如此之敎乎? 卽速還寢, 有光於慈聖功德矣。 伏願殿下, 導達此意, 以爲不遠復之道焉。" 大王大妃敎曰: "予有何功德乎? 功德二字, 乃是假言謾我也。" 時秀曰: "臣等雖萬萬無狀, 職忝大官, 面承假言之嚴敎, 惶隕震越, 不知所達。 臣當出竢鈇鉞之誅矣。" 仍起出。 大王大妃敎曰: "卿何爲而如是乎? 進前, 則當有更敎者矣。" 時秀進伏, 大王大妃敎曰: "予無知識, 三、四年內, 一無裨益於國家。 只於罔極之中, 遵先王之成憲, 以爲捱過。 初無功德之可稱, 故所言如是矣。" 時秀曰: "小臣今伏承假言之下敎。 爲人臣子, 有此罪犯, 豈可一刻容貸於覆載之間乎?" 大王大妃敎曰: "予之失德, 莫非無見識所致。 悉陳本情, 言辭不得不如是。 今欲以此摧抑予而然耶? 今予垂簾之事, 書之史策, 固當爲予之罪過矣。" 時秀曰: "臣又承此下敎, 爲人臣子, 恨不卽地滅死。" 觀柱曰: "臣固惶悚萬萬。 而下敎之間, 辭氣太過。 引平心舒究, 平說道理, 有何不可, 而乃有此萬萬過中之擧乎?" 大王大妃敎曰: "予無見識失言矣。 然而卿不可以此爲引。 顧今世道, 只有兩大臣, 豈可如是過引乎?" 時秀曰: "臣旣負此罪名, 何敢更爲開口? 而區區願忠之誠, 終難按抑。 今玆非常之擧, 何可許久不還寢乎? 臣等雖甚無狀, 或有毫分議到於慈德者, 則明目致討, 豈或晷刻之緩。 而今玆之擧, 誠萬萬非常, 還寢一時爲急。 伏願殿下, 更爲力回焉。" 大王大妃敎曰: "卿等, 旣以予言爲不是, 又欲生出事端, 必欲引咎, 誠甚慨然。 此後如有可言之事, 當以諺敎書下, 予則入去矣。" 遂闔戶, 時秀曰: "不遠復之慈德, 臣不勝欽仰。 而臣雖無似, 名以大官, 伏承二句嚴敎, 將以何顔, 自立於世乎? 伏願亟降嚴誅, 以正臣分焉。" 觀柱曰: "慈敎之下, 惶恐震懍。 臣與左相, 實無異同, 臣亦當退待嚴誅矣。" 上命前臺諫李基慶等, 進前。 上曰: "爾等聯疏, 大段失着。 此後, 則無論某事, 必爲明白說去, 勿爲如此疏語可也。" 基慶等曰: "臣於聯疏中, 上款句語, 非道路之傳聞, 乃是儒生抵書於賢關之辭也。 至於下款云云, 非謂趙恒鎭處分之過中也。 蓋以張錫胤疏中所言, 亦有隱映閃忽故也。 其所謂闕典云云, 恒鎭豈全無罪也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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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註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