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환지가 고 윤지술을 사현에 복향한 일에 관해 아뢰다
영의정 심환지(沈煥之)가 아뢰기를,
"지난번에 전 대사간 유한녕(兪漢寧)이 상소하여 요청한, 고 태학생 윤지술(尹志述)을 사현사(四賢祠)에 복향(復享)하는 일로 인하여 복계(覆啓)하여 윤허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초에 배향(配享)할 때 바로 사현(四賢)과 더불어 나란히 배열하였으니 만일 대소(臺疏)에 따라 복향한다면 그대로 사현사로써 현판을 내거는 것은 아무래도 구애되는 바가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영묘조(英廟朝)에서는 ‘나란히 배향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다.’는 것으로써 하교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세대(世代)의 선후(先後)로써 논한다면 윤지술을 사현의 사당에 배식(配食)하는 것은 본시 혐의스러운 바가 없으니 배향의 전례(典禮)를 거행하는 일로써 청컨대 해조(該曹)에 분부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윤지술은 경묘조(景廟朝) 때 태학의 집강(執綱)이었다. 숙종(肅宗)의 묘지문(墓地文)에 신사년131) 의 처분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써 항소(抗疏)하여 논하다가 군흉(群凶)의 구무(構誣)한 바 되어 극화(極禍)를 당하였다. 영종(英宗) 초년에 원통함을 풀어줄 것을 특별히 명하고 이어서 사현사에 배식할 것을 허락하였는데 정미년132) 이후에 흉당(凶黨)이 번갈아 들어와 끝내는 철향(掇享)되기에 이르렀다. 공의(公議)가 오랫동안 억울해하다가 이때에 이르러 복향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439면
- 【분류】정론(政論) / 인물(人物) / 사법(司法)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풍속-예속(禮俗) / 사상-유학(儒學)
○領議政沈煥之啓言: "頃因前大司諫兪漢寧上疏, 所請故太學生尹志述復享四賢祠事, 有所覆啓而允下矣。 然當初腏享, 卽與四賢竝列, 若依臺疏復享, 則仍以四賢祠揭板, 恐有所礙。 而英廟朝以‘ 竝享則小過矣’ 爲敎。 且以世代先後論之, 尹志述配食四賢之祠, 固無所嫌, 以配享之典擧行事, 請分付該曹。" 從之。 尹志述, 景廟時太學執綱也。 以肅宗誌文, 不書辛巳處分, 抗疏論之, 爲群凶構誣, 被極禍。 英宗初, 特命雪冤, 仍許腏食於四賢祠, 丁未以後, 凶黨迭入, 竟至掇享。 公議久菀, 至是復之。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4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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