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시의 폐단에 관한 홍희운의 상소
부응교 홍희운(洪羲運)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우리 조정에서 환시(宦侍)를 억제하였던 것은 이미 열성(列聖)의 가법(家法)이고 성세(盛世)의 아름다운 법이 되었습니다. 아! 우리 선대왕(先大王)께서는 즉위 초부터 먼저 뽑아 버림을 더하였으므로 재위(在位)하신 지 25년 동안에 황문(黃門)354) 이 직무를 맡은 것은 물을 뿌리고 비로 쓰는 일에 지나지 않아서 공적이나 사적으로 출입함에 있어 그들이 침노하여 어지럽혔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신이 지금의 사행(使行)에 여러 연도(沿道)의 제읍(諸邑)에서 들으니, 내시(內侍)로서 말미를 받아 사사로이 행동하는 자가 자못 빈번한데, 백성을 채찍질하면서 물건을 요구하여 여러 방면에 걸쳐 폐단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비록 지극히 미세(微細)한 일이긴 하지마는, 그것이 적게 번질 때 미리 막고 끊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 어린 나이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올바르게 시작할 정본(正本)은 마땅히 궁부(宮府)를 단속하여 부정을 깨끗이 하기에 먼저해야 할 것인데, 이 무리들은 한결같이 혹시 방자하게 감히 선조(先朝) 때 시행할 수도 없었던 일을 오늘날에 마음대로 행하고 있으니, 그 놀라서 탄식함이 어찌 그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신료(臣僚)들에게 이 소장(疏章)을 내리어 엄히 금단(禁斷)을 더하게 하고, 무릇 내시의 출입에 관계되는 일은 별도로 조절(操切)하여 만일 혹시 법을 범하거든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적발하게 하여 나타나는 대로 엄히 다스리는 바탕을 삼도록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환시(宦侍)에 관한 일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여 엄중히 처단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407면
- 【분류】정론(政論) / 왕실-궁관(宮官) / 사법(司法)
- [註 354]황문(黃門) : 내시(內侍).
○副應敎洪羲運疏。 略曰:
我朝之裁抑宦侍, 已爲列聖之家法、盛世之徽典。 猗! 我先大王, 粤自初元, 先加鋤治, 御極二十五年之間, 黃門供職, 不過於灑掃, 公私出入, 未聞其侵撓矣。 臣於今行, 聞諸沿道諸邑, 內侍之由暇私行者, 頗涉頻數, 而需索鞭扑, 爲弊多端云。 此雖至微至細之事, 而其爲防微杜漸, 有不可放過。 矧伏念我殿下沖年御宇, 正始正本, 當先於肅淸宮府, 而此輩之一或縱恣, 敢以所不敢售於先朝之事, 任行於今日, 則其爲驚惋, 容有極哉? 伏乞下臣此章, 嚴加禁斷, 凡係內侍之出入, 另爲操切, 若或犯科, 令道臣摘發, 以爲隨現嚴繩之地。
批曰: "宦侍事, 令廟堂, 査實嚴處。"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407면
- 【분류】정론(政論) / 왕실-궁관(宮官)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