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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3권, 순조 1년 6월 10일 을묘 1번째기사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토역 교문을 반포하다

토역 교문(討逆敎文)을 반포하였다. 그 교문에 이르기를,

"왕은 말하노라. 자성(慈聖)의 뜻을 크게 내리어 종팽(宗祊)258) 을 만년토록 안정되게 하였고 천토(天討)를 결단성 있게 행하여 긴 고명(誥命)을 8도(八道)에 전파하노니, 너희들 대중(大衆)은 내 말을 듣고 떠들썩하지 말라. 대저 의리(義理)란 국가에 있어 원기(元氣)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 같아서 터럭만큼만 틀려도 천리(千里)의 차이가 날 것이므로, 귀중한 바는 착한 것을 착하다 나쁜 것을 나쁘다 하고 옳은 것을 옳다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것이며, 삼강(三綱)이 수립되어 구법(九法)259) 이 밝혀졌으니, 대저 그렇게 된 다음에야 임금을 임금으로 신하를 신하로 여기고 아비를 아비로 아들을 아들로 여길 것이다. 생각건대, 우리 선왕(先王)께서는 백세(百世)에 우뚝한 덕(德)으로써 크게 하나로 통치할 권한을 지녔으므로, 즉위 초에 내린 십행(十行)의 사륜(絲綸)은 대궐 문 위에 교령(敎令)을 높이 게시한 것이고 의리를 밝힌 한 부분의 기록은 부월(鈇鉞)260) 의 위엄을 꾸민 것이었다. 이인(李䄄)에 있어서는 노위(魯衛)261) 의 근친(近親)으로서 인륜(人倫)에 부딛치는 딴 뜻을 몰래 품을 줄 어찌 생각했겠는가? 양조(兩朝)에서 높은 품계에 특별히 두었는데도 은혜에 보답할 것을 도모하는 방도를 생각함이 없었고 지난해에 염황(炎荒)262) 으로 가볍게 귀양 보냈는데도 전혀 죄를 두려워하는 뜻이 없었다. 국정(國政)을 담당한 권신과 체결하고는 앞으로 무엇을 하려 하였고 사리(私利)를 즐기는 흉악한 무리를 불러 모아서는 방자하게 불법한 짓을 행하였다. 도리(道理)가 어떤 양상이라는 소장에는 홍국영(洪國榮)·송덕상(宋德相)이 나라를 옮기는 수단을 멋대로 부렸고 다른날을 돌아다보았다는 공초에는 김우진(金宇鎭)·신개(申愷)가 혼인을 맺는 계제를 만들었는데, 앞뒤로 터무니없이 거짓말하고 안팎으로 배포(排布)하였으므로 성기(聲氣)와 취미(臭味)가 서로 합하지 않는 것 같았으나 정절과 맥락이 입술처럼 꼭 들어맞아서 역적 으로써 흉악한 소굴을 삼고 역적 의 거동을 보아 좋은 기회로 삼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한(漢)나라 역적과는 양립(兩立)할 수 없는 법이어서 신인(神人)의 함께 주륙하는 바가 되었다. 홍낙임(洪樂任)에 있어서는 하늘이 대단히 간사한 자를 내어 대대로 원악(元惡)을 이루어서, 때때로 존엄한 공자(公子)의 명목을 지니고 아비의 세력을 의뢰하여 조정의 권한을 몰래 농간하였고, 죄는 남인(南人)과 소북인들의 간교함보다 앞서서 국시(國是)를 변경하여 선류(善類)들을 살해(殺害)하였다. 청의(淸議)에 버림당할 것을 스스로 알고는 문정(門庭)에 버티어 섰었고 칙철(則哲)의 성총(聖聰)을 꺼리지 않고서 군부(君父)를 힘으로 저항하였으므로, 왕부(王府)의 변경할 수 없는 죄안(罪案)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온 나라의 사람들 전부가 분노함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오히려 대덕(大德)263) 께서는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시어 오래도록 그의 죽임에 대하여 법을 굽혀 관대하고서 강화도 가까운 섬에 처자(妻子)와 함께 살게까지 허락하였고, 돈녕부(敦寧府)의 화려한 직함은 척완의 고사(故事)로 대우하는 듯함이 있었는데, 비록 대성(大聖)의 마음에 따른 형제간 우애는 항상 끊임없이 계속하여 왔으나 저 군흉(群凶)의 머리를 모아 도모한 꾀는 어찌하여 저렇게 기회만 노리어 보고 있었는가? 작은 나 소자(小子)는 왕업(王業)을 외람되이 이어받아, 오직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조(先朝)의 뜻과 사업을 이어갈 것을 생각하고 늘 두려운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매 깊은 못을 들여다보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은 근심이 있다. 이러한 때에 화란의 뿌리가 왕기(王畿)264) 에 누워서 쉬고 흉악한 괴수가 종국(宗國)을 원수처럼 보면서, 붕천(崩天)265) 의 애통함이 두루 간절한데도 기회를 틈탈 만하다고 생각하였고, 해에다 높이 걸 만한 의리는 더 엄중할 수 없는데 흐려지게 하고야 말려고 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서 좌도(左道)266) 를 부추겨 선동하였으니, 백련교(白蓮敎)267) 와 황건적(黃巾賊)의 변이 없을 줄 어떻게 알며, 선왕의 뜻이라 칭탁하여 깨끗한 조정을 어지럽혔으니, 거의 쉬파리의 날으는 소리가 사람의 들음을 현란시키고 작은 무늬가 짜져서 아름다운 비단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심하였다. 동방(東邦) 예의의 풍속이 저절로 윤상(倫常)에 어긋남을 차마 보겠는가? 임금을 가까이한 반열에서 또 요얼(妖孼)이 나올 것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양호(洋胡)268) 가 설교(設敎)한 것이라 거짓 핑계하고는 소굴을 그의 가인(家人)에게 직접 연결하였고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은덕(恩德)이 적었다는 말을 끌어다 비유하였는데, 마음속을 연석(筵席)에서 보인 듯하다. 지금 만약 결단하여야 마땅한데도 결단하지 않는다면, 형벌이 없는 가운데서 형벌을 기하지 않음이 있다. 생각건대 우리 자성(慈聖)께서는 일찍이 주(周)나라 태강(太姜)의 서우(胥宇)한 것269) 과 같은 공을 나타내었고 송(宋)나라 선인 태후(宣仁太后)의 수렴한 다스림을 크게 베풀었으며, 점점 늘어서 퍼지는 화란을 멀리 생각하였고 사륜(絲綸)의 말씀을 널리 알리었다. 그는 어찌하여 죄악이 꿰뚫어 꽉 찼는데 은전(恩典)과 왕법(王法)의 경중을 깊이 진념(軫念)하시었다. 온나라에서 모두 죽이는 것이 가하다고 하니, 국법을 오래 지체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겠다. 이에 5월 29일에 홍낙임에게 사사(賜死)하였다. 이미 위로 종사(宗社)에 고유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는데 어찌 아래로 백성에게 반포하는 전법(典法)이 없겠는가? 아! 일이 아주 가깝고 짧은 순간에 있었는데도 깨끗이 쓸어 없앤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우며, 변이 골육지친(骨肉之親)의 사이에서 나왔으니 다만 한탄하며 비통함을 더할 뿐이다. 의리를 바루고 법을 펴는 것은 진실로 하늘의 이치를 속이지 못함이겠으나 경사를 치르고 은덕을 미루어 미치게 함이 어찌 내 마음에서 차마 할 것이었겠는가? 이에 우(禹)임금이 죄를 주고 눈물을 흘렸던 뜻을 미루었고 은(殷)나라 조정에서 백성에게 호소한 말을 널리 펴노라. 그러므로 이에 교시(敎示)하노니, 마땅히 자세하게 알 것이라 생각한다."

하였다. 【대제학 이만수(李晩秀)가 지었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399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司法) / 정론(政論) / 변란(變亂) / 어문학(語文學)

  • [註 258]
    종팽(宗祊) : 종묘의 제사.
  • [註 259]
    구법(九法) : 《서경(書經)》 홍범(洪範)의 구주(九疇)로서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법칙. 곧 오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疑)·서징(庶徵)·오복(五福)을 말함.
  • [註 260]
    부월(鈇鉞) : 형벌.
  • [註 261]
    노위(魯衛) : 형제의 나라.
  • [註 262]
    염황(炎荒) : 남쪽의 덥고 거친 곳.
  • [註 263]
    대덕(大德) : 정조를 이름.
  • [註 264]
    왕기(王畿) : 왕도(王都) 부근의 지역.
  • [註 265]
    붕천(崩天) : 부왕(父王) 정조의 승하를 이름.
  • [註 266]
    좌도(左道) : 유교(儒敎)에 위배되는 다른 종교.
  • [註 267]
    백련교(白蓮敎) : 중국 송대(宋代) 이후에 성행된 민간의 비밀 결사 종교로, 남송(南宋) 초엽에 자조자원(慈照子元)이 제창하였음. 청나라 가경(嘉慶) 원년(1796)부터 9년 동안에 걸쳐 이 교도(敎徒)들이 대규모적인 반란을 일으켜, 하남(河南)·사천(四川) 등의 여러 성(省)들을 휩쓸었는데, 가경 9년(1804)에 이르러 평정되었음.
  • [註 268]
    양호(洋胡) :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가리킴.
  • [註 269]
    주(周)나라태강(太姜)의 서우(胥宇)한 것 : 태강(太姜)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할머니이며 고공 단보(古公亶父:뒤에 추존하여 태왕(太王)이 됨)의 비(妃)로, 서융(西戎)의 잦은 침노에 못견디어 태왕이 빈(豳) 땅에서 기산(岐山) 아래로 도읍을 옮길 때 함께 와서 집을 짓고 살 곳을 정하였는데, 정순(貞順)한 부덕(婦德)이 있어 뒤의 주나라의 왕업(王業)이 번창하는 기초가 되었음.

○乙卯/頒討逆敎文:

若曰。 "慈旨誕降, 奠宗祊於萬年, 天討夬行, 播脩誥於八域, 格爾有衆, 聽我無譁。 夫義理之於國家, 如元氣之在天地, 一毫差而千里謬, 所貴乎善善惡惡、是是非非, 三綱立而九法明, 夫然後君君臣臣, 父父子子。 惟我先王, 以高百世之德, 有大一統之權, 十行初元之綸, 象魏懸法, 一部《明義》之錄, 斧鉞开威。 豈意之近親, 潛懷濞倫之異志? 兩朝特置崇秩, 罔念圖報之方, 頃年薄竄炎荒, 全無畏罪之意。 締結當國之柄相, 將欲何爲, 嘯聚嗜利之凶徒, 恣行不法。 某樣道理之章, 逞移國之手, 顧瞻他日之供, 作結婚之階, 後先譸張, 表裏排布, 聲氣臭味之若不相合, 情節脈絡之脗然交符, 莫不以逆爲凶窩, 視逆爲奇貨, 賊不兩立, 神人所共誅。 樂任, 天生孔壬, 世濟元惡, 時有嚴公子之目, 席父勢而盜弄朝權, 罪浮南小人之奸, 變國是而戕害善類。 自知見棄於淸議, 角立門庭, 深憚則哲之聖聰, 力抗君父, 王府之鐵案昭載, 國人之輿憤沸騰。 然猶大德曰 ‘生’, 久矣曲貸其死, 城近島, 至許與妻孥同居, 敦府華銜, 有若待戚畹故事, 縱大聖因心之友, 常欲源源而來, 伊群凶聚首之謀, 奈彼眈眈而視? 眇予小子, 叨承丕基, 惟耿然一心, 思繼志述事之義, 每怵焉四顧, 有臨深履薄之憂。 于斯時也, 亂本假息王畿, 凶魁讎視宗國, 崩天之慟普切, 謂機會之可乘, 揭日之義莫嚴, 欲漫漶而乃已, 誑愚氓而皷左道, 安知無白蓮黃巾, 矯先旨而亂淸朝, 殆甚於蒼蠅貝錦, 忍見封禮義之俗, 自乖倫常? 不意奎壁密邇之班, 又出妖孽。 假托洋之設敎, 窩窟直接其家人, 引喩 之少恩, 肝腑如見於筵席。 今若當斷而不斷, 有非期刑于無刑。 惟我慈聖, 夙著 太姜胥宇之功, 誕敷 宣仁垂簾之治, 永念滋蔓之禍, 渙發如綍之言。 其奈罪惡之貫盈, 深軫恩法之輕重。 一國皆曰可殺, 三尺不容久稽。 乃於五月二十九日, 樂任賜死。 旣擧上告之儀, 寧無下布之典? 於戲! 事在肘腋呼吸之頃, 何幸掃除, 變生骨肉肺腑之間, 秪益傷惋。 正義伸法, 固理之不誣, 稱慶推恩, 豈予心之可忍? 爰推后泣辜之意, 庸敷庭籲衆之辭。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李晩秀製。】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399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司法) / 정론(政論) / 변란(變亂) / 어문학(語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