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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권, 순조 1년 3월 18일 갑오 3번째기사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헌부에서 정약전·정약용·정창순 등을 탄핵하다

헌부(憲府) 【집의 유경·장령 홍광일이다.】 에서 아뢰기를,

"근일에 요사스럽고도 흉패(凶悖)한 사학(邪學)이 열화(烈火)같이 치열해져서 형세의 위급함이 하늘을 뒤덮고 있으니, 진실로 국가의 화급한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자성 전하께서 특별히 밝은 전지(傳旨)를 내리셔서 빨리 엄중하게 핵실(覈實)하도록 하셨으므로, 요요 난령(妖腰亂領)150) 들이 차례로 형륙(刑戮)에 나아감에 따라 거의 근저가 뽑히고 소굴이 소탕되었습니다. 그런데 아! 저 정약전(丁若銓)·정약용(丁若鏞) 형제는 정약종(丁若鍾)의 동기(同氣)로서, 몰래 이승훈(李承薰)에게 요서(妖書)를 받아 밤낮으로 탐혹(耽惑)하여 명교(名敎)를 어지럽히고 윤리(倫理)를 멸절시켰으니, 세상에서 지목받은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지금 엄중하게 추국하는 아래에서 처음에는 미혹되었으나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는 말은 모두 꾸며대어 항거한 것이며, 통렬하게 만회한 자취는 끝내 이를 증명할 수 없었으니, 깊이 빠져들어 옛날과 다름이 없음을 미루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죄를 감하여 살려주어 정배(定配)하는 데 불과하였습니다. 대저 김백순(金伯淳)은 그 같은 처지(處地)로서 사경(邪逕)에 투입(投入)하여 온갖 요사스럽고도 간사한 짓을 저지르며 점차 물들어 고혹되었는데, 구핵(究覈)하던 날에는 장황하게 과장하였고, 마침내 윤리를 훼상(毁傷)시키고 상도(常道)를 패몰(敗沒)시키는 흉설(凶說)을 방자하게 발설함으로써 스스로 이적(夷賊)·금수(禽獸)의 지경에 돌아가는 것을 달갑게 여겼습니다. 그 죄악을 논하면 홍낙민(洪樂敏)의 무리와 아울러 대벽(大辟)으로 처치하는 것이 마땅한데, 갑자기 추조(秋曹)에 옮겨 놓고 아직 방헌(邦憲)을 바로잡지 않고 있으니, 여정(輿情)의 울분함이 오래 될수록 더욱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오석충(吳錫忠)에 이르러서는 더욱 극도로 흉참합니다. 본래 흉추(凶醜)의 유종(遺種)으로서, 그 집안이 점차 사학(邪學)에 물든 실상은 아무런 이의 없이 자복(自服)하였으니 이미 이것이 그의 용서받지 못할 단안(斷案)인 것입니다. 몰래 음도(陰圖)를 품고 흉얼(凶孼)과 교통하며 암지(暗地)에서 주무한 실상이 이가환(李家煥)의 초사(招辭)에서 정녕하게 증명되었으며, 여러 차례 왕래한 자취는 그가 공초(供招)하여 사실을 자백한 데에서 밝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만환(漫漶)한 계책을 내어 혹 말하기를, ‘그 힘이 없지 않았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형용할 수 없다.’ 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실정을 말하였다가 숨겼다가 하면서 한결같이 저뢰(抵賴)하였으니, 그 정절(情節)을 구명해 보면 만 번 죽여도 오히려 벌이 가벼울 것인데, 어떻게 차율(次律)로 감단(勘斷)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이기양(李基讓)의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더라도 아들로는 깊이 빠져든 이총억(李寵億)이 있고, 복법(伏法)한 삼흉(三凶)과 사돈을 맺으니 사괴(邪魁)라는 지목이 온 세상에 왁자하게 전해졌으며, 속여서 유혹하는 말로 여주(驪州)·이천(利川)에서 선동하여 감히 흉악하고도 완패(頑悖)한 버릇을 자행하였으나, 끝내 죄상을 자복하는 공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갑자기 작처(酌處)하라는 명을 내리셨으니, 여정(輿情)의 울분함이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청컨대, 신지도(薪智島)에 정배한 죄인 정약전, 장기현(長鬐縣)에 정배된 죄인 정약용, 추조의 죄인 김백순, 임자도(荏子島)에 도배(島配)된 죄인 오석충, 단천부(端天府)에 정배된 죄인 이기양은 다시 왕부(王府)로 하여금 엄중하게 국문을 가하여 기필코 실정을 알아내게 한 다음 흔쾌히 방형(邦刑)을 바로잡게 하소서. 예로부터 난역(亂逆)이 화심(禍心)을 포장하고 의리를 현혹시켜 음계(陰計)를 몰래 이루려 한 것이 어찌 남학(南學)에서 상소하여 거론한 것과 같이 지극히 흉참(凶慘)한 경우가 있었겠습니까? 아! 저 정창순(鄭昌順)은 본래 보잘것 없는 소인배로서 음흉한 성품을 지닌 자인데, 밤낮으로 경영하는 것은 오로지 공의(公議)를 배신하여 사의(私意)를 이루는 것이었고, 평생 동안의 기량은 모두 선류(善類)를 살해(殺害)하여 패몰(敗沒)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임자년151) 여름에 미쳐서는 틈탈 만한 기회라고 여겨 역적 정동준(鄭東浚)을 붙좇으며 그 뜻을 받고 그 지시를 따랐으며, 인하여 이조원(李祖源)·심기태(沈基泰)의 무리와 주무하고 화응(和應)하면서 그가 우두머리가 되고 저 사람들은 부곡(部曲)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하원(朴夏源)을 뽑아 소두(疏頭)를 삼고, 유협기(柳協基)가 그 뜻을 따라 소장(疏章)을 짓고는 많은 무리를 불러 모아 놓고 느닷없이 소장을 올렸는데, 겉으로는 천양(闡揚)을 칭탁하면서 속으로는 선류(善類)를 장해하여 음계(陰計)를 터무니없이 주장하고 은밀하게 기틀을 배포하려 하였으나, 정적을 숨길 수가 없었으므로 공의가 점차 비등(沸騰)해졌던 것입니다. 지금 의리를 크게 밝히고 국시(國是)를 크게 바로잡는 날을 당하여 결단코 버려두고 논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청컨대, 고 판서 정창순에게 관작을 추탈하는 율을 빨리 시행하시고, 전 승지 유협기에게 찬배의 율을 시행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마땅히 대신들에게 하문하여 처분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76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사상-서학(西學)

  • [註 150]
    요요 난령(妖腰亂領) : 허리를 자르고 목을 베어 죽여 마땅한 요악(妖惡)한 자를 말함.
  • [註 151]
    임자년 : 1792 정조 16년.

○憲府 【執義柳畊、掌令洪光一】 啓曰: "近日妖凶之邪學, 熾如烈火, 勢急滔天, 實爲國家呼吸之憂。 而幸賴我慈聖殿下, 特降明旨, 亟令嚴覈, 妖腰亂領, 次第就戮, 庶幾根柢拔去, 窩窟掃蕩。 而噫! 彼丁若銓若鏞兄弟, 自以逆之同氣, 暗受承薰之妖書, 日夜耽惑, 悖亂名敎, 斁滅倫綱, 爲世指目, 積有年所。 今於嚴鞫之下, 始迷終悟之說, 都是粧撰力拒, 痛挽之迹, 了無可證, 沈溺之自如, 可以推知。 而遽然傅生, 不過定配而止。 若夫金伯淳, 以若地處, 投入邪逕, 千妖百奸, 浸染蠱惑, 乃於究覈之日, 鋪張誇詡, 末乃敢以傷倫敗常之凶說, 肆然發口, 甘自歸於夷狄禽獸之域。 論其罪惡, 宜與樂敏輩, 竝置大辟, 而遽移秋曹, 未正邦憲, 輿情憤菀, 久而愈激。 至如吳錫忠, 尤極凶且慘矣。 本以凶醜之遺種, 渠家之漸染邪學, 無辭自服, 已是渠罔赦之斷案。 而潛懷陰圖, 交通凶孽, 暗地綢繆之狀, 家煥之證招丁寧, 屢次往來之迹, 渠供之輸款昭然。 敢生漫漶之計, 或曰, ‘不無其力。’ 或言, ‘無以形容,’ 終始呑吐, 一向抵賴, 究厥情節, 萬戮猶輕, 豈可以次律勘斷乎? 雖以李基讓事言之, 子有沈溺之寵億, 査結伏法之三凶, 邪魁之目, 擧世喧傳, 誑誘之說, 煽動, 敢肆凶頑之習, 終無就伏之供。 而遽下酌處之命, 輿情之未伸, 容有極哉? 請薪智島定配罪人若銓長鬐縣定配罪人若鏞、秋曹罪人伯淳荏子島島配罪人錫忠端川府定配罪人基讓, 更令王府, 嚴加鞫問, 期於得情, 夬正邦刑。 從古亂逆之包藏禍心, 眩亂義理, 潛逞陰圖者, 豈有如南學疏擧之至凶且慘者哉? 噫! 彼鄭昌順, 本以宵小之徒, 兼以陰譎之性, 晝宵經營, 專事背公而濟私, 平生伎倆, 都是戕善而敗類, 及當壬子之夏, 謂 ‘機可乘,’ 附麗賊, 受其旨訣, 聽其指使, 仍與李祖源沈基泰輩, 綢繆和應, 渠爲窩主, 彼爲部曲。 朴夏源募爲疏頭, 柳協基從以製疏, 嘯聚繁徒, 闖然投呈, 外托闡揚, 內售戕害, 其陰計之譸張, 密機之排布, 情跡莫掩, 公議轉沸。 當此義理大明、國是大正之日, 決不可置而不論。 請故判書鄭昌順, 亟施追奪官爵之典, 前承旨柳協基, 施以竄配之典。" 批曰: "當詢大臣, 處之。"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76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사상-서학(西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