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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권, 순조 1년 2월 21일 정묘 1번째기사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경기 감사 이익운이 사학 죄인 정약종·권일신 등을 탄핵하다

경기 감사 이익운(李益運)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이른바 사학(邪學)은 곧 이적(夷狄)의 요법(妖法)이니, 생령(生靈)에게 해독을 끼치고 인륜을 멸절시키는 바는 천하 만국에 없었던 것입니다. 신이 이에 대해 매양 은연중에 근심하고 깊이 염려하여, 의형(劓刑)으로 그들을 진멸하여 양민들이 물들지 않게 할 뜻으로서 조정에 들어가 전석(前席)에서 부주(敷奏)하였고, 나와서는 친척들에게 경계를 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학에 물든 무리가 신을 사사로운 원수처럼 미워하여 국청을 설시한 처음에 이가환(李家煥)정약용(丁若鏞)의 혈당(血黨) 가운데 법망에서 벗어난 자들은 신이 그 무리들의 일을 적발해 냈다고 하여 심지어는 신의 집을 끌어들여 무함함으로써 저희들의 마음을 흔쾌하게 하고자 했다고 하였었습니다. 비록 신이 강건하지 못하나, 어찌 혹시라도 저 무리의 흉언에 꺾여서 동요되어 한 번 밝게 변명할 것을 생각지 않겠습니까? 대저 이 무리들은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끼리도 성기가 상통하고 천리 밖에서도 마음이 일치되어 그 무리를 사랑함이 골육보다 더하고, 거짓을 꾸며 은밀히 숨기는 것이 귀역(鬼蜮)과 같았으며, 형신(刑訊)의 아래에서도 혀를 깨물며 실토하지 않고, 백 사람이 한 동아리가 되어 마치 소리가 메아리치고 그림자가 따르는 듯하였습니다. 만약 흉사한 무리가 규결(糾結)하여 무리를 불러 모으면 국가의 근심이 어찌 백련교(白蓮敎)094) ·황건적(黃巾賊)에 그치겠습니까? 서울에서 기전(畿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호미를 잡은 농부로부터 비천한 여인들까지 점차 물들지 않은 이가 없는데, 그 우두머리를 구명해 보면 권일신(權日身)이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권일신이 죄를 받아 죽은 후에도 그의 동당(同黨)은 오히려 개전(改悛)할 줄 모른 채 옛날처럼 난만하게 끊임없이 왕래하였으니, 권철신(權哲身)의 온 집안이 악에 물든 실정은 자백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밝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승훈(李承薰)은 천금을 가지고 서책을 구입하여 널리 경외(京外)에 배포하였으니, 그가 한 번 연경(燕京)에 다녀온 후에 허다한 백성을 그르쳤습니다. 조그만 불을 끄지 않으면 온 벌판을 불사를 것이며, 졸졸 흐르는 물을 막지 않으면 하늘에 사무칠 것이니, 이는 그 죄가 비록 천만 번 죽인다 하더라도 어떻게 대속죄(代贖罪)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부도한 정약종과 처남·매부의 관계를 맺었으니, 정약종의 사서(邪書) 또한 이승훈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가환(李家煥)은 그의 전후 좌우에 있는 사람 가운데 사학에 물들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문학으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는데, 그의 생질이 서책을 사 가지고 온 이래로 만약 오훼(烏喙)같이 보고 오염되는 것처럼 여겨 물리치고 논박(論駁)하였다면, 그의 인척(姻戚)들이 어찌 혹시라도 이와 같이 고혹되어 훈염(薰染)될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스스로 확고하게 단절하지 못하고 똑같은 무리가 되어 함께 오염되었음이 밝게 드러나 숨길 수가 없으니, 교주(敎主)의 지목은 그가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그와 같은 흉괴(凶魁)는 율(律)을 갑절 가해야 마땅합니다. 정약용(丁若鏞)에 이르러서는 역적 정약종의 아우가 될 뿐만 아니라 윤지충(尹持忠)은 곧 그의 내종 사촌(內從四寸)이니, 윤지충이 복법(伏法)된 후에 저 무리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요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낙민(洪樂敏)호서(湖西)에 있을 때부터 이존창(李存昌)과 친숙하다는 말이 멀고 가까운 지역에 두루 전파되었으니, 당여(黨與)의 주벌(誅罰)을 어떻게 면할 수 있겠습니까? 오석충(吳錫忠)권일신의 가까운 인척인데, 권일신의 아들과 조카가 도성(都城)에 출입할 적마다 그가 받아들여 그의 집에 머물게 하였으니, 진실로 이른바 포도수(逋逃藪)095) 입니다. 홍교만(洪敎萬)은 사술(邪術)을 철저하게 믿어 정약종의 무리와 주무하고 체결(締結)하였음을 세상에서 지목받고 있으며, 그의 당내(堂內) 지친(至親)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는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떠들썩하게 전해지고 있어 귀가 있는 사람은 모두 들었습니다. 이러한 흉사(凶邪)한 무리는 단연코 일률(一律)을 시행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진달한 바가 좋으니, 대신에게 품처(稟處)하게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67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사상-서학(西學)

  • [註 094]
    백련교(白蓮敎) : 송(宋)·원(元)·명대(明代)에 걸쳐 중국 각지에서 성행한 신흥 종교. 남송(南宋) 초에 백련종(白蓮宗)이 일어나더니 그 말류에 이르러 주술적 경향이 짙어지자 송·원대부터 지주 관헌의 탄압을 받았다. 여기서 표방하는 미륵불신앙은 당시 생활난에 허덕이던 서민층에게 쉽게 수용되었고 종교적 비밀 결사까지 만들어 자주 반란을 일으켰음.
  • [註 095]
    포도수(逋逃藪) : 죄를 짓고 도망간 사람을 숨겨 주는 소굴.

○丁卯/京畿監司李益運疏。 略曰:

所謂邪學, 卽夷狄之妖法也。 其流毒生靈, 滅絶彝倫, 天下萬國之所未有也。 臣於此, 每嘗隱憂而深慮, 以劓殄滅之, 俾無易種之意, 入而敷奏於前席, 出而告戒於親戚。 故染邪之類, 嫉臣如私讎, 設鞫之初, 血黨之漏網者, 謂臣挑出渠輩之事, 至欲誣引臣家, 以快渠輩之心云。 而臣雖不武, 豈或挫動於渠輩之凶言, 不思所以一番洞卞之乎? 大抵此輩, 同聲, 千里一心, 愛護其類, 浮於骨肉, 飾詐秘諱, 隱如鬼蜮, 刑訊之下, 咋舌不吐, 百人雷同, 如響如影。 以若凶邪之徒, 紏結嘯聚, 則國家之虞憂, 奚止於白蓮黃巾之比也? 自京而畿, 甚至鋤耰棘矜, 下賤女流, 莫不浸染, 而究其窩主, 則權日身是耳。 日身罪斃之後, 渠之同黨, 尙不知改, 依舊爛漫, 往來不絶, 則權哲身之全家稔惡, 不待輸款而皎然矣。 李承薰, 則千金購書, 廣布京外, 以渠之一番行, 詿誤許多蒼生。 炎炎涓涓, 將至於燎原而滔天。 此其罪雖千剮萬斫, 將何以贖之哉? 況不道之若鍾, 結爲娚妹, 則若鍾之邪書, 亦安知不由於承薰乎? 李家煥, 則渠之左右前後, 無非邪類。 渠以文學, 名於世, 其甥之買書以來, 若能視若爲喙, 避若汚染, 眞箇闢駁, 則渠之姻戚, 豈或蠱惑薰染之若是耶? 其不自割斷, 同流合汚, 昭然難掩, 敎主之目, 非渠而誰? 如渠凶魁, 當用加倍之律。 至於丁若鏞, 則非但以賊爲兄, 持忠卽渠之內從, 則持忠伏法之後, 渠輩之得保首領, 亦云倖矣。 洪樂敏自在湖西, 親熟存昌之說, 傳播遠邇, 則黨與之誅, 爲得免乎? 吳錫忠, 則日身之切姻, 而日身子侄之出沒輦轂者, 受而舍之, 眞所謂逋逃藪也。 洪敎萬, 則酷信邪術, 與若鍾輩, 綢繆締結, 爲世指目, 渠之同堂至親, 至欲殺之, 萬口喧傳, 有耳皆聞。 此等凶邪之類, 斷當竝施一律。

批曰: "所陳好矣。 大臣稟處。"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67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사상-서학(西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