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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권, 순조 1년 2월 5일 신해 1번째기사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차대하다. 신료들과 사학(邪學) 등에 관해 논의하다

차대(次對)하였다. 형조 판서 이의필(李義弼)이 아뢰기를,

"신이 형관(刑官)으로 재직하면서 구구한 소회(所懷)가 있어서 감히 이를 앙달합니다. 이른바 사학(邪學)이 윤리(倫理)를 멸절시키고 도리를 어그러뜨림은 도교와 불교, 양주(楊朱)묵적(墨翟)보다 심한데, 그 전해 내려오는 해독이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자성 전하께서는 일월(日月) 같은 명철(明哲)로 도깨비 같은 무리의 정상을 굽어 통촉하시고 거듭 엄금하셔서 심지어는 역률(逆律)로 감단(勘斷)하겠다고 하교하셨으며, 유사(有司)의 신하는 지금 바야흐로 마음을 다해 봉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추악한 무리 가운데 최필공(崔必恭)과 같은 자는 진실로 이들의 거괴(巨魁)로서 돼지나 물고기보다 더 사리에 어둡고 완악하여 끝내 감화되지 않고 있으니, 결단코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감단(勘斷)하면 징계하는 도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대신들에게 하문하여 처리하소서."

하였는데, 영의정 심환지(沈煥之)가 말하기를,

"사학이 세도(世道)에 대해 깊고도 오랜 근심이 되었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아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다는 논리이니, 도리를 멸절시키고 상도(常道)를 어지럽힌 일은 손꼽아 이루 다 셀 수가 없습니다. 다만 선대왕(先大王)께서는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성덕(盛德)으로 반드시 그들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 감화시키고자 하셨으니, 이는 진실로 대성인(大聖人)의 함용(含容)하시는 성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 무리는 끝내 감화될 줄 모른 채 갈수록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최필공호서(湖西)이존창(李存昌)에 이르러서는 저들이 선조(先朝)께 영구히 사학을 버리겠다고 공초를 바친 적이 있었는데, 이제 또 사학을 하고 있으니, 그들은 사리에 어둡고 완악하여 감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죽이는 것을 어찌 어렵게 여겨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 무리는 만약 일률(一律)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징계하여 면려할 방도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모름지기 좌상·우상과 상세히 의논하여 다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사학에서 거괴로 알려진 자가 몇 사람이나 되는가?"

하니, 심환지가 말하기를,

"상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마는, 포청(捕廳)에 잡힌 자들 가운데 대개 사족(士族)이 많았는데, 또한 단서가 드러난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대개 사족으로서 사학을 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더욱 쉽사리 미혹된다고 합니다."

하자,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듣건대, 미혹됨이 심한 자는 결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어도 오히려 후회함이 없다고 하는데, 만약 협종(脅從)하는 무리는 스스로 마땅히 그 주벽(誅辟)을 보고서야 그칠 줄 알게 될 것이다. 또 그 이야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 책이 있을 것이니, 경외(京外)에 엄중하게 신칙해서 특별히 수색하여 거두어 불태우게 하고, 붙잡힌 간사하고 추악한 자들은 경중에 따라 율(律)을 적용한다면, 어찌 금지할 도리가 없겠는가?"

하니, 심환지가 말하기를,

"그 괴수를 다스리고 책을 불태우라고 하신 하교는 진실로 지극히 마땅합니다. 듣건대 저 무리가 설법(說法)하는 서책(書冊)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금단(錦緞)으로 장식해서 이를 소중히 여겨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금장(錦帳)·염주(念珠) 따위가 있는데 모두 설법하는 데 쓰인다고 합니다. 이러한 물건을 또한 한결같이 아울러 수색해서 불태우게 함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최필공·이존창은 지난해 갇혔을 때 명백하게 사학을 버리겠다고 공초를 바쳤었는데, 지금 또 사학을 하고 있다고 하니, 이는 사학 이외에 또 임금을 속인 죄를 첨가시켜야 할 것이다. 임금을 속이는 것은 역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률(一律)로 감단하더라도 애석하게 여길 것이 없다."

하였다. 심환지가 말하기를,

"고(故) 판서(判書) 이최중(李最中)은 귀양을 가게 되어 죽은 후에 이미 죄명(罪名)을 효주(爻周)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지금 두 대신(臺臣)을 신설(伸雪)할 때를 당하여 조정에서 은졸(隱卒)의 은전을 해가 오래 되었다 하여 치제(致祭)를 시행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청컨대 해조(該曹)로 하여금 전례(前例)에 의거하여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심환지가 말하기를,

"고 지평 유성한(柳星漢)임자년074) 에 한 번 상소한 후 사단(事端)이 겹쳐 발생되었으나, 그 성토한 바는 본정(本情) 밖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에 고 상신 유언호(兪彦鎬)가 진소(陳疏)하여 이런 사실을 폭백(暴白)하니, 선조께서 가납(嘉納)한다는 하교를 받기에 이르렀었습니다. 지금 몸이 죽은 후에 대간(臺諫)의 예부(例賻)를 시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해조로 하여금 전례를 상고하여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심환지가 말하기를,

"고 지평 김정묵(金正默)은 경술(經術)과 행의(行誼)로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았는데, 불행하게도 가까운 친족에서 흉역이 나왔으므로, 심지어 유일(遺逸)을 삭제하는 거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번 선조께서는 연석(筵席)에서 하교하실 때마다 김정묵의 유일을 회복시키는 일에 대해 여러 번 성념(聖念)이 미쳤으며, 또한 일찍이 연신(筵臣)에게 하문하셨습니다. 그 친속(親屬)의 촌수를 계산하건대 이미 연좌에서 모면하게 되었는데 죄 없이 벌을 받았으니 많은 선비들이 이를 슬퍼하였습니다. 또 경연관 송치규(宋稚圭)는 그의 문인으로서 이로 인해 사진(仕進)하기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선조의 유의(遺意)를 본받아 많은 선비들의 희망을 위로하시고, 유신(儒臣)이 사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은 오로지 우리 성상께서 널리 하문하셔서 재처(裁處)하시는 데 달려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김정묵은 유일을 회복시키는 것이 옳다."

하였다. 우승지 최헌중(崔獻重)이 말하기를,

"이른바 사학(邪學)은 생민(生民)이 있었던 이래로 들어 보지 못한 요술(妖術)로서, 인기(人紀)를 멸절시키는 것이 불문(佛門)의 화변(禍變)보다 급하고, 천도(天道)를 더럽히는 것이 무속(巫俗)의 주술(呪術)보다 심합니다. 양주(楊朱)·묵적(墨翟)의, ‘아버지가 없고 임금이 없다.’는 것은 전해 내려온 폐습이 해롭다는 사실을 말하는 데 지나지 않지만, 지금 이 사학은 전해 내려온 폐습을 기다리지 않고도 먼저 그 자신으로부터 이미 부모도 없고 군신도 없다고 여기니, 오로지 그 자신만 빠져들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현혹시키고 많은 사람을 유혹해서 그 도당(徒黨)을 만들고는 그 요술로 천하를 바꾸려고 생각하는 것이므로, 이는 곧바로 한결같이 성세(聖世)의 요얼(妖孼)들이고 오도(吾道)의 난적(亂賊)들인 것입니다. 밤중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도적을 만들고 역적을 만들고 있으니, 장차 하지 못하는 짓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듣건대, 법부(法府)에 붙잡힌 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단서가 낭자하여 거의 요원의 불길과 같다고 하니, 박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고질이 된 자는 진실로 애석하게 여길 것이 없지만, 이에 오염되지 않은 자는 오히려 징려(懲勵)하여 이에 빠져드는 데 이르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이는 진실로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방도에 근거하여 죄인을 죽이는 지극히 어진 성덕(盛德)인 것입니다. 최필공·이존창과 같이 끝내 나쁜 짓을 행하는 것이 이미 드러났는데도 한결같이 저뢰(抵賴)하는 자는 감화를 받아 따르려는 뜻이 없는 자들이니, 아울러 역률(逆律)을 시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밖에 면모만 바꾸고 마음을 바꾸지 않는 무리는 비록 사람마다 모두 주멸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사대부로서 깊이 빠진 자는 율(律)을 갑절 더 적용함이 마땅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비록 묵형(墨刑)이 없다 하나, 지금 만약 경면(鯨面)의 형을 베풀어 그 무리를 구별함으로써 은연중 자취를 숨겨 사람들 사이에 끼지 못하게 한다면 이를 본 사람들이 장차 저절로 그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척연히 두려움을 알게 될 것이니, 금법(禁法)을 기다리지 않고도 저절로 소멸되기에 이를 것입니다. 남몰래 살펴서 적발하는 방도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데, 근래에 듣건대 경외(京外)에서 조령(朝令)에 의거하여 차례로 거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곡(輦轂)은 곧 교화의 근본이 되는 곳이니, 먼저 경조(京兆)075) 에서 오부(五部)에 신칙(申飭)하여 엄중히 과조(科條)를 세우고 절목(節目)을 만든 다음 방곡(坊曲)에 효유함으로써 도깨비 같은 무리로 하여금 그 형세를 도피할 수 없게 한다면, 거의 착하게 되어 악한 것을 멀리하게 하는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육형(肉刑)은 시행할 수 없다. 그 나머지 여러 조목은 묘당에 내려 품처하게 해서 영구히 종식시키는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기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63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司法) / 정론(政論) / 호구(戶口) / 사상-서학(西學) / 풍속-예속(禮俗)

  • [註 074]
    임자년 : 1792 정조 16년.
  • [註 075]
    경조(京兆) : 한성부(漢城府).

○辛亥/次對。 刑曹判書李義弼曰: "臣待罪刑官, 有區區所懷, 敢此仰達矣。 所謂邪學之滅倫悖理, 有甚於老、佛、楊、墨, 其流之害, 將不知至於何境。 慈聖殿下日月之明, 俯燭鬼魅之情狀, 申嚴其禁, 至下以逆律勘斷之敎, 有司之臣, 今方盡心奉行。 而第其醜類中如崔必恭者, 實是巨魁, 冥頑有甚於豚魚, 終不感化, 決難容貸, 何以勘斷, 則可以爲懲創之道乎? 請下詢大臣處之。" 領議政沈煥之曰: "邪學之爲世道深長慮, 豈勝言哉? 其所爲說, 皆無父無君之論, 而滅理亂常之事, 指不勝僂。 特以先大王好生之德, 必欲人其人, 而使之感化, 此誠大聖人含容之盛德, 而渠輩終不知感, 愈往愈熾。 至若崔必恭及湖西之李存昌, 渠在先朝, 以永棄其學納供, 而今又爲之, 則其冥頑難化, 可知矣。 殺一人命, 豈非難愼, 而此輩若不用一律, 則無以懲勵矣。" 上曰: "須與左、右相, 爛商更奏也。" 大王大妃敎曰: "邪學之以巨魁聞者, 爲幾人云乎?" 煥之曰: "未及詳知, 而被捉於捕廳者, 蓋多士族, 而亦有端緖之露出者云。 蓋士族多爲之, 故愚民尤易惑云矣。" 大王大妃敎曰: "此非細故也。 聞其惑之甚者, 暋不畏死, 死猶無悔云, 而若其脅從之類, 則自當見其誅辟而知戢矣。 且其爲說, 必有其書, 嚴飭京外, 別加搜索, 收聚燒之, 邪醜之現捉者, 從輕重用律, 則豈無禁止之道乎?" 煥之曰: "治其魁、火其書之敎, 誠至當矣。 聞渠輩多有設法之書冊, 飾以錦緞, 寶藏而愛玩之。 又有錦帳、念珠之屬, 皆其設法之所用也。 此等物, 亦宜一竝搜索, 而燒之矣。" 大王大妃敎曰: "崔必恭李存昌之年前囚供, 明白納招, 而今又爲之。 此則邪學之外, 又添欺君之罪。 欺君者, 非逆而何? 斷以一律, 無所惜矣。" 煥之曰: "故判書李最中, 被謫身故之後, 罪名旣命爻周矣。 今當兩臺臣伸雪之時, 朝家隱卒之典, 不可以年久而勿施致祭。 請令該曹, 依例擧行。" 從之。 煥之曰: "故持平柳星漢壬子一疏之後, 事端層生, 其所聲討, 出於本情之外。 是以, 故相兪彦鎬, 陳疏暴之, 至蒙先朝嘉納之敎。 今於身故之後, 臺侍例賻, 不可不施。 請令該曹, 按例擧行。" 從之。 煥之曰: "故持平金正默, 經術行誼, 士林之所推詡, 而不幸凶逆近出, 至有削逸之擧。 每承先朝筵敎, 以正默復逸, 屢致聖念, 亦嘗下詢於筵臣矣。 計其親屬, 旣在免坐, 無罪被罰, 士多悲之。 且經筵官宋稚圭, 以其門人, 因此難進。 體先朝之遺意, 慰多士之顒望, 開儒臣進身之路, 惟在我聖上, 博詢而裁處矣。" 上曰: "金正默復逸, 可也。" 右承旨崔獻重曰: "所謂邪學, 自有生民以來, 所未聞之妖術也。 滅人紀急於佛禍, 褻天道甚於巫呪。 之無父無君, 此不過言其流弊之爲害, 而今此邪學, 則不待流弊, 而先自渠身, 已無父母, 又無君臣, 不獨渠身之自陷而已。 惑世誘衆, 別作徒黨, 思欲以其術易天下者, 直一聖世之妖孽, 吾道之亂賊也。 昏夜嘯聚, 爲盜爲逆, 將無所不爲矣。 今聞見捉於法府者, 非止一二, 端緖狼藉, 殆同燎原之火, 不可不撲滅。 已痼者, 固無所惜, 不染者, 猶可懲勵, 而不至胥溺。 此誠生道殺人之至仁盛德也。 如崔必恭李存昌之怙終已現露, 而一味抵賴, 無意歸化者, 幷施逆律。 外此面革而心不革之類, 雖不得人人而盡誅, 若其士夫之沈溺者, 宜用加倍之律。 我朝雖無墨刑, 今若黥其面, 而別其類, 俾不得厭然掩跡, 自齒人類, 則人之見之者, 必將油然而知恥, 惕然而知懼, 不期禁而自至消滅矣。 至於詗察摘發之道, 誠莫要於五家統之法, 近聞京外, 依朝令次第擧行云。 而輦轂卽敎化之本, 先自京兆, 申飭五部, 嚴立科條成節目, 曉諭坊曲, 俾魑魅莫逃其形, 則庶可有遷善遠惡之實效矣。" 上曰: "肉刑不可爲。 其餘諸條, 下廟堂稟處, 期有永熄之效。"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63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司法) / 정론(政論) / 호구(戶口) / 사상-서학(西學)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