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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권, 순조 1년 2월 2일 무신 1번째기사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과거 약원의 왕대비 문안 철폐에 관해 부호군 최광태가 상소하다

부호군 최광태(崔光泰)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고 참의 이택징(李澤徵)과 고 정언 이유백(李有白)을 복관(復官)시키라는 명을 내리셨으므로 자신도 모르게 벌떡 있어났으며, 이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두 신하는 곤전(坤殿)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지절(志節)을 다 바쳤으니, 천하 만세에 할 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벽혈(碧血)을 오랫동안 지녀오며 단서(丹書)를 바꾸고자 하였는데, 구천지하(九泉之下)에 있는 이에 대해서 위충(危忠)을 살피시고 20년의 세월이 흘러간 후에 유원(幽冤)을 씻어 주었으니, 충신(忠臣)·의사(義士)로서 누군들 격앙하여 기개가 높아지지 않겠습니까마는, 신은 더욱 감개하여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바가 있습니다. 기억하건대, 옛날 임인년070) 에 반유(泮儒)들이 두 신하에 대해 토죄(討罪)하기를 청하였으나, 신은 명의(名義)를 돌아보고 애석하게 여겨 이론을 세우고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한편의 흉도들에게 미움을 받아 다른 사람을 사주하여 발계(發啓)한 때문에 8년 동안 해도(海島)에 유배되어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선대왕의 재조(再造)의 은혜를 받아 죄적(罪籍)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곧 총광(寵光)을 받게 되었지만, 평소 본뜻을 드러내지 못하여 양신(兩臣)이 받은 굴욕을 은연중에 통분스럽게 여겨 왔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비로소 저녁에 죽더라도 남는 유감이 없게 되었습니다. 아! 당시의 일을 오히려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한 번 역적 홍국영(洪國榮)이 흉언을 창도(倡導)하여 간계를 이루고자 한 때로부터 국세(國勢)가 위태해지고 민이(民彝)가 퇴폐해졌으니, 받들어 보필하는 직임에 있는 자는 오로지 정성과 힘을 다해 일에 따라 조호(調護)함이 마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약원(藥院)의 문안(問安)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이를 철폐(撤廢)하여, 궁부(宮府)의 안팎에서 곤전(坤殿)의 기거(起居)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 무릇 몇 년이었습니까? 흉적에게 부화 뇌동(附和雷同)하여 국모(國母)를 능멸한 죄를 진실로 온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분개해 하였는데, 특별히 양신의 입을 빌어 발론(發論)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종팽(宗祊)이 묵묵히 도와 나라의 운세가 태평을 회복하게 되고 천지가 화합하여 만물이 무성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습니까? 그런데 선조께서는 산택(山澤)과 같은 넓은 도량으로서 우선 또 함유(涵囿)하여 비록 명의(名義)와 분수를 범한 무리들이라도 일체 버려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존봉(尊奉)하는 도리에 있어서 진실로 더할 수 없이 엄중한 지위에 관계되는 바가 있으니, 이미 지난 일이라 하여 용서할 수 없음이 명백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신의 이 소장(疏章)을 묘당에 내려서 그 당시 수범(首犯)이 되는 상신(相臣)을 상고해 내어 그 죄를 밝혀 바로잡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마땅히 대신에게 하문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363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戊申/副護軍崔光泰疏。 略曰:

故參議李澤徴、故正言李有白, 復官命下, 不覺聳然起立, 而繼之以流涕也。 噫! 兩臣之爲坤殿竭忠盡節, 可謂有辭於天下萬世。 而碧血久藏, 丹書欲渝, 察危忠於九地之下, 洗幽冤於卄載之後, 忠臣義士, 孰不激昻增氣? 而臣則尤有所感慨, 而不能自已者。 記昔壬寅泮儒之請討兩臣也, 臣顧惜名義, 立異不參, 爲一邊凶徒之所仇嫉, 嗾人發啓, 八年海島, 備經百罹。 而特蒙先大王再造之恩, 得脫罪籍, 旋被寵光, 而常以本志之未暴、兩臣之受屈爲隱痛, 今而後始可以夕死而無餘憾矣。 噫! 當時事, 尙何言哉? 一自賊之倡凶逞奸, 國勢澟綴, 民彝斁絶, 其在承弼之任者, 惟當殫竭誠力, 隨事調護。 而不惟不此之爲, 至於藥院問安, 遽然廢撤, 致使宮府內外, 不知坤殿起居之爲如何者, 凡幾年所? 其附和凶賊, 凌蔑國母之罪, 實爲擧國臣民之所共憤惋, 而特借兩臣之口而發之耳。 何幸宗祊默佑, 邦運回泰, 天地訢合, 品物鬯遂? 而以先朝山藪之量, 姑且涵囿, 雖彼干名犯分之徒, 一切置而不問。 然在殿下尊奉之道, 苟有關涉於莫重莫嚴之地者, 則不可以事在旣往而有所容貸也明矣。 伏望, 下臣此疏於廟堂, 考出其時相臣之首犯者, 明正其罪焉。

批曰: "當下詢大臣矣。"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363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