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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권, 순조 1년 1월 25일 임인 1번째기사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차대하다. 우의정 서용보의 출사, 김치묵 등에 관해 논의하다

차대(次對)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가서 영접하겠다고 하였는데도 우상이 들어올 뜻이 없으니, 기강(紀綱)에 있어서 어찌 말이 되는가?"

하고,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내가 이미 극진하게 소절(昭晢)하였으니, 우상의 도리에 있어서 마땅히 국사(國事)의 중대함을 생각해야 할 것인데,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 어찌 지나치지 않은가?"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근래에 김치묵(金峙默)의 일로 인하여 상고하건대, 경자년063) 에 있었던 서정수(徐鼎修)의 한 소장(疏章)은 박재원(朴在源)의 소장 내용과 동일하였으니 그 수립한 바는 마땅히 의사를 표시하는 거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병조 판서 이조원(李祖源)은 정세를 한 번 펴도록 함이 마땅하니, 체직(遞職)을 허락하고, 그 후임에 기백(畿伯)을 주의(注擬)해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이조 판서 윤행임(尹行恁)이 말하기를,

"고 참의 이택징(李澤徵)·고 정언 이유백(李有白)임인년064) 의 옥사(獄事)는 사람들이 모두 지금까지 억울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택징·이유백이 그 당시 상소했던 것은 곤성(坤聖)을 위해 충성을 다해 진언한 것이었습니다. 신이 작년 가을에 삼가 선조(先朝)의 하교를 받들었는데, 이르기를, ‘이택징·이유백의 억울함은 내가 죄다 통촉한 바이므로, 금년 봄의 경례(慶禮) 때 신설(伸雪)하고자 했다가 하지 못하였다. 그대가 훗날 깨우쳐 주는 것이 좋겠다.’ 하셨으므로, 신은 감격하여 엄숙히 외어 가슴속에 새겼습니다. 만약 신이 말하지 않는다면 선조의 유지를 장차 후세에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두 신하를 복관(復官)하는 것이 마땅한지의 여부를 대신들에게 하문(下問)하여 처리하소서."

하였는데, 대신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택징·이유백의 일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억울하게 여기고 있으니, 우러러 선조의 유지를 따르는 것이 계술(繼述)하는 성대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르고, 이택징·이유백의 지속(支屬) 가운데 흩어져 정배되었던 자들을 석방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6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인사(人事)

○壬寅/次對。 上曰: "予以往迎爲敎, 而右相無意入城, 其在紀綱, 豈成說乎?" 大王大妃敎曰: "予今昭晣已盡, 則在右相道理, 宜念國事之重, 而不爲入來, 豈非過乎?" 上曰: "近因金峙默事考之, 徐鼎修庚子一疏, 與朴在源疏辭, 一般矣。 其所樹立, 宜有示意之擧。 兵判李祖源, 情勢宜令一伸, 許遞。 其代以畿伯擬入。" 吏曹判書尹行恁曰: "故參議李澤徴、故正言李有白壬寅獄事, 人皆至今冤之。 澤徴有白其時上疏, 爲坤聖竭忠進言矣。 臣於昨年秋, 伏奉先朝下敎, 若曰: ‘澤徴有白之冤, 予所洞悉, 欲於今春慶禮伸雪而未果。 爾於後日, 提醍爲可。’ 臣感激莊誦, 心留塡咽。 臣若不言, 則先朝遺志, 將無以見於後世。 兩臣復官當否, 請下詢大臣, 處之。" 大臣皆言: "李澤徴李有白之事, 至今人多冤之, 仰遵先朝遺志, 允爲繼述之盛事矣。" 從之, 放澤徴有白支屬之散配者。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61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