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순조실록 2권, 순조 1년 1월 6일 계미 3번째기사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장령 이안묵이 홍낙임을 탄핵하다

장령 이안묵(李安默)홍낙임(洪樂任)의 죄를 진계하려고 겨우 말을 발단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자전(慈殿)의 하교가 있었으니, 이것은 발계(發啓)할 필요가 없다."

하였는데, 이안묵이 계속해서 이를 아뢰니, 임금이 대간을 체차하라는 전교를 쓰도록 명하였다. 여러 대신들이 모두 말하기를,

"대각(臺閣)은 사체가 가볍지 않은데, 미처 진계하지도 아니하여 체차하도록 갑자기 명하시니, 진실로 중도에 지나친 일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의 말이 진실로 옳다."

하고, 마침내 명을 거두었다. 이안묵이 인하여 아뢰기를,

"홍낙임의 죄를 이루 다 주벌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흉역의 여얼(餘孼)로서 성품이 본래 요망하고 간특해서 대대로 흉론을 계승하여 이루었으니, 죄악이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성명이 국초에 여러 번 나왔으니, 간범(干犯)이 철안(鐵案)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지금 잠시 목숨을 붙여두는 것은 누가 내려 준 것입니까? 그런데 개전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갓 원망하는 마음을 품은 채 근교(近郊)에서 버젓이 쉬고 있으며, 성문에 출몰하여 터무니없는 말을 퍼뜨려 인심을 현혹시켰으니, 성궁(聖躬)을 무함하는 흉언(凶言)이 아닌 것이 없으며, 배포하여 경영하는 것은 모두 전례(典禮)를 변란시키는 참혹한 계책이었습니다. 비류(匪類)와 체결하여 선류(善類)를 살해(殺害)하는 음모와 비계(秘計)를 극도로 쓰지 않음이 없으니, 인심이 미혹되고 온 세상이 소란하여 평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행위를 궁구해 보면, 이는 비단 전하의 죄인일 뿐만 아니라, 곧 종사(宗社)의 죄인이며, 종사의 죄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자궁(慈宮)의 죄인이기도 합니다. 시초에 한결같이 청명(淸明)하여 국시(國是)를 정하고 처분을 엄중히 하는 날을 당하여 왕장(王章)을 오히려 굽혀서 여정(輿情)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으니, 청컨대 홍낙임은 국청을 베풀고 실정을 알아내어 흔쾌하게 전형(典刑)을 바로잡으소서."

하였는데,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지난날 수만 자의 언교(諺敎)로써 말했던 것은 곧 선대왕의 지사(志事)를 천명한 것이며, 월전(月前)에 온전한 은혜를 베푼 하교도 또한 선대왕의 성심을 우러러 본받은 것이었으니, 대개 나의 마음이 곧 선왕의 마음인 것이다. 그가 만약 완악하여 개전할 줄 모른 채 거듭 날뛰는 것을 일삼는다면, 비록 선왕의 곡진히 보호하시려는 마음을 가지고서도 왕법(王法)이 지극히 중대하니, 또한 어떻게 한결같이 굽힐 수 있겠는가? 지금은 우선 내버려두는 것이 옳다."

하자, 경연에 나온 여러 신하들이 한소리로 대간의 말을 따를 것을 우러러 아뢰어 청하니,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내가 선왕의 마음을 알고 있는데, 경들에 견주어 더욱 친절하셨다. 선왕께서 재유(在宥)005) 하였을 때에 그 죄범(罪犯)을 환히 알지 못한 것이 아니었으나, 은혜를 온전히 베풀고자 하신 까닭에 시종 곡진히 용서하셨던 것이다. 경들이 한 목소리로 토죄(討罪)하기를 청하는 것은 진실로 공의를 펴고 국법을 존중한다는 뜻에서 나왔으나, 내가 허락하지 않고 고집하는 것도 또한 까닭이 있다."

하였다. 수원 유수 이만수(李晩秀)가 말하기를,

"일찍이 선조에서 원소(園所)의 제품(祭品)은 풍덕(豐德)제릉(齊陵)후릉(厚陵)의 예에 의거하여 분봉상시(分奉常寺)를 설치하고, 본부에서 거행하라는 일을 하교하셨고, 또한 태상시(太常寺)에서 글을 지어 초기(草記)006) 하였으나, 미처 비지(批旨)를 받지 못하였었습니다. 지금은 산릉(山陵)과 영전(影殿)을 모두 본부에서 봉안(奉安)하였는데, 1년 안에 각 제향(祭享)의 제품(祭品)을 서울에서 받들고 간다면, 장마가 드는 여름이나 겨울의 언 길에서 공경함이 부족하여 편하지 못할 염려가 많습니다. 삼가 선조의 하교에 따라 본부에 분봉상시를 설치하여 원침(園寢)·산릉·영전의 제품을 똑같이 진배(進排)하게 하고, 제품·식례(式例)·공가(貢價)를 분속(分屬)하되 절목을 이루어 준행하게 하는 것이 향사(享祀)를 존중하고 유지(遺志)를 이어받는 도리에 진실로 합당할 것입니다."

하니, 대신들에게 순문하고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53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왕실-종사(宗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005]
    재유(在宥) : 무위(無爲)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일.
  • [註 006]
    초기(草記) : 상주문(上奏文)의 하나. 각 관서에서 정무상(政務上)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사항에 관하여 사실만을 간단히 적어 상주하는 문서.

○掌令李安默啓陳洪樂任之罪, 纔發端, 上曰: "旣有慈殿下敎, 此則不必發啓矣。" 安默繼奏之, 上命書臺諫遞差傳敎。 諸大臣皆言: "臺閣事體不輕, 而未及陳啓, 遽命遞差, 實是過中之擧矣。" 上曰: "卿言誠然," 遂寢。 安默仍奏曰: "樂任之罪, 可勝誅哉? 渠以凶逆餘孽, 性本妖慝, 世濟凶論, 罪惡貫盈。 姓名屢出於鞫招, 干犯難逭於鐵案。 至今假息, 是誰之賜? 則罔念悛改之圖, 徒懷怨懟之心, 偃處近郊, 出沒城闉, 譸張誑惑, 無非矯誣聖躬之凶言, 排布經營, 都是變亂典禮之憯計。 締結匪類, 戕害善類之陰謀秘計, 靡不用極, 人心詿誤, 擧世波盪。 究厥所爲, 此非但殿下之罪人, 卽宗社之罪人, 非但宗社之罪人, 亦是慈宮之罪人也。 當此一初淸明定國是、嚴處分之日, 王章尙屈, 輿情愈激。 請樂任設鞫得情, 夬正典刑。" 大王大妃敎曰: "向日屢萬言諺敎, 卽所以闡明先大王志事也, 月前全恩之敎, 亦所以仰體先大王聖心也, 蓋予之心, 卽先王之心也。 渠若頑不知悛, 更事跳踉, 則雖以先王曲保之心, 王法至重, 亦何可一向枉屈乎? 今則姑置之, 可也。" 登筵諸臣, 一辭仰奏, 請從臺言, 大王大妃敎曰: "予知先王之心, 比卿等, 尤爲親切。 先王在宥之時, 非不洞知其罪犯, 而以全恩之故, 終始曲貸。 卿等之齊聲請討, 實出於伸公議重國法之意, 而予之靳持, 亦有以矣。" 水原留守李晩秀曰: "曾在先朝, 以園所祭品, 依豐德 厚陵例, 設置分奉常寺, 自本府擧行事下敎, 亦自太常, 措辭草記, 而未及承批旨矣。 今則山陵、影殿, 皆奉於本府, 一年內, 各祭享、祭品、自京奉往, 則潦暑、氷程, 多有欠敬難便之慮。 謹遵先朝下敎, 設分奉常寺於本府, 園寢、山陵、影殿祭品, 同爲進排, 祭品、式例、貢價分屬, 成節目遵行, 允合於重享祀、述遺志之道矣。" 詢大臣, 從之。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53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왕실-종사(宗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