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순조실록 1권, 순조 즉위년 7월 4일 갑신 3번째기사 1800년 청 가경(嘉慶) 5년

수렴 청정 반교문

수렴(垂簾) 반교문(頒敎文)에 이르기를,

"하늘이 우리 국가에 은혜를 내려주지 않아서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당하였도다. 소자(小子)가 아직 어린 나이에 있으면서 외람되어 높은 저위(宁位)를 이어받았으나 무작(舞勺)025) 의 나이를 넘지 못했으므로 이 한 몸 우러러 의지할 데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보의(黼意)의 중임(重任)을 받게 되었으니 만기(萬機)를 어떻게 총재(摠裁)할 수 있겠는가? 바야흐로 글을 읽고 학문을 강론할 시기를 당했는데 어떻게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논한단 말인가? 두렵기가 깊은 연못에 임하여 갈래길에서 방향을 잃고 탄식하는 것 같으며, 아득하기가 강하(江河)를 건너면서 주즙(舟楫)이 없이 험한 물길을 건너려는 것과 같다. 마침내 전대(前代)에 새로 즉위한 어린 임금은 동조(東朝)026) 가 수렴하는 아름다운 법규가 있었는지라 한 당(堂)에 함께 전좌(殿坐)하니 자천(慈天)이 빛나게 덮어주는 덕을 드러내고 서정(庶政)을 참여하여 다스리니 음화(陰化)는 묵묵히 운용하는 공이 있겠다. 멀리는 송(宋)나라의 선인 태후(宣仁太后)철종(哲宗)을 훈계함을 상고하니 아직도 그 여중 요순(女中堯舜)의 위대한 공렬이 전해오고 또한 우리 나라의 정희 왕후(貞熹王后)가 성묘(成廟)를 도와서 끝내 중흥(中興)의 밝은 정치를 이룩하였으니 이는 왕첩(往牒)을 지금껏 칭송하는 바이기 때문에 후세(後世)에서 마땅히 본받아야 될 것이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대왕 대비 전하(大王大妃殿下)께서는 도신(塗莘)027) 의 이름난 문벌(門閥)로 임사(任似)028) 의 성자(聖姿)를 지니시고 영조(英祖)재유(在宥)029) 하던 때를 당하여서는 빛나고 융성한 교화를 잘 찬조하였으며 선고(先考)께서 왕위를 계승하던 날에는 부호(扶護)한 공이 또한 크게 드러났던 것이다. 내정(內政)을 높고도 드넓은 아름다움을 이룩하도록 도왔으므로 황상(黃裳)030) 이 길(吉)한 데 합치되었으며, 위의(危疑)스러운 즈음에 신기(神機)를 잘 운용하였으므로 청구(靑邱)031) 를 편안하게 하였다. 전궁(殿宮)에는 화기(和氣)가 융융하게 무르녹아 자애(慈愛)와 효성(孝誠)이 둘 다 지극하였으며 규액(閨掖)에는 규범(規範)이 숙숙(肅肅)하게 근엄하여 그 덕화(德化)를 이름하기 어려웠다. 휘지(徽旨)를 특별히 반하(頒下)하여 종팽(宗祊)을 태산(泰山)과 반석(磐石)처럼 편안하게 하였고 현호(顯號)를 누차 받으시니 성대한 공렬이 금니(金泥)로 쓴 옥책(玉冊)032) 에 환히 빛났도다. 온화한 음성을 매양 함이(含飴)033) 때에 받들었는지라 항상 무애(撫愛)하는 마음을 지니셨으며, 의방(義方)034) 은 반드시 시선(視膳)035) 을 부지런히 하도록 하셨는데 더욱 학문하는 공부를 면려하여 주셨다. 아! 이제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서 서로 의지하여 가르침을 받을 마음이 더욱 간절하게 되었다. 마음을 종국(宗國)에 두니 의리(義利)와 공사(公私)의 나뉨에 대해 더욱 정성을 다하게 되었고, 과궁(寡躬)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으시어 음식과 의복의 절차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셨다. 과거에 세운(世運)이 화목하고 태평할 때에도 이미 두루 잘 다스린 치적(治績)을 나타냈는데 더구나 지금은 국세(國勢)가 위급한 때이니 세상을 감싸는 공을 늦출 수 있겠는가? 드디어 온 나라 사람의 뜻이 같음으로 하여 이에 합사(合辭)로 진청(陳請)함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겸양하는 덕으로 인하여 누차 뜰에 가득히 서서 아뢰는 말을 거절하셨으나 끝내는 후곤(厚坤)의 인덕(人德)으로 마침내 합문(閤門)을 두드리는 간청을 허락하게 되었다. 우러러 생각하건대 경도(經道)를 지키시려는 일념(一念)으로 모두 열 번 아뢰었는데도 유윤(兪允)을 아끼시다가 다행히도 자애로운 마음을 미루어 이에 한마디로 쾌히 승락하셨도다. 염유(簾帷)가 고요하고 깊숙하니 장락(長樂)036) 의 기뻐하심이 완연하고 구면(裘冕)으로 우뚝히 임어하니 묘석(廟柘)이 더욱 존중된 것이 기쁘도다. 아! 하루 이틀도 만기(萬機)의 비움이 없는 것이 어찌 신민(臣民)들만 기뻐할 뿐이겠는가? 4백 년 동안 이어온 큰 기업(基業)이 이에 힘입어 평안하여질 것이다. 우러러 생각건대 하늘을 오르내리는 영령(英靈)들께서도 기뻐하시어 영회(榮懷)의 기미가 이에 보존될 것이니, 애모(愛慕)하는 정성이 더욱 깊도다. 때문에 이에 교시(敎示)하는 바이니 의당 다 알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홍양호(洪良浩)가 지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2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語文學)

  • [註 025]
    무작(舞勺) : 13세가 되면 익히던 악무(樂舞).
  • [註 026]
    동조(東朝) : 태후(太后)를 지칭함.
  • [註 027]
    도신(塗莘) : 도산씨(塗山氏)·유신씨(有莘氏)로 도산씨는 우왕(禹王)의 후비(后妃)이고 유신씨는 탕왕(湯王)의 후비임.
  • [註 028]
    임사(任似) : 태임(太任)·태사(太姒).
  • [註 029]
    재유(在宥) : 자재 관유(自在寬宥)의 준말로, 자연에 맡기고 간섭하지 않는 무위(無爲)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말함. 여기서는 정치를 잘하여 태평 성대를 이루었다는 뜻으로 쓰였음.
  • [註 030]
    황상(黃裳) : 《주역(周易)》 곤괘(坤卦) 육오(六五)의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로 황후(皇后)의 정위(正位)를 말함. 곧 왕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음.
  • [註 031]
    청구(靑邱) : 우리 나라.
  • [註 032]
    옥책(玉冊) : 왕이나 왕후의 존호(尊號)를 올릴 때 그 송덕문(頌德文)을 옥(玉)에 새겨 놓은 간책(簡冊)을 말함.
  • [註 033]
    함이(含飴) : 후한(後漢) 때 마 황후(馬皇后)가 손자들과 같이 놀 뿐 정사(政事)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한 데서 온 말로, 번잡한 일에서 손을 떼고 평안한 만년(晩年)을 보낸다는 뜻으로 쓰임. 여기서는 평소 함께 지낼 때라는 뜻으로 썼음.
  • [註 034]
    의방(義方) : 부모가 자식에게 올바른 방법으로 교육시키는 것을 말함.
  • [註 035]
    시선(視膳) : 왕세자(王世子)가 아침 저녁으로 임금의 수라상을 보살피는 것을 말함.
  • [註 036]
    장락(長樂) : 한(漢)나라 때 태후가 거처하던 궁전(宮殿)의 이름.

○垂簾頒敎文:

若曰, 昊天不惠我家, 奄遭崩天之痛。 小子尙在沖歲, 猥承位宁之尊, 未過舞勺之齡, 一身靡所依仰。 遽膺負扆之重, 萬幾何以摠裁? 方當讀書講學之時, 何論經邦理民之事? 澟乎如臨淵谷, 嗟岐路之迷方, 茫然若涉江河, 無舟楫以濟險。 肆在前代新服之幼主, 爰有東朝垂簾之懿規, 同坐一堂, 慈天著光覆之德, 參理庶政, 陰化有默運之功。 遠稽 宣仁之訓哲宗, 尙傳女之偉烈, 亦粤我貞熹之翼成廟, 終致中興之晠治, 斯往牒至今稱焉, 故後世所當法者。 恭惟我大王大妃殿下, 以之名閥, 有之聖姿, 當英祖在宥之辰, 克贊熙隆之化, 曁先考昭承之日, 丕著扶護之功。 贊內政於巍蕩之休, 黃裳叶吉, 運神機於危疑之際, 靑邱底安。 殿宮之和氣融融, 慈孝兩至, 閨掖之規範肅肅, 德化難名。 徽旨特頒, 奠宗祊於泰山磐石, 顯號屢受, 煥盛烈於金泥玉編。 溫音每承於含飴, 常軫撫愛之念, 義方必勤於視膳, 益勉問學之工。 嗟! 今不弔于天, 益切相依爲命。 心存宗國, 惓惓於義利、公私之分, 愛深寡躬, 憧憧乎飢飽寒煖之節。 在昔世運之雍熙, 旣著彌綸之績, 矧今國勢之岌嶪, 寧緩燾覆之功? 肆以擧國之同情, 乃有合辭而陳請, 始因撝謙之德, 屢拒盈庭之言, 終以厚坤之仁, 竟許叩閤之懇。 仰惟守經之念, 凡十啓而靳兪, 幸推止慈之衷, 乃一言而快可。 簾帷靚邃, 宛長樂之承歡, 裘冕巍臨, 喜廟祐之增重。 於戲! 一二日萬幾無曠, 奚但臣民之歡欣? 四百年洪基賴寧。 仰想陟降之怡悅, 榮懷之機斯保, 愛慕之忱益深。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洪良浩製。】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32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語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