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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54권, 정조 24년 6월 29일 경진 1번째기사 1800년 청 가경(嘉慶) 5년

신시에 목욕·습·소렴을 거행하다

신시(申時)에 목욕(沐浴)·습(襲)·소렴(小斂)을 거행하였다. 행 도승지 윤행임(尹行恁), 행 좌승지 이서구(李書九), 행 우승지 이익운(李益運), 행 좌부승지 김조순(金祖淳), 우부승지 한용탁(韓用鐸), 동부승지 김희순(金羲淳), 기사관(記事官) 김계온(金啓溫), 가주서(假注書) 여동식(呂東植)·민철유(閔哲儒), 기사관 이존수(李存秀)·홍석주(洪奭周), 영의정 심환지(沈煥之), 좌의정 이시수(李時秀), 우의정 서용보(徐龍輔), 수원부 유수(水原府留守) 서유린(徐有隣), 규장각 제학 김재찬(金載瓚), 원임 직제학 서정수(徐鼎修), 원임 직각 김면주(金勉柱), 검교 직각(檢校直閣) 심상규(沈象奎), 직각 김근순(金近淳), 예조 판서 이만수(李晩秀), 참판 민태혁(閔台爀), 참의 홍낙유(洪樂游), 대사간 이은모(李殷模), 집의 장지면(張至冕), 교리 김이도(金履度), 보덕(輔德) 윤광안(尹光顔) 등과 종척 집사(宗戚執事)로서 창성위(昌城尉) 황이점(黃仁點), 광은 부위(光恩副尉) 김기성(金箕性), 돈녕 주부(敦寧主簿) 김기윤(金基允), 전 주부 김재창(金在昌), 돈녕 직장(敦寧直長) 김재삼(金在三) 등이 모시고 늘어선 뒤에 내시가 휘장을 쳐 내외를 가리고 종척 집사가 문 안에 평상을 설치하였다. 내시들은 각기 목욕시킬 여러 도구를 받들고 있고 집사자가 어상(御床)을 받들어 머리를 남쪽으로 돌린 뒤에 머리를 이불로 덮고 이불 위에 복의(復衣)를 덮었다. 평상 위에는 화문석을 깔고 화문석 위에 비단요를 깔았으며 요 위에는 또 화문석을 깔았다. 원상(院相) 심환지, 총호사(摠護使) 이시수, 예조 판서 이만수행임(行恁)·조순(祖淳)·상규(象奎)와 사관(史官) 2원은 어상 앞에 서고 예방 승지 이서구는 홀기를 가지고 기둥 밖에 섰으며 대신 이하 제신은 대청의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섰다.

내시가 향탕(香湯)을 올려 그것으로 얼굴을 씻기고 목욕을 마친 뒤에 명의(明衣)를 입혔으며 방건(方巾)으로 얼굴을 덮고 이불로 덮었다. 그 다음 습례(襲禮)를 거행하였는데, 집사자가 먼저 습상(襲床) 위에 베개를 올린 뒤에 용문석(龍紋席)을 깔고 그 다음 요를 깔고 그 다음 교(絞)를 깔았다. 맨 먼저 유청공단 이불[柳靑貢緞衾]을 【깃은 붉은 공단이고 안은 흰공단이다.】 편 뒤에 화옥대(畵玉帶)를 깔고 그 다음 곤룡포를 【다홍운문단(多紅雲紋緞)으로 금사견(金絲肩) 용흉배(龍胷背)인데 안감은 남운문단(藍雲紋緞)이다.】 깔고 그 다음 아청운문단 답호(鴉靑雲紋緞褡𧞤)를 깔고 그 다음 남화한단 중치마[藍禾漢緞中赤莫]를 【안감은 흰공단이다.】 깔고 그 다음 초록화한단 중치마[草綠禾漢緞中赤莫]를 【안감은 흰공단이다.】 깔고 그 다음 옥색공단 장의(玉色貢緞長衣)를 【안감은 흰공단이다.】 깔고 그 다음 보라색화한단 장의(甫羅色禾漢緞長衣)를 깔고 그 다음 보라화한단 주의(甫羅禾漢緞周衣)를 깔고 그 다음 백공단 홑적삼을 깔았다. 그 다음 백공단 바지를 올리고 그 다음 백공단 홑바지를 올리고 그 다음 백공단 버선을 올리고 그 다음 남화한단 허리띠와 남화한단 대님을 올리고 그 다음 백공단 행전을 올리고 그 다음 털비단 망건을 올리고 아울러 익선관(翼善冠)을 【털비단이다.】 씌웠으며 그 다음 신을 【초록운문단이다.】 올리고 그 다음 악수(幄手)172) 를 올리고 그 다음 잘라낸 손톱 발톱 및 빠진 이빨과 빠진 머리털을 담은 주머니를 올려 그것들을 어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습례가 끝난 뒤에 집사자가 멱모(幎帽)173) 를 올리고 명정(銘旌)을 【붉은 비단천으로 길이는 아홉 자이고 너비는 온 폭이었다.】 설치하였으며 대제학 홍양호(洪良浩)가 이금(泥金)으로 대행왕 재궁(大行王梓宮)이란 글씨를 전자체로 써 올렸다.

환지가 어상 앞으로 나아가 집사 대신 반함례(飯含禮)를 행한 뒤에 대신과 예관(禮官)이 왕대비에게 들어가 여쭙기를,

"예법으로 말한다면 습례를 행한 뒤에 전(奠)을 드리면서 위차(位次)를 마련해 곡을 하고 비로소 소렴을 하게 되어 있으나 이번의 경우는 습례와 소렴이 같은 때에 거행되므로 소렴 시각이 차츰 늦어질 형편이니, 또한 매우 송구스럽고 민망합니다. 습전(襲奠)과 소렴전을 소렴 뒤에 함께 행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하니,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이어 소렴례를 거행하였는데, 집사자가 요자리와 베개를 깐 뒤에 먼저 교(絞)를 깔고 그 다음 이불을 깔고 그 다음 의대(衣襨)를 나열하였으며 영상(靈床)을 염석(斂席)에다 받들어 모시고 예법대로 소렴을 행하였다. 이불로 싸고 교(絞)를 잡아맨 뒤에 진홍 공단(眞紅貢緞)에 분가루로 보불(黼黻)을 그려 교(絞) 위에 덮고 도로 어상에다 받들어 모셨다. 염이 끝나자 제신은 문을 닫고 물러나와 문 밖에 서서 기다렸다. 자전과 자궁이 나와서 참관하고 내전으로 들어간 위에 그 자리에 있는 대신 이하가 모두 엎드려 곡하여 애도를 표하였다. 내시는 영상(靈床)을 설치한 뒤에 신백(神帛)과 명정을 영좌(靈座)의 오른쪽에 봉안하고 물러나와 섬돌 아래에 반차(班次)를 이루었으며, 대전관(代奠官) 및 종척 집사가 영좌 앞으로 올라가 예법대로 습전과 소렴전을 거행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4책 54권 65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28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註 172]
    악수(幄手) : 시체의 손을 싸는 헝겊.
  • [註 173]
    멱모(幎帽) : 소렴 때 시체의 얼굴을 싸는 헝겊.

○庚辰/申時, 沐浴、襲、小斂。 行都承旨尹行恁、行左承旨李書九、行右承旨李益運、行左副承旨金祖淳、右副承旨韓用鐸、同副承旨金羲淳、記事官金啓溫、假注書呂東植閔哲儒、記事官李存秀洪奭周、領議政沈煥之、左議政李時秀、右議政徐龍輔水原府留守徐有隣、奎章閣提學金載瓚、原任直提學徐鼎修、原任直閣金勉柱、檢校直閣沈象奎、直閣金近淳、禮曹判書李晩秀、參判閔台爀、參議洪樂游、大司諫李殷模、執義張至冕、校理金履度、輔德尹光顔、宗戚執事昌城尉 黃仁點光恩副尉 金箕性、敦寧主簿金基允、前主簿金在昌、敦寧直長金在三, 陪立訖, 內侍設帷幛, 以隔內外, 宗戚執事, 設平床於戶內。 內侍各奉沐浴諸具, 執事者奉御床, 南首覆以衾, 衾上加以復衣。 床上鋪紋席, 席上鋪緞褥, 褥上又鋪紋席。 院相沈煥之、摠護使李時秀、禮曹判書李晩秀, 及行恁祖淳象奎, 史官二員, 立於御床之前, 禮房承旨李書九, 持笏記立於楹外, 大臣以下諸臣, 分立於廳事之東西。 內侍進香湯, 奉而頮之, 沐浴訖, 遂設明衣, 以方巾覆面, 以衾覆之。 行襲禮, 執事者, 先薦枕於襲床上, 次鋪龍紋席, 次鋪褥, 次鋪絞。 先設柳靑貢緞衾, 【領紅貢緞, 內白貢緞。】 次鋪畫玉帶, 次鋪袞龍袍, 【多紅雲紋緞金絲肩龍胸背, 具內拱藍雲紋緞。】 次鋪鴉靑雲紋緞褡𧞤, 次鋪藍禾漢緞中赤莫, 【內拱白貢緞。】 次鋪草綠禾漢緞中赤莫, 【內拱白貢緞。】 次鋪玉色貢緞長衣, 【內拱白貢緞。】 次鋪甫羅色禾漢緞長衣, 次鋪甫羅禾漢緞周衣, 次鋪白貢緞單衫。 次進白貢緞袴, 次進白貢緞單袴, 次進白貢緞襪, 次進藍禾漢緞腰帶, 藍禾漢緞脚帶子, 次進白貢緞行纆, 次進毛緞網巾, 仍加翼善冠, 【毛緞。】 次進靴, 【草綠雲紋緞。】 次進(握)〔幄〕 手, 次進剪爪及落齒髮囊, 奉於御床上。 襲訖, 執事者進幎帽, 設銘旌, 【絳緞子長九尺廣終幅。】 大提學洪良浩, 以泥金書篆大行王梓宮以進。 煥之進詣御床前, 替行飯含禮訖, 大臣禮官, 入稟于王大妃曰: "以禮則襲後, 奠爲位哭, 始行小歛, 而今番則襲歛旣同時, 小歛時刻之漸晩, 亦甚悚悶。 襲奠與小斂奠, 兼行小斂後, 似得宜矣。" 可之。 仍行小斂禮, 執事者鋪褥席及枕, 先鋪絞次鋪衾, 次列衣襨, 奉靈床于斂席, 小斂如儀。 斂衾結絞訖, 用眞紅貢緞, 粉畫黼黻, 覆于絞上, 還奉于御床。 斂訖, 諸臣閉戶, 退立戶外以待。 殿宮出臨還內, 大臣以下在位者, 皆俯伏哭, 盡哀。 內侍設靈床, 奉安神帛銘旌于靈座之右, 仍退出, 成班于階下, 代奠官及宗戚執事, 陞詣座前, 行襲奠及小斂奠如儀。


  • 【태백산사고본】 54책 54권 65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28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