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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54권, 정조 24년 5월 6일 정해 2번째기사 1800년 청 가경(嘉慶) 5년

좌수에게 형벌을 가한 황해 병사 이성묵을 체포하여 수사하도록 지시하다

황해도 관찰사 서영보(徐榮輔)가 장계로 아뢰기를,

"절도사 이성묵(李性默)은, 본주(本州) 목사 조영경(趙榮慶)이 가마를 타고 일산을 썼다는 이유로 수향(首鄕)134) 을 몽둥이로 다스리고 교리(校吏)들에게 조리돌리며 두 귀를 화살로 뚫고 얼굴에 횟가루를 바르기를 군법대로 하였습니다. 교리들이 수색하여 잡는 과정에서는 본주의 교례(校隷)가 문을 막고 서로 대항을 하였고 목사는 세 군데의 문을 부수고 기왓장을 걷어 어지럽게 내던지게 하였으며 또 병영의 군교(軍校)를 형틀을 씌워 가두었습니다. 그러자 병사가 우후(虞候)로 하여금 병사들을 많이 거느리고 가서 빼앗아오게 하였습니다. 병사 이성묵의 잘못을 묘당으로 하여금 품의하여 조처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비변사가 아뢰기를,

"당해 목사는 애초부터 행위가 매우 어긋났는데 문을 부수고 기왓장을 내던져 서로 난투극을 벌이듯 하였고 문서에 쓴 말이 오만불손하여 극도로 깔보고 무시하였으니, 기강이 해이해진 양상이 실로 매우 한심합니다. 해부(該府)로 하여금 잡아다가 죄를 물어 그에 맞는 벌을 주게 하소서. 당해 수신(帥臣)은 본관(本官)이 체모를 손상한 것에 대해 경고하고 훈계하는 것이 옳은 일인데 함부로 곤장을 치고 조리돌리는 벌을 가했으니, 파직시키소서."

하니, 그대로 윤허하였다. 아울러 전교하기를,

"근래에 체통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말들은 조정의 위신을 높이자는 것이었는데, 영남은 고성(固城) 수령의 사건이 있고 호남은 전 영암(靈巖) 수령의 사건이 있고 호서는 전 충주 목사(忠州牧使)의 사건이 발생하는 등 거의 매월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다가 황주(黃州) 사건이 또 해서에서 발생하였으니, 행여 남이 들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황주 사건은 다른 도의 경우와는 판이한 점이 있으니, 만일 국법을 침범한 일이 있다면 이른바 체통은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다. 조정의 조치는 사안에 따라 각기 그 법도에만 맞게 하면 그 뿐이다.

옛날 한(漢)나라의 장탕(張湯)은 연리(掾吏)와 서로 다툰 결과 이 상관으로써 벌을 받았다. 당해 병사의 상도에 어긋난 수많은 행위는 우선 거론하지 않더라도 태평한 시기에 군사적인 일도 아니고 군사훈련을 하는 장소도 아닌데, 갑자기 군중의 형률을 백성 다스리는 관청 앞에서 시행하였으니, 술에 몹시 취한 상태가 아니라면 정신이 나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우후를 내보내 군교(軍校)를 빼앗아갔으니 이 얼마나 형편없는 짓인가. 더구나 절도사로서는 관청에서 형률을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인데 그 고을 수향(首鄕)을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형신을 가하려 했으니, 이 또한 법을 지킨 것인가, 범한 것인가. 곤장·몽둥이·형틀은 각기 쓰이는 곳이 따로 있어 그에 관한 규정과 조항이 법전에 분명히 실려 있는데 그가 어찌 감히 모르는 체하며 스스로 국법을 범한단 말인가. 이와 같은 폐단이 일단 벌어진다면 앞으로 또 무슨 폐단이 생길지 알 수 없으며 체통과 국법 상호간의 의리와 경중은 한없이 멀어지고 말 것이다. 당해 병사 이성묵을 해부로 하여금 잡아다가 공초를 받아 국법을 무시한 율을 적용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4책 54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271면
  • 【분류】
    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註 134]
    수향(首鄕) : 좌수(座首)의 별칭.

黃海道觀察使徐榮輔狀啓言: "節度使李性默, 以本牧使趙榮慶, 乘輿張蓋事, 棍治首鄕, 回示校吏, 貫耳面灰如法。 校吏搜捕之際, 本州校隷, 拒門相爭, 牧使俾毁三門, 撤瓦亂擲, 又枷囚營校。 則兵使使虞候, 多率將卒奪來。 該兵使李性默所失, 令廟堂稟處。" 備邊司啓言: "該牧使自初擧措俱甚乖謬, 而毁門擲瓦, 有若相搏, 牒辭噴薄, 凌侮無餘, 紀綱之凌夷, 誠極寒心。 令該府, 拿問勘律。 該帥臣則本官之壞損體貌, 警飭固宜, 而至於輕施濫棍, 妄行回示, 請施罷職之典。" 允之。 仍敎曰: "近來嚴體統之論, 所以尊朝廷也, 嶺南則有固城倅事, 湖南則有靈巖前倅事, 湖西則有忠州前牧事, 幾乎式月斯聞, 而黃州事又出於海西, 可謂不可使聞。 而黃州事, 則判異於諸道者有之, 若於典憲有所干犯, 則所謂體統, 特風斯下矣。 朝廷擧措, 惟各當其則而已。 昔者張湯, 與椽吏相爭, 而以上官, 伏其辜。 該兵使許多所爲之反常, 姑無論, 乃於無事之時, 非戎務非操場, 而忽用軍中之刑律於運籌廳事之前者, 如非醉酗, 太不近於常性。 此猶不足, 發送虞候, 率領軍校, 尤何等無謂之甚乎? 況節度使, 非用刑衙門, 而該邑首鄕之欲加訊推於不審之事, 此亦守法乎, 犯禁乎? 笞杖棍枷之各有用處, 典則科條, 昭揭象魏, 則渠焉敢漫若不知, 自干邦憲乎? 此弊一開, 從此不知復有何許弊端, 而體統與典憲之義理輕重, 其間不啻較三十里。 該兵使李性默, 令該府, 拿來捧供, 施以違越典憲之律。"


  • 【태백산사고본】 54책 54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271면
  • 【분류】
    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