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서명선에게 시호를 내리다
영부사 김희는 시호를 효간(孝簡)으로 내리고, 영부사 서명선(徐命善)의 시호는 충문(忠文)으로 고쳤다. 서명선의 첫 시호가 충헌(忠憲)이었는데 그의 행적에 비하여 시호가 좀 부족하다는 공론이 있어 온 지 오래였다. 이때 와서 하교하기를,
"서 영상(徐領相)의 시호에 관해 몇 해 전부터 말들이 있어 왔으나 지금까지 세월만 흘렀다. 이 대신으로 말하면 관직도 관각(館閣)을 역임했고 또 그가 쌓은 것도 바로 문자(文字) 관계의 일이었으므로 시호를 고치라고 하는 주장들이 옳다."
하고, 그의 시호를 고치도록 재가를 내리고 나서 또 하교하기를,
"시호란 행적의 표상이기 때문에 한 글자로는 그 사람의 덕을 나타내기에 부족해서 두 글자로 한 것이다. 그러나 두 글자로도 다 표현이 안 되면 세 글자까지도 쓰는 것인데 위(衛)나라 정혜 문자(貞惠文子)가 바로 그 예이다. 고 영상도 그 시호가 많은 사람들이 부르기에 맞지 않아 지금 다시 고친 시호를 사판(祠版)에다 쓰려니 슬픈 감회가 다시 이는 것이다."
하고, 이어 치제하도록 명했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50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풍속-예속(禮俗)
○賜領府事金憙諡曰孝簡, 領府事徐命善改諡曰忠文。 徐命善初諡忠憲, 公議稱諡歉於蹟者且久。 至是敎曰: "徐領相諡號, 年前有酬酢, 尙今荏苒。 此大臣官經館閣, 且其樹立, 卽文字間事, 改諡之議, 固可。" 使之改諡旣啓下, 又敎曰: "諡者行之表也, 一字蓋不足以狀德, 則爲二字。 二字亦無以盡意, 則於是乎有三字, 衛之貞惠文子是耳。 故領相之諡, 未叶於輿人之誦, 今將以改爲之諡, 題其祠版, 愴懷冞深。" 仍命致祭。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50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