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 책봉례를 거행하다
책봉례 거행 시간이 되었을 때는 어좌(御座)를 예대로 청마루 한복판에다 마련했는데 상은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세자가 면복 차림으로 규를 들고 나오자 필선이 뜰 위에 마련된 판위(版位)까지 인도하였다. 교명(敎命)·죽책(竹冊)·인수(印綬)를 받든 관원이 각기 교명·죽책·인수를 받들어 함께 책상 위에다 올려 놓았고, 예조 정랑은 전문함(箋文函)을, 제용감 판관은 표리함(表裡函)을 각각 받들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근시(近侍)와 집사관(執事官)이 먼저 전정에 들어와 사배를 올렸고 인의가 도감의 도제조 이하를 인솔하고 들어와 배위로 가서 사배를 올린 다음 섬돌 사이에 마련된 자리로 가 동쪽을 향해 서 있었다. 필선이 세자를 인도하고 들어와 마련된 자리에 가 있었고 사부·빈객·찬선이 차례로 들어와 각기 배위로 가 있었다. 찬의(贊儀)가 ‘사배’ 하고 창을 하니 세자가 사배를 올리고 사부·빈객·찬선도 사배를 올렸다. 필선이 세자를 인도하여 자리 앞에까지 올라와서는 필선은 기둥 밖에서 멈추고 사부·빈객·찬선이 뒤따라 올라 섬돌 사이에 마련된 자리로 가 있었다. 세자가 꿇어앉자 도감의 도제조가 서계로 해서 올라와 교명이 든 상자를 받들어 근시에게 주니 근시가 그것을 전해받아 꿇어앉아서 세자에게 올렸고 세자는 그것을 받아 겸 찬선(兼贊善)에게 주었다. 그 교명문에는
"주(周)의 세자는 책봉을 받고 하루 세 번씩 문안했는데 황리 원길(黃离元吉)032) 이었고, 당(唐)의 예는 중춘(仲春) 2월에 관례를 거행했는데 주불 사황(朱芾斯煌)033) 이었다. 그리하여 고유의 제도에 의해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아, 너 원자(元子)는 하늘이 점지하신 남다른 바탕으로 흐르는 무지개 같은 상서를 받았기에 자랄수록 온화하고 문아했으며 자손에게 좋은 교훈을 남길 것이다. 하늘이 도우시어 공자가 태어나던 그 해에 낳게 하였고, 조종(祖宗)이 감싸시어 후직(后稷) 어머니가 후직을 잉태하고 낳던 날과 같았다. 그리하여 종사(宗社)와 신인(神人)이 의탁할 곳이 있게 되었고 앞으로 광명의 시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상대를 예우하라는 교훈을 받들어 삼전(三殿)께 손자를 본 기쁨을 안겨드렸고 일찍부터 학문을 좋아하는 성의를 보여 팔도 백성이 원대한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주역》에서 말한 것처럼 몽양(蒙養)034) 의 공이 있어 인후하다는 소문이 자자했기에 한나라 문제의 예건(豫建)035) 정책이 나는 오히려 더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옛 전래의 의식에 따라 우선 관례를 거행하기로 하고 해로도 좋은 해요 달로도 좋은 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삼가(三加)의 예를 치뤘으며 사람에게 물어도 의사가 같고 거북에게 점을 쳐도 사람들 의사와 같기에 세자 위호를 정했던 것이다.
‘경신년’ 이 해는 바로 숙조(肅祖)께서 면류관을 쓰던 해요 또 영왕(寧王)이 옥책을 받던 해이기도 하다. 이에 너를 명하여 왕세자로 삼노니 너는 이 주어진 중책을 생각하고 나의 이 훈계를 체득하라. 그리하여야 너 한 사람에게 경사가 있고 천록이 만년토록 끝이 없으리라. 더욱 근면하고 경건해야만 선왕의 덕을 크게 현양하고 또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성학(聖學)을 존중하고 문교(文敎)를 진작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 가문의 법도였으며, 왕도(王道)를 따르고 기복(箕福)을 거두는 것이 역시 열성조의 위대한 교훈이었기에 이렇게 교시하는 것이니 아마 이 뜻을 충분히 알리라."
하였다. 【대제학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것이다.】
도감 도제조가 죽책 상자를 받들고 꿇어앉아 근시에게 전하니 근시가 그것을 받아 세자에게 올렸고 세자는 그것을 찬선에게 주었다. 그 죽책문에는,
"삼가례를 경건히 닦았으니 수와 녹이 끝이 없을 것이며 종묘 사직이 의탁할 곳이 있으니 만년 대계를 거듭 다진 것이다. 이에 왕실 고유의 제도를 참작하여 아름다운 전례를 선포하는 것이다.
아, 너 원자는 창성한 운세를 타고났으며 자품이 특이하였다. 태어나던 해가 공자가 탄생하던 해니 하늘·땅·사람이 다 도운 것이며, 계절은 자궁(慈宮)이 태기를 찾던 계절이어서 달도 날도 시간도 다 좋았다. 멀리서 바라보면 근엄하고 가까이 가면 온화하니 바로 제왕의 바탕이고 말에 법도가 있고 행동에 규칙이 있어 학문을 통한 공부가 이미 나타나 보였다. 상서로운 봄빛이 장락궁(長樂宮)에 계속 들어 오래 성숙되길 바랄 생각이었는데 초하루 아침의 종묘 배알 때 거기 계시는 영령이 무슨 말씀인가 하시는 듯하였다. 그 한 가지 일을 함으로써 삼선(三善)036) 이 다 성취된다는 옛 법을 취하고 하늘 땅이 제자리를 지키도록 하는 뜻을 따를 것을 생각하여 관례를 행하고 자(字)를 붙여주고 책명을 하여 위호를 정했으니, 예로 비추어 볼 때 당연한 윤리 질서이고 평이하고 번거롭지 않은 건곤(乾坤)의 도로서 일로 따져 사리를 따른 일이며 길상한 일이었다. 성조(聖祖)가 행했던 의식에 맞추어 문장은 찬란했으나 영원한 국가 운명을 빌던 영고(寧考)의 뜻에 따라 물채(物采)는 되도록 호화로움을 피했다. 계절도 경사에 걸맞게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이고 뭇백성들도 화기에 젖어 팔도가 중리(重离)의 노래 소리에 들떴다.
이에 너를 명해 왕세자로 삼노니 너는 착한 명성을 드높이기에 노력하고 큰 복을 영원히 누리도록 하라. 정일(精一)하여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 가문 전래의 심법이며 함양(涵養)을 위해서는 모름지기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성문(聖門)의 관철된 공부이다.
거북점도 시초점도 경사(卿士)도 서민(庶民)도 똑같이 따라주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대동(大同)이라는 것으로 나라 장래는 태산 반석일 것이며 해와 달과 남산(南山)과 송백(松栢)처럼 너에게 많은 복을 주어 그 복이 자손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철인이 되고 길상을 누리려면 다 시초부터 잘해야 하는 것이며 공순하고 검소함만이 덕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학문은 현자를 가까이함으로써 진보가 있는 것이니 언제나 이를 생각할 것이며 근면이 바로 수업(修業)의 요건이니 안일하지 말아야 편안해지는 것이다. 일을 당해서야 훈계하는 것은 비록 신교(身敎)에 비해 부끄러운 일이나 어버이 뜻을 따라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면명(面命)을 한 시도 잊지 말라."
하였다. 【영의정 이병모(李秉模)가 지었다.】
도감 도제조가 인수(印綬) 상자를 받들고 꿇어앉아서 근시에게 주니 근시가 그것을 받아 세자에게 올렸고 세자는 그것을 받아 빈객에게 주었다. 근시가 또 훈서(訓書)를 받들어 무릎을 꿇고 세자에게 올리자 세자는 또 그것을 받아 사부에게 주고 【 순서는 《오례의(五禮儀)》에 나와 있다.】 부복했다가 일어나 원위치로 내려와서 꿇어앉았다.
예조 정랑은 전문 상자를 받들고, 제용감 판관은 표리 상자를 받들어 차례차례 올리니 필선이 그것을 받아 꿇어앉아서 세자에게 올렸고 세자는 그것을 차례차례 받아 근시에게 주어 책상 위에다 놓게 하였다. 그 전문(箋文)에는,
"세자 신 아무는 가경(嘉慶) 5년 2월 2일에 관례를 행하고 저부(儲副) 자리에 올랐으니 신은 너무도 감격하여 삼가 전문을 받들어 사례하는 바이옵니다. 신 아무는 참으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리며 이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관례를 거행하고는 특별히 단술을 내리시는 사랑을 보이셨으며 중리(重离)의 상징으로 종묘 제사를 받드는 큰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삼가 보명(寶命)을 받고 나니 더욱 비재(菲才)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의 나이 아직 관례를 치를 때가 아닌데, 일을 당했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성상으로부터 받은 교훈은 비록 신교이오나 아직 정일(精一)의 전수 심법에는 어둡고 어린 탓인지 좋은 명성이 나타나지 못해 억조 창생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을 것인데 면류관을 쓰게 하시는 날에 종묘 사직을 지키라는 은총이 거듭 내리실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칠장(七章)으로 몸을 꾸미고 비로서 성인이 되는 전례를 거행했으며 이극(貳極)이라는 칭호로 일을 경건히 치를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특별히 부여하셨습니다.
스스로 돌아볼 때 이 어린 나이로 감히 세자라는 중한 자리를 맡게 된 것은 다 하늘과 땅처럼 변함없고 해와 달같이 밝으신 주상 전하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뻐하시는 왕대비전의 만년 장수를 비옵고 하늘이 도우셔 백세 자손이 연면하도록 오직 자식을 사랑한다는 인자하신 마음으로 세자를 세우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신이 감히 그 교훈을 패복(佩服)하고 그 덕음(德音)을 되뇌이지 않겠습니까. 바다처럼 윤택하고 별같이 빛나는 것을 사중(四重)037) 으로 칭송하기는 비록 부끄러운 일이나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삼조(三朝)038) 의 정성을 다할까 합니다. 신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성상을 우러러보며 황공하고 급박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전문을 받들어 칭사하는 바이옵니다."
하였다. 【대제학 홍양호가 지었다.】
왕대비전(王大妃殿)·혜경궁(惠慶宮)·중궁전(中宮殿)의 상전(尙傳)이 자리에 나왔다. 예조 전랑이 전문 상사를 받들고 꿇어앉아 차례차례 올리니 필선은 그것을 받아 그 차서대로 세자에게 올렸고 세자는 그것을 차례로 받아 상전에게 주었으며 상전은 꿇어앉아 그것을 받아가지고 들어갔다. 왕대비전의 전문에는,
"세자 신 아무는 가경 5년 2월 2일 관례를 거행하고 세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신으로서 너무나도 감격하여 삼가 전문을 받들어 칭사하는 바이옵니다.
신 아무는 참으로 황공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리며 이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어린 나이로 무릎 앞에서 재롱을 떨며 미처 성숙되지 못한 점이 부끄러웠는데 길일을 골라 관례를 행하고 세자 책봉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외람되이 동궁 자리를 더럽히게 되니 큰 짐을 진 것 같습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신은 원자(元子)라는 큰 책임을 졌으며 태어난 해는 공자가 태어난 해와 같은 해였습니다. 자손이 번창하도록 자성께서 감싸주셨기에 외람되이 기자 홍범의 오복(五福)을 받게 되었고 사랑과 존경을 힘쓰는 가법에 따라 하루 세 번 문안했던 주나라 문왕을 흉내냈을 뿐인데 동궁이라는 칭호의 은총이 삼가례를 마치는 날에 있을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는 모두 예순 성철 장희 혜휘 익렬 명선 수경 왕대비 전하(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明宣綏敬王大妃殿下)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왕대비께서는 여자 중의 요(堯)·순(舜)이시고 이 나라의 도(塗)·신(莘)039) 이십니다. 남모르게 돕고 감싸주신 은혜는 높이서 덮어주는 하늘이시고 끝없이 길게 누리실 수한은 저 상서로운 태양입니다. 드디어 관례가 끝난 다음 종묘의 제사를 맡도록 하셨는데 신이 감히 그 아름다우신 가르침을 따라 삼가 내리신 은총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네 이루어진 덕을 따르라고 하신 칭찬은 받기가 부끄러운데 단술까지 내리신 축복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마는 이 큰 복을 받으라는 그 말씀 가슴에 새기고 손자의 재롱 보시며 노년을 즐기시는 인자하심에 더욱 송축을 드리는 바이옵니다."
하였고, 【예문관 제학 이병정(李秉鼎)이 지었다.】 혜경궁 전문에는,
"세자 아무는 가경 5년 2월 2일 관례를 거행하고 세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삼가 전문을 받들어 칭사하는 바입니다.
이 아무는 참으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리며 이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색동옷 차림으로 장락궁에서 춤출 때 외람되게도 사랑하시는 은총을 받았고 조계(阼階)에서 현단복(玄端服)을 받고서 또 세자 책봉의 총애까지 입었습니다. 제 자신 노둔한 위인이라서 어떻게 백년대계를 위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까. 엎드려 생각건대 이 아무는 온화하고 문아한 자품은 아니지만 사랑과 존경의 성의만은 간절합니다. 나이 13세가 다 되도록 명성이 드러나지 못해 부끄럽지만 자궁께 경사 있던 날과 이 날이 합치되어 큰 복이 거듭 내려진 것입니다. 종묘 사직을 맡으라는 명령이 관례의 뒤를 이어 거듭 내리실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는 다 효강 자희 정선 휘목 혜빈 저하(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邸下)가 계셨기 때문으로 수가 칠순에 오르시고 천승(千乘)의 봉양을 받고 계십니다. 색동옷에 술잔을 들어 북두(北斗)와 남산(南山)같은 큰 복을 비오며 자손을 보살피시는 자애로운 손길은 기나긴 봄에 만물을 화생시키는 햇살과 같습니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세자를 책봉하시고 이에 빛나는 호칭을 내리시는 의식을 거행하였으니 어찌 감히 그 뜻을 받들어 언제나 기쁨에 찬 얼굴빛을 간직하지 않겠습니까. 일취 월장하여 훌륭한 세자가 되기에는 비록 부끄러운 점이 있을지라도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게 하여 영원한 만수 무강을 빌겠습니다."
하였고, 【대제학 홍양호가 지었다.】 중궁전(中宮殿)의 전문에는,
"세자 신 아무는 가경 5년 2월 2일 관례를 올리고 세자 책봉을 받았습니다. 신으로서는 너무나도 감격하여 삼가 전문을 받들어 칭사하는 바입니다.
신 아무는 참으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리며 이 말씀을 올리는 바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어린 시절 무릎밑을 돌며 길러주신 땅 같은 덕화 속에 자라나서 이제 관례를 올리고 외람되이 왕업을 이어갈 자리에 올랐습니다. 오직 두렵고 황공할 뿐 이 무거운 책임을 어찌 감당하오리까.
엎드려 생각건대 신의 나이 13세가 가깝도록 늘 경계의 말씀을 받들어왔습니다. 학궁에 나아가 스승에게 유의(幼儀)는 배우지 못했으나 자손을 사랑하시는 은덕으로 자애로운 가르침은 끊이지 않으셨습니다. 관례를 거행하고 자(字)를 명하시고 이어 세자 책봉의 명까지 내리실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는 다 중궁 전하의 덕입니다. 갖추어진 부덕은 주위가 다 길상하고 그 아름다운 덕화는 기록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전궁(殿宮)을 다 기쁘게 만드신 장중한 덕을 모두 추앙하고 있으며 규달(閨闥)이 교화를 받고 있으니, 자손 만대에 큰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자 책봉의 영광이 어리석은 이 몸에 왔으니 신이 감히 빈축(賓祝)을 받고 모의(母儀)를 받들지 않겠습니까. 일곱 가지로 장식된 몸에 어울리는 옷 비록 사중(四重)을 갖춘 한나라 태자만은 영문(令聞)이 못할지라도 하루 세 번 화기 찬 얼굴로 주나라에서 송축하던 구여(九如)040) 를 빌겠습니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 이병정(李秉鼎)이 지었다.】
도감 도제조 이하 그리고 사부·빈객·찬선 모두가 배위(拜位)로 되돌아왔다. 【자리에 있는 자들도 다 함께 하였다.】 예를 마치고 도감의 도제조 이하는 모두 나갔고 세자는 대내로 돌아왔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23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語文學)
- [註 032]황리 원길(黃离元吉) : 《주역(周易)》 이괘(離卦)의 효사(爻辭). 중용의 도를 지키면서 훌륭한 문명(文明)을 누리고 있는 내용이므로 하나도 나쁠 것이 없이 전례가 길하다는 뜻.
- [註 033]
주불 사황(朱芾斯煌) :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간편(斯干篇)의 구절. 주불(朱芾)은 천자(天子) 또는 제후(諸侯)의 복색을 말하는데, 뿌리 있는 가문에 태어나서 앞으로 제후가 되고 천자가 될 기상이라는 뜻.- [註 034]
몽양(蒙養) : 《주역(周易)》 몽괘(蒙卦)에 어렸을 때에 정도로 잘 기르는 것이 성인을 만드는 공효[蒙以養正聖功也]라는 말이 있다.- [註 035]
예건(豫建) : 태자(太子)를 서둘러 세우는 것. 《후한서(後漢書)》 문제기(文帝紀)에 "태자를 미리 세워두는 것이 종묘 사직을 중히 여기는 뜻입니다." 하였음.- [註 036]
삼선(三善) : 신하로서 임금을 섬기고, 자식으로서 어버이를 섬기고, 어린이로서 어른을 섬기는 세 가지 착한 일. 왕세자는 존귀한 존재이지만 학궁(學宮)에 들어가서 배우는 한 가지 일을 하므로써 무지한 백성들로 하여금 그 세 가지 도리를 다 알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임.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 [註 037]
사중(四重) : 말을 정중하게, 행실을 정중하게, 얼굴 모습을 정중하게, 기호를 신중하게 하는 것. 《법언(法言)》 수신(修身).- [註 038]
삼조(三朝) : 하루 세 번 문안하는 일.- [註 039]
도(塗)·신(莘) : 우(禹)의 비(妃)이며 계(啓)의 어머니 나라인 도산(塗山)과 문왕(文王)의 비이며 무왕(武王)의 어머니 나라인 신국(莘國).- [註 040]
구여(九如) : 신하가 임금을 송축하는 말. 산 같이, 언덕 같이, 산등성이 같이, 구릉 같이, 시냇물이 막 흘러오듯이, 달이 언제나 기울면 차듯이, 태양이 떠오르듯이, 언제나 불변하는 남산(南山) 같이, 언제나 무성한 송백(松栢) 같이, 이렇게 9개의 여(如) 자가 들어 있는 축가.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冊禮時至, 御座則如禮設於堂中, 而上不爲臨殿。 世子具冕服執圭以出, 弼善引至階上版位。 捧敎命、冊、印官, 各捧敎命、竹冊、印綬, 同置於案, 禮曹正郞捧箋文凾, 濟用判官進表裏函, 置於案。 近侍及執事官, 先入庭四拜, 引儀引都監都提調以下, 入就拜位, 四拜, 就階間位, 東向立。 弼善引世子, 入就位, 師傅、賓客、贊善, 入就拜位。 贊儀唱四拜, 世子四拜, 師傅、賓客、贊善四拜。 弼善引世子, 陞詣座前, 弼善止於楹外, 師傅、賓客、贊善, 從陞入就階間位。 世子跪, 都監都提調陞自西階, 捧敎命函跪授近侍, 近侍傳捧跪進, 世子受之, 以授兼贊善。 敎命文曰: "周儲冊而一日三朝, 黃离元吉, 唐禮冠於中春二月, 朱芾斯煌。 庸循彝章, 式擧寶典。 咨爾元子, 天挺秀異, 祥叶虹流, 日就溫文, 謨詒燕翼。 皇穹篤佑, 會夫子以降之年, 祖宗垂庥, 符壽母載夙之日。 宗社神人之攸托, 緝熙光明之是期。 三殿供繞膝之歡, 祗奉遇物之誨, 八域擊延頸之望, 夙著好學之誠。 《羲經》蒙養之功, 仁聞亹亹, 漢 文豫建之策, 予意遲遲。 迺倣大戴筮賓之儀, 先擧元聖祝雍之禮, 以歲之正, 以月之令, 物采旣備於三加, 謀人而協, 謀龜而從, 位號誕膺於貳邸。 大庚其兆, 猗肅祖載冕之辰, 用申於千, 乃寧王受冊之歲。 玆命爾爲王世子, 爾其念玆付畀之重, 體予誥戒之勤。 一人有慶之符, 萬年無疆之祿。 益勉克勤而克敬, 可見丕顯而丕承。 於戲! 尊聖學而振文敎, 自是我家大度, 遵王道而斂箕福, 蓋亦列朝宏謨,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洪良浩製。】 都監都提調捧竹冊函, 授近侍, 近侍傳捧, 跪進世子, 受之以授贊善。 竹冊文曰: "壽祿無疆, 寅修三加之禮, 宗祧有托, 申鞏萬年之圖。 爰參彝章, 誕宣嘉典。 咨爾元子, 膺昌熾運, 挺岐嶷姿。 其生也夫子降彩之年, 天地人相與維時則慈宮流虹之節, 月日辰俱良。 望之儼而卽之溫, 自是帝王家器度, 言有則而動有法, 已見學問上工夫。 祥暉駐長樂之春, 蓋體遲遲又久之意, 元朝展廟宮之謁, 怳承洋洋如在之音。 竊取三善寓物之規, 思循兩儀成位之義, 冠而命字策而定號, 考之禮則得其倫, 乾以易知坤以簡能, 在於事而順且吉。 文章煥然有述, 符聖祖攸行之儀, 物采務從省繁, 遵寧考祈永之旨。 天時叶慶, 萬品屬回泰之期, 輿情導和, 八域騰重离之頌。 玆命爲王世子, 爾其懋昭令聞, 永受弘祺。 精一執厥中, 卽我家傳授之法, 涵養須用敬, 乃聖門貫徹之工。 龜從筮從卿士從庶民從, 是謂大同, 奠厥盤泰, 升如恒如南山如松栢如, 詒爾多福施及子孫。 而哲吉罔不在初, 惟恭儉可以養德。 學以親賢而進, 念玆在玆, 勤是修業之要, 無逸乃逸。 遇物則誨, 縱自愧於身敎, 順志爲心, 尙克欽哉面命。" 【領議政李秉模製。】 都監都提調捧印綬函, 跪授近侍, 近侍傳捧跪進世子, 受之以授賓客。 近侍捧訓書, 跪進世子, 受之以授傅, 【訓書見《五禮儀》。】 俯伏興, 降復位跪。 禮曹正郞捧箋文函, 濟用監官捧表裏函, 以次跪進, 弼善以次傳捧跪進, 世子以次受之, 以授近侍, 置於案。 箋文曰: "世子臣某, 於嘉慶五年二月初二日, 禮加元服, 位膺儲副, 臣不勝感激之至, 謹奉箋稱謝者。 臣某誠惶誠恐稽首稽首上言。 伏以禮加元服, 叨賜醴之寵章, 象著重离, 膺主鬯之丕責。 祗奉寶命, 益慙菲才。 伏念臣, 年未勝冠, 誨承遇物。 聖訓雖奉於身敎, 尙昧精一之傳心, 令聞未彰於幼儀, 莫副億兆之延頸, 豈料錫冕之日, 荐荷守器之恩? 七章賁躬, 載擧成人之彝典, 貳極晉號, 特貽翼子之弘謨。 自顧蒙養之沖齡, 敢當震邸之重位, 玆蓋伏遇主上殿下, 乾坤健順, 日月恒升。 長樂承歡, 祝萬年之壽考, 皇穹篤眷, 綿百世之本支, 遂推止慈之仁, 庸侈立儲之命。 臣敢不敬佩明訓, 莊誦德音? 海潤星輝, 縱愧四重之頌, 夙興夜寐, 益殫三朝之誠。 臣無任望天仰聖激切屛營之至。 謹奉箋稱謝以聞。" 【大提學洪良浩製。】 王大妃殿、惠慶宮、中宮殿尙傳出就位。 禮曹正郞捧箋文函, 以次跪進, 弼善以次傳捧, 跪進世子, 以次受之, 以授尙傳, 尙傳跪受以入。 王大妃殿箋文曰: "世子臣某, 於嘉慶五年二月初二日, 禮加元服, 位膺儲副。 臣不勝感謝之至, 謹奉箋稱謝者。 臣某誠惶誠恐稽首稽首上言。 伏以沖年承舞彩之歡, 姿慙養正, 吉日行賜冕之禮, 寵膺冊儲。 忝叨承華, 若爲負荷。 伏念臣責丕元子, 降同聖庚。 慈庥寔啓於熾昌, 猥蒙箕福之錫五, 家法粗勉於受敬, 常隨周寢之門三, 不料靑宮晉號之恩, 乃在玄端咸加之日。 玆蓋伏遇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明宣綏敬王大妃殿下。 女中堯、舜, 海左塗、莘。 陰功垂保翼之勤, 慈天高覆, 純嘏享岡阜之壽, 瑞日滋長。 遂於筮賓之餘, 畀以主鬯之位, 臣敢不敬遵徽訓? 祗奉寵章, 愧順爾成德之譽, 敢當爵醴之祝, 佩受玆介福之義, 益頌含飴之仁。" 【藝文提學李秉鼎製。】 惠慶宮箋文曰: "世子某, 於嘉慶五年二月初二日, 禮加元服, 位膺儲副。 不勝感謝之至, 謹奉箋稱謝者。 某誠惶誠恐稽首稽首上言。 伏以舞斑衣於長樂, 猥沐止慈之恩, 受玄端於阼階, 特侈封儲之寵。 自慙魯質, 曷副燕謨? 伏念某姿非溫文, 誠切愛敬。 舞勺之沖年已近, 愧令聞之未彰, 繞樞之慶辰同符, 荷洪休之申錫。 何圖主鬯之命, 荐降賜冕之餘? 玆蓋伏遇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邸下, 壽躋七旬, 養極千乘。 菜服稱兕, 介景福於北斗南山, 萱闈含飴, 敷慈功於長春化日。 遂軫豫建之策, 爰擧賁號之儀, 敢不祗奉徽音, 恒存愉色? 月將日就, 縱愧三善之譽, 夏凊冬溫, 長獻萬年之祝。" 【大提學洪良浩製。】 中宮殿箋文曰: "世子臣某, 於嘉慶五年二月初二日, 禮加元服, 位膺儲副。 臣不勝感謝之至, 謹奉箋稱謝者。 臣某誠惶誠恐稽首稽首上言。 伏以尺衣趨闈, 久沐坤化之丕育, 元服爵醴, 猥膺离照之繼明。 祗切兢惶, 曷堪付托? 伏念臣年近勺舞, 訓奉簡辭。 幼儀未奉於齒庠, 學淺就傅, 慈誨常篤於手線, 恩荷裕昆。 何圖冠而字之餘, 荐降冊爲儲之命? 玆蓋伏遇中宮殿下黃裳叶吉, 彤管播徽。 歡承殿宮, 咸仰思齊之德, 化成閨闥, 寔贊貽燕之謨。 遂軫豫建之規, 爰及蒙愚之質, 臣敢不謹受賓祝, 祗承母儀? 七章宜身, 縱愧漢四重之令聞, 三朝愉色, 庶頌周九如之嘉休。" 【藝文提學李秉鼎製。】 都監都提調以下及師傅、賓客、贊善, 俱復拜位。 【在位者同。】 禮畢, 都監都提調以下出, 世子還內。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23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語文學)
- [註 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