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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53권, 정조 24년 1월 1일 갑인 4번째기사 1800년 청 가경(嘉慶) 5년

원자를 왕세자로 삼고 한성부의 모든 당상들을 소견하다

원자(元子)를 왕세자(王世子)로 삼고, 대신(大臣)·각신(閣臣)과 이조·예조·병조·호조·한성부의 모든 당상들을 소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오늘은 바로 정월 초하루이다. 그래서 새벽에 진전(眞殿)을 배알하고 이어서 종묘와 경모궁을 전알하였다. 그리고 방금 국가의 막대한 전례(典禮)를 경들에게 자문하고자 하는데, 이런 때에 삼공(三公)의 자리가 다 차지 않아서는 안 되겠으므로, 아까 궁문(宮門) 밖에서 특별히 영의정을 제수하는 명을 내리었다.

그리고 왕세자를 책봉하는 예는 곧 나라에서 당연히 행해야 할 전례이며 온 나라 사람들이 크게 축하를 올리는 일인데, 더구나 지금 원자는 나이가 이미 10세를 넘었으니 조종조에서 이미 행한 관례로 말하더라도 늦었다고 하는 것이 또한 옳을 것이다. 내가 이토록 신중하여 오늘에 이른 까닭은 대체로 오래오래 지연시켜서 원자가 많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나온 것임을, 지난 동짓날 청대(請對)했을 때에 이미 경들에게 하유한 바가 있었는데, 이 일을 오늘 새벽 이전까지만 해도 마음에 결정을 짓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종묘와 경모궁을 배알할 적에 조종의 영혼이 매우 가까이에 강림하신 듯이 느껴지더니, 빙 돌아서 문을 나올 즈음에는 내 마음이 저절로 감동되어 마치 직접 조종을 뵙고 가르침을 받는 것 같은 정도뿐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대궐로 돌아온 다음 비로소 자전(慈殿)과 자궁(慈宮)께 우러러 여쭈었다. 오늘이 설날이고 좋은 때이므로, 곧 이 일을 하교하려다가 경들에게 이렇게 자문을 하는 까닭은 바로 관례(冠禮)와 가례(嘉禮)를 책례(冊禮)와 일시에 병행하는 것이 매우 좋겠다는 생각에서이다.

문왕세자편(文王世子篇)에 이른바 ‘한 가지 일을 행하여 세 가지 좋은 선(善)을 다 얻는다.’001) 는 것은 비록 치학(齒學)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한 것이나, 지금 이 세 가지 큰 전례를 일시에 병행하는 것은 문왕세자편의 고사에 대해서 단장 취의가 되기에 충분하고, 또 그 의식 절차가 간략하고 번잡하지 않아서 건곤(乾坤)의 이간(易簡)002) 한 도리에도 부합된다. 그러니 이간하다는 《주역》의 이치를 몸받고, 세 가지 선을 얻는다는 《예기》의 교훈을 따라 관례와 가례를 금년에 병행하는 것이 실로 합당하겠다. 그리고 관례를 하고 자(字)를 부르는 것은 성인(成人)을 만들기 위함인데, 선왕들 때의 관례는 모두 책례(冊禮) 이후에 있었으므로, 관례를 거행하는 날에 으레 훈서(訓書)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왕 책례와 병행하게 되었으니, 책서(冊書)에다 훈서를 겸하는 것도 또한 예의(禮意)에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예가 지극히 중대하고도 처음으로 행하는 일이므로, 널리 자문하여 거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신·각신과 예조의 당상들은 각각 소견을 진술하라."

하니, 영의정 이병모가 아뢰기를,

"태산 같고 반석 같은 높고 견고한 형세와 억만년 국운을 누릴 경사가 지금부터 시작되는지라, 손뼉을 치며 춤이 절로 나오는 이 기쁜 마음을 어떻게 형용하여 말씀드리겠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 일로 세 가지 선을 얻는다는 가르침과 건곤이 이간하다는 의리는 천하의 법이요 만세의 준칙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인이라야 예법을 만드는 것인데, 관례·책례·가례를 차례로 병행하겠다고 하시니, 신은 실로 칭송할 겨를도 없는 터에 다시 무슨 의논을 드리겠습니까."

하고, 좌의정 심환지(沈煥之)는 아뢰기를,

"종묘 사직의 억만년 무궁할 경사가 오늘부터 시작되었으니, 팔도의 신민들이 다같이 손뼉을 치며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선을 얻는다는 하유와 천지의 도가 간이하다는 가르치심에 이르러서는 신이 이 하교를 들은 이후로 칭송하는 마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옛 경전에서 찾아보아도 이 예에 부합되지 않은 것이 없고, 때를 가지고 말하자면 또 길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신은 한 마디 말도 거들 수가 없습니다."

하고, 우의정 이시수(李時秀)는 아뢰기를,

"삼원(三元)003) 의 길일을 만나서 이같은 하교를 받았으니, 종묘 사직의 억만년 무궁할 기반이 오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기뻐서 춤을 추며 축원하는 정성을 실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성대한 전례를 오늘날까지 지연시켜 온 것과 세 가지 예절을 일시에 병행하는 것은 모두가 원대한 성상의 슬기에서 나온 것이니, 신은 실로 우러러 흠모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하고, 검교 제학(檢校提學) 정민시(鄭民始)는 아뢰기를,

"이 새해를 맞이하여 신민들의 소망이 더욱 간절한 터에 오늘 이런 하교를 받고 보니, 진실로 너무 기뻐서 고무되는 마음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경사스러운 예식들을 일시에 병행하는 데에 대해서는, 신은 본디 예법에 어두워 경전에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합쳐서 거행하는 것이 타당하겠고 국가의 경례(慶禮)에 있어서도 대비(大備)004) 가 될 것입니다."

하고, 예조 판서 서매수(徐邁修)는 아뢰기를,

"정월 초하룻날 종묘와 경모궁을 배알하신 끝에 이 막대한 예를 결정하시니, 신은 곧장 연전(筵前)에서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자 책봉의 의식이나 관례의 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모두가 끝없는 경사이니, 오늘 한 가지 경례를 거행하고 내일 또 한 가지 경례를 거행하여, 차례로 좋은 날을 받아서 의식 절차를 각각 마련하는 것이 더욱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상이 이르기를,

"지극히 중대한 일이라 2품 이상의 관원들은 당연히 불러서 물었거니와, 또한 이 간이(簡易)하게 한다는 뜻에 대하여, 비록 오늘 이 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은 아니나 여러 승지들도 각각 소견을 진술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행 도승지 이면응(李冕膺) 등이 아뢰기를,

"온 나라 신민들이 학수 고대하던 끝에 이 하교를 받았으니, 기뻐서 고무되는 마음을 어찌 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경례를 합쳐서 거행하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에 진실로 합치될 것입니다."

하므로, 상이 이르기를,

"여러 의논에 다른 말이 없으니, 이것이 대동(大同)이라는 것으로, 이는 홍범(洪範)에 이른바 ‘자신은 안락해지고 자손들은 좋은 일을 만날 것이다.’는 것이다."005)

하고, 인하여 전교하기를,

"정월 초하룻날에 종묘와 진전과 경모궁을 배알하고 원자(元子)의 책례·관례와 가례에 대한 사유를 친히 고하였으니, 예조로 하여금 좋은 날을 가리고 인하여 응당 해야 할 여러 가지 절차를 품정(稟定)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227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註 001]
    ‘한 가지 일을 행하여 세 가지 좋은 선(善)을 다 얻는다.’ : 한 가지 일이란 세자(世子)가 국학(國學)에서 신분의 상하를 논하지 않고 나이의 순서에 따르는 것[齒學]을 이른 말이고, 세 가지 선(善)이란 바로 세자가 국학에서 나이의 순서에 따르는 것을 본 뭇사람들이 첫째로는 부자(父子)의 도리를 알게 되고, 둘째로는 군신(君臣)의 의리를 알게 되고, 셋째로는 장유(長幼)의 예절을 알게 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
  • [註 002]
    건곤(乾坤)의 이간(易簡) : 《주역(周易)》 계사상(繫辭上)에 "건도는 쉬운 것으로 주관하고, 곤도는 간략한 것으로 이룬다.[乾以易知 坤以簡能]" 한 데서 온 말이다.
  • [註 003]
    삼원(三元) : 해의 처음[歲始]이고 달의 처음[月始]이며 날의 처음[日始]이라는 뜻으로, 즉 정월 초하루를 이른 말이다.
  • [註 004]
    대비(大備) : 마치 성인(聖人)의 인격처럼 완벽하게 이루어짐을 뜻한다.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예는 모범이니 그러므로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한다.[禮器 是故大備]" 한 데서 온 말이다.
  • [註 005]
    이것이 대동(大同)이라는 것으로, 이는 홍범(洪範)에 이른바 ‘자신은 안락해지고 자손들은 좋은 일을 만날 것이다.’는 것이다." : 대동은 의견이 크게 같다는 뜻인데,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네 의견을 경사가 따르고 서민이 따르면 이를 대동이라고 하니 자신은 안락해지고 자손은 좋은 일을 만날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以元子爲王世子, 召見大臣、閣臣、吏ㆍ禮ㆍ兵ㆍ戶、漢城府諸堂。 上曰: "今日卽月正元日也。 曉拜眞殿, 仍爲展謁廟宮。 方欲以國家莫大之典禮, 詢問於卿等, 而此時鼎席, 不可不備, 故俄於宮門外, 特降元輔重拜之命矣。 冊儲之禮, 卽國朝應行之典, 擧國顒祝之情, 而況今元子年紀已踰十歲, 則雖以祖宗朝已行之例言之, 謂之晩亦可也。 予所以鄭重至今者, 蓋出於遲之又久之意, 亞歲請對之時, 旣有諭及於卿等者, 而今曉以前, 尙未決定于心矣。 祗拜廟宮, 陟降孔邇, 周旋出戶之際, 予心自然相感, 不啻若親承躬聆。 回鑾之後, 始爲仰稟于慈殿、慈宮。 而今當元朝, 日吉辰良, 方欲下敎, 而所欲詢問于卿等者, 冠禮、嘉禮之與冊禮, 一時倂行甚好。 《文王世子篇》所謂: ‘行一物而三善皆得云者’, 雖以齒學一事而言, 而今此三大典禮之一時倂擧, 足可以斷章取義, 且其儀文之約而不煩, 又合於乾坤易簡之道。 體《大易》易簡之理, 遵《禮經》三善之訓, 冠禮、嘉禮之竝擧於今年, 實爲合宜。 且冠而字之, 爲其成人, 而列朝冠禮, 皆在冊禮之後, 故冠禮之日, 例有訓書。 而今旣與冊禮竝行, 則以冊書兼訓書, 亦合禮意。 而禮旣至重, 且係創行, 不可不博詢而行之。 大臣、閣臣、禮堂, 各陳所見。" 領議政李秉模曰: "泰山磐石之勢, 萬億斯年之慶, 自今伊始, 歡忭蹈舞之忱, 何以形容仰達? 而至於一事三善之敎, 天地簡易之義, 有以仰爲天下法, 爲萬世則矣。 惟聖制禮, 冠禮、冊禮、嘉禮之次第竝行, 臣實莊誦欽頌之不暇, 更何容議乎?" 左議政沈煥之曰: "宗社億萬年無疆之慶肇自今日, 臣民歡忭, 八域惟均。 至於三善之諭, 簡易之敎, 承聆以來, 曷任欽頌。 求之經而禮無不合, 以其時則吉無不叶, 臣無容贊一辭矣。" 右議政李時秀曰: "當此三元吉日, 承此下敎, 宗社億萬年無疆之基, 自今伊始。 臣等蹈舞歡祝之誠, 實無以言語形容。 盛典之遲待今日, 禮節之竝行一時, 俱出弘遠之聖謨, 臣實欽仰之不暇矣。" 檢校提學鄭民始曰: "當此新元, 輿情之顒望益切, 今承下敎, 誠不勝歡欣皷舞之忱。 慶禮之合行, 臣素昧禮意, 未知於經如何, 而卽今事勢, 合行便當, 在國家慶禮, 尤爲大備矣。" 禮曹判書徐邁修曰: "月正元日, 爰定莫大之禮於廟宮展拜之餘, 直欲起舞於筵前。 而冊儲冠禮, 均是無疆之慶, 今日行一慶禮, 明日行一慶禮, 次第涓吉, 各備儀文, 恐似尤好矣。" 上曰: "事係至重, 當召問二品以上, 而亦以簡易之意, 雖不爲之, 登筵諸承旨, 亦各陳所見。" 行都承旨李冕膺等曰: "八域臣民延頸顒望之餘, 承此下敎, 歡欣皷舞之忱, 何可勝達? 而至於慶禮之合行, 允叶群情矣。" 上曰: "僉議無異辭, 是之謂大同, 此正洪範所謂: ‘身其康彊, 子孫其逢吉者也。’" 仍敎曰: "月正元日, 祗拜廟殿宮, 親告元子冊禮、冠禮與嘉禮之由, 令禮曹擇吉日, 應行諸節, 仍爲稟定。"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227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