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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52권, 정조 23년 12월 21일 갑진 1번째기사 1799년 청 가경(嘉慶) 4년

규장각이 어제 선사본을 올리다

규장각이 어제(御製) 선사본(繕寫本)을 올렸다. 세자로 있을 때부터 기미년312) 까지의 어제를 4집(集)으로 나누고 30목(目)으로 분류해서 정리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시(詩) 5편(編)·서(書) 1편·서인(序引) 4편·기(記) 3편·비(碑) 3편·지(誌) 1편·행록(行錄) 1편·행장(行狀) 1편·제문(祭文) 8편·윤음(綸音) 4편·교(敎) 7편·돈유(敦諭) 3편·유서(諭書) 3편·봉서(封書) 3편·비(批) 5편·판(判) 3편·책문(策問) 5편·설(說) 1편·논(論) 1편·찬(贊) 2편·잠(箴) 1편·명(銘) 4편·송(頌) 1편·잡저(雜著) 7편·강의(講義) 56편·유의 평례(類義評例) 2편·고식(故寔) 6편·심리록(審理錄) 25편·일득록(日得錄) 19편·군서 표기(群書標記) 5편 등 모두 1백 91편이었다.

규장각을 처음 설치할 때부터 각신(閣臣)이 어제(御製)를 모아서 정리하는 법을 정해 놓았는데, 서호수(徐浩修)가 이를 실제로 주관하면서 의례(義例)를 세우고 편차(編次)를 분류해 놓았었다. 무오년313) 가을에 호수에게 명하여 이만수(李晩秀)·김조순(金祖淳)·이존수(李存秀) 등과 함께 선사(繕寫)하는 작업을 감독하게 했었는데 겨우 수십 편을 끝낸 상태에서 호수가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해에 서영보(徐榮輔)에게 명하여 계속 편집하면서 베낀 것을 교정하게 하였는데 정대용(鄭大容)·심상규(沈象奎)·김근순(金近淳) 등이 교정 작업을 분담하였다. 그러다가 이때에 이르러 2본(本)의 선사(繕寫) 작업이 완료되었으므로 각신이 이를 받들고 합문(閤門) 밖으로 가서 바치게 된 것이었는데, 1본을 대내(大內)에 보관하고 1본은 이문원(摛文院)에 보관하게 하였다. 각신에게 상을 주었는데, 호수에게는 제사를 지내 주도록 하고 영보에게는 말[馬]을 하사하였으며 나머지 모두에게 차등있게 상을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57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24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인사-관리(管理)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甲辰/奎章閣, 進御製繕寫本。 御製自春邸時, 至己未年分, 爲四集, 其目爲三十。 詩五編、書一編、序引四編、記三編、碑三編、誌一編、行錄一編、行狀一編、祭文八編、綸音四編、敎七編、敦諭三編、諭書三編、封書三編、批五編、判三編、策問五編、說一編、論一編、贊二編、箴一編、銘四編、頌一編、雜著七編、講義五十六編、類義評例二編、故寔六編、審理錄二十五編、日得錄十九編、群書標記五編, 凡一百九十一編。 自設閣初, 定諸閣臣御製會稡之法, 而徐浩修實主之, 立義例分編次。 戊午秋, 命浩修李晩秀金祖淳李存秀等監繕寫, 甫數十編, 而浩修卒。 是歲, 命徐榮輔, 續編校寫, 鄭大容沈象奎金近淳等分校。 至是寫完二本, 閣臣奉詣閤外以進, 一本藏于大內, 一本藏于摛文院。 論賞閣臣, 浩修賜祭, 榮輔錫馬, 餘皆錫(賚)〔賞〕 有差。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57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24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인사-관리(管理)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