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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52권, 정조 23년 10월 10일 을미 1번째기사 1799년 청 가경(嘉慶) 4년

사치 풍조와 군신간의 의식에 대해 대신들에게 아뢰다

상이 대신에게 이르기를,

"요즘 들어 사치 풍조가 점점 자라나고 있다. 일전에 제향(祭享)하는 반열에서 본 것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통청(通淸)188) 이 안 된 사람들과 참하(參下)인 문관들까지 모두 조복(朝服)을 입고 있었다. 대체로 4품(品) 이상은 조복을 입고 5품 이하는 흑단령(黑團領)을 착용하는 것이 원래의 규례이기 때문에 의주(儀註)도 본래 이와 같이 마련했던 것이었다.

기억하건대, 옛날 선조(先朝) 때 내가 묘정(廟庭)에서 올려 모실 당시에 보니, 시종(侍從) 가운데 조복을 착용한 자가 절반도 안 되었었다. 그런데 어느새 수십 년도 못 되어 사치 풍조가 날로 자라나 이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난모(煖帽)189) 를 말하더라도 그렇다. 초모(貂帽)190) 역시 덕이 있는 자에게 쓰게 하는 상징물로서 품계(品階)를 확연하게 구분해 놓은 것이 거의 초헌(軺軒)191) 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가령 의관(醫官)이나 역관(譯官)들의 경우는 사송(賜送)된 관계로 더러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관 가운데 좌이(佐貳)192) 를 거치지 않은 자들과 무관 가운데 순장(巡將)들까지 모두 쓰고 있고, 심지어는 수직(壽職)에 있는 자들마저 모두 잘못을 본받고 있으니, 복장을 등급별로 제정한 제도가 이보다 더 심하게 밝혀지지 않은 경우는 없다 하겠다."

하고, 또 하교하기를,

"예를 갖추고 군신(君臣)이 만나는 조정의 의식이야말로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 그런데도 근래에 하나의 큰 조회(朝會)를 행할 때마다 문득 잘못되는 일이 한 번씩은 생기곤 한다. 일전에 알성(謁聖)하려고 재숙(齋宿)할 때 시위(侍衛)를 난잡하게 한 것은 우선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승선(承宣)이 앉아 있는 모양을 보니 불경스럽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집안에서 자기 행동을 단속하는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나와서 공적인 자리에 있을 때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일이 사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 민망한 일이 아닌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10면
  • 【분류】
    의생활(衣生活) / 풍속-예속(禮俗)

  • [註 188]
    통청(通淸) : 청관(淸官) 즉 홍문관 관원이 될 자격을 얻는 것.
  • [註 189]
    난모(煖帽) : 방한모.
  • [註 190]
    초모(貂帽) : 담비 가죽으로 만든 방한모.
  • [註 191]
    초헌(軺軒) : 종3품 이상이 타는 외바퀴 수레.
  • [註 192]
    좌이(佐貳) : 참판과 참의.

○乙未/上, 謂大臣曰: "近來侈風漸長。 雖以日前享班所見言之, 未通淸及參下文官, 皆着朝服。 蓋四品以上朝服, 五品以下黑團領, 自是例也, 故儀註本如此。 憶昔先朝, 予陪進廟庭時見之, 則侍從之着朝服者未半。 居然數十年之間, 侈習之日滋, 至於如此。 且以煖帽言之。 貂帽亦是命德之器, 其品之截然, 殆同軒軺。 如醫譯輩則以賜送也, 故雖或着之, 而文之未經佐貳者, 武之巡將, 無不着之, 甚至壽職者, 亦皆效尤, 衣章等級之不明, 莫此爲甚矣。" 又敎曰: "法筵朝儀, 何等嚴重? 而近來每一大朝會, 便有一番做錯。 日前謁聖齋宿時, 侍衛之雜亂, 姑勿言, 而至有承宣坐樣之欠敬。 此無他, 今之人, 在家無行檢之工, 故出而公座亦然。 事雖微細, 豈可不悶乎?"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10면
  • 【분류】
    의생활(衣生活)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