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 52권, 정조 23년 8월 5일 신묘 4번째기사
1799년 청 가경(嘉慶) 4년
형조 판서 이득신이 법조문으로 이단에 빠진 백성을 다스리기를 건의하다
형조 판서 이득신(李得臣)이 아뢰기를,
"최필공(崔必恭)은 신의 조(曹)에서 엄중히 신문하고 여러 방법으로 일깨워보았는데 이단에 빠져든 정도가 갈수록 더 심해질 뿐 조금도 깨우치는 뜻이 없었으므로 그의 부형을 불러 그들에게 일깨워 보게 하였더니, 며칠 사이에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기한이 지난 뒤에 그들이 다시 와서 일러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화시키기 어려운 백성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법조문을 적용시켜야만 다스려지는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자는 족히 책망할 것도 없는 무리이다. 이전에는 입으로만 그렇게 하겠다 하고 마음은 깨우치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반드시 마음을 바꾸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이 자의 행위는 매우 가소롭다. 생활이 곤궁할 때는 잘못을 깨우쳤다고 말하여 먹을 것을 얻을 길을 찾았다가 일단 먹을 것을 얻은 다음에는 금방 또 예전과 마찬가지이니, 이는 항심(恒心)이 없는 무리에 불과하다."
하였다. 이 때에 최필공이 이전의 버릇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옥에 잡아 가둔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202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상-서학(西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