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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51권, 정조 23년 5월 25일 임오 1번째기사 1799년 청 가경(嘉慶) 4년

불순한 학문의 상황에 대해 등한시 한 장령 강세륜을 체차하다

상참(常參)하였다.

장령 강세륜(姜世綸)이 아뢰기를,

"온화한 기운이 상서를 불러오고 어그러진 기운이 재변을 불러오는 것은 이치로 보아 본디 그러한 것입니다. 근래에 이른바 일종의 불순한 학문이 옳지 못한 쪽으로 점점 물들어 간 지가 자못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신이 지난 가을에 전 참판 이익운(李益運)이 전 지평 정종로(鄭宗魯)에게 보낸 편지를 얻어보았더니, ‘서울에도 종자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일이 커지기 전에 조짐을 막을 방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운운.’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 말과 같다면 불순한 학문이 이미 잠잠해졌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불순한 기운이 아직 모두 제거되지 않은 것도 또한 재변을 불러올 단서가 되고도 남는 것입니다. 한성부에 엄하게 신칙하여 더욱 철저히 조사하게 해서 점점 더 번져갈 염려가 없게 하소서."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는 불순한 학문을 막는 방도가 법을 만드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지난번 빈대에서도 이미 언급을 했다마는, 조정에서 벼슬하는 사람들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올곧은 기운을 가득히 배양하고 불순하고 어두운 습속을 깊이 경계한다면 육예(六藝)의 과목에 들어 있지 않은 모든 것들은 절로 배척되어 없어질 것이다. 먼저 조정에서부터 사람을 쓰고 버릴 때에 무릇 행실이라든지 옷입는 것이라든지 말하는 것이라든지 짓는 글이라든지 이 한 쪽으로 가까이 물들어 있는 자가 있으면 일체 배척해서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거의 크게 변화시키는 방도라고 할 수 있겠는데, 또한 다 그렇게 되지 못한 곳도 있다. 고 정승 판부사 채제공(蔡濟恭)이 말하기를, ‘곧은 사람을 등용하는 일은 있었으나 곧지 못한 사람을 버리는 일은 부족하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한성부부터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한 일은, 지적할 만한 자가 누구라는 것도 없는데 장차 어떻게 철저히 조사하겠는가. 참으로 들은 바가 있다면 어찌하여 바로 말하지 않고 모호하게 논핵을 하는가. 영남 사람은 평소 진실하다고들 일컬어지는데, 이 대간의 거조는 참으로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근래 불순한 학문이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고보면, 이익운의 편지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았다고 하는 것은 정말 너무도 성실치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바른말을 구하는 때인지라 꺾어버리고 싶지는 않다만, 이러한 습속은 내가 매우 미워한다."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이 자는 바로 병오년에 이문원(摛文院) 관원들을 접견하던 날에 고 정승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청하던 대간이다. 그 당시 아룀에서부터 이미 두 가지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 일로 해서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그르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이제 또 이렇게 아뢰니 참으로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고, 이어서 장령 강세륜을 체차하라고 명하였다. 대사간 신헌조가 아뢰기를,

"불순한 학문의 해독을 이루 말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추악한 무리들과 연줄을 대어 점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군신 부자 사이의 윤리도 무시하고 남녀 부부 사이의 분별도 더럽히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이고 유혹하여 곳곳마다 무리를 이루고 있으니, 윤리가 남김없이 모두 없어질 뿐만 아니라 황건적(黃巾賊)이나 백련적(白蓮賊)과 같은 자들의 반란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비록 성상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여 기르려는 어진 마음으로 반드시 불순한 무리들을 교화시켜 올바른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더라도, 저 인륜을 끊어버린 무리들은 이미 군신 부자의 윤리를 모르니, 어찌 마음을 고쳐먹고 생각을 바꾸어 모두 새롭게 하는 교화에 따르려고 하겠습니까.

간혹 불순한 학문을 공격하는 자라고 하는 자가 있기는 하나 겨우 이존창(李存昌) 한 사람을 대충 거론하여 책임이나 면하는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이 성실하지 못한데 사람들이 누가 두려워하겠습니까.

그 소굴 속에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을 말하자면, 조정의 벼슬아치로는 이가환(李家煥)이 있고 경기에는 권철신(權哲身)정약종(丁若鍾) 같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로써 본다면 이존창 같은 자가 한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김려(金鑢)강이천(姜彛天) 같은 무리들은 취향은 다르나 길을 같이하고 얼굴은 다르나 배짱은 맞는 자들로서 빈틈없이 일을 해나가는 것이 지극히 흉악하고 헤아리기 어려우니, 그들에 대한 근심 걱정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는데, 미처 다 아뢰기도 전에 상이 이르기를,

"중신이야 본디 사람들의 지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마는, 그 밖의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또 이름을 지적해 가며 논열하여 아랫 조항의 말 뜻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으니, 장차 세상의 절반을 들어서 강이천이나 김려의 무리라고 몰아부칠 작정인가? 이와 같이 과격한 것은 한갓 조정이 안정되지 못할 단서만 열어놓을 것이니, 대사간의 일은 참으로 생각이 모자라는 것이라고 하겠다."

하였다. 신헌조가 아뢰기를,

"신이 계사를 다 진달한 뒤에 다시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오늘은 내가 도움을 청하였고 그의 말이 또 불순한 학문을 배척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이것은 조정의 기상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그 말을 다 마치게 할 수가 없다." 하였다. 이어서 대사간 신헌조를 체차하라고 명하였다. 신헌조가 아뢰기를,

"신이 이미 체직을 당하였으니 어찌 감히 번거롭게 진달드리겠습니까마는, 불순한 학문이 없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며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니, 앞으로의 폐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의 몸이야 비록 무거운 견책을 받더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만, 이 계사를 다 아뢰지 못하면 신의 마음은 울분에 차서 장차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한이 맺힐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불순한 학문을 엄히 배척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찌 대사간만 못하겠는가마는, 지금 이 처분에는 대개 또한 뜻이 담겨 있다. 이미 체직하였으니 물러가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51권 67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18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법(司法) / 인사(人事) / 사상-서학(西學) / 정론(政論)

○壬午/常參。 掌令姜世綸啓言: "和氣致祥, 乖氣致異, 固其理也。 近所謂一種邪學, 浸染詿誤, 殆有年所。 臣昨秋得見前參判李益運, 抵前持平鄭宗魯書, 則有曰: ‘輦轂之下, 涓涓綿綿, 種子不絶, 不可不思防微杜漸之道云云。’ 果如是, 則邪學不可謂已熄矣。 此等邪氣之猶不盡除, 亦足爲召災之端。 嚴飭京兆, 亟加究覈, 俾無滋蔓之憂焉。" 上曰: "予謂邪學禁遏之道, 不在於設法。 向日賓對亦已言及, 而搢紳章甫之間, 充養至大至剛之氣, 深戒邪淫噍殺之習, 則諸不在六藝之科者, 自當在斥黜矣。 先自朝廷上用舍之際, 凡係擧止也服着也言語也文字也, 如有近於此一邊者, 一切擯不與焉, 則幾可爲丕變之道, 而亦有不能盡然處。 故相蔡判府事所謂: ‘擧直則有之, 而錯枉則不足云者。’ 其言誠是矣。 至於自京兆究覈, 則旣無誰某之可以指的者, 將何以究覈? 而苟有所聞, 何不直切言之, 乃爲糢糊之論乎? 嶺人素稱質實, 而此臺臣擧措, 極爲礙眼。 且近日邪學之在處肆行, 無人不知, 則謂見李益運私書而始乃知之云者, 尤豈非不誠之甚乎? 求言之時, 不欲摧折, 而此等之習, 予切惡之。" 又敎曰: "此是丙午年摛文院次對日, 請究覈故相之臺臣也。 自其時所奏, 已有兩端底意思。 以此事, 心常非之矣。 今又如是, 殊甚駭然矣。" 仍命掌令姜世綸遞差。 大司諫申獻朝啓言: "邪學之害, 可勝言哉? 夤緣醜類, 漸染浸漬。 無君臣父子之倫, 汚男女夫婦之別, 誑誘愚氓, 所在成群, 非特彝倫之晦塞無餘, 黃巾、白蓮之憂, 勢所必至。 雖以聖上涵育之仁, 必欲化龍蛇爲赤子, 而奈彼滅倫之徒, 旣不知君臣父子, 則豈肯改心易慮, 咸歸維新之化乎? 間有稱爲攻邪學者, 不過以一箇李存昌塞責漫漶。 言旣不誠, 人孰知懼? 以窩窟之世所共知者, 言搢紳則有李家煥, 近畿則有權哲身丁若鍾輩。 以此觀之, 則不啻數箇存昌。 又況金鑢姜彛天輩, 異臭同塗, 換面連肚, 綢繆經營, 至凶叵測, 其深憂隱慮, 有不可勝言者矣。" 奏未畢, 上曰: "重臣固是受人指目者, 而其外諸人, 又多指名論列, 下款語意, 轉益噴薄, 其將擧半世而歸之之黨乎? 如是矯激, 徒啓朝象不靖之端, 諫長事可謂不思之甚也。" 獻朝曰: "臣於畢陳啓辭之後, 當更有所達矣。" 上曰: "今欲求助, 其言又出斥邪, 則豈不欲優容, 而此則事係朝象, 不可使畢其說矣。" 仍命大司諫申獻朝遞差。 獻朝曰: "臣已蒙遞, 何敢煩陳, 而邪學不熄, 則國不得爲國, 人不得爲人, 來後之弊, 將不勝言。 臣身則雖被重譴, 固不敢辭, 而此啓未畢, 則臣心憤鬱, 將爲不瞑之恨矣。" 上曰: "予之欲嚴於斥邪, 豈不若諫長, 而今此處分, 蓋亦有意存焉。 旣已遞職, 退去可也。"


  • 【태백산사고본】 51책 51권 67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18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법(司法) / 인사(人事) / 사상-서학(西學)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