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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50권, 정조 22년 11월 30일 기축 2번째기사 1798년 청 가경(嘉慶) 3년

안성택과 이광한 등 관동 지방에서도 농서를 올리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안성택이 올린 농서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치 풍조가 만연되어 농삿일을 게을리하고 있으니, 지금 이후로는 시정의 무뢰배들은 감히 담비와 양가죽옷을 입지 못하고 여염의 일반 백성들은 감히 명주나 비단옷을 입지 못하며, 양인(良人)은 도포를 입지 못하고 중인(中人)은 당혜(唐鞋)를 신지 못하며 가노(家奴)는 갓을 쓰지 못하고 상점 사람들은 탕건을 쓰지 못하도록 일체 통렬히 금지하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이 모든 조목들은 대부분 법전에 실려 있는바, 오로지 유사가 그때그때 지나치게 심한 자를 금하는 데 달려있습니다.

1. 뽕나무 1천 그루를 심은 것도 역시 부자의 재산인데 가난한 사람은 이를 심을 만한 넓은 땅이 없고 부자들은 뽕나무를 심어 관작을 얻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으니, 부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힘자라는 대로 심게 하되, 많이 심은 자에 대해서는 비단옷을 입는 것으로 상을 내리고 심지 않은 자는 집에 나무를 심지 않은 데 대한 벌로 포를 내게 하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근원은 농상(農桑)에 달려있으니, 뽕나무를 많이 심은 자에 대해서 무슨 상인들 아끼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비단옷을 입도록 하는 것은 늙은이와 젊은이의 복장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게 정해지기 전에는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참으로 숫자에 맞추어서 심은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면천(免賤)이나 면역(免役), 가자(加資)를 따지지 말고 원하는 바에 따라서 시행하소서. 그리고 양주(楊州)는 토질이 뽕나무를 심기에 가장 적당하니 우선 양주 고을부터 먼저 특별히 시험해 보도록 하고, 나무를 심지 않은 벌로 포를 내게 하는 것은 우선은 내버려두소서.

1. 향약법을 신칙하는 것은 풍속을 바로잡고 농민들을 장려하는 커다란 근본이니, 멀리로는 주(周)나라 사람들이 정전(井田)을 중심으로 힘을 합해 농사짓던 의리를 따오고, 가까이로는 남전 여씨(藍田呂氏)523) 의 규약을 취해다가 아래에다 역력히 진술하는 데 대해서입니다.

향약법이 농민을 권장하는 근본이 된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정론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다소간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진달드렸습니다. 이번에 올리는 복계(覆啓)는, 잘 강구하여 시행하는 곳은 가상히 여겨 장려하고, 미처 강구하여 시행하지 못하는 곳은 아마도 억지로 시행하도록 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1. 농기구와 농기계를 빌려주고 소와 양식을 대주는 규정을 각 마을의 집강(執綱)들에게 각별히 신칙하여, 밭갈거나 모를 내거나 김매거나 수확하는 때를 막론하고 원주인이 먼저 3일을 쓴 뒤 가난하고 잔약한 사람들에게 파급시키며, 곡식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팔거나 빌려주는 것을 다른 면이나 다른 지방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단지 한 동네 안에서만 사고 팔게 한다면 무역하는 것을 걱정할 것 없고 변통해 쓰기에 크게 이로울 것인바, 법령이 이와 같은데도 이를 준행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각별히 치죄하며, 이를 신칙하는 것은 모두 수령에게 달려 있는데 조정의 명령을 봉행하면서 단지 책임이나 때우려고 할 경우 감사가 농정을 제대로 하였는가, 소홀히 하였는가 및 수리(水利) 사업을 제대로 하였는지를 살펴서 근무 평정에 반영하도록 하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소나 농기구를 빌려주어 돕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년 농사를 권장하는 교서를 내릴 때마다 이에 대해 간곡히 당부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깨우쳐주고 경계시켜서 진심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것은 오로지 수령들에게 달려 있으므로, 이것을 가지고 근무 행정을 하도록 전에 이미 알렸습니다. 원래의 주인이 먼저 며칠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일에 이르러서는 조정에서 한계를 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 곡식이 여유가 있는 자에게 다른 면으로 내가지 못하도록 하고, 단지 한 동네 안에서만 변통하여 쓰도록 하라고 운운한 것과 같은 일은, 혹 수령이 일시적인 임시 방편으로나 쓸 수 있는 계책이지 조정에서 외방을 모두 똑같이 보지 않는 뜻이 있는바, 그것을 법령으로 정한다는 것은 논할 바가 아닙니다.

신은 이상의 여러 조항에 대해서 하나하나 물어보았으며, 또 말은 좋지만 그 사이에는 두루 반포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 뜻으로 말하면서 그 까닭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말하기를, ‘두루 시행하기가 어렵다면 먼저 내가 살고 있는 양주 고을부터 결단성 있게 시행해 보아서 그 성과를 징험해 보고, 이어 두루 시행하는 것 역시 가까운 데부터 시행하여 멀리까지 미쳐가는 방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것을 위주로 하는 정사에 해롭지 않으니, 감사로 하여금 해당 목사에게 분부하여서 그로 하여금 조목조목 상세히 살펴본 다음 시행할 만한 것을 채택하여 그 즉시 시행해 보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전교하기를,

"안성택이 한 말은 결단코 구언 전지를 보고서 갑자기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니, 몹시 가상하다. 사치 풍조의 폐단이 어찌 한갓 농사에만 방해가 될 뿐이겠는가. 나라나 집안에 온갖 폐해가 일시에 닥친다.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백성을 교화시키는 데 있어서 말단적인 방법이다. 참으로 조정에 궁궐과 복장을 검소하게 하는 덕이 있고 경들에게 하인의 숫자를 줄이고 풍악을 줄이는 풍속이 있다면 도성 백성들이 이를 본받고 사방 백성들이 모범으로 삼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아래와 위가 서로 힘쓸 곳이 아니겠는가. 여러 조항들을 해당 목사에게 내려보내서 시행할 만한 것을 채용하여, 먼저 양주 한 고을에서 시험해 보게 하자는 것은, 경의 말이 옳다. 그리고 안성택의 말 가운데 작은 이끗을 좇는다고 운운한 것은 더더욱 현재의 폐단을 정확히 맞춘 것이다. 관문(關門)과 저자에서 본인인지 확인하며 일일이 점고하는 것은 비록 시행할 수 없다고 하지만, 만약 조정에서 단지 농사를 장려하는 것만 힘쓰고 백성들이 한갓 농사에 힘쓸 줄만 알아서 이에 반하는 것은 일체 반드시 금지시키고 억제시킨다면, 그 효과는 장차 위에서는 기강이 서고 아래에서는 분업(分業)이 정해져서, 거간꾼 노릇하는 퇴폐스런 풍조가 없어지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대체로 우리 나라가 나라다움을 유지함에 있어서 사대부들의 힘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성현의 글을 많이 읽어 시정(市井)의 이익을 말하기를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시정배들처럼 하는 것이 비천한 짓임을 알고 사대부들처럼 하는 것이 고상하다는 것을 분명히 본다면 서울이나 지방의 백성들이 그들의 청렴함과 위엄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공명정대함에 감복해서 서로 믿고 관장(官長)의 명령을 잘 따라 감히 근본이 되는 농삿일을 버리고 장사꾼의 길로 들어설 계획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대부들은 바로 옛날의 사대부들이다. 이 한 조항에 대해 어찌 다시 권면하기를 기다려서 더욱 힘씀으로써 안성택 등으로 하여금 캄캄한 방안에서 지나친 걱정을 하게 하겠는가. 마침 비답의 내용을 불러주어 쓰게 하는 때를 당하였기에 부득불 대략 언급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버드나무를 심은 한 가지 일은, 수(水)가 목(木)을 내는 것이 비록 오행(五行)의 순서이기는 하지만, 산이 초목으로 무성하게 덮여 숲을 이룬 뒤에야 지맥(地脉)이 축축해져 샘이 솟아오르는 법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언덕과 산기슭의 도처가 벌거숭이가 되어 있어서 열흘만 가물면 시냇물이 그 즉시 마르고 며칠만 비가 내려도 하천변이 잘 무너져서 논밭이 모두 손실당하니, 어찌 버드나무 한 종류뿐이겠는가. 소나무·가래나무·흰느릅나무·느릅나무·노나무·오동나무·신나무·옻나무도 안 될 것이 없다.

연전에 고 상신(相臣)이 찬집해낸 송정 절목(松政節目)에 1만 그루 이상을 심었을 경우 특별히 상을 주자는 의논이 있었다. 그런데 한 개의 도나 한 개의 고을에서도 조정의 명령을 받들어 시행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이와 같고서야 어찌 백성들이 소문을 듣고서 따라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금 별도로 조목을 만들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옛날의 규정을 잘 밝혀서 백성들로 하여금 사시(四時)가 순행하는 것을 믿듯 조정의 명령을 믿게 하는 데 달려 있다.

뽕나무를 심는 일에 이르러서는, 백성들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 의식(衣食)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는데, 곡식은 식량의 근본이 되고 누에는 옷감의 근원이 되는바, 어느 한 가지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산동 지방의 뽕과 형주 지방의 뽕이 비록 심는 방법에는 각자 차이가 있지만, 원래 흙이 기름지고 비옥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이 산이건 들이건 언덕이건 습지건간에 어떤 땅에서나 심어놓기만 하면 자라나는 것이다. 뽕이 있으면 저절로 누에가 생겨나고 누에가 있으면 누에고치가 자연히 생겨나는데, 화려한 비단옷을 어째서 중국 사람들만 입게 하겠는가. 오늘날의 감사나 수령들 역시 옛날의 감사나 수령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어찌 칠보(七寶)의 뽕나무 밭에 관해서는 완평(完平) 이상(李相)에게만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겠는가.524) 무릇 재배하고 심는 것은 참으로 겨울이나 봄을 기다려야 되지만 땅뽕[地桑]에 대한 한 가지 법만은 제철을 당하여 오디를 채취하는 것이다. 이 책자 가운데 있는 ‘근(勤)’이란 한 글자는 바로 이러한 곳에서 효과를 거두기에 부합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뜻으로 신칙해야 할 도에 두루 신칙하여서 실제적인 성과가 있도록 하라.

그런데 매번 법령을 내려보낼 때마다 생선을 끓이듯 은근히 하기를 구하지는 않고 오로지 참새를 잡듯이 몰아붙이기만 하니, 되겠는가. 잠실을 짓거나 뽕나무를 심는 데 대한 법의 뜻이 어떠한가. 연래에 엄하게 신칙한 바가 있었는데도 요즈음 들으니 한결같이 유명 무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 나의 지역이니 너의 땅이니를 따지겠는가. 내부(內府)건 외조(外朝)건 혐의치 말고 올해부터는 경이 감사·수령들과 거듭 논의하여서 별도로 조목을 만든 뒤에 초기(草記)를 작성하여 아뢰도록 하라.

화전에 대한 한 가지 일은, 산허리 이상은 일구지 못한다는 금령이 본디 있으나 특별히 곡식을 생산하여 식량을 넉넉히 한다는 뜻에서 아직은 획일적인 법을 적용치 않고 있는바, 엄하게 금하기 전에는 마땅히 돌보아주어야 할 것이다. 언덕배기 밭으로 땅이 기름져서 바곳과 씀바귀마저도 단맛을 내는 곳에도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한 해 동안 내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어찌 차마 한 줌, 한 단이나마 더 세금을 매길 수 있겠는가. 더구나 저 돌투성이의 산전(山田)은 나무를 불사르고 돌을 골라내느라 사람은 발꿈치가 부르트고 소는 한 쪽 발을 끌면서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역을 넘나들며 한 줌의 이삭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는데, 곡식이 누렇게 익기도 전에 먼저 시퍼런 싹에다 세금을 매기는 것이야 어찌 차마 어진 군자로서 할 짓이겠는가. 뼈를 깎는 듯한 백성들의 고통을 안다면 속히 이를 깨우쳐주어 추수철까지 끌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책자 가운데 있는 미리한다는 뜻의 ‘예(豫)’라는 한 자는 바로 이러한 것에 대해 시행하기에 합당한 것이다. 공전(公田)이건 사전(私田)이건 둔전(屯田)이건간에 따질 것 없이 범례로 화전(火田)이 있는 고을에서는 반드시 곡식이 다 익은 다음에 실지대로 세금을 매기되 한결같이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있는 25일 갈이를 1결(結)로 한다는 규정을 준수하여 혹시라도 어기는 일이 없게 하라. 그리고 정채(情債)에 관한 잘못된 관례는 엄하게 금지시키라. 암행 어사가 싸가지고 가는 사목에 이상의 조항을 더 첨가해 써넣으라."

하였다.

이광한(李光漢)이 올린 농서는 모두 22조목이었다. 상이 가상히 여기고, 전교하기를,

"관동은 지방이 조그맣고 치우쳐 있는데도 진언한 자가 많기가 여러 도들 가운데서 으뜸이니, 백성들의 풍습이 순후한 것이 몹시 기쁘다. 홍천(洪川)에 사는 유학(幼學) 이광한이 올린 농서를 보건대, 근래에 농정에 관한 전지에 응하여 글을 올린 것으로 자못 볼 만한 것이 많았으나, 진심으로 나의 뜻을 받들고 성의를 다해 상고하기를 이와 같이 성실하게 한 것이 없었다. 농정의 방도를 밝힌 조항이 22개이고 농사짓는 방법을 밝힌 조항이 28개이다. 변려문으로 시작해서 기사문으로 끌어가다가 비유법으로 끝을 맺었는데, 그 말은 경륜의 대책이고 그 글은 이해하기가 아주 쉬웠다. 여기에서 옛날 문장가들의 규범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자가 있음을 알 수가 있었는바, 내 몹시 훌륭하게 여긴다.

주부자가 매번 말하기를 ‘온 천하가 생강이 맵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직접 먹어본 다음에야 참으로 맵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였다. 만약 직접 밭두둑 사이에서 농사지어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러한 방도를 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보살펴주고 길러서 이로써 태평 시대에 이르게 한다는 말은 바로 여러 사람들이 말하지 않았던 바이다. 그리고 ‘《소학》의 도는 바로 농서(農書)이고 인도해 이끄는 교화는 바로 농정이며 임금의 마음은 바로 원기(元氣)이다.’라고 운운한 것은, 비록 예전의 명신들이 올린 글 속에다 끼워넣는다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다고 할 만하다. 아깝구나. 어찌하여 연전에 관동의 훌륭한 선비를 추천할 때에 해당 관서의 추천장에서는 이 사람의 이름을 아뢰지 않았는가.

즉시 묘당으로 하여금 조목별로 복계(覆啓)하게 하고, 이어 인사 업무를 맡은 자로 하여금 잘 알게 하여, 이러한 사람들을 주자가 말한 ‘문을 닫아걸고 밥만 먹는 중’이 되지 말게 하라.

고성(高城)에 사는 유학 권현(權炫)이 농서에서 진달한 여러 조항을 보건대, 그가 소박하고 진실하여 숨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한 허다한 폐단 가운데서 해폐(海弊)에 관한 한 가지 일은, 조정에서 전후로 조처하고 신칙하여 금한 것이 어떠하였는가. 그런데 ‘봉진(封進)할 때 폐단을 짓고 있다.’는 말이 또다시 전지에 응하여 올리는 글 속에 들어있단 말인가. 이른바 조처라고 하는 것이 비록 연전의 일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연전과 금번, 이 고을과 저 고을을 따질 것 없이, 모든 봉진을 할 때 영속(營屬)들이 규정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 묘당으로 하여금 감사에게 특별히 엄하게 신칙해서 기어이 조사해 내어 죄를 다스리게 하라.

토지를 개간하는 것 역시 급선무이다. 경작할 만한 땅이 있는데도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은,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이 역시 감사로 하여금 편리한 쪽으로 도와주어서 날마다 더 개간하는 성과가 있게 하라. 그 이외의 여러 조항에 대해서도 개혁하거나 구제해 줄 만한 것은 모두 해당 도에 내려보내어서 되도록 좋은 쪽으로 처리하게 하라.

흡곡(歙谷)에 사는 유학 조지영(趙之榮)·정치일(鄭致一)·표헌정(表憲正)이 올린 농서를 보니, 먼 바닷가 지방이고 고을 역시 10가구 정도의 작은 고을인데 이 세 사람이 글을 올렸다. 그 말을 채용할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그 성의가 가상한바, 나머지 3백 고을의 몇만 명의 사람들을 고무시킬 만하다. 그 가운데서 대동미(大同米)를 지고다니는 폐단과 전결(田結)에 따른 부역이 해가 된다는 말에 대해서는 감사에게 분부하여 조처를 취할 바탕을 마련해 주라. 일이란 눈앞에 드러난 것만 중시하기 마련이니 다른 면도 미루어 헤아려 보도록 하고 이 이외의 다른 고을도 잘 살펴보게 하라.

고성(高城)에 사는 유학 노재황(盧再煌)이 올린 농서를 보았는데, 여섯 건의 농사에 관한 설이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하지 말라. 말하는 자는 바로 자기의 의견을 제시한 것인즉, 이것을 소홀하게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연전에 삼일포(三日浦)를 함부로 경작한 데 대해 김락(金洛)이라고 하는 자를 엄하게 조처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묵혀버리고 개간하지 않는다는 말이 해당 지방에서 나왔으니, 혹시라도 삼일포의 일에 경계되어서 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땅을 헛되이 버려두어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호수를 밭으로 만드는 것은 금해야 하겠지만 늪지를 밭으로 만드는 것이야 어찌 금지하겠는가. 다른 조항들과 함께 자세히 살펴보고 해당 도에 지시하여서 이익을 일으키고 농사를 이롭게 할 바탕을 삼도록 하라. 묘당에서는 여러 유생들을 불러다가 이런 내용을 읽어준 다음 한 부씩 깨끗하게 등서해서 나누어 주고 보고하라고 강원 감사에게 하유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46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의생활(衣生活)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상업(商業) / 신분(身分) / 재정(財政) / 사법(司法) / 농업-특용작물(特用作物) / 농업-권농(勸農) / 사법(司法)

  • [註 523]
    남전 여씨(藍田呂氏) : 여조겸(呂祖謙)을 가리킴.
  • [註 524]
    칠보(七寶)의 뽕나무 밭에 관해서는 완평(完平)이상(李相)에게만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겠는가. : 칠보는 일곱 가지 이로운 점이 있는 뽕나무를 말한다. 즉 잎은 잠업에, 뿌리와 속껍질은 약재로, 열매는 식용으로, 뽕나무 겨우살이는 약재로 쓰이는 등 이로운 것이 일곱 가지가 있다. 완평 이공(完平李公)은 이원익(李元翼)을 가리킴. 이원익이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나갔을 때 관서 지방에서 유독 안주 고을만 누에를 치지 않았다. 이에 이원익이 누에를 치게 하자 고을 사람들이 토질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익이 집집마다 오디를 씨뿌리게 하니 몇년이 못 되어 잠업이 크게 일어났다. 이에 지금까지도 안주 지방의 뽕나무 밭을 ‘이공상(李公桑)’이라고 한다. 《오리집(梧里集)》 속집(續集) 부록(附錄) 권1.

○備邊司啓言: "安聖鐸農書, 其一, 侈靡成習, 農業懈惰, 自今以後, 市井無賴, 無敢着貂羊之皮, 閭巷細民, 無敢被紬錦之衣, 而良人之道袍, 中(路)〔人〕 之唐鞋, 家奴之笠子, 店漢之蕩巾, 一竝洞禁事也。 凡此諸條, 多載法禁, 惟在有司之臣, 隨時而禁其太甚。 其一, 種桑千株, 是亦富人之産, 貧民無可種之廣地, 富人恥種樹而得爵, 無論貧富, 隨力栽植, 多種者賞以衣帛之典, 闕種者罰以不毛之布事也。 民生之源, 係於農桑, 種桑多者, 何賞可吝? 而第念衣帛之典, 老少服着, 截然定制之前, 便屬虛文。 眞有準數栽種之人, 則無論免賤、免役與加資, 從所願施行。 而楊州之土, 最宜種樹, 爲先自本邑另試, 而不毛之罰, 姑且置之。 其一, 飭鄕約, 此是規風俗勸農民之大本, 遠採人同井之義, 近取藍田 呂氏之約, 歷陳於下事也。 鄕約之爲勸農之本, 誠是不易之論。 而多少難便之端, 已陳於前。 此覆啓善爲講行處, 則嘉奬之, 未及講行處, 則恐不必强令行之。 其一, 借器借械資牛資糧之規, 別飭洞里執綱, 勿論耕播移秧鋤耘收穫之節, 元主先作三日後, 泒及於貧殘之類, 穀有餘饒者, 買賣稱貸, 勿出他面他境, 只令推移買販於一洞之內, 則不憂貿販, 大益推移, 而令甲如是, 有所不遵者, 各別治罪, 蕫飭之術, 都在守令, 奉行朝令, 只爲塞責之計, 此則自道伯, 考其農政治忽, 水功興廢, 以爲殿最事也。 牛器借助, 每年勸農之綸, 未嘗不諄諄於此。 而曉飭戒告, 實心勸課, 亶係守令, 以此考績, 前已行會。 至若元主之先作幾日, 不可自朝家作爲界限。 又若饒穀者之勿出他面, 只令推移於一洞之內云云, 此或守令一時權宜之策, 有非朝家無外之意, 著之令甲, 非所可論。 臣以此諸條, 逐一問難, 且以言則儘美, 而間多難於遍頒之意, 曉譬其所以然。 則以爲: ‘如難遍施, 先自所居楊州之地, 斷以試之, 以驗其效, 仍以遍行, 亦是由近及遠之道云。’ 此不害爲務實之政, 請令道臣, 分付該牧使, 使之逐條看詳, 採其可行者, 隨卽採用。" 從之。 敎曰: "安聖鐸之言, 決非臨時應旨咄嗟辦得者, 深庸嘉乃。 侈靡之弊, 奚特妨農而已? 爲國爲家, 百害竝至。 法禁之於化民, 末也。 苟使朝家有卑宮菲衣之德, 卿等有省騶減樂之風, 則都民傚之, 四方則之。 此豈非上下交勉處乎? 諸條之付之該牧使, 採其可行者, 先試楊州一邑, 卿言是矣。 而聖鐸言中逐細利云云, 尤可謂切中時弊。 貌閱關市, 縱曰行不得, 若使朝廷只務勸農, 民間徒知力農, 一切反於是者必禁抑之, 則其爲效將見上而紀綱立, 下而分業定, 駔儈之弊俗, 不期祛而自祛。 大抵我國之爲國, 多賴士大夫之力者, 以其多讀聖賢之書, 恥言市井之利。 眞知如彼爲卑賤, 灼見如此爲高爽, 京外之民, 畏其廉威, 服其公明, 相信而從官長之令, 不敢爲捨本逐末之計。 今之士大夫, 卽古之士大夫。 此一款, 豈待更勸而益勉, 爲聖鐸等漆室過計之憂乎? 適當呼寫批旨, 不得不略及之。 其中種柳一事, 水生木, 雖是五行次第, 爲山者衣被草木, 鬱然成林, 然後土脈滋潤, 泉源湧發。 而近來邱麓, 在處童濯, 一旬之暵, 川則立涸, 數日之雨, 岸則善頹, 旱田水田, 俱受其損, 豈但柳木一種爲哉? 松、檟、枌、楡、椅、桐、梓、漆, 無所不可。 年前故相之撰出《松政節目》也, 有萬株以上, 別般論賞之議。 而未見一道一邑之奉行朝令者。 如是而何望民人之聞風趨事乎? 今不必別立料條, 惟在乎修明舊典, 使之信如四時。 至於種桑, 民生日用, 莫切於衣食, 而穀爲食源, 蠶爲衣源, 固不可闕一。 魯桑荊桑, 雖有樹植之各異, 元不須膏沃肥饒, 山野原隰, 着地則生。 有桑自有蠶, 有蠶自有繭, 粲粲衣服, 豈獨西人之子也? 今之道伯守令, 亦猶古之道伯守令。 何必使七寶桑田, 專美於完平 李相乎? 凡係栽種固待乎冬春, 而地桑一法, 取椹爲當節。 冊子中勤之一字, 正合此等處收功。 竝以此意, 遍飭於當飭當道, 俾有實效。 而每一令甲之下, 不求烹鮮之宜, 惟行敺爵之政, 其可乎? 至於蠶室種桑, 法意如何? 年來有所嚴飭, 而近聞一味有名無實, 何論我疆爾界? 勿嫌內府外朝, 自今年, 卿與道臣守臣, 往復論難, 別立科條後, 草記以聞。 火粟一事, 山腰以上, 本有禁令, 特以生穀裕食之義, 姑不行畫一之法, 而痛禁之前, 在所當恤。 原田膴膴, 僅茶如飴者, 若思沾體塗足, 終歲艱苦之勞, 則寧忍加一把增一束? 況彼确确山田, 燔木而鋤石, 人繭兩趾, 牛跪一脚, 出入虎豹之窟, 希望秉穗之收, 而不待黃熟, 先稅靑苗, 是豈仁人君子之政乎? 如知其爲切骨民隱, 莫如斯速提警, 拖到秋成。 冊子中豫之一字, 正合此等處施令。 無論公私屯田, 凡例火粟所在邑, 必趁登場後, 從實執卜, 而一遵《通編》二十五日耕作一結之例, 無或違越。 情債謬規, 嚴加禁斷。 繡衣齎去事目, 此條添書。" 李光漢進農書, 凡二十二條。 上, 嘉之, 敎曰: "關東地方褊小, 而進言之多, 甲於諸道, 民俗之淳厚, 可嘉可喜。 見洪川幼學李光漢農書, 近來以農政應旨者, 頗多可觀, 而其悉心對揚, 極意考據, 未有如此之勤者。 明農之方, 其條二十有二, 作農之法, 其目二十有八。 起之以駢儷, 中之以記載, 系之以比興, 其言則經綸, 其文則菽粟。 於此可以知故家遺範之猶有存者, 予甚多之。 朱夫子每言: ‘擧天下知生薑之辣, 待我喫得, 方信眞箇辣。’ 若非身親經歷於田疇之間, 何以道得此也? 況其蒙養, 以至治平之說, 卽諸人所未說者。 而 ‘《小學》之道, 便是農書, 導率之化, 便是農政, 人主之心, 便是元氣’ 云云, 雖置之古名臣奏狀, 亦可謂無愧。 惜乎! 年前關東之賓興也, 該司剡牘, 何未聞若人名字? 卽令廟堂, 逐條稟覆, 仍令掌銓者知悉, 俾此等人, 無作朱子所謂 ‘閉門粥飯僧。’ 又見高城幼學權炫農書所陳諸條, 可知其樸實無隱。 其中許多說弊中, 海弊一事, 朝家前後處分與飭禁何如? 則 ‘封進時作弊’ 云云之說, 又登於應旨冊? 所謂處分云者, 雖似指年前事, 而無論年前與今番此邑與彼邑, 凡封進時營屬犯科, 令朝堂拔例嚴飭道伯, 期於査治。 闢土地又是急先務。 地有可耕, 民無可食, 豈理也哉? 亦令道伯, 從便顧助, 俾有日墾之效。 外此諸條, 可以釐革與蘇捄者, 一體下該道, 從長決處。 又見歙谷幼學趙之榮鄭致一表憲正農書, 逖矣海濆, 邑亦十室, 而有此三人之進言。 言之用否, 且置之, 其誠可嘉, 有足以風三百郡縣幾萬人也。 就中大同負持之弊, 結役爲害之言, 分付道伯, 以爲方便之地。 事屬牛羊, 可以反隅, 外此他邑, 亦令照察。 又見高城幼學盧再煌農書, 六件農說, 莫曰夫夫也皆言。 言之者, 卽創自己意, 則此不可以歇看處。 年前三日浦起耕, 有所謂金洛者嚴處之擧矣。 今此陳廢不墾之說, 出於該地方, 無或因三日浦爲戒, 而空棄不可棄之土而然乎? 西湖雖禁爲田, 雲夢豈靳作? 又與他條看詳, 知委於該道, 以爲興利利農之資。 廟堂招致諸生, 讀宣後, 精謄各一本, 分給狀聞事, 下諭江原監司。"


  •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46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의생활(衣生活)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상업(商業) / 신분(身分) / 재정(財政) / 사법(司法) / 농업-특용작물(特用作物) / 농업-권농(勸農)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