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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50권, 정조 22년 11월 1일 경신 2번째기사 1798년 청 가경(嘉慶) 3년

임위에게 좌찬성을 증직하고 충렬이라고 시호를 내리다

시임(時任)과 원임(原任) 대신을 재전(齋殿)에서 불러 보았다. 우의정 심환지(沈煥之)가 아뢰기를,

"고 유생 한유(韓鍮)의 충성과 절개는 아직도 온 나라 사람들이 애처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고 상신(相臣) 윤시동(尹蓍東)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에서 건의한 바가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임금이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의리를 숭상하고 절개를 권장하는 것보다 더 앞서는 정사가 없습니다. 신은 한유와 같이 초야에 묻혀 있으면서 충의를 바친 자에 대해서도 마땅히 포상하고 추증하는 은전을 베풀고 그의 자손을 녹용(錄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선조(先朝) 신묘년501) 에 하교하시기를 ‘이 일에 대해서는 다시 문서를 만들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 오늘날 신하들의 도리에 있어서는 이러한 논의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금 문서를 만들어 복잡하게 하는 것은 감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였다. 심환지가 아뢰기를,

"《명의록(明義錄)》 한 책은 바로 오늘날의 《춘추》로서 오륜(五倫)과 오례(五禮)가 여기에 들어 있으며, 덕 있는 사람에게 명하고 죄 있는 자를 토죄하는 원칙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대개 크나큰 그 의리는 높이 떠있는 해와 별처럼 밝고 오묘한 그 의미는 가느다란 실오라기와 터럭처럼 은미합니다. 그러므로 한 시대의 교훈이 되고 천만년토록 법으로 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어떻게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알아서 조정에 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겠으며, 또 어떻게 선비라고 하며 지방이나 향리에서 이름을 드러내겠습니까. 그런데 근년 이래로 이 책을 내팽개쳐 둔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서 난적(亂賊)이 토죄되지 않고 있고 명의(名義)가 밝혀지지 않고 있기에 신은 몹시 한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의리를 밝히고 사기를 진작시키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절의를 지킨 선비들을 표창하여 퇴폐해진 풍속을 고무시키고 아름다운 교화를 심어야만 합니다. 지금 본궁(本宮)에서 대제(大祭)를 올리는 날 저녁을 맞이하여 감히 이상과 같이 진달합니다.

고 승지 임위(任瑋)는 뛰어난 절개가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묻혀 버린 채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있어 신은 몹시도 개탄하고 있습니다. 임위는 지난날의 궁관(宮官)으로서 온천에 행행할 때를 당하여 어가를 모시고 가는 승지가 되어 특별한 은총을 많이 받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신이 감히 다 진달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2년 뒤에 전라도 지방의 고을원으로 나가 있다가 5월 24일부터 통곡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며칠이 안 되어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의 뛰어나고도 특출난 충성과 절개는 혼탁한 세상을 비추는 해와 별이라고 할 만한바, 천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도 뜻있는 선비들은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런 의로운 선비에게 보답하는 도리에 있어서 의당 1품(品)의 관직을 추증하고, 이어 시호를 내려주는 은전을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어 정사를 열어 즉시 거행하되 시장(諡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당일로 시호를 의정하고 그의 아들에게 관직을 제수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임위에게는 좌찬성을 증직(贈職)하고, 충렬(忠烈)이라고 시호를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130면
  • 【분류】
    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 왕실(王室) / 가족(家族) / 인사-관리(管理)

  • [註 501]
    선조(先朝) 신묘년 : 1771 영조 47년.

○召見時、原任大臣于齋殿。 右議政沈煥之曰: "故儒生韓鍮之丹忱勁節, 尙爲國人之所憐。 故相臣尹蓍東, 初登前席, 有所建白者。 聖王之御世, 其政莫先乎崇義奬節。 臣謂如之草野忠義, 亦宜加以褒贈之典, 錄用其子矣。" 上曰: "先朝辛卯下敎以爲: ‘此事不可更煩文跡。’ 在今群下之道, 雖或有此等議論, 而煩諸文跡, 則有所不敢矣。" 煥之啓言: "《明義》一部書, 卽今代之《春秋》也, 敍典秩禮之在是, 命德討罪之在是。 蓋其義之大者, 炳如日星之高, 其旨之奧者, 婉如絲髮之微。 所以揭訓一世, 垂法千秋者也。 不讀是書, 則何以知事君而立朝廷也, 又何以名以士而名乎州閭也哉? 年來此書之束閣久矣。 由是亂賊不討, 名義不章, 臣所以澟然寒心者也。 苟欲明義理而作士氣, 宜先從節義之士而褒奬之, 以聳頹俗, 以樹風聲。 今値本宮大享之夕, 敢此仰達。 故承旨任瑋, 有卓然之節, 而至今幽沒, 未著于世, 臣之所慨歎者也。 以昔年宮官, 當溫幸時, 爲隨駕承旨, 偏承異渥, 臣不敢畢陳。 而及其後二年, 出宰湖邑, 自五月二十四日, 痛哭不食, 仍以滅性於旬日之內。 其孤忠特節, 可謂昏衢之日星, 千載之下, 志士尙爲之灑泣。 其在崇報之道, 宜贈以一品之職, 仍施節惠之典矣。" 從之。 仍命開政擧行, 不待諡狀, 當日議諡, 官其子。 贈左贊成, 諡忠烈


  •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130면
  • 【분류】
    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 왕실(王室) / 가족(家族)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