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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9권, 정조 22년 8월 8일 기해 1번째기사 1798년 청 가경(嘉慶) 3년

영남의 수령이 재해를 숨긴 죄와 호서에 양학이 일어나는 일에 대해 조처하다

부교리 심규로(沈奎魯)가 상소하기를,

"진휼(賑恤)하는 대책은 전적으로 방백과 수령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당해(當該) 도신(道臣)은 흉년이 들 것은 걱정하지 않고 접제(接濟)할 마음도 먹지 않은 채 때 지난 비가 쟁기질할 정도만 오기라도 하면 문득 ‘비가 흠뻑 내려 골고루 적셔 주었다.’고 하고 기름진 땅에서 곡식이 잘 자라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원근(遠近)의 지역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인정해 버립니다.

지난번 장계(狀啓)를 보건대 ‘풍년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고 하는가 하면 ‘백성의 일이 매우 다행스럽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그는 정말로 흉년이 든 사실을 모르고 있단 말입니까. 만약 정말로 모르고 있다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너무도 불성실하니 그런 도신을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임시 변통으로 둘러대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습니다. 재해를 입은 전결(田結)의 많고 적음에 따라 환곡(還穀)을 징수하고 정지시키는 모든 일이 그 해에 풍년이 드느냐 흉년이 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흉년이 들면 재해를 입은 전결이 많으니 환곡 징수를 정지해야 하고 풍년이 들면 재해를 입은 전결이 적으니 환곡을 상환케 하는 것이야말로 형세상으로 보나 이치상으로 볼 때 필연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임시 변통으로 둘러대기만 한다면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입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신이 비록 어리석기는 하나 도신을 위해 또한 해명해 줄 수가 없습니다.

묘당에서 바람직한 계책을 강구하고 구제할 일을 대비해두는 것이야 물론 늦출 수 없는 일입니다마는 책임지고 수행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도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도신을 엄히 더 신칙하여 마음을 바꿔먹고 부지런히 정성을 쏟도록 함으로써 재해를 입은 전결에 반드시 균등하게 분배하고 수확하지도 못한 땅에 세금을 징수하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며 반드시 정성을 다해 진휼함으로써 먹여주기를 바라는 백성의 기대에 부응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창곡(倉穀)의 납부를 정지시키는 일이나 신역(身役)을 일정 기간 보류시키는 일 역시 반드시 미리 고유(告諭)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억만 창생으로 하여금 조정의 은택을 받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게 하여 이리저리 서로들 흩어져 떠돌아다니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 동안의 허물을 보충하고 잘못을 속죄받게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한 채 이 백성들을 굶주려 죽게 한다면 그 동안의 죄까지 아울러 엄하게 다스림으로써 여러 도신들을 징계하는 하나의 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령이야말로 백성을 직접 대하는 자들이니 엄선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동 부사(安東府使) 유사모(柳師模)나 평양 서윤(平壤庶尹) 윤후동(尹厚東)의 경우는 제대로 고르지 못한 중에서도 더욱 심하다고 하겠습니다.

안동은 유향(儒鄕)으로서 사부(士夫)가 집결해 있는 고장인 만큼 예로부터 이곳을 맡게 되면 그를 일컬어 외부학(外副學)이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벌(地閥)이나 인망(人望)이 방백과 동등한 수준이고 또 그 이력(履歷)이 같은 조정의 사람들보다 우월한 자가 아니면 섣불리 의망(擬望)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모를 보면 자계(資階)나 경력이 이미 얕은데다가 인망이나 실력 또한 부족하기만 하니 명기(名器)를 더럽히고 정사(政事)의 체례(體例)를 무너뜨린 것이 극에 달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윤후동이 흐리멍덩하고 용렬한 인간이라는 것은 온 조정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가 만경(萬頃)에 부임하지 않은 지 이제 겨우 한 달을 넘겼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재해를 입어 재정이 형편없는 고을은 꾀를 내어 회피하고 폐해가 없는 넉넉한 지역은 좋다고 부임하고 있으니 그런 그야 꾸짖을 만한 가치도 없다 하겠습니다만, 전관(銓官)이 된 자는 이 사람에게서 무슨 장점을 취했기에 마치 이 자가 아니면 해낼 수가 없는 것처럼 숨이 넘어갈듯 가장 풍요로운 고을에 다시 선발했단 말입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유사모윤후동을 속히 체차해 바꾸도록 하고 의망한 전관에게도 아울러 견책을 내리는 것이 온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요즘 듣건대 호서(湖西)의 여러 고을에서 양학(洋學)이 점차 기세를 올리고 있다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뿌리를 뽑아버리지 않은 탓으로 가지와 잎이 점점 불어나는 데 연유합니다. 호서의 감옥에 수감된 이존창(李存昌)은 바로 사당(邪黨)의 소굴인 동시에 난민(亂民)의 두목 역할을 하고 있는 자인데 지금까지 목숨을 붙여둔 채 정법(正法)을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감히 두려움 없이 흉악하게 기세를 부리고 완악하게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서 그만 옥 안에서까지 사당(邪黨)을 영접하고 거칠 것 없이 먹고 마셔댄다 합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백성들이 무엇을 겁내어 점차 물들지 않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이존창을 율(律)대로 정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영백(嶺伯)235) 의 일을 보건대 그대가 소에서 논한 것처럼 참으로 재해를 숨긴 죄가 있기는 하다만, 영백이 요량하기로는 우선 이와 같이 진중한 태도를 취했다가 다시 후속조처를 취하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신칙하여 책망하는 것이 옳겠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말을 잘 만들어서 관문(關文)을 띄워 신칙토록 하라. 유사모·윤후동의 일과 전관(銓官)에 대한 일은 모두 아뢴 대로 시행하라.

사학(邪學)에 대한 일은, 그 폐해를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전에 단속하고 금지하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간절하게 부탁했었는데, 가령 한 마을에서 장로(長老)가 미연에 제지하고, 법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심한 경우 드러나는 대로 금지시켰다면 이런 이야기가 어찌 꼭 매번 장주(章奏)에 오르겠는가. 이존창에 대한 일은 전에 판하(判下)한 사연대로 하라고 도백(道伯)에게 엄히 신칙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10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역(軍役) / 향촌(鄕村) / 구휼(救恤) / 농업(農業) / 재정(財政) / 사법(司法) / 인사(人事) / 사상-서학(西學) / 사상-유학(儒學)

  • [註 235]
    영백(嶺伯) : 경상도 관찰사.

○己亥/副校理沈奎魯上疏曰:

"賙賑之策, 專在方伯守令。 該道臣之不以歉荒爲憂, 不以接濟爲心, 得過時鋤犂之雨, 則輒曰膏澤均霑, 見沃土蕃膴之穀, 則認以遠近同然。 向者狀啓, 或曰 ‘謂豐亦可’ 或曰 ‘民事幸甚’, 其眞箇不知其歉歲耶? 若眞箇不知, 則其爲不職大矣, 將焉用彼道臣? 若姑爲彌縫, 則災結之多寡, 還穀之停徵, 皆係年事之豐歉。 歉則災多而還停, 豐則災少而還徵, 勢所必至, 理所固然。 將來之事, 何以處之? 此臣雖愚劣, 亦不能爲道臣解也。 廟堂之講究長策, 預備捄濟, 固不可緩, 而其所責成, 專在道臣。 嚴加飭責, 使之改心勵精, 俵災必均, 無白地徵稅之弊, 設賑必誠, 副赤子仰哺之望。 至於倉穀之停捧, 身役之退限, 亦必前期告諭。 俾億萬生靈, 奠安於若保之澤, 無至有流離遷徙之境, 以爲補過贖愆之地。 若其終不能也, 使斯民飢而死也, 則竝與前罪而嚴勘, 俾爲諸道臣懲勵之道焉。 且守令爲親民, 不可不擇者也。 而安東府使柳師模平壤庶尹尹厚東, 其不擇之尤者也。 安東鄒魯, 士夫之都會, 古有爲是任者, 或謂之外副學。 自非地望, 埒於方伯, 履歷優於同朝者, 不得輕擬。 今師模資歷旣淺, 望實俱乏, 其玷名器破政格極矣。 尹厚東儱侗憒劣, 通朝之所共知也。 且況不赴萬頃, 纔踰月? 被災之薄縣則規避, 無弊之腴邑則樂赴, 渠雖無足責, 爲銓官者, 何取於此人, 汲汲甄復於第一腴邑, 有若非此莫可者然? 臣謂, 師模厚東, 亟令遞改, 擬望銓官, 竝施譴責宜矣。 近聞湖西諸邑, 洋學漸熾, 此專由於根本末拔, 故枝葉漸蔓也。 湖西獄囚李在昌, 卽是邪黨之窩窟, 亂民之頭目, 而尙今假息, 不卽正法。 渠敢獰悍, 無畏冥頑不變, 乃於獄中, 迎接邪黨, 飮食若流云。 愚氓何所懲畏而不爲漸染耶? 臣謂李存昌, 依律正法宜矣。"

批曰: "嶺伯事, 正如爾疏所論, 誠有諱災之罪, 未知嶺伯所料量者, 姑且如是持重, 更欲從後措處而然歟。 飭責之是矣, 許令廟堂, 措辭關飭。 柳師模尹厚東事, 銓官事, 竝依施。 邪學事, 爲弊爲害, 可勝言哉? 前下飭禁, 不啻辛勤, 若使鄕黨之間, 長老制於未然, 執法之地, 甚者隨現禁止, 則如許之說, 豈必每登章奏乎? 李存昌事, 依判下前辭, 嚴飭道伯。"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10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역(軍役) / 향촌(鄕村) / 구휼(救恤) / 농업(農業) / 재정(財政) / 사법(司法) / 인사(人事) / 사상-서학(西學) / 사상-유학(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