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정조실록 49권, 정조 22년 7월 27일 기축 4번째기사 1798년 청 가경(嘉慶) 3년

중국에서 난리를 피해 왔던 황공의 후손들에게 녹봉을 주도록 하다

하교하였다.

"중주(中州)에 난리가 일어날 때마다 선비들이 많이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왔는데, 대체로 볼 때 관유안(管幼安)208) 이 그 시초이고 당(唐)나라의 남민(南敏)과 송(宋)나라의 정신보(鄭臣保) 등 여러 사람이 바로 그 다음이었다.

그러다가 황조(皇朝)의 천계(天啓)209)숭정(崇禎)210) 연간에 이르러서는 산길을 걷고 배에서 자면서 잇따라 동쪽으로 건너 왔는데 그중에서도 전당(錢塘) 출신 황공(黃功)이 가장 두드러진 자였다. 나라를 떠나게 된 울분을 가끔 노래로 읊었는데 절강(浙江) 남쪽의 음조(音調)가 다분히 담겨 있었으며 대장의 깃발을 높이 날리고 부절(符節)을 품에 안은 채 변경에서 공을 세운 그 자취를 또한 시를 통해 알 수가 있다. 더구나 임(林)·진(陳)과 문답할 때 목이 메어 울부짖었던 것은 옛날 경경(慶卿)이 노래 부르고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치자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뻣뻣하게 치솟아 관을 찔렀던 것211) 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서 그 사람의 호걸스러움을 여기에서 또 알 수가 있다.

가령 그 사람이 아무 일 없이 편안한 날을 당하여 조칙(詔勅)을 받들고 왔다면 동쪽의 사녀(士女)들이 흙먼지 이는 그의 수레 옆으로 달려 가면서 중국 사신의 위의(威儀)를 쳐다보려고 해도 안되었을 것이다. 또 만약 그의 자제가 따라 왔다면 귀족으로 우러러 보면서 윗자리에 앉히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영락(零落)한 지 백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습속(習俗)이 더욱 심하게 천박해져 아름다운 문장은 전혀 들어볼 길이 없이 이름은 항오(行伍)에 편입되고 죽도록 일해도 사후에 무덤 하나 변변치 않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회수(淮水) 이남에서는 귤이던 것이 북쪽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고 하는 격이라 하겠다. 이 어찌 측은하고 마음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후손 황세중(黃世中)이 토포사(討捕使)의 직함을 갖고 있기는 하다마는 사손(嗣孫)이 시골에 박혀 있으면서 녹봉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흠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황공(黃功)의 제사를 받드는 현손(玄孫)인 회양(淮陽)의 유학(幼學) 성재(聖才)를 우선 어영 대장으로 하여금 해영(該營)의 권무 군관(勸武軍官)에 부치게 하고 그를 불러다 신수(身手)를 본 다음 계문하도록 하되, 길을 떠나보낼 때에는 도백(道伯)이 역마와 식량을 지급하게 하라. 그리고 세중의 아들인 출신(出身) 황윤(黃胤)은 금려(禁旅)에 부쳐 녹봉을 주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99면
  • 【분류】
    인사(人事)

  • [註 208]
    관유안(管幼安) : 삼국 시대 위(魏)나라 관령(管寧).
  • [註 209]
    천계(天啓) : 명 희종(明喜宗)의 연호.
  • [註 210]
    숭정(崇禎) : 명 의종(明毅宗)의 연호.
  • [註 211]
    경경(慶卿)이 노래 부르고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치자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뻣뻣하게 치솟아 관을 찔렀던 것 : 경경은 전국 시대 위(衛)나라의 자객 형가(荊軻)임. 그가 진 시황(秦始皇)을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날 때 역수(易水) 가에서 사람들이 전송을 하였는데, 이때 친구인 고점리가 축이라는 악기를 치자 형가가 이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니 모두들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이 치솟아 관을 찔렀다고 함. 《사기(史記)》 권86.

○敎曰: "中州之難, 士多浮海而東者, 蓋自管糿安始, 而南敏鄭臣保諸人, 卽其亞也。 及至皇朝之間, 山行水宿, 踵相接焉, 錢塘 黃功, 其較著者。 去國憂憤, 往往發之吟詠, 而尙操南音, 樹高牙擁大節, 立勳邊上之蹟, 亦有可以因詩而見者。 況與問答之時, 嗚鳴咽咽, 如慶卿歌, 而漸離筑髮, 森森衝冠, 其人之豪雋魁壘, 於此又可知耳。 若使其人, 當晏然無事之日, 奉皇詔而來, 則東之士女, 將奔走於車塵馬跡之傍, 瞻望其皇華四牡之儀, 而亦不可得也。 又若其子弟隨至, 則仰之以貴遊, 推之以上座。 而今也飄零百年之後, 習俗之賤之愈甚, 玉佩文章, 尙矣無聞, 名編行伍, 負薪不封, 眞所謂淮橘爲枳。 寧不惻然而傷心? 後孫世中, 雖得討捕使銜, 其嗣冑落在鄕曲, 尙不沾祿, 豈不是欠事? 黃公功奉祀玄孫淮陽幼學聖才, 先令御將, 付該營勸武, 招見身手啓聞, 而起送時, 道伯給舖馬糧資。 世中子出身, 付祿禁旅。"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99면
  • 【분류】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