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부에 미곡대신 메밀을 심도록 하다
비가 내리자 특별히 화성부(華城府)에 하유하기를,
"농사란 천시(天時)를 준수하고 토의(土宜)를 관찰하고 인력(人力)을 다해야 하는 것이니,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어긋남이 없어야만 풍년을 얻게 되는 것이다. 곡식 중에는 네 철[四節]을 지나서 먹는 것이 있고, 세 철을 지나서 먹는 것도 있고, 두 철을 지나서 먹는 것도 있으며, 또는 평야 지대에 알맞고 산간 지대에는 알맞지 않은 것이 있고, 산간 지대에 알맞고 비습한 지대에는 알맞지 않은 것도 있다. 그래서 시기의 조만과 토질의 건조하고 비습함에 따라 서로 알맞은 곡식이 한두 종자가 아니니, 종자를 잘 불리어 싹틔우고 잘 가꾸어 여물게 하는 것이나 땅을 묵히어 잡초만 무성하게 하는 것이 모두 사람이 힘을 다하고 안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나는 비록 《농정전서(農政全書)》를 읽지 않았으나, 모든 일은 분수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메밀[木麥]이 대신 파종하기에 가장 알맞으니, 그것은 맨 나중에 심고 맨 먼저 익기 때문이다. 또 맨 뒤에 심고 맨 먼저 익는 것을 올벼라 하는데, 이것은 빈풍(豳風)의 시(詩)에서 읊었으니, 주공(周公)이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대체로 이른바 대신 파종한다는 것은 곧 수재(水災)나 한재(旱災)로 인하여 절서가 이미 지났는데 들에는 심지 못한 모가 많으나 밭에는 뿌릴 만한 종자가 없을 경우에 오만 곡식 중에서 반드시 뒤에 심고 먼저 익는 것을 가져다가 대신 파종하여 백성들의 식량을 유족하게 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그런데 결실 때까지의 전후 기간이 충분히 서리를 면할 수 있는 것으로서 국수[不托]도 만들 수 있고 조호(雕胡)116) 의 맛과 영양을 당할 만도 하여, 흉년의 기근을 구제하는 공이 서쪽 지방의 토란이나 남쪽 지방의 고구마보다 월등히 나은 것은 오직 메밀이므로, 내가 이 때문에 혹 모를 심지 못하고 철을 넘긴 때를 만나면 반드시 이 메밀을 대신 파종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어제 묘당의 초기(草記)를 보니, 메밀 외에도 파종하기에 알맞은 곡식이 많이 있다는 것으로 말하였다. 그런데 콩을 심으면 가꾸기 쉬운 것이 메밀에 다음 가기는 하나, 토질(土質)과 농삿일이 삼남(三南)·경기(京畿)·호서(湖西) 지역이 서로 같지 않고, 절후(節候) 또한 비슷하면서도 각기 달라서 이모작(二毛作)의 시기를 놓치면 모내기를 제때에 못하는 것과 일반이다. 그러니 그루갈이에 쓰이는 곡종을 대용갈이에 사용해서 제도(諸道)가 모두 그 곡식을 먹게 한다는 것은 진실로 기필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기장은 비록 비습한 땅에서 잘되기는 하나, 파종에서 수확 때까지가 1백일 안팎이 드는데 한로절(寒露節)이 80여 일 밖에 남지 않았고 보면, 미처 익지 못하여 마치 채권(債券)만 보류하고서 거둬들이지 못하는 격이 될 것이다. 그리고 늦기장 종자의 경우는 귀하기가 마치 황금 같아서 창고에도 매매되는 것이 없고 민간에도 간수해둔 것이 없으니, 장차 어디에서 이를 구해다가 전국에 보급시킬 수 있겠는가.
지금 메밀을 대신 파종하라는 명령에 대해서 경기 지방의 수령과 백성들로서 불편함을 말하는 자들은 매양 ‘수전(水田)은 비습하여 비가 많이 오면 종자가 녹아버릴 것이다.’고 한다. 그러나 조정에서 파종하라고 권장하는 것은 이런 땅을 말한 것이 아니라, 높고 건조하여 모내기를 못한 곳을 말하였고, 또는 구롱(邱隴)·천맥(阡陌) 등 세금도 안 내는 불모지에다 호미와 쟁기로 갈아 일구는 법을 쓰도록 하였던 것이니, 땅이 비습하여 종자가 녹아버리는 걱정은 애당초 논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메밀 종자를 산간 고을로부터 연안의 군읍으로 이송하는데 있어서는, 동풍만 순조로이 불어주면 다리가 없이도 절로 이송될 것이니, 참으로 하늘만이 아는 일이 발설되었다고 이를 만하다. 더구나 또 고을에서 종자를 지급하고 세금을 견면해주며 모든 간편하고 편의한 계책을 힘이 닿는데까지 다 베풀어주고도, 수확의 많고 적고 남고 부족함을 막론하고 일체 백성들에게 맡겨서 한알한알을 모두 백성들이 자신의 배채우는 데에만 마음을 쓰도록 한 것이니, 이것이 어찌 울음을 웃음으로 돌리고 흉년을 풍년으로 돌리어 인공(人功)으로 천지조화를 빼앗는 일대 관건이 되고, 또한 백성이 부유해지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가난하겠느냐고 이르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 밖에도 미처 말로 열거하지 않은 여러 가지 이로움이 이루 다 꼽을 수도 없건만, 백성들은 워낙 어리석어서 함께 일의 시작을 꾀할 수가 없다. 경기 지방의 풍속은 또 농삿일에 게을러서, 한때의 논을 깊이 가는 일을 기피하여 장래에 반드시 거두게 될 그만한 수확을 내버리곤 한다. 그리하여 해마다 당연히 해야 할 농공업(農工業)도 오히려 부지런히 할 뜻이 없는 실정이니, 지금 대신 파종하라는 명령에 대해서, 뒤로 물러서며 눈을 흘기고 앞으로 나가려다가도 머뭇거리곤 하는 것은 다만 그 형세가 그런 것일 뿐이다. 그러나 농관(農官)이 된 자로서는 계책을 내서 그들의 게으름을 채찍질하여 일깨우는 것이 바로 그 직무인데, 도리어 백성들에게 부화 뇌동하여 시끄러이 떠들어대면서, 백성들을 농사에 부지런히 힘쓰도록 하는 방도에 전혀 어두워 이를 따르기 어려운 일로만 알고 있는 것은 또한 무슨 까닭인가. 명령이 나갔으면 그대로 행할 뿐이요 도로 취소할 수는 없는 것인데, 조정의 명령이 반하된 지 이미 오래이니, 묘당에서는 의당 동책(董責)하는 일을 굳게 지켜 수시로 고찰을 가해서, 만일 명령대로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먼저 방백으로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수령과 백성들이 절로 의당 분주히 농사에 임하여, 들에는 개간 안된 땅이 없고 땅에는 노는 밭이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서경》 대고(大誥)에 이르기를 ‘내 어찌 나의 밭일을 끝맺지 않으리오.’ 하였으니, 이미 시작만 해놓고 끝맺기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농부가 밭을 갈기만 하고 씨를 뿌리지 않거나 씨를 뿌리기만 하고 김매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시기로 보아도 적절하고 곡식으로 보아도 알맞은데, 무엇이 어려워서 권장하지 않고 무엇을 꺼려서 하지 않는단 말인가. 왕기(王畿) 지역은 전국의 표준이니, 먼저 기읍(畿邑) 중에서 의논이 엇갈린 곳에서부터 정력을 오로지 들여 명령을 독실히 믿고 받들어 준행하여야만 호남·영남 지방까지도 보고 느끼어 그림자처럼 따라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모내기를 하지 않고도 곡식이 있게 되고, 가을에는 곡식을 수확하여도 세금이 없는데다, 도량(稻粱)의 좋은 맛을 섞어 전죽(饘粥)의 재료로 대신 쓰게 한다면, 그 광박한 이익이 만세의 법식도 될 수 있으리니, 어찌 1년 동안의 기근 구제하는 재료에만 그칠 뿐이겠는가.
옛날에 아 대부(阿大夫)를 삶아 죽인 것은 그가 탐오해서만이 아니라, 즉 전야(田野)를 개간하지 않은 것117) 때문이었으니, 지금 조정의 명령이 내려갔는 데에도 감히 전야를 개간하는 데에 노력하지 않고 일체 묵은 대로 내버려두고 다스리지 않은 자의 경우는, 그 죄가 아 대부에게 시행했던 형벌을 피하고자 한들 되겠는가. 옛날에 주 부자(朱夫子)가 남강(南康)을 다스릴 적에는 날마다 산간 지역에 농사일을 경영하느라 거마와 보졸(步卒)이 성자현(星子縣) 같은 궁벽한 작은 고을까지 들어갔었다. 그런데 지금의 수령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감히 관아에 가만히 드러누워서 임금과 근심을 나누는 의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화성은 탕목읍(湯沐邑)이요 또 왕기(王畿)에서 표준이 되는 곳이니, 먼저 본부에서부터 마음을 다하여 이 명령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서, 비록 손바닥 발바닥만한 땅이라도 제때에 다 파종을 해서 기읍(畿邑)의 선도(先導)가 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8책 48권 60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89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재정(財政) / 농업(農業)
- [註 116]조호(雕胡) : 고미(菰米).
- [註 117]
아 대부(阿大夫)를 삶아 죽인 것은 그가 탐오해서만이 아니라, 즉 전야(田野)를 개간하지 않은 것 : 전국 시대 제 위왕(齊威王)이 아 대부를 불러 이르기를 "그대가 아(阿) 땅을 다스린 뒤로 그대를 찬양하는 말이 날로 들렸다. 그러나 사람을 시켜 아땅을 살펴보게 한 결과, 전야(田野)를 개간하지 않아 백성들이 몹시 빈궁하였다. 그런데도 그대를 찬양하는 말이 날로 들렸던 것은 곧 그대가 내 좌우 사람들에게 뇌물을 많이 바친 때문이다." 하고, 그날로 아 대부를 삶아 죽인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권46. - [註 117]
○丁酉/雨。 別諭華城府曰: "農者律天時相土宜盡人力, 三者無失然後, 可獲有秋。 穀有經四節而食者, 經三節而食者, 經二節而食者, 又有宜於野而不宜於山者, 宜於山而不宜於水者。 時之早晩, 土之原隰, 百穀不一其種, 而苞栗汙菜, 係乎人力之盡不盡焉耳。 予雖未讀《農政全書》, 而百千萬事, 不出於分數。 木麥之最宜代播, 以其後種而先熟也。 後種先熟曰(穆)穋, 已自《豳詩》著詠, 周公豈欺我哉? 夫所謂代播云者, 水旱爲災, 節序過愆, 野多未移之秧, 田乏可降之種, 則乃於百穀之中, 必取後種先熟者, 代而播之, 俾裕民食之謂。 而其間首尾, 優免霜信, 可以爲不托, 可以當雕胡, 其療飢救荒之功, 頓勝於西之蹲鴟, 南之甘藷, 惟木麥爲良, 此予所以或値秧節之愆期, 必勸木麥之代播者也。 昨見廟堂草記, 以木麥外, 亦多宜播之穀爲言。 種菽之易爲力, 次於木麥, 而土性田功, 不竝以南、畿、湖, 節候雖似各異, 根耕之過期, 與移秧一般。 以用於根耕者, 用於代播, 而諸路之一齊食實, 固未可必。 稷雖就濕之性, 播之距(獲)穫, 費却百日內外, 而寒露入節隔在八十餘日, 則未及成熟, 如執左契。 至於晩稷之種, 其貴如金, 倉無糶糴, 村無蓋藏, 將覓來何處, 可以泒及乎? 今於木麥代播之令, 畿內守令民人之言不便者, 輒云 ‘水田沮洳, 雨洽則當消瀜。’ 朝家之所勸播者, 非此之謂也, 亶在於高燥未移之處, 而又於邱隴阡陌不稅不毛之地, 俾用鋤農耒耕之法, 則沮洳消瀜之患, 初非可論。 木麥種子之自巖邑移沿郡也, 東風送帆, 無脛而至, 可謂天公會事發。 況又官給其種, 公蠲其稅, 諸凡易簡便當之策, 靡所不用其極, 無論所收之多少嬴縮, 一切委之於民人, 粒粒皆我充腸, 飽腹之惟意, 則此豈非回咷爲笑, 反歉如稔, 以人功奪造化之一大關捩, 而亦足謂之藏富於民, 君孰與不足乎? 外此不言所利之美利, 指不勝(摟)〔僂〕 , 而下民蚩蚩, 不可與之謀始。 畿之俗, 且懶於農, 作避一時深耕之苦, 捨將來必食之功。 年年應爲之農工, 猶忽服勤之意, 則惟今代播之令, 却顧而睥睨, 將進而趑趄, 特其勢耳。 身爲田畯之官者, 出謀發慮, 策懶警惰, 乃職之宜, 而反爲隨衆雷同, 棼棼聒聒, 專昧克敏之方, 認作難從之事, 抑何故也? 令出惟行, 不惟反朝令之頒下久矣, 廟堂但當堅守董責, 時加考察, 如其不率令者, 先從方伯而糾之。 正之則守令與民人, 自當奔走趨事, 野無曠土, 土無閒畝。 《書》曰 ‘曷敢不終’, 朕畝旣始之, 便不圖終, 顧何異於農夫之耕而不播, 播而不耘乎? 以時則可, 以穀則宜, 何苦而不勸, 何憚而不爲? 王畿, 四方之標準, 先從畿邑之議論携異處, 專精費力, 篤信奉行, 可使湖、嶺, 觀感影從。 秧不移而有粟, 秋則熟而無稅, 和以稻粱之味, 替作饘粥之需, 則博哉之利, 可爲萬歲法程, 奚但止於一年捄荒之資而已哉? 烹阿非但貪也, 卽田野不闢, 則朝令之下, 跡不緣畝, 而一任其荒穢不治者, 顧其罪欲逭阿大夫已施之典得乎? 昔朱夫子之知南康也, 日日勞農, 山間車徒, 至及於星子之小縣僻壤。 則今之長吏, 是何人, 乃敢偃臥鈴閣, 太不識分憂之義, 寧不痛惋? 華城, 湯沐邑也, 又爲標準於王畿, 先自本府, 悉心對颺, 雖側趾盈掌之地, 及時播厥, 俾爲畿邑之倡。"
- 【태백산사고본】 48책 48권 60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89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재정(財政) / 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