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판서 김화진과 동전의 주조에 대해 의논하다
호조 판서 김화진이 말하기를,
"주전(鑄錢)의 일로 이미 하교를 받았으므로 좋게 주조할 방도를 별도로 강구하고 있습니다마는, 근래에 유랍(鍮鑞)이 극히 귀합니다. 만일 유랍을 쓰지 않고 향랍(鄕鑞)만 쓰면 예전과 같이 얇아서 오래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니, 변통하는 방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책(史冊)을 상고해보면, 또한 당천전(當千錢)·당백전(當百錢) 같은 대전(大錢)도 있었는데, 이것은 지금 의논할 것이 아니거니와, 당십전(當十錢)·당오전(當五錢) 정도는 또한 그 예가 많으니, 이는 오직 묘당에서 익히 강구하여 상확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과연 가벼이 의논하기 어렵도다. 제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였다. 이병모가 말하기를,
"일시에 화권(貨權)을 수취하는 방도는 진실로 여기에 벗어나지 않으나, 사주(私鑄)의 폐단을 또 금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는 돈을 많이 푼(分)·문(文)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당오전·당십전은 반드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불편할 것이고 구전(舊錢)과 아울러 폐기하게 될 염려도 있다. 또 어찌 꼭 이(利)를 말하랴. 돈 모양이 두껍게만 만들면 좋을 것이다."
하였다. 김화진이 말하기를,
"구례(舊例)에는 돈을 주조할 때에 5일 동안은 관주(官鑄)를 하고 1일은 협주(挾鑄)를 하도록 허락하였는데, 지금은 비록 협주를 허락하여도 협주를 하려 하지 않으니, 대체로 동(銅)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미 협주를 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이익을 얻고자 하면 잡철(雜鐵)을 많이 넣으므로, 돈 모양이 얇아지는 것은 또한 반드시 그럴 수 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차라리 돈을 주조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 옛날에도 50년 동안 돈을 주조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어찌 근래처럼 자주 주조를 했었겠는가."
하자, 김화진이 말하기를,
"동이 귀한 폐단이 또한 요즘 같은 때가 없었습니다. 고급 자기(磁器)에 대한 금령이 있은 이후로 자기의 값이 갑자기 헐해졌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물가의 비싸고 헐함은 사치하냐 검소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은 시골 구석의 상천(常賤)들도 모두 유기(鍮器)를 쓰고 있으니, 동이 어떻게 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마디로 말해서 분수를 지키지 않은 때문이다. 상하 귀천이 모두 등급의 차이가 있는만큼, 일체 법금(法禁)으로 재단하는 것이 좋기는 하겠으나, 금하는 것이 요령을 얻지 못하면 도리어 백성을 소요시키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니, 먼저 이 연석에 모인 사람들부터 유기를 쓰지 않는다면, 윗사람이 행한 일을 아랫사람이 반드시 본받아 금하지 않아도 절로 금지될 것이다."
하자, 김화진이 유미(留米)를 바꾸어 쓰는 일을 제거하기를 주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바로 본조(本曹)의 경상비용 이외의 것이다. 경상비용도 부족할까 걱정인데, 또 이것으로 호조에 폐를 끼치는 것은 더욱 의의가 없다. 금년에는 우선 구분하여 처리하고, 앞으로는 모름지기 개혁하는 방도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자, 김화진이 말하기를,
"지금에 와서는 그만두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지경이라 이를 만합니다."
하고, 우의정 이병모가 말하기를,
"지금은 비록 여러 가지 방도로 구분하여 처리하고 있으나 이것이 어찌 해마다 하는 일이겠습니까. 대저 경상비용이 부족할 때는 특별히 변통의 대책이 없을 수 없습니다. 옛사람도 용관(冗官)을 도태시키고 주현(州縣)을 병합시킨 정사가 있었으니, 훈부(勳府)의 면세(免稅)된 전결(田結)의 경우는 진전(陳田)을 조사하여 세금을 받아들여서 이를 호조에 소속시키면, 소요의 단서는 조금도 없고 경상 비용에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기사(耆社)의 면세전(免稅田)도 1천 결(結)이나 된다고 하니, 이 또한 어찌 과다하지 않는가. 궁방(宮房)의 절수(折受)를 혁파한 것이 바로 병신년의 첫 정사였는데, 당시에 얻은 것이 거의 2만여 결이나 되었다. 그런데 그 후로 감한 전결의 총수가 이보다 더 많으니, 만일 그당시의 소득이 없었다면 더욱이나 어찌될뻔 하였겠는가."
하자, 상호군 정민시가 아뢰기를,
"호조가 지금까지 유지해온 것은 오로지 여기에 힘입은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8책 48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76면
- 【분류】금융-화폐(貨幣) / 재정(財政) / 공업(工業) / 왕실(王室) / 농업(農業)
○戶曺判書金華鎭曰: "以鑄錢事, 旣承下敎, 故善鑄之方, 另加講究, 而近來之鍮鑞極貴。 若不用鍮鑞, 只用鄕鑞, 則依舊薄劣, 無以行遠, 通燮之術, 不可不念。 考之史冊, 亦有大錢之當千、當百, 而此則今非可議, 當十、當五, 亦多其例, 此惟在廟堂之熟加講確矣。" 上曰: "此則果難遽議。 而諸議以爲何如?" 秉模曰: "在一時收貨權之方, 固無出此, 而私鑄之弊, 又難禁矣。" 上曰: "我國用錢, 多以分、文, 當五、當十, 必不便於日用, 且有竝與舊錢而棄之之慮。 且何必曰利? 但務錢樣之完厚好矣。" 華鎭曰: "舊例鑄錢時, 五日官鑄, 許其一日挾鑄, 今則雖許, 而亦不肯鑄, 蓋緣銅貴之故也。 渠輩旣不挾鑄, 而必欲得利, 則雜鐵之多入, 錢樣之薄劣, 亦勢所必至矣。" 上曰: "然則不如不鑄之爲愈也。 古亦有五十年不鑄錢之時。 豈如近來之數數開鑄乎?" 華鎭曰: "銅貴之患, 亦莫如近日。 甲器禁令之後, 磁器之價頓輕, 以此見之, 物價貴賤, 由於奢儉。 目今閭巷常賤, 皆用鍮器, 銅安得不貴乎?" 上曰: "一言蔽之曰, 不守分。 上下貴賤之皆有等威, 一以法禁裁之, 非不好矣, 而禁之不得其要, 則適足爲擾民之端, 先自今日登筵者, 勿用鍮器, 則上行下效, 庶幾不期禁而自禁矣。" 華鎭請除留米貿用, 上曰: "此是本曺經用之外也。 經用之需, 猶患不足, 又以此而貽弊於戶曺, 尤無意義。 今年則姑爲區劃, 而此後則須思釐革之方。" 華鎭曰: "到今可謂欲罷不能矣。" 右議政李秉模曰: "今雖多方區劃, 此豈年年爲之之事乎? 大抵經用窘乏, 不可無別般通變之策。 古之人, 亦有汰冗官竝州縣之政, 如勳府免稅之結, 査陳納稅, 屬之戶曺, 少無騷擾之端, 大爲經用之助矣。" 上曰: "耆社免稅, 亦爲千結云, 亦豈不過多乎? 罷宮房折受, 乃是丙申初政, 當時所得, 殆爲二萬餘結。 而伊後田結之減摠, 又多於此, 若無當時之所得, 則尤當如何?" 上護軍鄭民始曰: "戶曺之至今維持, 專賴於此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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