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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8권, 정조 22년 1월 15일 경진 1번째기사 1798년 청 가경(嘉慶) 3년

무지개의 변, 환곡의 폐단 등에 대해 의논하다

차대(次對)를 하였다. 상이 대신들에게 이르기를,

"어제 있었던 무지개의 변은 또 어찌하여 일어났는가. 그런 변이 한 번만 있어도 매우 두려운 일인데, 더구나 3년을 거듭 나타난단 말인가. 어제 정원의 의논과 대간의 계사와 재상의 차자에서 모두 범범한 말만을 열거하여 소략하고 긴요한 뜻이 전혀 없어 일개 거자(擧子)의 상투적인 대책문과 같았으니, 매우 한탄스럽다. 애당초 말을 구하지 않았으면 그만이거니와, 이미 말을 구하였는데도 좋은 말이 한마디도 없었으니, 지금의 일이 국사(國史)에 기록되고 야사(野史)에도 기록이 되면 후인들이 오늘의 일을 어떻다고 말하겠는가. 경의 어제 차자에서 하늘에 보답하는 도리를 가지고 말하였는데, 하늘에 보답하는 도리는 역시 마음속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비록 경들에게 언론을 극도로 자상하게 하도록 하더라도 겉에 드러난 자취에 불과할 뿐이고 심술(心術)의 은미한 사이와 선악이 싹트는 단서에 이르러서는,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이 어찌 내 스스로 아는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오직 내 스스로 반성하여 정령(政令)과 행위의 사이에서 찾아보니, 한 가지도 온당하게 된 것이 없다. 위에서 찾아보면 하늘의 마음이 기쁘지 않음으로써 재이가 계속 일어나고, 아래에서 찾아보면 흉년이 거듭 들어 민생들이 곤궁하고 초췌하니, 비록 풍년이 든 때가 혹 있더라도 소식(蘇軾)이 이른바 ‘풍년이 흉년만 못하다.’는 말에 불행히도 가깝게 되었다.

환곡(還穀)의 폐단은 본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거니와, 병조 및 각 군문의 보포(保布)는 모두 임진년023) 이후에 처음으로 내게 된 것인데, 가련한 지금의 백성들이 장차 어떻게 견디겠는가. 더구나 이 징독(徵督)에 시달려서 하늘에 호소하려 하나 호소할 길도 없는 저 수십만 백성들은 모두가 대단히 불쌍한 무리들이다. 하늘의 신령과 조종(祖宗)의 큰 덕을 힘입어 다행히 무사하기는 하나, 한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그 위태롭고 두려운 마음이 어찌 썩은 새끼줄로 육마(六馬)를 부리는 것과 같을 뿐이겠는가. 낮에 행한 일들을 밤이면 반드시 생각하여 실로 혼자 있을 때도 하늘이 내려다보는 듯이 근신하는 마음을 갖기는 하나, 하루에도 만 가지나 되는 일의 기틀 가운데 한 가지 일도 마음에 만족한 것이 없으니, 어떻게 재이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니, 좌의정 채제공이 말하기를,

"상께서 좋은 말을 구하실 때에 아랫사람이 곧은 말을 올린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마는, 아랫사람이 상의 명에 대답하여 상의 뜻을 널리 선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구언(求言)을 인하여 감히 협잡의 뜻을 부려서 뜻이 같은 자는 편들고 뜻이 다른 자에게는 공격을 하여, 그 폐단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말씀을 올리는 것은 한 가지이나, 행위는 같아도 속뜻은 달라서 처음에는 털끝만큼의 차이가 나중에는 천리나 어긋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고, 우의정 이병모가 말하기를,

"하늘을 섬기는 것과 귀신을 섬기는 것이 그 도리는 한가지입니다. 제사의 예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혹 저기에서 구하거나, 여기에서 구하거나 상하 사방에 구하지 못할 곳이 없는 것이니, 재변을 만나 수성하는 도리도 또한 이와 같이 하여야 합니다. 항상 ‘이 일이 온당하지 못한가.’라든지 ‘저 일에 실수가 있었는가.’ 하면서 한 가지 일, 두 가지 일을 감히 안일하게 지나치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계속하여 오래도록 게으름이 없이 한다면 하늘의 마음이 거의 감동되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은미한 사이에 일분이라도 미처 자신을 검속하지 못한 곳이 있게 되면 비록 의리가 정밀하고 인(仁)이 익숙해진 때에 이르러서도 어쩌다 한 번이라도 도에 어긋나면 문득 그른 데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군상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는 일은 오직 대인(大人)이라야 능히 할 수 있는 것인데, 진실로 지금의 조정에 능히 이 책임을 담당할 만한 자가 있다면, 상께서 꼭 여러 사람을 찾아가 자문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연 마음을 바로잡는 효험이 있게 될 것입니다. 신은 감히 격식이나 갖추어 겉으로 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좌우의 보필을 적임자를 얻지 못하면 누가 성공(聖工)의 성찰(省察)을 도울 수 있겠으며, 또 어떻게 모든 공적이 다 빛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처럼 어리석은 자는 속히 척퇴시켜주시는 것이 구구한 소망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요즘 경례(慶禮)를 인하여 《정원일기(政院日記)》실록(實錄)을 조사해보니, 실록도 간혹 잘못된 곳이 있었다. 병인년 수의(收議) 때의 경우, 고 상(相) 김수항(金壽恒)·남구만(南九萬)은 모두 매우 신중론을 주장했고, 고 상 민정중(閔鼎重)은 신중론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 임금의 뜻을 받들어 따르려는 뜻이 있었는데, 실록에는 ‘민정중·김수흥(金壽興) 2인 외에는 모두가 받들어 따랐다.’고 기록되었으니, 어찌 매우 사실에 어긋난 것이 아니겠는가. 대체로 사서(史書)를 만들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비록 눈으로 직접 본 일이라 할지라도 일당(一堂) 가운데서도 소견이 각각 다르고 일자(一字)의 착오로 인하여 사실이 완전히 어긋나게 되는데, 더구나 후세의 사서는 온통 사사로운 뜻이 많이 섞여 있으니, 장차 어떻게 전해가며 믿겠는가."

하고, 상이 또 이르기를,

"어제 좌상의 차자에는 ‘진흙을 물에 탄 것처럼 흐리멍덩하여 곧은 사람과 굽은 사람을 분별없이 처리한다.’는 말이 있었고, 원의(院議)와 부계(府啓)에서는 또 ‘서로 공경하고 화합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말을 하였는데, 나는 무엇을 가리킨 말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말들이 이미 장주(章奏)에 누차 올라온 것이라, 내 또한 한번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로 음붕(淫朋)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사학(邪學)을 다스리는 것과 같아서 정학(正學)이 밝아지면 사학은 금하지 않아도 절로 사라지는 것이다. 만약 진실로 곧은 자가 있다면 굽은 자도 감화되어 곧게 될 것이고 참으로 대죄(大罪)가 있다면 의당 유방 찬극(流放竄殛)의 율을 쓰면서 서로 공경하고 화합하는 것은 일삼을 바가 없는 것이다. 또 서로 소소한 의견 차이에 이르러서는 한집에 사는 사람들에겐들 또한 어찌 이런 것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물거품과 같이 절로 일었다 절로 꺼져버리는 데에 불과한 것일 뿐인데, 또한 어찌 출노 입주(出奴入主)024) 의 정사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옛날 열성조(列聖朝)로부터 이미 서로 공경하고 화합하는 기풍을 높이었고, 우리 선왕조에 이르러서는 건극(建極)025) 의 다스림을 크게 천양하였으니, 지금의 이른바 쟁단(爭端)이라는 것이야 또한 어찌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쟁단이라는 것은 피차가 서로 적대시하는 것을 이르는데, 진실로 군자의 도가 자라고 소인의 도가 소멸한다면 무슨 쟁단을 말할 것이 있겠는가. 오직 그 원기(元氣)가 부실함으로 인하여 객기(客氣)의 침범이 있게 된 것이므로, 나는 곧 ‘오늘날의 이른바 서로 공경하고 화합하지 못한다는 말은 도무지 가소로운 일이다.’고 말하는 바이다. 대체로 겉은 서로 친한 것 같으면서도 속은 실상 서로 괴리된 경우가 바로 좋지 못한 모양이니, 만일 겉과 속이 다르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이 밖에는 아무런 일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8책 4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3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과학-천기(天氣) / 사상(思想) / 정론(政論) / 역사(歷史)

  • [註 023]
    임진년 : 1592 선조 25년.
  • [註 024]
    출노 입주(出奴入主) :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원도(原道)에서 "이단(異端)으로 들어간 자는 이단을 주인으로 삼고, 유가(儒家)를 탈퇴한 자는 유가를 노예처럼 여긴다.[入者主之出者奴之]"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치우치게 자기의 소견만을 고집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 [註 025]
    건극(建極) : 왕자(王者)가 인륜 도덕(人倫道德)을 가지고 만민(萬民)의 법칙을 세우는 것을 이름.

○庚辰/次對。 上, 語大臣曰: "昨日虹變, 又何爲而作也? 一猶懍惕, 況三歲連見乎? 昨日之院議也臺啓也堂箚也, 陳談之說, 草率沒緊, 便一擧子套策, 甚可嘆也。 初不求言則已, 旣求之矣, 而無一昌言, 以今之事, 國史書之, 野史記之, 謂今日何如哉? 卿之昨箚, 以對越爲言, 對越之道, 不外乎方寸之中。 雖使卿等, 極言竭論, 亦不過外面粗迹, 至於心術隱微之際, 善惡萌動之端, 他人之知之, 豈能如予之自知? 惟予反而求之於政令事爲之間, 無一得當。 求之於上則天心未豫, 災異繼作, 求之於下則飢饉荐臻, 民生困瘁, 雖或有豐登之時, 而蘇軾所謂豐年不如凶年者, 不幸近之。 還穀之弊, 固不可勝言, 而兵曹及各軍門保布, 皆壬辰後創出, 哀今之民, 將何以堪之? 況此困於徵督, 籲天無從之數十萬輩, 莫非絶可矜之類。 賴天之靈, 與祖宗盛德, 雖幸無事, 一念及此, 其爲危澟, 奚啻朽索之馭六馬? 晝之所爲, 夜必思之, 實有屋漏之臨, 而一日萬幾, 無一事自慊於心, 安得不召災致異乎?" 左議政蔡濟恭曰: "上以昌言求之, 下以讜言進之, 豈非美事, 而在下之人, 不惟不能對揚, 反因求言而敢售挾雜之意, 黨同伐異, 其弊不一。 進言則一也, 而亦有同行異情, 差毫謬千處矣。" 右議政李秉模曰: "事天事神, 其道一般。 祭祀之禮, 於彼乎於此乎, 上下四方, 無所不求, 遇災修省, 亦當如是。 丕惟曰: ‘此事之未當乎?’ 亦惟曰: ‘彼事之有失乎?’ 一事二事, 不敢暇逸, 今日明日, 久而靡懈, 則天必庶有感回之理矣。 殿下於隱微之際, 有一分未及照檢處, 則雖至於義精仁熟之後, 一或違道, 便歸於非處。 格非之責, 惟大人能之, 誠使今日朝廷, 有能當是任者, 不必待詢諮訪問, 而自能有格心之效。 臣非敢爲備例飾讓。 左右輔弼, 不得其人, 孰能贊聖工之省察, 何以致庶績之咸熙? 如臣愚下, 亟賜斥退, 區區之望也。" 上曰: "近因慶禮, 考出《政院日記》《實錄》, 則實錄亦或有錯誤處。 如丙寅收議, 故相金壽恒南九萬, 皆主難愼之論, 而故相閔鼎重, 難愼之中, 亦有承順之意, 《實錄》則乃以爲 ‘閔鼎重金壽興二人外, 皆爲承順’ 云。 豈非爽實之甚乎? 大抵作史甚難。 雖係目見之事, 一堂之中, 所見各異, 一字之誤, 事實全乖, 況後世之史, 率多私意之參錯, 將何以傳信乎?" 上, 又曰: "昨日左相箚: ‘有和泥帶水枉直無別’ 之語, 院議府啓: ‘又以不能寅協’ 爲言。 予未知其何所指, 而此等語旣屢登章奏, 則予亦不得不一番言之矣。 夫治淫朋, 如治邪學, 正學明則邪學不禁而自息。 苟能有眞箇直者, 則枉者亦化而爲直, 苟有大罪, 合用流放竄殛之律, 無所事於寅協。 至於小小同異, 同室之中, 亦豈無此? 不過如水之漚自起自減而已, 亦何必爲出奴入主之政哉? 昔自列聖朝已隆寅協之風, 逮我先朝, 丕闡建極之治, 今之所謂爭端者, 亦何足道哉? 爭端云者, 彼此相敵之謂也, 誠使君子道長, 小人道消, 有何爭端之可言? 惟其元氣之不實, 所以有客氣之侵凌, 予則曰: ‘今日之所謂不能寅協, 都是可笑之事也。’ 大抵外若相親, 內實相睽, 乃是不好底模樣, 若能表裏無異, 此外都無事矣。"


  • 【태백산사고본】 48책 4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63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과학-천기(天氣) / 사상(思想) / 정론(政論)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