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47권, 정조 21년 11월 12일 정축 3번째기사
1797년 청 가경(嘉慶) 2년
이시수의 말에 따라 명과학의 액수를 늘리고 시강의 책자를 바꾸다
관상감 제조 이시수(李時秀)가 아뢰기를,
"명과학(命課學)의 식년(式年) 시취(試取) 때에 액수(額數)가 너무 적습니다. 그러므로 선발이 넓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도 흥기(興起)하여 시험에 응시를 원하는 마음이 적습니다. 초시(初試)의 액수 4인을 8인으로 늘리고 복시(覆試) 2인을 4인으로 늘리소서. 시강(試講)의 책자 중에 《서자평(徐子平)》과 《범위수(範圍數)》는 모두 추명방서(推命方書)이고 원래 길일(吉日)을 가리는 일에 관계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는 《원천강(袁天綱)》 및 신간(新刊) 《협길통의(協吉通義)》를 시강(試講)하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5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觀象監提調李時秀啓言: "命課學式年試取時, 額數太少。 故不但選取之不廣, 渠輩亦罕興起願赴之心。 請初試額數四人, 增爲八人, 覆試二人, 增爲四人。 試講冊子中, 徐子平、《範圍數》, 皆是推命方書, 元不關於諏吉選日之業。 請自今, 以《袁天綱》及新刊《協吉通義》, 試講。" 從之。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5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