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모의 말에 따라 전곶의 목장에 나무를 심도록 신칙하다
사복시 제조 이병모가 전곶(箭串)의 목장에 나무를 심도록 신칙하기를 청하니, 따랐다. 하교하기를,
"전곶 목장의 목마(牧馬)로서 수명(修明)의 효과를 시험해보려 한 지 오래되었다. 자문한 것이 정중하였으나 오늘날까지 미루게 된 것은 다만 기강이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옛날 팔도의 인부를 동원하여 성의 담을 건축하되, 용마봉(龍馬峰)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전곶에 이르고 북쪽으로 영포(泠浦)에 이르렀는데, 전곶에서 그 바깥은 둑도(纛島) 일대를 한계로 삼았다. 영포의 내계(內界)는 곧 큰 시내의 직류(直流)로 남쪽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려 서쪽으로 돌아 배봉(拜峰)에 이르렀으며 배봉에 이르러 또 목책(木柵)을 세우고 문을 설치하였다. 그 주위가 이처럼 넓고 멀며 경영한 것이 저처럼 두루하고 컸다.
산의 바깥 담 밑에 들 1백 묘(畝)를 떼어서 백성들에게 경작해 먹게 하였고, 그것을 경작해 먹는 사람은 모두 관에 의해 먹고 사는 사람으로 모두 목장에 예속되었다. 산과 강이 그 형세를 도와주고 농민이 그 노력을 함께 하였다. 목장 안의 동서 남북 일대는 곧 천 마리 말을 방목하고 만 마리 말을 기를 수 있는 곳으로서 역정(驛亭)의 이름을 화양(華陽)이라 불렀는데 지방 또한 명구(名區)이니 명마(名馬)가 이로부터 산출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강이 점차 해이해지고 온갖 법도가 어지러워져 이른바 박배(朴排)의 법이 일어나면서 독도와 전곶의 사이의 말을 기르는 목장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말에 해가 되고 목장에 방해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어서 목장 주위의 안팎이 해독이 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무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밭이랑 논두렁이 질서 정연하게 있으며, 심지어 빈 땅의 갈대는 모두 궁방(宮房)에서 떼어 받는 과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대체로 육지에서 사용하는 것으로는 말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 땅에서 말을 길러 동성(東城)의 가리개로 삼은 것이 어찌 단지 마정(馬政) 때문이겠는가. 또한 거리에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장을 훼손하는 것도 부족해서 그지없이 소홀하게 관리하고 있다.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으로서는 누가 마정(馬政)의 수명(修明)에 유의하려 하지 않겠는가마는, 기강이 확립되지 않으면 다른 일은 모두 구차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수습하지 못한 채 그냥 내맡겨두어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연전에 한 대신이 수명(修明)에 뜻을 집중하여 큰 말을 사들여 그 목장을 충실하게 하고 암말을 모아서 그 종자를 번식시키며 게다가 나무 심는 정사까지 지성껏 행하였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생각하기를 ‘가장 좋은 방법은 독도의 물을 능히 회복하여 박배(朴排)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박배 밖의 논과 밭 전체를 가지고 빙 둘러 호위하는 형상을 만들되, 마치 사전(私田) 8정(井)이 공전(公田) 1정(井)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이 장성(長城)처럼 굳게 하는 것이니, 그러면 마정(馬政)은 수명(修明)되기를 기약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수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이어서 시험해보도록 하였다.
한데, 가장 좋은 방법과 그 다음의 계책에 대해서는 그만두고라도, 그 뒤에 행한 바 망아지를 길들이는 대절(大節)과 세목(細目)에 있어서 과연 날로 계산하고 달로 계산하며 해로 계산할 만한 실효가 있는가. 다만 나무를 심는 한 가지 일에만 잗달게 얽매일 수는 없다. 경들 이하의 관원들은 정성을 다하여 힘써서 이 수명하는 일이 명실상부하게 되도록 하라. 지리(地利)와 마정(馬政)에 있어 옛날 창설한 성모(聖謨)와 굉규(宏規)를 생각한다면 경들만 영광스럽게 될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수명(修明)이 당연한 도리임을 자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경들은 모두 각각 마음을 다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46면
- 【분류】교통-마정(馬政) / 농업(農業)
○司僕寺提調李秉模, 請飭箭串牧場植木, 從之。 敎曰: "箭串牧場之牧馬, 欲試修明之效者久矣。 咨且鄭重, 而荏苒至今者, 特以紀綱之不若昔也。 昔者發八道丁夫, 建築城垣, 始自龍馬峰, 南至于箭串, 北至于泠浦, 而箭串以外, 限以纛島一帶。 泠浦之內界, 是大川, 直流南迤, 西廻至于拜峰, 而又樹柵設門。 其週遭如是之闊遠, 經始若彼其博。 大山之外垣之底, 畫野百畝, 許民耕食, 食之者皆食於官, 而俱隷牧場。 岳瀆助其勢, 田民共其力。 場內之東西南北, 卽放千群孶萬馬之所, 而亭號華陽, 地亦名區, 八駿之從此出, 固其然也。 紀綱漸下, 百度叢脞, 所謂朴排之法作, 而纛島、箭串之間, 便不爲牧馬之場。 於是乎害於馬妨於牧, 不一其端, 環場內外, 無非蟊賊。 而邱壠纍纍, 然畎陌井井然, 甚至隙地蘆葦, 竝入宮房之折受。 大抵地用, 莫如馬。 牧馬於是地, 以補東城之遮障者, 豈特馬政? 亦係地理也。 毁畫之不足, 踈虞莫甚。 謀國者孰不欲留意修明, 而紀綱不立, 則餘事皆苟也。 此所以一任其不能收拾。 而年前一大臣, 銳意修明, 購騋而實其場, 聚牝而殖其種, 加以懃懃於樹藝之政。 予猶以爲: "太上, 克復纛島之水朴排, 其次都執朴排外, 水田旱田, 作環衛狀, 如私田八井之於公田一井, 衆心牢如長城, 馬政不期修明而自可修明云爾。’ 仍許試可。 而太上與其次之策, 姑捨是, 其後攻駒之大節細目, 果然有日計月計, 以至歲計之實効乎? 不可只規規於樹藝一事。 卿等以下, 慥慥孜孜, 俾此修明之擧, 爲名實相副之一助。 地利也馬政也, 追昔年創設之聖謨宏規, 則不惟卿等之與有榮, 予亦始可自信修明之爲當然底道理。 卿等須各盡心。"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46면
- 【분류】교통-마정(馬政) / 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