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제공에게 명하여 장릉에 숙종 어제운을 차운하여 현판에 걸어놓게 하다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을 불러 보았다. 상이 이르기를,
"장릉(章陵)은 계양산(桂陽山)을 안산(案山)으로 하고 비단 병풍처럼 둘러싸여 지세가 매우 좋다. 이번 행차에 사실을 기록함이 없을 수 없으니, 숙종(肅宗) 어제운(御製韻)을 삼가 차운(次韻)하여 현판에 걸어놓도록 하라. 그리고 선조(先朝)께서 늘 ‘더디고 더디어라 지는 해 한 해를 보내는 듯하구나[遲遲入日度如年]’이라는 구절을 읊으시던 것을 삼가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슬픈 감회가 일어 난다. 옛날에 듣건대 김안로(金安老)는 조수(潮水)를 40리까지 통하게 하여 원통현(圓通峴)에 이르러 그쳤다 하는데, 이곳은 만년토록 감싸 호위하는 땅이니 어찌 인력으로 파고 깨뜨릴 여지가 있겠는가."
하였다. 이때 원자(元子)가 모시고 앉아 있었는데, 상이 원자에게 분부하여 일과(日課)로 지은 시문(詩文)을 가져다가 채제공에게 보이도록 하였다. 채제공이 아뢰기를,
"‘어가는 맑은 새벽에 출발하고 깃발은 1백 리에 붉게 빛난다[鑾駕淸晨發 旌旗百里紅]’라고 한 이하의 여러 구절을 보건대, 애연(譪然)히 천성에 근본하여 발로된 것임을 알겠으니 더욱 감탄하게 됩니다. 또 ‘태평스런 풍경의 큰 거리 위에 격양가 소리 곳곳에서 들린다[煙月康衢上 處處擊壤歌]’라는 구절도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태평시대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왕(聖王)이 일어나서 치화(治化)가 사람에게 흡족하면 그렇게 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니, 이런 점을 그야말로 깊이 생각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40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어문학(語文學)
○丙寅/召見左議政蔡濟恭。 上曰: "章陵以桂陽山爲案, 環如錦繡障子, 地理甚好。 今行不可無紀實, 謹次肅考御製韻, 使之揭板。 而恭憶先朝, 每誦 ‘遲遲入日度如年’ 之句, 不覺愴感矣。 昔聞金安老通潮四十里, 至圓通峴而止, 此爲萬年拱護之地, 則豈容人力鑿破乎?" 時元子侍坐, 上敎元子, 取所課詩文, 示濟恭, 濟恭曰: "鑾駕淸晨發, 旌旗百里紅。 以下諸句, 藹然見根天之所發, 尤用欽歎。 且 ‘烟月康衢上, 處處擊壤歌’ 之句, 誠好矣。 然烟月擊壤, 非徒然可致。 聖王有作, 治化浹人, 則不期然而自然, 此等處正好深思矣。"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4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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